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18화 (17/122)

# 18

6. 길을 뚫어라(2)

으뜸이라는 작은 간판 앞에 차가 멈추자 우하란은 서둘러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배영옥이 무사히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치료가 어느 정도 진척이 있는지 궁금했다.

“으···흥······ 아~”

한데 대문을 지나자 은은하게 들리던 민망한 소리가 본채로 다가갈수록 점점 커졌다.

우하란도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진 않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미국에서 오랜 기간 지내다 보니 꽤 개방적인 생각을 가진 우하란이었다.

그런데 벌건 대낮에 아픈 사람을 치료를 하는 곳에서 남들 모르게 조용히 하는 것도 아니고 은은한 신음 소리가 나니 인상이 찌푸려졌다.

“헐! 상당히 실력자(?)인가 보네요. 악양에서 홍콩으로··· 험험!”

주차를 하고 뒤따라오던 최익현이 뭔가 부럽다는 듯 한마디 하다가 우하란의 눈과 마주치자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닫았다.

“짐승이 아닌 바에야 장소는 가려야죠.”

“···그, 그렇죠. 도대체 어떤 작자가 신성한 의원에서 이런 짓을 하는지 낯짝이라도 확인해 봐야겠군요.”

“방법이라도 묻게요?”

“허허······. 가르쳐 준다면 사양하진 않··· 농담입니다. 가, 같이 가시죠.”

우하란은 최익현을 무시하고 본채 앞마당으로 갔다.

경호원 겸 운전사로 남겨뒀던 나문덕이 마당에서 안절부절 서성이다가 그녀를 보고 인사를 했다.

“아! 사장님, 오셨습니까?”

“···무슨 일이에요?”

두루뭉술했지만 질문의 의도는 명백했다.

“두삼이가 정 간호사를······.”

“설마······! 문덕 씨는 말리지 않고 뭘 한 거예요!”

“예? 오, 오해 마세요. 마사지 하고 있는 중입니다.”

“···마사지라고요? 어떻게 마사지를 하기에 이런··· 소리가 날 수 있는 건가요?”

질문이 아닌 질책이었다.

두 사람이 얘기하는 동안 신음 소리는 다시 절정을 향해가고 있었다.

“왜 저런··· 소리를 내는 건지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히 마사지 맞습니다. 제가 너무 이상해서 몇 번이나 확인 했는걸요.”

“······.”

자전거를 타다가, 샤워를 하다가, 심지어 자다가 부드러운 이불의 촉감에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마사지사에게 마사지를 받을 때도 느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정도가 심했다.

“좋아요. 마사지를 받는다고 쳐요. 한데 뜬금없이 왜 정 간호사에게 마사지를 하는 거죠?”

확인해 볼까 하다가 민망한 상황이 발생할까 포기한 그녀는 궁금한 점을 물었다.

“음의 기운이 필요하다든가 뭐라든가. 아무튼 꼭 필요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음의 기운이라니······.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듣고만 있었던 거예요?”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엄마는요?”

“치료실에서 뜸을 맞고 계십니다.”

“치료실이라면 지금 마사지를 하고 있는 곳이잖아요. 정말 미친 거 아니에요? 저런 환경에서 치료를······!”

일방적으로 두삼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웬만해선 그냥 넘어가려 했다. 한데 배영옥이 신음 소리로 가득할 치료실에 있다고 하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우하란은 치료실로 다가갔다.

특별한 짓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문은 약간 열려 있는 상태였다.

문틈으로 두삼이 정 간호사를 떡 주무르듯 만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셨어요?”

우하란이 들어가자 두삼은 손은 멈추지 않은 채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우하란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배영옥을 찾았고 방 한 쪽에 가슴을 풀어 헤친 채 뜸을 맞고 있는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엄마······.’

같은 자리에 얼마나 많은 뜸을 떴는지 인중부터 배꼽 아래까지 새까맸고 떠날 때보다 많이 수척해진 배영옥의 모습을 본 우하란은 입술을 깨물었다.

