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3. 영업 시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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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할머니를 마사지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두삼에게 몇 번 약초를 샀었던 중년인이 와서 물건이 괜찮다며 약초를 몽땅 사갔다.
시장에서 나온 두삼은 백만수의 오토바이 가게에 가려다 발걸음을 돌려 김광도의 한의원으로 향했다.
‘혁 한의원. 김광도의 아들 김장혁이 한의사가 된 모양이구나.’
간판을 일별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접수대 앞 의자에 많은 노인들이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삼은 이미 접수를 한 사람처럼 구석의 빈자리에 앉아 의원을 살폈다.
“비용은 만이천 원이에요. 이 종이를 가지고 2층으로 올라가면 물리치료를 받으실 수 있으세요.”
‘한의원에 물리치료실을······.’
접수대의 간호사가 막 진료실에서 나온 손님과 하는 말에 두삼은 꽤 놀랐다.
한의원의 물리치료실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실제로 물리치료실을 운영하는 한의원은 거의 없었고 꼭 필요해서 운영한다고 해도 실제 물리치료사보단 운동 치료사와 같은 유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값싸게 고용해 운영했다.
‘아무리 할아버지의 명성을 이용할 생각이라고 해도 간호사에, 물리치료실까지 운영하면 수지 타산이 맞을까? 실력이 확실해서 다른 곳에서도 오면 모르겠지만 말이야. 뭐, 나한텐 오히려 더 좋은 일이지.’
두삼의 경우 하루 한 명의 손님만 있어도 운영이 되지만 김장혁의 경우는 최소 열 명은 들어야 운영을 할 수 있었다.
‘아니, 최소 스무 명은 와야 할 것 같은데.’
물리치료실을 본 두삼은 한의원의 규모가 생각보다 더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리치료실엔 전문 안마사 두 명에, 물리치료사, 간호사까지 모두 다섯 명이 더 있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 어렵지 않게 한의원을 구경한 두삼은 방앗간에 참새가 못 지나가듯 아이스커피를 사서 백만수의 오토바이 가게로 갔다.
“오늘 휴일이냐?”
일하던 백만수는 장갑을 벗으며 물었다.
“손님이 없어서 틈틈이 모아둔 약초 팔러 나왔어요.”
“오픈발 빼고 처음부터 잘되는 곳이 얼마나 있겠냐. 최소한 일이 년은 고생해야지 자리를 잡지.”
“오픈한 지 얼마 안 됐는데요.”
“그럼, 행사 도우미 불러서 오픈 행사라도 해보든가. 아무도 없는 데서 하는 것도 재미있긴 하겠다. 하하하!”
“하하하! 진짜 황당하긴 하겠네요.”
둘러봐야 산뿐인 곳에서 행사 도우미들이 크게 스피커를 틀어놓고 춤을 춘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근데 불법이라며 안 할 것 같이 굴더니 안 되니까 걱정이 되나 보다.”
“안 했으면 모를까 시작했으면 잘되길 바라는 게 인지 상정이죠. 사실 형이 저에 대한 소문을 냈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아! 그 소문. 내가 안 냈어.”
“어? 그래요? 그럼 누가 냈지?”
“나야 모르지. 싫다는데 소문만 내서 뭐 하겠냐? 난 네가 낸 줄 알았다.”
“음, 아무래도 김장혁이 소문을 낸 것 같아요.”
“네가 아니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근데··· 그 녀석이 하는 의원은 가봤냐?”
“방금 구경하고 왔어요.”
“사람 많지? 오래 기다릴 땐 1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하더라고. 실력도 꽤 있는 것 같고.”
“형도 가봤어요?”
“···아, 아니. 내 와, 와이프가 애 때문에 갔다 와서 그렇게 말하더라고.”
백만수는 혁 한의원을 칭찬하다가 아차 싶었는지 얼른 변명을 했다.
그 모습에 두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거기 갔다 왔다고 누가 뭐라고 해요? 근데 애가 어디 아파요?”
“조금······.”
“애들은 한의원보다 도시에 있는 병원으로 데려가요. 그 편이 훨씬 좋아요.”
“그건······.”
“백 사장! 이 오토바이 또 퍼졌어. 아무래도 바꿔야 할까봐.”
