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6화 (6/122)

# 6

2. 힘을 얻다(2)

***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자신의 손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두삼이 중얼거렸다.

악력이 생겼다. 거기에 손끝에 집중을 하면 신체 내부가 마치 사진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알 수 없는 빛까지.

힘들게 뛰다가 걷게 되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힘을 얻게 되자 두삼도 서울로 다시 올라가볼까라는 마음이 슬그머니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현실을 떠올리곤 고개를 저었다.

날개를 달았다고 해도 올라가면 할 일은 빤했다.

마사지 숍이나 병원에서 일하다가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 약간의 연봉을 더 받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정도가 다 일 것이다.

운이 좋다면 투자자를 만나 자신의 가게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결국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투자자가 챙기는 일이다.

“에이! 그냥 여기서 약초꾼이나 할래.”

간절히 원하던 바를 얻었지만 앞날은 고향에서 약초를 캐는 것보다 나아보이지 않았다.

“얘가 길에서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누군가가 어깨를 툭 쳐서 돌아보니 백만수였다.

“어? 만수 형? 지금 형네 가게로 가는 중이었는데······. 어디 갔다 오는 거예요?”

“병원. 약초 팔고 오는 길이냐?”

“예. 오늘도 서울 손님이 퉁 쳐서 가져갔어요.”

5일장에서 산에서 캐온 약재들을 약간 저렴하게 팔다 보니 이젠 찾아오는 손님도 있었다.

“근데 웬 붕대에요?”

“그제 팔목을 삐었는데 잘 안 낫네. 그래서 병원에서 치료받고 오는 길이다.”

“어디 봐요.”

“아아! 아파! 조심해.”

“엄살은······.”

두삼은 붕대를 감고 있는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힘을 과하게 준 상태에서 삐끗한 모양이네. 경락(기가 흐르는 곳)이 다쳤어.’

다친 경락에서 가장 가까운 경혈에 엄지를 올려놓고 지그시 눌렀다 뗐다를 반복했다. 침으로 경혈을 자극하는 방법을 손으로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쳤다고 생각되는 경락 부근을 몇 번 슥슥 문지른 후에 손을 뗐다.

“됐어요. 가급적 며칠 동안은 너무 힘주지 말아요.”

“뭐가 됐다는······! 뭐, 뭐야? 진짜 안 아프네? 어떻게 한 거야?”

백만수는 손목을 빙글빙글 돌리며 신기해했다.

“간단한 기 치료예요.”

두삼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생각대로 되었다는 것에 속으로 꽤 놀랐다.

한의학과 중국에서 배운 기술을 접목한 것으로 경혈을 자극하려면 손가락 끝에 힘을 집중할 수 있어야 했기에 지금까지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악력이 있었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되는 것이었나? 역시 할아버지가 남긴 장갑 때문인가?’

어렴풋이 할아버지의 장갑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 중이었다.

사실 며칠 동안 왜 이런 힘이 생겼는지 고민을 해봤지만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산에서 먹었던 약초 때문에?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초에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수긍할 수 있는 것이 사라진 할아버지의 장갑이었는데 마사지를 할 때 은은하게 빛나는 부분이 팔목까지였고 손을 비빌 때 약간의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서였다.

물론 느낌일 뿐이었고 흔한 약초를 먹고 힘을 얻은 것보다 더 황당한 생각이긴 하다.

‘쩝! 아무렴 어때 좋아졌으면 됐지.’

어느 방향으로 고민해 봐야 결론이 나지 않았기에 금방 털어냈다.

“대박!”

“삔 정도라 된 거예요.”

“병원에서 엑스레이도 찍고 파스를 떡칠하듯 발랐는데 안 낫던 게 간단한 손동작으로 나았는데 별것 아니라고?”

“분야가 다르잖아요. 아무튼 길에서 이러지 말고 가게로 가요.”

백만수의 부산스러움은 끝나지 않았다.

“소름! 방금 네 모습에서 네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어쩜 말이나 행동이나 그리 똑같냐?”

“할아버지 핏줄인데 어디 가겠어요?”

