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7화 (7/122)

# 7

2. 힘을 얻다(3)

환자의 경혈을 자극해 기를 북돋아 치료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건 알았지만, 자신의 기를 주입해서 하는 치료는 해본 적이 없었다.

얼마 전 백만수에게 했던 기 치료의 경우 침법을 응용한 것으로 환자가 가진 기를 활성화시켜 환자의 기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었고, 오늘은 두삼 자신의 기를 불어넣어 그 기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었다.

강창수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그의 기를 활성화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었다.

고민도 잠시 강창수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기에 두삼은 가볍게 그를 안아 침구에 눕혔다.

‘생각보다 더 말랐어.’

강창수의 나이와 몸무게를 가늠한 두삼은 괜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안 되면 그냥 적당히 안마를 해주는 것으로 끝내자.’

테스트는 테스트일 뿐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부탁함세.”

강창수는 오랫동안 안마를 받아서인지 이완된 자세로 눈을 감았다.

두삼은 그런 그의 단전에 왼손을 올렸다. 그리고 왼손으로 기운을 전해준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맙소사!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 기가 느껴진다!’

손목에서부터 느껴진 청량한 기운이 장심을 통해 강창수의 단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한의학에 종사하는 이들이나 무술을 연마하는 수행자들의 경우는 기(氣)의 존재를 믿겠지만 기는 아직까지 존재가 증명되지 않은 비과학적인 영역임에는 틀림없었다.

하면 존재하는 것을 믿는 사람들 중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두삼도 믿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할아버지의 치료 과정을 지켜보며 수많은 불가사의를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목격을 했다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배웠다고 해서 기를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한데 지금은 왼손에서 기가 빠져나가 강창수의 단전으로 들어가는 것이 또렷이 느껴졌다. 게다가 신기한 일은 강창수의 몸에 들어간 기가 손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장갑 낀 부분만 느껴지는 것이··· 역시 할아버지의 장갑 때문에 얻은 능력이 분명해.’

장갑의 끝부분이었던 손목 끝에서부터 기가 느껴졌다. 긴가민가했던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지게 된 것에 두삼은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강창수와 중년 사내가 없었더라면 이미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곧 냉정함을 되찾았다.

‘침착하자.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알아볼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알아보자.’

가장 먼저 강창수의 몸에 들어간 기를 움직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자! 장강혈로 움직여 봐.’

두삼은 어렴풋이 장갑의 사용법을 눈치챘다.

그건 바로 강력하고 정확한 의지였다.

머릿속으로 기경팔맥 중 독맥의 시작점인 장강혈을 그리고 기를 그곳으로 인도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단전에 들어갔던 두삼의 기가 꿈틀댔다.

그리고 그의 손을 따라 장강혈로 움직였다.

‘다음은 요유혈로······.’

장강, 요유, 양관, 명문, 현추, 척중, 중추, 근축, 지양, 영대, 신도 신주, 풍부······.

두삼은 등의 정중앙 척추를 타고 올라가 머리를 지나 입술 밑에 있는 은교까지 이르는 독맥으로 기를 인도했다.

인체엔 수많은 기의 길(경락)이 나 있고 그 길엔 침을 놓거나 뜸을 뜨는 자리인 수혈(경혈)이 존재했다.

다소 익숙하지 않은 이름 때문에 복잡해 보이긴 하지만 인체를 우리나라라고 보면 경락은 도로요, 경혈은 도로가 지나는 마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경부, 경인, 중부, 서해안 고속도로 등이 있듯이 12경맥(경락의 큰 줄기)과 기경팔맥이 있었고 각 도시가 있듯이 각종 혈이 존재했다.

또한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가 있고 대도시가 아닌 마을이 있듯이 경험적으로 효능이 입증된 혈 자리(경외기혈), 직접 눌러보아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아시혈)들도 있었다.

각설하고 도로든 경락이든 막히면 좋지 않았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년이 넘게 관리를 못 받아서 강창수의 몸속 길에 먼지가 쌓여 있거나 낙석이 떨어진 곳이 있었고, 아스팔트가 손상된 곳도 있었다.