특히 가까이 다가가자 살이 타는 듯한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우하란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살을 태우고 있는 뜸을 치우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막 뜸에 손을 대려는 순간 두삼이 그녀의 팔목을 움켜잡았다.

정 간호사를 떡 주무르듯 만지던 손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님 그의 말처럼 뭔가를 하던 손이라서 그런지 팔목에서 시작된 알 수 없는 찌릿함이 팔을 거쳐 온몸으로 번졌다.

묘한 불쾌감에 화들짝 놀란 그녀는 그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 뒤돌아보며 외쳤다.

“이 손 치······!”

그녀의 외침은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본 순간 이어지지 못하고 멈췄다.

미국으로 떠날 때완 비교도 안 되게 핼쑥해진 얼굴, 광대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얼굴만 보자면 배영옥보다 더 환자 같았다.

다만 두 눈만은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었는데 욕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머님 상태가 그제 저녁부터 많이 안 좋습니다. 피부가 타는 것 때문에 뜸을 중지하면 더 이상의 희망은 없습니다.”

“···그럼?”

“이번에 하는 치료가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방금 전까지 가졌던 생각은 달아나 버렸다.

“···가, 가능성은 있는 거죠? 그렇죠?”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의 진료 기록대로라면 일말의 가능성은 보이지만······. 아무튼 지금으로선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

어린 시절 선교사의 눈에 띄어 미국으로 건너간 후 중,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까지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던 그녀는 천재들 중에서도 상위 0.1퍼센트 안에 드는 천재였다.

한꺼번에 수십 가지 생각을 동시에 처리할 정도로 뛰어났고 대학교 때 흥미삼아 만든 기상 예측 프로그램으로 단숨에 미국 시민권과 사업 자금을 마련했던 그녀지만 지금은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다.

회사를 팔아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죽음 직전의 엄마를 위해 중얼거리듯 한마디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살려줘요. 제발······.”

“···할 수 있는 한 해보겠습니다. 한데 지금은 잠깐 나가 계세요. 지금은 기력을 좀 더 보충해야 합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부르겠습니다.”

우하란은 자신이 지금 할 일은 그가 최선을 다해 치료에 전념하게 만드는 것임을 깨닫고 두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

[모두 너 때문이야! 살려내! 살려내란 말이야!]

눈물을 흘리며 멱살을 잡고 흔드는 남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자신이 손대지 않았어도 헬기가 도착하기 전에 죽었을 것이란 말이 입에서 맴돌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 앞에서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음을 알기에 고개를 숙인 채 사과를 반복했다.

그들이 흔들면 흔드는 대로,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으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긴 했다. 그러나 마음 깊숙이 응어리진 죄의식이 사라질리 만무했다.

화면이 바뀌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노년의 사내가 소리쳤다.

[멍청한 자식! 의사나 의원은 신이 아냐. 언제고 너의 그 무모한 사명감이 널 망가뜨리게 될 거다.]

젊은 두삼은 그가 자신을 위해 하는 훈계라는 걸 몰랐다. 그래서 오히려 발끈해서 외쳤다.

[그럼 의원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란 말입니까? 그게 선생님이 가르치신 의원의 길입니까! 전 그렇게는 못 합니다.]

[······.]

노년의 사내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두삼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그 순간 젊은 두삼은 사라지고 지금의 두삼이 그의 등을 향해 외쳤다.

‘선생님! 선생님 말씀처럼 되었을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르쳐주십시오. 선생님! 선생님!’

그러나 노년의 사내는 경고만으로 할 도리를 다했다는 듯 뒤돌아보지 않고 어둠으로 사라져 버렸다.

“······선생님.”

두삼은 잠꼬대 소리에 눈을 떴다.

의자에 앉은 채 깜박 잠이든 모양이었다.

“···쓸데없는 기억까지 떠오르는 걸 보면 피곤하긴 피곤한가보네. 아! 뜸!”

20분마다 뒤집으면서 한 번씩 갈아줘야 하는 뜸을 떠올리곤 배영옥을 바라보았다.