백만수가 뭔가를 말하려 할 때 손님이 오토바이를 끌고 왔다.
“그러게 진즉에 바꾸시라니까요.”
“고치면 한 1년은 탈 줄 알았지.”
“바꾸라고 한 지가 2년이 넘었거든요. 이거 보세요. 기름도 줄줄 새잖아요.”
얘기를 하는 모양새가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형, 저 가요. 시간 나면 술 마시러 올게요.”
“응, 들어가. 고민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내가 소문 팍팍 내줄게.”
“네에~ 기대할게요.”
말이라도 고마웠다. 손을 흔들고 오토바이 가게에서 나온 두삼은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
나물 할머니가 약속대로 마사지를 받으러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을 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소문을 낸 건지, 백만수가 소문을 낸 건지 한두 명씩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할아버님,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한번 걸어보세요.”
“···고생했네그려.”
치료용 침대에 누워 있던 할아버지는 오랜 안마 시간에 잠이 들었다가 깼는지 손으로 입을 훔치며 부스스 일어났다.
“아프다는 걸 의식하지 말고 걸어보세요.”
할아버지는 무릎 관절이 좋지 못해 절뚝거리며 걷다가 발목, 대퇴부, 심지어 허리까지 안 좋았다.
기를 이용해 두 시간을 넘게 치료를 하려 했지만 단숨에 치료되긴 불가능했다. 일단 심한 상처의 치료와 함께 통증을 일으키는 부분을 마취시킴으로써 자세부터 교정을 시킨 후 서서히 고쳐 나갈 생각이었다.
“허! 대단하구먼. 아픈 게 한결 들해. 평생 쩔뚝거리며 살 줄 알았는데.”
“절대 무리하지 마세요. 그리고 나흘 뒤에 꼭 다시 오시고요.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고 안 오시면 오늘 일은 말짱 헛일이니 꼭 오세요.”
“걱정 말게. 꼭 올 테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셔야 합니다.”
두삼은 다시 한번 다짐을 받았다.
철썩 같이 말해놓고도 일 때문에, 혹은 돈이 아까워서 오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일시적인 증상을 고친 것이라면 오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치료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 상관없었지만 상태가 심각할 땐 치료가 제자리걸음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 정도만 되어도 상관이 없었다. 병원이나 의원 입장에선 천천히 나을수록 이득이니까. 그런데 더 심각해질 수도 있었는데 지금 이 할아버지가 그런 경우였다.
“그 젊은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근데 약은 없나? 지난번 한의원에선 약을 먹어야 낫는다고 했는데.”
“최대한 걷지 않고 푹 쉬는 게 제일 좋은 약입니다. 그리고 혹 걸어서 아프다고 느끼시면 병원에서 준 진통제를 드시면 되고요.”
한약을 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거니와 앞으로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팔 생각이 없었다.
할아버지를 보낸 후 쉴 틈도 없이 바로 옆방으로 이동했다.
그곳엔 삼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편안한 차림으로 족욕을 하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괜찮습니다. 편하게 족욕을 해서인지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두삼은 사내를 치료실 겸 안마실로 안내했다.
“요즘 일을 많이 해서인지 목이 많이 뻣뻣해요. 허리도 조금 불편하고요. 시원하게 풀어주세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가볍게 손을 푼 후 사내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치료 목적이 아닌 피곤한 몸을 풀기 위한 마사지를 받으러 온 사람은 이 사내가 처음이었다.
30분만 차를 타고 하동읍에만 나가도 상당히 고급스럽고 이국적으로 꾸며진 마시지 숍에서 나긋나긋한 여자 마사지사의 손길에 안마를 받을 수 있는데, 교통도 불편하고 리모델링을 했다지만 오래된 건물에서 그런 곳과 경쟁을 하려면 확실한 실력 차이를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일까 두삼은 오히려 치료를 할 때보다 더 정성을 들였다.
그렇다고 기를 이용하진 않았다.
순수한 안마 실력으로 손님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잠깐 반짝하다가 말 일이었다.
‘기가 무한한 것이 아니니까.’
손님이 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기를 많이 사용하면 지독한 허탈감과 함께 몸이 극도로 피곤해졌다. 그리고 몸이 기를 보충하려는 것인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매일 아침 동이 틀 무렵 일어나 서너 시간은 산을 탔음에도 5킬로그램이 찔 정도였다.
