# 21
7. 소문(2)
***
악양에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마사지사가 있다는 소문과 여자에게 묘한 쾌감을 주는 마사지사가 있다는 소문이 비슷한 시기에 인터넷과 입을 통해 번져 나갔다.
물론 더 화제가 된 건 후자였다.
“에이! 거짓말. 남자의 손이니까 어느 정도야 느낄 수 있겠지만 오르가즘을 느낀다는 게 말이 돼?”
커피를 마시던 간호사는 동료인 파마머리 간호사의 말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면박을 준다.
그에 나이가 제법 있는 간호사가 동조하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처음 소문을 말했던 간호사는 더욱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진짜라니까. 내가 아는 언니가 직접 경험하고 말해준 거라니까. 그 언니 말로는 엄청났대요.”
“오호호호! 그 언니라는 분이 너무 굶어서 그런 거 아냐? 그래서 남자의 손이 닿자 쉽게 흥분한 거고.”
순백의 천사라고 불리는 간호사들이 하는 말치곤 꽤나 걸었다.
모닝 커피를 마시며 가볍게 한 말인데 자꾸 딴죽을 거니 파마머리 간호사는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마사지사에 대한 다른 소문들을 덧붙였다.
“그 마사지사 환각지도 잘 고친대요. 그래서 거기 가보면 팔다리 없는 이들이 꽤 있대요. 그리고 내가 말한 마사지를 받으려면 꼭 예약을 해야 해요.”
이래도 반박할 말이 있느냐는 듯 말했는데 대답은 엉뚱하게 문 쪽에서 들렸다.
“그건 헛소문임에 틀림없어요. 한의학에서도, 양의학에서도 환각지가 불치병이라 불리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텐데요. 일반인도 아니고 의학 지식이 있는 간호사가 그런 말을 하다니 실망인데요.”
출근을 하던 원장 김장혁이 한 말이었다.
“아! 워, 원장님 오셨어요?”
물리치료실 간호사들은 서둘러 인사를 하곤 2층으로 올라갔다. 다만 소문을 말한 파마머리 간호사만은 접수처가 자신의 자리였기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김장혁은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이었다.
“근데 한 간호사는 그 소문을 어디서 들은 거예요?”
“아는 언니가 말해서······.”
“말하는 투를 봐선 직접 해본 것 같은데요?”
“아, 아니에요. 그저 예약만··· 헙!”
파마머리 한 간호사는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황급히 입을 닫았다.
“쩝, 내가 한 간호사 개인적인 일까지 간섭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대단한 마사지사가 있다니 저 역시 한 번 보고 싶군요. 어디에 사는 사람입니까?”
“···여기서 가까워요.”
“하동 읍내에 있습니까?”
“아뇨. 매계리에 있어요.”
“매계리!”
매계리라는 소리에 가장 먼저 한언수가 떠올랐다.
어릴 땐 그저 사람 잘 고치는 괴팍한 할아버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데 한의대에 입학하고 한의학을 배우면서부터 그에 대한 인식이 180도 바뀌었다. 어린 시절 그가 들었던 소문만으로 판단해도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최고의 치료사임을 알게 되었다.
한언수는 침, 뜸, 안마 등 모든 면에서 우수했지만 특히 안마로 못 고치는 병이 없다고 할 정도로 대단했다.
지금 그에겐 한언수는 실력 면에서는 닮고 싶은 존경의 대상이었고 그런 실력을 가지고도 이런 시골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에 대해선 경멸을 했다.
“그곳 사장의 나이가······?”
“원장님보다 젊던데요. 20대 중반쯤 되어 보였어요.”
‘손자인 그 녀석인가? 두삼이라고 했었지.’
동네 또래들과 어울리며 하루가 멀다 하고 말썽을 피우고 다니던 두삼이 떠올랐다.
딱히 접점이 없다가 한언수와 그의 아버지 김광도의 문제가 일어난 후 꼴에 할아버지를 위한다고 자신을 괴롭혔던 놈이었다.
‘양아치 새끼. 할아버지한테 몇 가지 배운 모양이네.’
김장혁은 소문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다.
잔재주 몇 가지로 사람을 현혹시키고 있는 모양인데 내버려 두면 알아서 사라질게 빤했다.