“소~오름!”

“나이가 몇 인데······. 원래대로 해드려요?”

“철없는 서른셋이다. 협박하는 건 안 닮았네. 근데 너 악력 때문에 마시지도 제대로 못 한다고 하지 않았냐? 혹시 산에서 산삼이라도 캐 먹은 거 아냐?”

“몰라요. 고향에 와서 좋은 공기를 마셔서 그런지 갑자기 힘이 생겼어요.”

실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아 장갑 얘기는 하지 않았다.

커피를 사 들고 오토바이 가게로 갔다.

“근데 이제 서울로 올라갈 생각이냐?”

“글쎄요, 아직까진······.”

“올라가지 마! 여기서 해도 충분하잖아. 네 할아버지의 명성이 줄긴 했지만 여전하니까 오히려 더 잘될 수도 있어.”

백만수가 더 흥분하고 있었다.

“형이 왜 더 흥분해요. 언제는 이곳에 머물 것 같지 않다며?”

“그거야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네가 오토바이를 안 받으려고 할 게 빤하니까 그랬지. 아무튼 대책 없이 올라가는 것보단 여기가 낫다는 거지.”

“나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올라가 봐야 사실 여기보다 나을게 없거든요.”

“그래. 잘 생각했다. 차라리 여기서 작은 의원부터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거야.”

백만수의 말에 두삼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한의사 자격증이 없어요.”

“소문으로 네가 한의대를 졸업했다고 들었는데?”

“헛소문이에요. 하하······.”

“플래카드도 붙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에이! 아무렴 어때, 안마원이라도 차리면 되지.”

“안마원도 안 돼요. 그건 나라에서 시각장애인들만 할 수 있게 해뒀거든요.”

안마와 마사지는 동의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의미가 전혀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영리를 목적으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었는데 시중의 마사지 업소 중 시각장애인을 고용한 곳이 아니라면 사실상 불법이었다.

물론 영업을 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그럼 마시지 숍이라도 하자. 내가 투자하마.”

“국가공인자격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마사지는 모두 불법이에요. 물론 공인자격증은 시각장애인만 가질 수 있고요.”

“시내에서 버젓이 영업하고 있던데?”

“법과 현실의 괴리라고 할까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능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해도 상관은 없다는 말이잖아?”

“대부분 벌금형이라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사실 두삼이 걱정하는 건 불법이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겨우 묻을 수 있었던 과거가 다시 고개를 쳐들까 저어해서였다.

“그냥 이대로 있을래요. 근데 나보다 왜 형이 더 난리예요?”

“그야··· 아, 아무것도 아냐.”

“에이~ 공짜로 마사지 받으려고 그러는 거죠?”

“아니거든!”

“아니긴요. 형은 어깨에 근육이 뭉친 거 말고는 딱히 이상한 곳이 없어요. 이리와 봐요. 말나온 김에 풀어줄게요.”

주춤거리면서도 어깨를 맡기는 게 역시 공짜 마사지를 받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

두삼은 기분 좋게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오늘 1,100미터가 넘는 형제봉과 수리봉 사이의 능선에서 고가의 상황버섯을 발견했다. 대략적으로 5킬로그램이 넘을 정도였는데 상태에 따라 최소 수백에서 수천까지도 나갈 수 있었다.

“가격도 알아볼 겸 한 며칠 쉬어야겠어. 그리고 비싸게 팔리면 새로운 카메라를 구입해 볼까?”

사실 그의 취미는 여자 아이돌그룹의 공연하는 모습을 찍는 것이었는데 그가 애지중지 모아둔 하드디스크도 그러한 직캠 영상들을 저장해 둔 것이었다.

오덕질, 혹은 덕질이라고 부르며 이상하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두삼에겐 고통스러운 순간을 극복하게 해준 나름 고마운 취미였기에 별로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 도착했을 때 한 손엔 지팡이를 쥔 채 중년의 남자에게 몸을 맡긴 연세 많은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라? 강 어르신!”

