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3. 영업 시작(3)
“절단된 다리가 계속 아프단다. 치료를 하려고 해도······ 이미 사라진 다리가 아프다니 병원도 어찌할 바를 모르더구나. 정신적인 문제라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전혀 낫질 않는구나. 그래서 혹시나 싶어 찾아왔다.”
“···환상지.”
설명을 듣고 있던 두삼이 중얼거렸다.
환상지(幻像脂), 환각지, 유령손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사고로 갑자기 손발이 절단되었음에도 여전히 없어진 손발 부위가 근질거리거나 아픈 증상으로 확실한 치료법이 나오지 않았다.
팔다리가 사라진 것을 인지 못한 뇌의 작용, 혹은 사고 당시의 기억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초음파, 전기적 자극, 마사지, 정신과 치료 등 다양한 치료가 있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마사지로 효과를 보기 힘들 텐데. 진주에서 찾아온 분들을 그냥 보낼 수도 없고······.’
이래저래 고민이었다. 그러나 곧 무게 추는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일단 지켜보는 걸로 하자.’
‘기로는 혹시’라는 생각이 없잖아 있었다.
“들어오세요. 당장 뭔가를 해드릴 순 없지만 빈 방이 있으니 그곳에서 지내면서 천천히 살펴보기로 하죠. 지금도 많이 아프세요?”
“아니. 밤이 되면 그때부터 아프단다.”
“그럼 그때 보기로 하죠. 식사는 전이시죠? 찬은 없지만 같이 저녁 먹어요.”
과거 잘 알던 사이라고 하지만 십여 년 만에 만남이라 서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삼은 가급적 살갑게 대하려고 했다.
사랑채 부엌으로 가서 상을 차리는데 밭일을 마친 노혜자가 들어왔다.
“만수가 왔나 보구나?”
치료를 받고 건강해진 노혜자는 두삼이 손끝에 물도 못 묻히게 했다. 단 누군가가 와서 식사를 할 땐 예외였는데 그때마저 노혜자에게 상을 차리게 할 수 없다는 두삼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었다.
그래서 두삼이 상을 차리고 있자 노혜자가 손님이 왔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아뇨. 태산이 아버지와 할아버님이 오셨어요.”
“아! 영호 오빠와 경례 아저씨가 오셨어?”
“네.”
“그럼 그렇게 상을 내면 안 되지. 내가 얼른 씻고 차려줄게.”
“아니에요. 제 손님인 걸요.”
“오빠랑 아저씨는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나도 인사를 드려야 하니 안채에 올라가 있어라.”
노혜자는 두삼을 쫓아내듯이 부엌 밖으로 밀었다.
부부는 닮는다고 이봉래나 노혜자나 고집은 황소고집 저리가라였다.
“아휴~ 건강해지셨다고 미는 힘이 엄청나시네요.”
두삼은 미안한 마음에 너스레를 떨었다.
“다 네 덕분 아니겠니.”
“하하! 별말씀을요. 이번 주엔 마사지 두 배로 해드릴게요.”
“아무래도 마사지에 중독이 됐나 보다. 그건 전혀 사양하고픈 생각이 안 드는구나. 호호호!”
두삼은 두 사람이 주는 호의를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매주 안마를 해주며 그들의 경락을 조금씩 뚫어주고 있었다.
노혜자는 한참이 지난 후에 혼자서는 들지 못할 정도로 한상 거하게 차려왔다. 그리고 못 본 척한 건지 못 본 건지 이영호의 다리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인사를 하고 사랑채로 갔다.
‘숨이 막혀. 이럴 거면 아저씨, 아주머니랑 같이 먹는 거였는데.’
해가 지면서 어두워져가면서 기분도 가라앉는지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했다. 그래서 분위기도 조금 바꿔볼 겸 공통적인 주제를 꺼냈다.
“아저씨, 태산인 요즘 뭐해요?”