사무실로 들어온 김장혁은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가장 먼저 커피를 내렸다.
그의 하루 일과 중 가장 한가한 시간이며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간호사와 물리치료사를 한 명씩 줄여야 할 것 같은데.’
신장개업발이었는지 넘치던 손님이 최근 들어 확 줄었다.
김광도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느니 그 돈으로 안마기 몇 대 들여놓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조만간 한 간호사와 안마사 중에 한 명을 내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 간호사를 내보내는 것은 결코 자신보다 두삼을 어리게 봐서는 아니었다.
커피를 마신 그는 아침 일찍 온 첫 손님을 시작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손님이 줄었다고 그의 노동시간이 준 것은 아니었는데 한 명의 손님에게 예전보다 몇 배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만일 실험해 본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아무리 손님이 없다고 해도 절대 할 짓이 못 됐다.
특히 진상 손님을 만나면 물릴 수 있으면 물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시간만 억수로 잡아먹고 어깨 상태는 그대론데 무슨 치료비가 이렇게 비쌉니까?”
마치 자신이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치는 손님, 아니, 양아치의 목소리에 침을 놓던 김장혁의 표정이 구겨졌다.
‘수준 낮은 인간들하곤······’
만일 자신이 상대했다면 치료비 필요 없으니 꺼지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진상을 상대하는 건 간호사들의 몫이었다.
속으로 욕하는 걸로 스트레스 지수를 낮춘 그는 신경을 끄고 다시 치료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뒤이어 들리는 소리에 다시 인상을 구겨야 했다.
“지난번엔 매계리에 가서 마사지 한 번 받고 났더니 괜찮더고만. 소문 듣고 여기 온 내가 병신이지. 에잉!”
비교만 하지 않았으면 참았을 것이다. 그러나 비교당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그였다.
진료를 마무리하고 사무실로 돌아온 김장혁은 환자 차트를 확인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장혁 군, 오랜만이군. 시골에서 고생이 많지?
“잘 지내셨습니까, 차 실장님.”
-나야 항상 잘 지내지. 한데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는 것이 무슨 일이 있냐?
차 실장이라 불린 사내는 오랫동안 김장혁과 알고 지내서 그런지 목소리만 듣고도 기분 상태를 파악했다.
“매번 비슷한 경우죠.”
-쯧! 누가 또 네 기분을 상하게 한 모양이구나.
“미안합니다. 매번 이런 일로만 전화를 드려서.”
-됐다. 안 그래도 요즘 사무실에만 있으려니 지루했던 참이었다. 어떻게 해줄까?
자주 있던 일인지 가타부타 없이 의견을 물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갑들이 살고 있는지 알게 해주세요.”
김장혁은 그동안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은 물론이고 기분을 나쁘게 했던 이들에게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본때를 보여줬었다.
폭력은 쓰지 않았다.
다만 상대에 맞게 권력과 인맥을 이용해 괴롭혔다.
가령 작은 가게나 사업을 하는 이에겐 세무조사를 받게 만들거나 납품 관련 일을 방해했는데 그에게 단순히 기분을 풀고자 하는 일이었지만 당하는 이들에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임에 틀림없었다.
-큭큭큭! 또 한 사람의 인생이 바닥으로 떨어지겠군. 간혹 그들이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묘한 쾌감 같은 게 느껴진다니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보내겠습니다.”
-그래.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됐는지 알려주마.
전화를 끊고 김장혁은 진상 손님의 개인 정보를 차 실장에게 보냈다.
그리곤 이내 잊은 듯 공부에 집중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되든 그에겐 나중에 보고받으면서 잠깐 ‘그런 인간이 있었지’라며 떠올릴 하찮은 일일 뿐이었다.
“먼저 퇴근합니다. 모레 봐요.”
일과를 마친 김장혁은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내일 휴원이라 서울에 가서 간만에 술이나 한잔할 생각이었다.
삼거리 신호등에 서 있던 그는 문득 매계리 방향을 바라보았다.
‘잠깐 들러볼까?’
두삼의 소문을 하루에 두 번이나 듣게 되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고작 마사지사에 불과한 놈에게 신경을 쓰다니······.”