눈을 좁히며 노인을 바라보던 두삼은 반색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언수가 영업 중일 때 자주 방문해 안마를 받던 노인으로 올 때마다 어린 두삼을 불러 용돈을 줬기에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헐헐헐. 용케 날 기억하는구나?”

“어떻게 잊겠습니까.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네 할아버지가 있을 땐 평안했는데 요즘은 안 아픈 곳이 없구나.”

“연세를 생각하시면 당연한 일입니다.”

두삼이 초등학교 3학년 때 할아버지와 함께 강창수의 칠순 잔치에 참석했었으니 현재 그의 나이는 아흔 둘이었다. 그러니 아프지 않은 것이 더 이상 이상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환자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래야 낫든 낫지 못하든 원망이 없고, 그래야 지갑을 열 수 있다고.

그 영향 때문에 두삼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그 할아버지의 손자 아니랄까 봐 똑같은 말을 하는구나.”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네 할아버지 단골이었던 내가 무슨 의도로 말하는지 모를까. 근데 좀 앉아도 되겠니?”

“아! 여기로 앉으십시오.”

평상을 가리킨 두삼은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여러 가지 약초를 넣고 끓인 물을 가져와 두 사람에게 건네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차인지 맛이 아주 괜찮구나.”

“있는 약초로 적당히 끓여봤습니다. 근데 무슨 일로 이곳까지 힘든 걸음을 하셨는지?”

“네 할아버지의 뒤를 이을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문에 한 번 와봤네.”

“혹시 오토바이 가게에서 들으셨습니까?”

“아니. 자네 어디서 들었다고 했지?”

두삼은 백만수가 소문을 냈다고 생각해 물었고 강창수는 그를 부축하던 남자에게 물었다.

“처음엔 면에 있는 노인정에 쌀 갖다주러 갔다가 들었고 그 다음엔 시장에서 할머니들이 수군대는 걸 들었습니다.”

“······.”

시장에도 퍼졌다면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졌음을 의미했다. 두삼은 머리가 아파오는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만수 형은 왜 쓸데없는 짓을······.’

현 상황에서 사람들이 마사지를 받겠다고 찾아오면 곤란했다.

물론 해주는 것엔 문제가 없었다. 다만 공짜 마사지는 사랑채 아저씨 내외로 충분했다.

고향 사람들에게 봉사 활동 한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마음의 여유든 돈이든 가졌을 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진 건 고작 할아버지가 남긴 시골집이 전부였고 십여 년을 공부에 투자하며 많이 돈이 들었다.

두삼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잘 살길 원했고 많은 돈을 벌길 원했다. 그리고 남들처럼 맛있는 음식을 돈 걱정 없이 먹고 여행도 다니고 싶었다.

그렇게 여유 넘치게 살면서 치료받을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해주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봉사 활동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직까지 정식으로 영업하는 것이 아니니 돈을 받기도 뭐하지만 말이야.’

테스트해 볼 것도 있었기에 강창수가 원한다면 하기로 마음을 먹고 입을 열었다.

“정말 저에게 마사지를 받길 원하세요?”

“그래주겠니?”

“할아버지에 비하면 많이 부족할 겁니다.”

“원한다면 받아보고 평가해 주마.”

“그럼 안으로 들어가시죠.”

두삼은 할아버지가 쓰셨던 치료실로 안내했다.

“이 옷으로 갈아입은 후 저쪽 침상에 누우세요.”

두삼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약초꾼이 되겠다고 생각했음에도 할아버지가 사용하셨던 치료실을 꾸준히 청소하고 있었다.

특히 악력을 얻고 나서는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해뒀다.

“후우우우흡~ 푸우우~”

강창수가 중년 사내와 함께 옷을 갈아 입으러 간 사이 두삼은 안마에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해놓고 숨을 골랐다.

할아버지가 치료를 했던 곳에서 하는 첫 안마라고 생각하자 감회가 남달랐다.

“과연 될까?”

두삼은 자신의 손을 보고 중얼거렸다.

오늘 아직까지 테스트 해보지 못한 기를 이용한 치료를 해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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