“···으, 응. 부산에서 회사 다녀.”
“결혼은요?”
“애인은 있는 것 같던데······. 글쎄다. 그러는 너는?”
“지금은 없어요.”
“예전에는 있었다는 소리구나?”
“아저씨도 참! 제 나이가 몇 인데 없었겠어요? 근데 술 한 잔씩 하실래요? 머루로 술을 담갔는데 그럭저럭 먹을 만 할 거예요.”
“흠! 치료하려면 안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이경례는 이영호가 술을 마시는 게 마땅치 않은 모양이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원인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예요. 못 할 가능성도 있고요. 그동안 고통을 참으려면 술이 필요하실 거예요.”
환상지의 고통에 대해 말만 들었지 겪어본 적이 없어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무작정 참으라고 말할 순 없었다.
“단, 치료에 방해가 될 정도로 마시면 곤란해요. 약속하실 수 있죠?”
“···그러마.”
두삼은 머루주를 가지고 왔고 반찬을 안주삼아 기분 좋게 마셨다.
“아저씨가 아프면 제가 살펴봐야 하니까 할아버지랑 아저씨랑 따로 주무세요.”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구나.”
“할아버지가 계셨어도 이랬을 건데요, 뭐.”
“나중에 방값이랑 치료비는 한 푼도 빠짐없이 청구해라. 알았지?”
“방값은 뺄게요. 대신 치료비는 확실하게 받겠습니다. 쉬세요.”
이영호의 방은 자신의 옆방에 이경례는 멀찍이 떨어진 방을 줬다. 한사람이라도 푹 쉬라는 배려였다.
고통이 크지 않고 참을 만했다면 실력도 알지 못하는 자신에게 오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으··· 윽! 으으······.”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는 신음 소리에 눈을 떴다.
“큭! 크으윽! 아아!”
얼마나 고통이 심한지 결국 악문 이를 뚫고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두삼은 칸막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많이 아프세요?”
“하아하아~ ···제, 제발 이 고통을··· 크윽!”
“이 상하겠어요. 참지 말고 소리를 지르세요. 여긴 조용하잖아요.”
환상지의 고통이 뇌가 다리가 절단되었음을 인지를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인지를 시켜주는 것이 좋았다.
고통스러움에 지르는 비명이 그 한 방법이라고 두삼은 생각했다.
그는 조용히 이영호의 반만 남을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씨발······. 큭!”
10분간 열심히 다리를 주물렀지만 전혀 효과가 없는지 결국 큰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리를 마취시켜 볼까?’
침으로 몇 군데 혈을 깊이를 다르게 찌르면 다리가 마취됐다.
물론 그의 곁에 침이 없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 침을 버렸다.
‘기가 침이 되는 거야. 이미 경험이 있잖아, 안 그래? 맞아! 그랬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한 두삼은 재빨리 손가락으로 기를 보냈다. 그리고 고통에 바동거려서 쉽지 않았지만 하나씩 차례대로 눌렀다.
실제로 쓸 일은 많지 않았지만 침으로 마취를 시키는 기술은 중국에서 배웠다.
“······! 무, 무얼 한 거야? 조, 조금 괜찮아졌어.”
“잠깐만 움직이지 마세요. 몇 군데 더 눌러야 해요.”
혈을 누를 때마다 고통이 줄어드는지 움직임이 덜해졌고 두삼은 무사히 모든 혈을 누를 수 있었다.
“어떠세요? 다리를 마취시켰어요.”
“여전히 아프긴 한데 지, 지금은 차, 참을 수 있을 정도야.”
짧은 시간에 땀범벅이 된 이영호는 안도의 가픈 숨을 몰아쉬었다.
“극심한 통증을 겪은 후라 그럴 수 있어요. 일단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픈지 말해주세요. 돌아누우세요.”
고통을 참느라 온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풀어줄 요량으로 두삼은 머리부터 가볍게 안마를 시작했다.
