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8화 (8/122)

# 8

3. 영업 시작(1)

두삼은 이왕 소문이 퍼진 김에 영업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최고를 지향하겠다는 뜻으로 ‘으뜸’이라는 이름으로 세무서에 가서 사업자등록증을 만들고 대문 앞에 걸어둘 작은 간판을 만드는 것 말고는 딱히 준비할 것은 없었다.

“하아아아~~함! 쩝쩝!”

두삼은 마루에 앉아 할아버지가 그를 위해 남긴 의료기록을 훑어보다가 길게 하품을 했다.

영업을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났는데 강창수가 한 번 더 들른 것을 빼곤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 10일 동안은 꼼짝도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제나저제나 손님이 올까 대문 쪽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전화번호를 문 앞에 붙여두고 이틀에 한 번씩은 산을 타서 약초를 채집하고 있었다.

오늘은 집을 지키는 날, 혹시나 손님이 올까 아침 일찍부터 목욕재계하고 기다렸지만 역시나 없었다.

큰 기대를 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기에 조급한 건 없었다. 다만 심심할 뿐이었다.

“이왕 소문을 냈으면 좀 지속적으로 내든가. 영업을 시작하고 나니 입을 꼭 다문 거야, 뭐야?”

두삼은 여전히 백만수가 소문을 냈다고 믿고 있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처음엔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의 가벼운 입이 더욱 가벼워졌으면 했다.

지루함은 괜스레 죄 없는 사람을 영업이 되지 않는 원인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에이! 포기다. 채집해 놓은 거나 팔러 가자.”

투덜거리기도 잠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두삼은 한 달 동안 산에서 채집한 약초들 중 팔 만한 것들을 적당히 챙겼다.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이번 달에 번 돈이라곤 강창수가 준 백만 원이 전부였지만 쓰는 것이 서울에서 만큼 많지 않아 생활이 곤궁하진 않았다.

그저 바람이라도 쐴 요량으로 약초를 바리바리 싸서 오토바이에 싣고 나섰다.

“역시 사람이 그리웠던 거야.”

장날이라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자 비로소 기분이 풀리는 듯했다.

오토바이를 공터에 세운 후 시원한 캔 커피를 10개 사서 시장으로 들어갔다.

“어서와, 총각! 오늘도 안 나올 줄 알았어.”

“어디 아팠어? 왜 이렇게 뜸했어?”

몇 번 봐서 친해진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두삼이 장날 약초를 파는 곳은 맨 처음 자리를 폈었던 나물 파는 곳 맨 구석자리였다. 나물 파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약재 파는 곳에 가봤지만 자리가 없어 결국 구석자리가 지정석이 된 것이다.

“가게를 열었는데 손님도 없고 해서 바람이나 쐴 겸해서 나왔습니다. 커피 한 잔씩 하세요.”

사가지고 온 커피를 돌렸다.

“고마워. 자자, 이쪽으로 앉아. 혹시 다른 사람이 자리를 차지할까 싶어 내가 일부러 넓게 자리를 펴놨어.”

“하하하! 감사합니다, 할머니.”

두삼은 몇 번 해봤다고 능숙하게 자리를 펴고 물건을 진열했다.

아침 일찍 나와서 들고 온 물건이 다 팔릴 때까지, 혹은 마을로 들어가는 버스가 끊기기 전까지 장사를 하다 보면 자연 수다는 필수였다.

“장사를 시작했다고? 무슨 장산데?”

옆에 앉은 할머니는 더덕 껍질을 다듬으며 물었다.

“마사지요.”

“마사지? 텔레비전에 그 뭐냐··· 아가씨들 데리고 요상한 짓 하는 그것 말이야?”

할머니는 마사지라는 말에 불법 퇴폐 마사지를 생각했는지 더덕을 다듬던 손까지 멈추며 물었다.

“하하하! 아뇨. 안마예요. 몸이 찌뿌듯하거나 담이 왔을 때 시원하게 해주는 거요.”

두삼은 가급적 할머니가 알아듣기 쉽게 말했다.

“아하~ 안마. 안마라면 예전에 전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할 정도로 유명했던 의원이 이곳 악양에 있었지. 그 양반이 손만 대면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던 곳이 금세 나았다니까. 거기에 죽을병에 걸렸던 사람들도 그 양반 덕에 많이 살았어.”

나물 할머니는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듯 한참동안 그의 할아버지에 대한 떠도는 소문들을 말했고 두삼은 다 아는 얘기였지만 즐겁게 들었다.

사실과 다른 점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정확하게는 한의사가 아니었다.

면허증이 없이도 치료가 가능한 시대를 살아서인지 면허증의 중요성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쉽게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중요성을 깨달았을 땐 시험을 봐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결국 취득하지 못했다.

