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13화 (13/122)

# 13

4. 만남(3)

***

이영호의 환각지 고통을 완전히 없애고 일주일간의 경과를 지켜본 후 치료를 일단락하기로 했다.

두툼한 치료비와 함께 저녁을 대접하겠다는 이영호의 말에 쉬고 싶다는 생각을 접고 하동 재첩국 가게로 왔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엄마.”

두삼은 마치 기도를 하듯이 중얼거리는 여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 노령의 여인이 쓰러졌을 때 나설까도 싶었다. 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괜히 손댔다가 과거의 일이 되풀이 될까 두려워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체해서 진통제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 같은데······.’

맥을 짚어봐야겠지만 얼굴색이나 호흡을 들었을 때 체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한데 엄마가 발버둥 칠까 봐 손에 핏기가 사라질 정도로 꽉 껴안고 중얼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흔들렸다.

‘경우가 없는 여자 같진 않으니 설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진 않겠지.’

조금 전 주변 사람들에게 눈을 맞추며 사과를 하는 모습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해서 약이 제대로 흡수가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제가 좀 봐도 될까요?”

눈빛에 의아함이 보였지만 얼른 고쳐주고 말자는 생각에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맥을 짚었다.

‘헐!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분의 몸에 웬 기운들이 이렇게 많아? 쯧! 몸에 좋다는 약초를 죄다 먹였나 보네. 게다가 이 탁한 기운은 도대체 뭐야?’

맥만으론 판단하기 힘들어 기를 손 쪽으로 보냈다.

손, 발, 귀에 인체의 대부분을 자극할 수 있는 부위가 있음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한데 할아버지가 남긴 인체 기의 지도를 공부하면서 왜 그렇게 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역시 체했어. 엄지와 검지 사이 위를 활발하게 만드는 기의 통로가 좁아졌어.’

위가 제 기능을 못하는데 급하게 밥을 먹었으니 체할 수밖에 없었다. 민간요법처럼 엄지와 검지 사이의 혈을 꾹꾹 눌러 자극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가지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맥을 짚으며 어떻게 할지 결정한 두삼은 우하란을 향해 물었다.

“체했습니다. 토하게 해야 하는데··· 여기선 곤란하니 밖으로 모시고 가야 합니다. 물론, 고통 부위만 마취시킬 시간이 없으니 전신 마취로 고통을 없앤 후에 하겠지만 말이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에?”

우하란은 워낙 급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앞에 있는 두삼이 어떤 사람이냐는 것보다 배영옥을 진정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하, 하세요.”

“휴우~ 제발 보따리만 찾지 마세요.”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실행하겠습니다.”

두삼은 기를 손끝으로 보낸 후 환자의 목 부근의 마비 혈을 찾아 눌렀다.

우하란이 꼭 껴안고 있어 그녀와 접촉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하아······.”

고통이 사라졌는지 경직되었던 몸이 풀렸고 배영옥의 입에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밖에 나가서 토하게 할 겁니다. 그럼 나가겠습니다.”

두삼은 빼앗듯이 배영옥을 낚아채서 안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풀밭으로 데리고 갔다.

배영옥의 뒤에 서서 그녀의 허리를 팔로 감쌌다. 자세는 민망했지만 토하기엔 최적의 자세였다.

“목으로 음식물이 올라오면 뱉는다고 생각하세요.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그래요.”

배영옥은 고통이 사라지자 말할 기운이 생겼는지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두삼은 허리를 받치고 있던 손으로 배 부분을 누르며 등의 혈을 차례로 눌렀다.

“우욱!”

마지막으로 먹었던 분홍빛 진통제와 함께 재첩국이 전혀 소화되지 않은 채 풀밭에 떨어졌다. 그리고 낮에 먹은 죽까지 토하고 나서야 멈췄다.

배영옥이 토하는 동안 그녀의 일행들도 모두 나와 있었다.