두삼은 기를 이용해 청소용 차량처럼 도로를 깨끗이 만들며 달리게 하면서 낙석이나 아스팔트가 손상된 곳은 안마를 더해 제거하거나 고쳐 나갔다.

그리고 차츰 길이 뚫려 갈수록 그동안 길이 막혀 제대로 운행을 못 하던 강창수의 기가 조금씩 나와 두삼의 기를 뒤따랐다.

독맥과 임맥이라는 큰 고속도로를 모두 청소한 두삼은 청소를 하느라 거의 사라지고 조금밖에 남지 않은 기를 회수하며 손을 뗐다.

“휴우~ 끝났습니다, 어르신.”

온 정신을 집중을 해서일까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게다가 오래 걸린 것 같지 않았는데 안마를 시작한 지 두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나마 이렇게 쉽게 끝난 건 예전에 할아버지가 워낙 길을 잘 닦아 놓으셨기 때문이야.’

사실 청소할 것이 많지 않았기에 한 바퀴를 돌 수 있었던 것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독맥의 첫 부분에서 길을 뚫다가 손을 뗐을 수도 있었다.

“···아! 끝났나?”

강창수는 자다가 두삼의 말에 깨어난 모양이었다.

“네. 오늘은 이쯤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는 사람도 힘들지만 받는 사람도 힘이 든다고 언수가 그랬었지. 어디······.”

강창수는 침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몸을 살폈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군. 언수에게 받았을 때와 똑같아. 역시 언수의 손자야.”

“과찬이십니다. 오늘은 따뜻한 물 많이 드시고 가급적 집에서 안정을 취하십시오.”

“헐헐헐! 하는 소리는 똑같군. 아무튼 고생했네. 다음 주쯤 다시 들리지.”

강창수가 중년 사내에게 눈짓을 하자 그는 봉투를 꺼내 줬다.

“아닙니다. 정식으로 일하는 것도 아닌데 받을 수 없습니다.”

“치료비가 아니라 용돈이라고 생각하려무나.”

“하하!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오랜만에 받는 용돈이었다.

“용돈치곤 꽤 많지만 말이야.”

두삼은 강창수가 간 뒤 봉투를 살펴보고 중얼거렸다.

백만 원이 들어 있었다.

상황버섯 가격을 알아보러 나갈까 하다가 마음을 접곤 평상에 누웠다.

두삼은 하늘로 손을 뻗고 손가락을 쫙 폈다. 그리고 기를 움직이던 순간을 생각하며 손을 바라보았다.

악력이 생긴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인데 마사지사라면 억만금을 주고도 가지고 싶은 재주까지 얻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할아버지가 장갑에 자신의 평생 기술을 남긴 건지 아니면 신외지물인 장갑을 얻어서 할아버지가 안마사가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포기했던 꿈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고 행복했다.

짧지만 다사다난했던 32년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할아버지가 주신 기회 놓치지 않을게요.”

두삼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인생의 2막을 시작해 볼 생각이었다.

***

한창 리모델링 중인 낡고 오래된 병원 건물 앞에 고급 외제차 한 대가 다가와 섰다. 잠시 후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멀찍이서 건물을 바라보던 나이든 사내가 흐뭇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차질 없이 공사가 진행된다면 한 달 뒤엔 개업식을 할 수 있겠구나.”

“···한 달로는 어림도 없어 보입니다만.”

젊은 사내는 아버지의 흐뭇한 표정과 상반되게 표정이 좋지 않았다.

“벽돌 건물이 아닌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라 외장 공사만 하면 웬만한 새 건물보다 튼튼하고 좋을 게다.”

“이런 시골에 건물만 좋으면 뭐 하겠습니까?”

“혁이 넌 이곳에 한의원을 여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구나?”