물론 일대에서 명성이 자자해 살아생전에 큰 문제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지만 가끔씩 행정적인 문제 때문에 공무원들이 찾아오곤 했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심각한 표정을 짓곤 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때문에 자신의 뒤를 이으려면 한의사 자격을 꼭 따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나물 할머니가 말끝에 이상한 소리를 했다.

“아! 근데 그 양반 아들인지 손자인지 며칠 전에 이곳에 한의원을 열었다던데.”

“네?”

“왜 면사무소 뒤쪽에 방치되어 있던 작은 병원 있잖아. 그제 우리 위집에 사는 갑장(동갑)이 거기 갔다 왔는데 안마도 꽤 시원하게 잘하다던데······. 쯧쯧! 운도 사납게 하필 그 양반 자제가 문을 열었을 때 같이 열게 뭐람.”

말을 듣던 두삼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물 할머니는 두삼의 반응을 잘못 이해한 모양인지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면사무소 뒤쪽이면 김광도의 병원! 그자가 감히 할아버지 이름을 팔아?’

예전에 백만수에게 김광도가 한의원을 차린다는 얘기를 들었든 것이 기억났다.

그가 한의원을 차린 거야 상관없었지만 할아버지의 이름을 팔았다고 생각하자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당장 달려가서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물 할머니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말했다.

“에이~ 할머니, 소문을 잘못 알고 계시네요. 제가 듣기론 유명하다던 그 사람의 자제가 아니라 그 사람처럼 솜씨가 좋은 의원이라던데요?”

“그래? 이상하네. 난 분명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그럼 한의원 그 양반 자제가 아닌 거야?”

“예. 저도 며칠 전 허리가 무릎이 아파서 가봤는데 아주 젊은 사람이더라고요. 예전에 이곳에서 병원을 운영했던 사람의 아들이라든가 뭐라든가.”

“실력은 어때? 나도 허리가 아파서 한번 가볼까 했는데 말이야.”

“나쁘지는 않던데요. 침 몇 대 맞고 안마 받고 나니까 걷는 게 편해진 것도 같고요.”

나물 할머니와 아주머니의 얘기 듣고 오해가 풀렸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소문이라는 게 입에서 입을 거칠수록 점점 부풀어진다고 하지만 소문을 낸 자가 누구이던지 간에 의도가 너무 명백해 보였다.

‘김광도, 당신이 낸 소문일 테지.’

멍청한 한의사를 배치해 할아버지 명예를 더럽히려는 의도인지, 아님 할아버지의 이름에 기대 영업을 하려는 의도인지 모르지만 어느 쪽이든 마음에 들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너무 걱정 마. 잘될 거야.”

두삼이 계속 인상을 쓰고 있자 장사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나물 할머니가 위로를 했다.

두삼은 얼른 얼굴을 풀고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한데 그 메시진지 마사진지 받으면 아픈 허리도 좀 괜찮아지나?”

“왜요? 마사지 받아보시게요?”

“한언수 그 양반 자제가 하는 줄 알아서 가보려고 했는데 아니라면 굳이 갈 필요가 있나 싶어서. 총각한테 받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하하하! 제 집에서 하고 있어서 오시려면 힘드세요. 이쪽 앞으로 앉아보세요. 할 일도 없는데 여기서 해드릴게요.”

두삼은 앞에 놓인 박스를 옆으로 밀며 할머니가 앉을 공간을 만들었다.

“···괜찮아. 내가 찾아갈게.”

“이리오세요. 그저 손자가 어깨 주물러드린다고 생각하세요.”

두삼은 할머니 손을 잡아끌어 앞에 앉혔다.

“괜찮다는데도······.”

“정 부담스러우시면 받아보고 괜찮다 싶으면 소문이나 내주세요.”

부담을 덜어줄 요량으로 한마디 하고 할머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역시 돌처럼 딴딴하네.’

서울에서 꽤 많은 남자들의 어깨를 잡아봤지만 앞에 앉은 할머니만큼 딱딱한 승모근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다. 비견할 사람은 사랑채에 있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정도일 것이다.

“일단 어깨부터 풀어드릴 건데 많이 아프실 거예요.”

“참는 덴 이골이 나서 괜찮아.”

“너무 참으시면 안 돼요. 많이 아프시면 말씀하세요.”

수십 년 노동으로 축적된 굳은 근육을 푸는 일인데 아프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푼다면 괜찮겠지만 두삼은 물론이거니와 할머니도 때마다 안마를 받을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윽!”

엄지손가락으로 근육을 누르자마자 할머니는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조금만 지나면 시원해지실 거예요.”

말을 하면서도 손을 계속 움직였다.

강철이 강한 열기에 녹듯이 할머니의 어깨는 두삼의 손길에 차츰 풀리기 시작했다.

‘다음은 척추기립근.’

어깨를 적당히 풀고 그의 손은 등으로 내려왔다.