“다 됐습니다. 진통제를 다시 먹일 생각이라면 지금 먹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마취는 20, 30분 뒤에 풀릴 겁니다.”

두삼의 전광석화와 같은 행동에 우하란과 일행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는 일행 중 남자에게 배영옥을 맡기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식사도 마친 상태라 이경례와 이영호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상 있으면 전화주시고 꼭 찾아오세요.”

무릎 아래로 내려가는 기의 길을 완전히 막는다고 했지만 어찌될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할 일이었다.

“고맙다. 내가 소문 많이 내주마.”

“너무 과대 포장 하진 말아주세요. 감당 안 되니까요. 하하하!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집에서 나올 때 충분히 길게 작별 인사를 했기에 짧게 마무리를 했다.

“잠깐만요.”

가게에 나와 오토바이에 오르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나른하면서도 오감을 깨우는 듯한 목소리.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네?”

돌아서자 우하란이 서 있었다.

‘정말이지 적응이 안 되게 예쁘네.’

두삼도 예쁜 여자를 보면 심장이 뛰는 남자였다. 응급 처치할 땐 무시할 수 있었지만 절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감사 인사도 못 드렸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신경 쓰지 마세요. 위급할 때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게 사람의 도리잖습니까.”

“그리 말해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한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하세요.”

“도대체 아깐 어떻게 하신 거죠? 등의 몇 곳을 누르는 것만으로 몸을 마취시키고 토하게 만드는 거요. 혹시 한의사신가요?”

한 가지를 묻는다더니 두 가지 물었다.

“마사지사입니다. 그리고 말씀한 건 평범한 잔재주일 뿐입니다.”

두삼은 최대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실 그녀가 묻는 이유는 대충 짐작이 됐다. 아마 한의사라면 치료를 부탁하려는 것이리라.

그러나 아까 맥을 짚고 기를 손으로 보내면서 환자의 상태가 최악임을 알고 있었기에 맡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고통을 제거해 달라는 부탁이라면 모를까······. 난 화타나 허준이 아니라고.’

“마사지사··· 라고요?”

“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마사지사죠. 다른 질문이 없다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두삼은 얼른 자리를 피하려 했다.

우하란의 간절한 눈빛이 안쓰럽긴 하지만 어려움과 맞서 싸우고자 하는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다행히 마사지사라고 말을 한 것이 통했는지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 그는 예전에 그녀에게 거스름돈 2만 원을 주지 못했던 것이 기억났다.

돈을 주면 말이 길어질까 그 정도 가치의 정보를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참! 어머니께 더 이상의 한약재는 먹이지 마세요. 다행히 지금까진 아슬아슬하게 생명을 유지시켜 주고 있지만 더 이상 먹이면 오히려 독이 될 겁니다.”

“······!”

부아아앙!

우하란이 뭔가를 말하는 듯했지만 이미 오토바이의 손잡이를 돌린 상태라 배기음에 묻혔다.

‘아저씨가 쓸데없는 소리를 안 해야 할 텐데······.’

도로를 달리며 백미러로 보니 가게를 나오던 이영호와 우하란이 뭔가 얘기를 하고 있었다.

***

집에 돌아온 두삼은 샤워를 하고 간만에 조용한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그간 이영호를 치료하고 공부를 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고생했다는 의미에서 스스로에게 하룻밤의 휴식을 주기로 한 것이다.

들어올 때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와 마른오징어를 먹으며 직캠을 구경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많이 쌀쌀해졌네. 슬슬 보일러에 기름을 채워놔야겠다. 어머니께 용돈도 좀 보내 드리고.”

돈이 있을 때 기름을 채워둬야지 아님 산에서 나무를 해 와서 불을 떼야 할지도 몰랐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영호가 준 돈을 생각하니 마음이 여유로운 두삼이었다.

부웅! 부웅!

두 번째 캔을 따려고 할 때 대문 쪽에서 자동차 소리와 함께 불빛이 아른거렸다.

‘설마······.’