이영호는 마사지가 끝나기 전에 잠이 들었다.
***
쉽게 해결될 것 같았던 환상지는 이주일이 넘도록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마취를 시킴으로써 고통은 줄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취를 시키는 건 치료가 아니었다.
고통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의족을 써야 하는데 아예 다리를 못 쓰게 만드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현재엔 아침엔 풀고 저녁엔 다시 마취시키길 반복하며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젠장 늘어나는 건 마취시키는 능력뿐이네.”
기의 양을 조절함으로써 완전히 혈을 막아 오래 가게 할 것인지 아님 며칠만 지속되게 만들 것인지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 이주간의 고생에 대한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중국에서 배울 때 침술에 극을 이루면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기를 느끼고 이용할 수 있는 두삼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휴우~”
“쨔샤! 문을 열자마자 남의 가게에 와서 왜 그렇게 한숨만 내쉬어?”
두삼이 한숨을 내쉬자 청소를 하던 백만수가 한마디 했다.
“그러게요. 잠깐 머리 식히려고 나왔는데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네요.”
“영호 아저씨?”
“네.”
“환상통? 환각통?”
“환각지예요.”
“용어야 어떻게 됐든지 간에 그거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거의 불치병에 가깝던데 아닌가?”
“맞아요.”
“근데 고민한다고 그게 낫겠냐?”
“일단 고통은 줄여놨어요. 다음이 힘들어서 그렇지.”
“···진짜? 너 생각보다 대단하구나?”
“언제는 할아버지랑 비슷하다면서요? 그래서 소문도 내고 그런 거 아녔어요?”
“그야 네가 풀이 죽어 있는 것 같아 한 말이었지. 그리고 소문이야 항상 부풀어지게 마련이잖아.”
“···형 말을 들으니 있던 기운마저 사라지네요.”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 내가 그동안 널 과소평가하고 있었나 보다.”
순순히 사과를 하자 머쓱해진 건 오히려 두삼이었다.
“제 실력에 대해 말한 적이 없으니 형이 미안할 일은 아니죠. 아무튼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것 같으니 그 얘긴 그만해요.”
“그래. 머리를 식히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나저나 오늘 비 한 번 대차게 내린다.”
그의 말처럼 비가 상당히 많이 내리고 있었다. 그 덕에 하나 있던 예약이 취소가 되면서 시간을 가지게 됐지만 말이다.
“손님도 없을 것 같은데 머리도 식힐 겸 다방에서 커피 시켜 먹을까? 이번에 온 아가씨 꽤 예쁘더라.”
“이렇게 비가 오는데 와요?”
“비 온다고 다 쉬는 건 아니잖아.”
“하긴······.”
다양한 향과 맛을 내는 전문 커피숍들이 즐비한 세상에 웬 다방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예전보다는 줄었지만 다방은 서울은 물론 전국 어디에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근데 형수가 형 이러는 거 알고 있어요?”
“당연히 모르지. 하지만 다방 오토바이를 다 내가 고치는데 간혹 커피라도 팔아줘야지. 싫으면 관두고.”
“···누가 싫대요. 그냥 그렇다는 거죠.”
두삼도 남자였다.
커피를 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아 빗속을 뚫고 아가씨가 커피를 가져왔다.
“으~ 다 젖었네. 오빠, 수건 없어?”
아가씨는 온몸을 감싸다시피 한 비옷을 벗으며 투덜댔다.
옷차림이 꽤 야했다.
“여기. 비 오는데 오토바이 타고 오니까 다 젖지.”
“좀 전에 철물점에 들렀을 때 걸어갔는데 그때도 다 젖더라고.”
“흐흐흐! 다른 것 때문에 젖은 건 아니고?”
“피이~ 짓궂기는. 오빠가 젖게 해주든가.”
백만수는 다방 아가씨에게 야한 농담을 스스럼없이 했고 아가씨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오빠, 안녕.”