김장혁은 아버지 김광도의 물음에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아버지가 운영하셨던 병원을 아들인 제가 물려받아 2대에 걸쳐서 병원을 한다는 의미나, 쫓겨나듯이 떠나야 했던 이곳에 금의환향했음을 보여주고자 함이 싫은 건 아닙니다. 다만 해마다 인구가 줄어가는 이곳에 한의원을 여는 것이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녕 내가 그런 이유 때문에 이곳에 한의원을 연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십니까?”

“내가 이곳을 떠난 후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는 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러니 구차하게 그런 걸 보여주려고 네 말마따나 이런 시골에 한의원을 차릴 이유는 없다. 또한 그 영감탱이가 살아 있다면 모를까 네가 한의사가 되었다는 것 역시 이곳에서 자랑할 이유가 없고.”

“그러면 왜 굳이 이곳에······.”

“우리나라 최고의 한의대를 최고의 성적으로 나오고 손꼽히는 한의원에서 4년간을 일했다고 네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자신 있습니다!”

김장혁은 호기롭게 대답했다.

그는 4년간 일하며 느낀 바가 있었기에 한의원을 운영할 자신은 넘쳤다.

40년 경력인 의원의 실력을 어깨너머로 배웠고, 자신이 꽤 많은 환자를 치료해 좋은 평판을 얻지 않았던가.

물론 자신과 수십 년씩 한의원을 운영하던 이들의 실력을 비교한다면 김광도의 말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한의원을 찾는 손님 중 중병을 앓는 사람은 드물었고 또한 그 병을 완치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게다가 양의학과 달리 한의사 중 중병을 잘 고친다는 명의가 많지 않았다.

실제 그렇게 소문난 이들도 알고 보면 실력보다는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로 이름을 날린 경우가 많았다.

이 말인즉, 30년 경력의 한의사가 운영한다고 해서 영업이 잘되는 것도 아니었고 4년 경력의 한의사가 운영한다고 해서 영업이 안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한언수처럼 특출하지 않으면서도 입소문으로 한의학적 지식의 차이를, 영업력으로 경력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음을 4년간 일하며 확실히 알게 되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안다. 양의학과 달리 눈으로 보이지 않고 바로 나타나지도 않으니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아니라고는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네 생각이 틀리다고 할 수는 없겠지. 설렁설렁 배운 대로 침을 놓고 치료보다 비싼 약을 팔려는 작자들이 많으니까. 그러나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듯 실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손님들이 느끼게 마련이다. 잠시 잠깐이야 속일 수 있겠지만 결국 실력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넌 지금보다 더 나은 실력을 키워야 한다. 넌 그저 그런 한의사로 남을 생각이냐?”

“···아닙니다. 전 반드시 한의사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겁니다.”

김장혁은 자신이 가진 한의학적인 능력과 계획해 둔 영업 계획이 합쳐진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나 역시 네가 못 고치는 병이 없다 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이런 시골에서 빌빌대던 인간을 닮으라는 소리도 아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외적인 부분도 역시 중요하다.”

김광도는 매계리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 사람들에게, 그자에게 김장혁이라는 한의사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느냐마는 그보다는 노인들을 상대로 네가 배운 것과 의문점을 마음껏 실험해 보라는 의미에서 이곳에 의원을 낸 것이다.”

“아!”

김장혁은 김광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잘한다는 소문도, 못한다는 소문도 빨리 퍼지는 대도시에선 한의학적 의문이 생겨도 쉽게 실험해 볼 수가 없었다.

한 번의 실수가 낙인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자신의 의학적인 실수나 잘못을 이해하지도 못할 무지렁이 노인이 많은 이곳이라면 가능했다.

죄의식은 없었다.

의학이 발전해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사소한 희생쯤은 괜찮다는 해괴한 말을 철석같이 믿는 그였다.

“이곳에선 돈을 벌지 못해도 좋다. 최대한 많은 공부를 하고 많은 것들을 실험해라. 그래서 대도시로 나가 최고가 될 밑거름을 이곳에서 마련해라.”

“알겠습니다!”

김광도가 악양에 의원을 내는 이유를 알게 된 김장혁은 처음 도착했을 때와 달리 묘한 열정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공사 중인 건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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