슬리퍼를 끌고 대문으로 나가보니 예상대로 아까 봤던 우하란이 대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영업 끝났습니다만.”

“내일 올까요?”

대문을 흘낏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한의사라고 묻던 때완 사뭇 달라진 태도였다.

‘아저씨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 모양이네.’

그의 할아버지 한언수는 대문을 넘어선 사람은 아무리 늦게 온 사람이라도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밤에 대문을 잠가놓으면 담을 넘어오는 이들도 심심찮게 많았는데 그럴 때면 자다가도 일어나 환자를 보곤 했었다.

힘들게 왜 그러냐고 묻는 두삼에게 그는 오죽 아팠으면 담을 넘었겠냐고 하시면서 치료하는 사람의 기본 도리라고 가르쳤다.

물론 두삼이 굳이 따라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할아버지의 말은 삶의 지침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할아버지의 위패가 있는 곳이 아닌가.

“···들어오세요.”

“고마워요.”

두삼은 일행들에겐 쉴 방을, 환자에겐 진료실의 왼쪽 방을 배정한 후 진료실에서 우하란과 마주했다.

“우하란이에요. 밤늦게 선대 어르신의 유훈을 빌미로 이렇게 들이닥친 점 사과드릴게요.”

“영호 아저씨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을 테죠. 어쨌든 받아들이겠습니다. 전 한두삼입니다.”

좋지 않은 기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말하는 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한데 무슨 일로 찾아온 겁니까? 아저씨가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전 마사지사에 불과합니다.”

“직업이 뭐든 상관없어요. 제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밖에서 얘기할까요?”

두삼은 옆방에 있는 배영옥을 의식해 밖으로 나왔다.

“마사지사는 치료를 할 수 없는 거 아십니까?”

“몰라요. 그럼 치료가 아니라 마사지라고 생각하고 해주세요.”

“제가 보기엔 말기 암인 것 같은데 현재 하란 씨의 어머니는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맞아요. 5개월 전에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죠. 한데 그게 치료와 관계가 있나요? 혹 가능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면 다른 곳에서 충분히 들었으니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러나 전 1퍼센트만 되어도 포기할 생각이 없어요.”

이런 대답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 몇 마디 말에 포기할 생각이라면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을 터.

두삼은 솔직히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만일 당신 어머니를 제가 맡게 된다면 분명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해볼 겁니다.”

“고마운 말이네요. 근데 뭐가 문제죠?”

“전 사람이, 제가 치료하던 사람이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트라우마가 있죠.”

우하란은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두삼을 봤다.

거짓은 아닌 듯 보였다. 만일 다른 상황에서 그의 말을 들었더라면, 대안이 있었더라면 그의 문제를 존중했을 것이다.

“돌아가실 것 같으면 말해주세요. 그럼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떠날게요.”

“그렇게 보내면 제가 편할 것 같습니까?”

“손도 써보지 않고 쫓아내는 것은 편한가요?”

“······.”

정곡을 제대로 찔린 두삼은 순간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부끄러움 때문에 일어나는 반발심에 한마디 했다.

“설령 한다 해도 돌볼 사람이 없습니다.”

“걱정 말아요. 현재 있는 간호사 두 명을 상주시킬 거예요. 또한 선생님이 오로지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잡다한 일은 제가 책임질게요.”

외통수였다.

거절할 명분도 더 이상 없었기에 두삼은 결국 배영옥을 맡기로 했다.

“오늘 한 말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마워요. 한 달에 순수하게 진료비로만 이천씩 드릴게요. 사용하는 약재나 기타 비용은 모두 청구하셔도 좋아요. 그리고 만약 1년 동안 살게 해준다면 1억. 낫게 해준다면 10억을 추가로 드리죠.”

“돈 때문은 아니지만 힘이 나게 하는 제안임에 틀림없군요.”

성공 가능성은 없지만 이왕하기로 한 거 돈은 많이 받을수록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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