젖은 곳을 닦은 아가씨는 두삼의 옆에 앉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더니 잔과 보온병을 꺼내 커피를 탔다.
“오빤 어디서 일해?”
두삼은 진한 향수 냄새에 잠시 취해 있다가 아가씨의 물음에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매계리에서 마사지 숍을 하고 있어.”
“에? 매계리에서?”
“하하······. 좀 이상한가?”
“많이. 거기까지 마사지를 받으러 가는 사람이 있어?”
“조금.”
“거기까지 마사지 받으러 가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꽤 실력이 좋은가봐? 이삼이?”
“그럭저럭. 근데 이삼이는 뭐야?”
“커피 둘, 프림 셋, 설탕 둘이냐고.”
“아하~ 그냥 맛있게 타줘.”
다방 아가씨는 직업 때문인지 성격이 꽤 활달했다.
그녀는 번개처럼 커피를 타서 건넸다. 진하고 조금 달았지만 꽤 맛있었다.
“나 요즘 몸이 뻐근해서 마사지 한번 받아야 하는데. 나중에 마사지 받으러 가면 싸게 해줘. 알았지?”
“으응.”
가슴이 반쯤 보이고 조금만 치마가 올라가면 속옷이 다 보일 정도로 짧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마사지를 받고 싶다고 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물리치료사, 마사지사로 이성을 손님으로 봐야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 손님을 마사지할 일이 생기면 가슴이 설ㅤㄹㅔㅆ다.
물론 두삼의 경우 여자보다 악력이 약해 거의 해본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만수 오빠처럼 싸게 해주긴 하는데 대충해 주면 안 된다?”
“야야! 내가 무슨 대충해 줬다고 그래?”
“고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소리가 이상하단 말이야.”
“그게 내 탓이냐? 네가 험하게 몰아서지. 그리고 처음 폐차하기 직전의 오토바이를 가져왔던 건 생각도 안 나냐?”
“치이~ 바퀴에 바람만 빠져 있었던 것 같은데?”
“우와! 얘가 멀쩡한 사람 이상하게 만드네. 가게에 있던 부품까지 공짜로 바꿔줬더니······.”
두 사람의 목소리가 오토바이 가게를 쩌렁쩌렁 울리게 만들었지만 두삼이 보기에 악의가 없어 보였기에 하는 양을 지켜봤다.
“알았어, 알았어. 오빠 고생한 거 다 알아. 그러니 화 풀어. 근데 저 오토바이 기름이 새는 것 같다고 하는데 온 김에 고쳐주면 안 될까?”
“기름이 새면 엔진까지 다 뜯어봐야 해.”
“그냥 호스로 새는 곳에 끼워서 다시 기름통으로 올리면 되지 않아?”
“헛소리 작작하고 저 오토바이 돈 많이 들 텐데 이참에 아예 바꿔라.”
“오빤 만날 그 소리야. 내가 돈이 어디 있어? 선불금도 갚아야 하는데. 그러지 말고 적당히 봐주라. 응?”
아양 앞에선 백만수는 금세 흐물흐물해졌다.
“험험! 아무리 그래봐야 하루는 걸려 돈도 조금 나올 테고. 온 김에 맡기고 가.”
“영업해야 하는데 어떻게 맡겨.”
“다른 걸로 가져가.”
“오빠, 최······.”
아가씨는 백만수의 팔을 양팔로 꼭 껴안으며 ‘최고’라고 말하려 할 때였다.
“아! 맞다 그거다!”
두삼이 뭔가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뜯어보고 새로운 곳으로 길을 만들면 될 것 같아. 형, 고마워! 아가씨, 고마워! 나중에 내 가게에 들러. 무료로 마사지 해줄게. 난 이만 갈게. 다음에 봐.”
두삼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비옷도 챙기지 않고 뛰어나갔다.
백만수와 아가씨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비를 맞고 사라져가는 두삼을 보며 눈만 깜빡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