목과 어깨, 등, 허리, 다리까지 전신 마사지를 꼼꼼하게 마쳤다.
“다 됐습니다.”
“응차! 수고했어요. 난생 이렇게 몸이 녹는 것 같은 안마는 처음 받아보네요.”
사내는 엄지를 척 하니 올리며 말했다.
예의상하는 말일 수도 있었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차피 두삼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고 이후의 일은 그의 능력 밖이었다.
“고맙습니다. 혹시 다시 방문하실 것 같으면 미리 전화를 주세요. 그럼 예약을 해드리겠습니다.”
“예약제였군요. 그러죠.”
혼자하다 보니 예약은 필수였다.
“오늘은 이것으로 끝인가?”
마사지 손님을 보내고 큰 은행나무 그늘 밑에 있는 평상에 앉아 중얼거렸다.
한가해지자 허기짐을 느낀 그는 평상에 말려둔 약초를 입에 물고 오물거렸다.
점점 둔해지는 몸 때문에 음식 대신에 산에서 캐온 약초로 기를 보충하고 있었다.
손을 뻗어 쉼 없이 약초를 먹던 그는 입안에 맴도는 쓰디쓴 맛에 들고 있는 약초를 봤다.
“윽! 최소 오만 원은 받을 수 있는 버섯을. 안마를 해서 내 입에 다 털어 넣는군. 쩝!”
이미 상품성이 없어진 버섯을 입에 넣고 평상에서 일어났다. 계속 앉아 있다간 값나가는 약초도 모조리 입에 넣어버릴 게 분명했다.
마루로 자리를 옮겨 앉은 그는 노트북으로 동영상을 틀었다.
어린 소녀들이 짧은 치마와 반바지를 입은 채 춤을 추는 동영상이 연속해서 재생됐다.
딱히 한 아이돌 그룹만 찍은 것이 아닌지 다양한 아이돌 가수들이 나왔다.
두삼은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이라도 되는 듯 고개를 리듬에 맞춰 흔들며 영상을 즐겼다.
간혹 나이가 몇 살인데 이런 취미에 빠져 사냐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가 실의에 빠졌을 때 그를 구원해 준 취미였다.
물론 그렇게 말해도 이해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들도 언젠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혹은 어떤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무엇인가에 위안을 받게 되면 그땐 이해할 수 있으리라 두삼은 생각했다.
한창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대문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대학병원에서도 정신병이라고 진통제만 처방하는데 여기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어요! 그만 절 좀 내버려 두세요!”
“그럼 평생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래? 밤마다 한숨도 못자는 것은 둘째 치고 술만 먹고 살 거냐고!”
“······.”
“여기서도 안 되면 두 번 다시 어디 가자고 안 할 테니 잔말 말고 따라와.”
잠시 후 목발을 짚고 쩔뚝거리며 들어오는 중년 사내와 그 모습을 안타깝게 쳐다보는 할아버지 한 분이 보였다.
왠지 익숙한 두 사람이었기에 두삼은 동영상을 멈추고 눈을 좁히며 봤다.
“아! 태산이 할아버지, 태산이 아버지.”
이태산은 두삼의 초등학교 친구였다. 그리고 두 집안 아버지끼리, 할아버지끼리도 친구로 악양에 살 땐 꽤 돈독한 사이였다.
“안녕들 하셨어요?”
“두삼이구나. 길에서 보면 모르겠구나.”
“으, 응. 두삼이 오랜만이구나.”
“진주로 이사 가셨다는 얘긴 들었습니다. 근데··· 아저씨 다리가······.”
태산이 아버지의 왼쪽 무릎 아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두삼을 깜짝 놀라 말을 멈칫거렸다.
“···얼마 전에 교통사고 당했단다.”
“저런······.”
“···불의의 사고였는데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이영호의 얼굴은 아직까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근데 진주에서 여기까진 무슨 일로?”
“그건······.”
“그건 내가 말하마. 며칠 전에 악양에 친구들 만나러 왔다가 네가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들었다. 그래서 네 도움 좀 받으러 왔다.”
“도울 일이 있다면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어떤 일이십니까?”
이태산의 할아버지는 잠시 아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