몸을 지탱할 곳이 없어 힘을 주면 밀렸기에 한손으로 어깨를 잡고 한 손으로 풀어야 해서 시간이 걸렸지만 손님이 없었기에 여유롭게 풀어갔다.

‘이 연세에 척추는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고. 근육이 많이 놀란 것 같은데.’

손가락으로 엑스레이나 컴퓨터 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마치 몸속이 보이는 듯하다.

“할머니, 혹시 허리 삐끗하신 적 있으세요?”

“으, 응. 끙! 이주 전에 발을 헛디뎌서 허리가 뜨끔한 적이 있었어.”

“그 때문에 근육이 많이 놀란 것 같아요. 풀어만 주면 될 것 같으니 조금만 더 참으세요.”

“그, 그래. 다행이네.”

조금 더 참으라는 말에 몸이 경직되는 게 느껴졌다.

“용케 잘 참으시네. 조금만 지나면 온몸이 가뿐해지실 겁니다.”

본래 제법 실력 있다는 한의사라 해도 나물 할머니의 삔 허리를 완전히 치료하려면 서너 번은 침을 놓아야 했다. 그러나 두삼에겐 사기적인 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다.

‘신기해.’

손에서 기가 느껴지는 것이 여전히 신기한 그였다.

팔목에서부터 느껴지던 기가 그의 의지대로 엄지손가락으로 흐르더니 손가락 끝으로 나와 마치 물방울처럼 맺혔다.

두삼은 보이진 않지만 느껴지는 엄지손가락 부근을 잠깐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허리 부근의 혈을 꾹꾹 누르며 할머니의 기를 활성화시키려 했다.

누를 때마다 맺혀 있던 기가 조금씩 스며들었고 스며든 기는 할머니의 몸에 잠재되어 있던 미약한 기를 일깨워 합쳐졌다. 그리고 마치 살아 있는 듯 아픈 부위로 가서 상처를 치유했다.

‘기가 허해지면 만병이 생기고 기가 강해지면 신체가 강건해진다더니 그걸 눈으로 보듯이 느끼게 될 줄이야.’

두삼은 손님이 많아져 장갑으로 기를 어디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물론 내 기가 무한한 건 아닐 테니 필요할 때만 사용해야겠지만.’

허리를 치료하고 다시 한번 목부터 허리까지 근육을 풀어준 두삼은 할머니의 어깨를 두 번 툭툭 치며 끝났음을 알렸다.

“할머니 끝났어요.”

“···그래? 이제 막 시원해지려던 참인데······.”

언제 아파했냐는 듯 나물 할머니는 안마가 끝나는 걸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마사지를 하는 사람도 힘들지만 받는 사람도 때에 따라선 힘들어요.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니 장이 끝나면 집에 가서 푹 쉬는 게 좋으세요.”

“총각 말대로 할게. 고마워. 어라? 근데 일어나는데 허리가 전혀 안 아파. 몸도 가볍고.”

할머니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신기해했다.

“굳이 자전거에 비교하자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자전거에 기름칠을 한 번 한 거예요. 꾸준히는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오셔서 관리를 받는 게 좋으실 거예요.”

“갈게! 이렇게 몸이 가벼울 수만 있다면 당연히 받아야지. 근데 마사지 비용은 비싸겠지?”

“네, 조금 비싸요.”

“그래······? 이만 원? 삼만 원?”

마사지는 일반적으로 전신이냐 부분이냐, 스포츠마사지, 타이마사지, 아로마마사지냐에 따라 5만 원에서 10만 원 정도였고 그는 인테리어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기본 사만 원으로 정했다.

사실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일이기에 개인적인 생각으론 더 받아야 하지만 그래선 경쟁력이 없었다.

‘아무래도 가격에 대해선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어.’

할아버지의 경우 부자에게는 많은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겐 거의 공짜로 해줬었다. 그러나 그것은 유명해져서 치료를 위해선 얼마든지 돈을 주겠다는 사람들이 넘쳐서 가능한 일이었다.

“삼만 원이에요.”

“···그 정도면 괜찮은데. 가게는 어디쯤에 있어?”

삼 만원이라는 돈도 할머니에겐 비싼 모양이다. 하긴 앞에 놓인 나물을 다 팔아야 삼만 원쯤 될 터였다.

“매계리 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산 쪽으로 10분쯤 올라오시면 돼요.”

“무슨 가게를 산 중턱에··· 가만! 매계리에서 산 쪽으로 10분쯤 올라가는 곳이면 한 의원님 집 근처인 거 같은데.”

“네, 거기예요.”

“에? 그럼, 총각이······?”

“네. 제 할아버님 함자가 한에 언 자 수 자를 쓰세요.”

묻지 않았다면 굳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말을 하게 된 이상 꺼릴 이유는 없었다.

두삼의 말엔 할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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