한데 배영옥 대신 잘빠진 여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하란 씨? 안 자고 여기서 뭐 해요?”

“아! 깼어요? 잠이 안 와서요. 뜸은 제가 갈 테니 좀 쉬어요.”

“잠이 깼습니다.”

두삼은 그녀 옆으로 가 뜸이 제대로 놓였는지 살펴보았다.

모두 정확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제대로 놓으셨네요.”

“피부가 탄 자국이 이렇게 선명한데 다른 곳에 놓는 게 이상하죠.”

“후후. 그런가요? 아무튼 덕분에 잠깐 쉴 수 있게 되었네요. 전 커피를 마실 생각인데 같이 한잔하실래요? 물론 작업은 아닙니다.”

두삼은 잠이 덜 깬 건지 그답지 않게 농담을 했다.

하란이 눈썹을 살짝 올리며 잠시 그를 바라보았지만 농담이라는 걸 알았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정신도 차릴 겸 밖에서 먹을까요?”

두 잔의 믹스 커피를 타서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고 하란은 별말 없이 커피를 받아 따라나섰다.

두삼은 호주머니에서 쓴 한약재를 꺼내 우물거리며 커피를 마셨다. 그 모습이 신기한지 하란이 한마디 했다.

“그렇게 먹으면 맛있어요?”

“먹어볼래요?”

두삼이 한 조각을 건넸고 하란은 잠깐 망설이다가 입에 넣었다. 그러나 잠깐 우물거리던 그녀는 갖은 인상을 쓰곤 뱉어냈다.

“으~ 흙을 퍼먹은 것 같아요.”

“흙을 퍼먹어 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지만 적절한 표현인 것 같네요.”

“도대체 이걸 왜······. 참! 기운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했었죠?”

“맞아요. 마사지를 하면서 제가 가진 기운을 사용하는데 그걸 보충하기 위함입니다.”

“무슨 말인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정 간호사에게 들었어요. 한약을 먹어 양의 기운을 얻고 여자를 마사지해서 음의 기운을 얻어서 하나로 만든다면서요?”

“헬스 선수들이 근육을 키우기 위해 단백질 음료를 마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렇게 말하니 이해하기가 편하네요. 근데 요 며칠 식사도 제대로 안 하고 흙··· 아니, 한약만 먹는 것 같은데 기가 많이 부족한가 봐요?”

하란의 말에 두삼은 호주머니에서 약재를 하나 더 꺼내먹으며 별이 가득한 하늘을 봤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최대치로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아침이면 그 최대치가 될 것 같습니다.”

기를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사용할 수 있는 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럼······!”

똑똑한 여자라 그런지 금세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네. 마지막 시도를 해볼 생각입니다. 혹시 모르니 아침에 잠에서 깨울 겁니다. 그러니··· 할 얘기 있음 지금 하세요.”

뜸 치료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배영옥의 몸에서 기가 급속히 소모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분명 뜸 때문은 아니었다. 두삼은 그것이 죽기 직전에 발생하는 현상이 아닐까 싶어 아예 나가는 혈을 모조리 봉쇄해 둔 상태였다.

혹시 정신을 들게 했다가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성공 확률이 극히 희박한 치료를 하면서 마지막 인사도 못 하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작···별······ 인사인 건가요?”

“어쩌면요.”

하란은 눈에 차오르는 눈물을 없애려는 듯 연신 깜빡거리며 두삼처럼 하늘을 바라봤다.

참으려는 시도가 실패했는지 몇 방울의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지만 두삼은 모른 척했다.

“···선생님은 아직 포기를 안 하셨죠? 그렇죠?”

하란은 습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봅니다.’

두삼은 아까 꿈에서 본 노년의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지우며 대답했다.

“···네.”

“그럼 저도 작별 인사라고 생각하지 않을래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래요.”

그녀의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

두삼은 이렇다 할 말 없이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늘 한쪽에서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내일은 날씨만큼이나 힘든 하루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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