자신과 비교도 안 되는 직업을 가진 두삼에게 신경을 쓴다는 자체가 자존심이 상했지만 말과 달리 그는 어느새 차를 매계리 방면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럭저럭 되나 보네.’
김장혁은 두삼의 집 근처에 도착해 차 안에서 10분 정도 상황을 살펴보았다.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문 앞에 몇 대의 차량이 서 있는 것이 손님이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가는 것도 우스웠기에 차에서 내렸다.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기에 만나게 되면 인사 겸 마사지를 받으러 왔다고 할 요량으로 열린 대문으로 들어갔다.
‘옛날 그대로군.’
한언수와 김광도가 사이가 좋을 때 명절이면 제법 값나가는 선물을 사서 인사차 왔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김광도는 김장혁을 데리고 왔는데 그는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기를 싫어하는 김광도에게 빨리 가자고 떼를 쓰는 역할을 맡았었다.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웠던 그에게는 낯 뜨거운 짓이었지만 두둑한 용돈이 떨어지는 일이었기에 기꺼이 동참을 했었다.
‘그나저나 방향을 가리키는 종이 몇 장 붙여놓은 게 단가? 참, 장사 날로 해먹는군.’
사람이 왔는데 안내해 주는 사람은커녕 내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과연 이따위로 해서 손님이 있을까 의문일 정도로 허접해 보였다.
‘괜히 왔군. 그냥 가야겠어.’
김장혁은 두삼이 불치병인 환각지를 고쳤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부풀려 소문을 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입구부터 엉망이니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발걸음을 돌렸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려는 찰나 두 대의 차량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염탐하러 왔다는 생각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스위치에서 손을 떼며 고개를 움츠렸다.
“이 시간에도 오는 손님이 있는 걸보면 실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닌가보네. 어? 저 여자는 우하란! 근데 여긴 무슨 일로······?”
올라온 이들이 얼른 안으로 사라지길 기다리는데 커다란 밴에서 내리는 여자는 그가 아는 얼굴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하루에 한두 번은 접수 기록을 살펴보며 생각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여자였다.
우하란이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금세 풀렸다.
차에서 그도 진맥을 해본 적이 있는 배영옥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얼굴로 내리고 있었다.
“설마······?! 아닐 거야.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두삼이 암을 치료했다는 생각에 그는 발작적으로 아니라고 외쳤다.
그러나 예전보다 더 나빠 보이거나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야 할 배영옥이 건강해진 모습으로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말도 안 되는 일이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암을 잘 고쳤던 한언수의 기술을 두삼이 알아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리라.
‘아냐. 그냥 우연일 뿐일 거야. 수술이 잘돼서 마사지 치료를 받으러 왔을 수도 있어. 그게 아니라면 내 의원에 찾아왔을 때 그리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을 수도 있고.’
김장혁은 현실을 부정했다.
공부는 않고 말썽만 피우고(두삼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악양을 떠난 후였다) 의원도 아닌 고작 마사지사에 불과한 놈이 6년간 공부 끝에 한의대를 졸업하고 4년이 넘게 실습해 온 자신조차 엄두도 내지 못하는 병을 고쳤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김장혁은 묘한 패배감과 왠지 모를 질투심에 잔뜩 굳어진 얼굴로 차에서 내려 그녀의 뒤를 밟았다.
우하란은 수행원들로 보이는 이들과 함께였는데 다들 기분이 좋아서인지 조금 떨어져 따라가는 그를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우하란 일행이 건물로 다가가 두삼을 찾았다.
곧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어린 시절의 얼굴이 남아 있는 그가 방에서 나왔다.
‘한두삼!’
우하란은 두삼을 향해 잔뜩 흥분한 얼굴로 뭔가를 말했다.
거리가 멀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배영옥을 돌아보면서 말하는 폼이 왠지 알 것만 같았다.
‘가식적으로 웃지 마!’
그녀의 말에 기쁘게 웃는 두삼의 모습이 그에겐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속으로 웃지 말라고 소리칠 때 눈에서 불똥이 튈 일이 발생했다.
우하란이 그를 껴안은 것이었다.
김장혁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복잡한 심정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러나 감정만은 오롯이 한가지였다.
분노.
차를 타고 매계리에서 내려오면서 김장혁은 차 실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말했다.
목표물이 바뀌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