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2. 힘을 얻다(1)
2. 힘을 얻다
투툭! 투툭!
두삼은 처마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두삼이 고향에 내려온 지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곤 하루도 빠짐없이 산을 타며 약초를 캐 5일장에 나가 팔았다.
“많이 내릴 비는 아닌데. 오늘은 그냥 쉬어야겠다.”
한 달 동안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음에도 서울에서 벌던 월급보다 더 벌었다. 게다가 딱히 돈 쓸 곳이 없어 번 돈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쉴 때나 다칠 때를 생각해 부지런히 벌어놔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러나 대충 어느 정도 버는지 알게 되었으니 무리할 이유는 없었다.
“간만에 취미 생활이나 해볼까?”
두삼은 방 한쪽에 쌓여 있는 박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고향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택배를 받았지만 겨울옷과 노트북이 담긴 박스는 아직까지 열지 않았다.
취미를 떠올릴 정도로 여유가 생기는 것이 고향에서의 생활에 제법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밥 먹고 얼른 해야겠다.”
막상 영상을 볼 생각을 하니 조급해졌다. 그러나 일단 밥이 우선이었다.
50만 원을 넣어뒀던 봉투를 챙기고 우산을 쓰고 사랑채로 갔다.
“잘 잤냐?”
비 오는 날임에도 일 나갈 준비를 마친 이봉래가 두삼을 맞이했다.
“네, 푹 쉬었습니다. 한데 비 오는데 나가시려고요?”
“물이 잘 빠지나 살펴봐야지. 넌 오늘도 산에 갈 생각이냐?”
“아뇨. 오늘은 쉬려고요.”
“잘 생각했다. 비가 오락가락할 땐 땅이 물러서 실족할 가능성이 많아.”
이봉래는 두삼이 아들이라도 되는 양 잔소리를 아끼지 않았는데 두삼은 그런 그의 잔소리가 싫지 않았다.
“명심할게요. 참! 이건 반찬하실 때 보태시라고······.”
두삼은 봉투를 건네려 했다. 한데 이봉래는 거부를 하며 말했다.
“두삼아.”
“네.”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네 할아버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그래서 넌 내게 조카 이상이란다. 그러니 행여나 두 번 다시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정히 돈이 필요하다면 그땐 말을 하마.”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두삼은 이봉래 앞에서 염치 운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봉투를 호주머니에 넣어야 했다.
“상 가지러 갈게요.”
앉아서 상을 받는 건 첫날이면 족했다.
본채는 할아버지가 계실 때 싹 수리를 해서 현대식으로 바꾸어 부엌이 안에 있었다. 반면 사랑채는 수리는 했지만 입원한 손님들이 머물던 곳이라 부엌과 분리되어 있었기에 상을 들고 와야 했다.
두삼이 부엌으로 가는데 아주머니가 상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
“아휴~ 아줌마도 그 무거운 것을······!”
왠지 위태로워 보여 얼른 가서 받으려고 했는데 아주머니가 휘청했고 그에 상이 급격히 기울어지며 위에 있던 밥과 찬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와장창!
“아줌마!”
두삼은 반쯤 넘어진 상을 아예 마당으로 팽개치고 쓰러지려는 아주머니를 붙잡았다.
“···아이고! 아침을 다 쏟아서 어쩌누.”
“이런 상황에 아침이 중요해요? 몸은 어떠세요?”
“괘, 괜찮아. 오늘 비가 와서 그런지 허리가 찌뿌듯하더니 결국 이 사달을 만들었네. 다시 아침을······.”
“지금 일어나시면 안 돼요!”
“아구구구! 허, 허리가 단단히 고장났나 보다.”
아주머니는 두삼의 팔을 잡고 일어나려다 다시 무너졌다.
“허리를 삔 것 같은데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두삼은 조심스레 아주머니를 안고 일어났다. 그때 소리를 들은 아저씨가 달려왔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당신, 괜찮아?”
“허리를 삔 것 같아요. 일단 방으로 모실게요. 제가 서둘러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게 어디 네 잘못이냐. 이, 이쪽으로!”
아주머니를 안고 안방으로 가는 두삼의 얼굴은 죄를 지은 사람처럼 어두웠다.
사실 두삼이 서둘러야 했다고 말한 것은 밥상을 늦게 받으러 갔다는 뜻이 아니었다. 아주머니의 몸 상태와 아저씨의 몸 상태를 진즉에 알고 있으면서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죄송함이었다.
모든 걸 포기했다지만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들은 귀동냥부터 학교와 학원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특히 두삼은 그의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사람 인체에 대한 것은 선천적으로 뛰어났는데 사람들의 걷는 모습만 봐도 어디가 불편한지 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한 달 동안 이봉래와 그의 처인 노혜자의 몸 상태를 모를 리가 없었다.
오랫동안 힘든 노동에 종사하고 예순에 가까운 나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이었기 모른 척했는데 결국 사달이 난 것이다.
‘힘이 없었다고 해도 꾸준히 마사지라도 해드렸더라면··· 아니, 병원이라도 모시고 갔었더라면······.’
할아버지와 비교될까, 자신이 쓸모없음을 재차 확인하게 될까 두려웠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었다.
“아저씨, 뜨거운 물 좀 끓여주시겠어요?”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겠냐?”
“지금 시간엔 하동에 있는 응급실로 가야 하는데 거길 가봐도 진통제를 주는 것 말고는 딱히 조치를 취할 게 없습니다. 제가··· 일단 한두 시간 살펴본 후에 그때 병원으로 모시죠.”
“그렇게 하자구나. 물 끓여 갖고 오마.”
왠지 자신을 믿는 듯한 이봉래의 표정에 부담이 되긴 했지만 하기로 한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두삼은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어떠세요? 허리가 아프세요?”
“아니.”
“이렇게 하면요?”
“괜찮다.”
양쪽 다리를 폈다 굽혔다 하면서 혹시 뼈에 이상이 있는지 체크했다.
“뼈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네요. 아줌마, 잠깐 엎드려 보세요. 혹시 제가 누를 때 아프면 말씀하세요.”
“끄응! 알았다.”
노혜자는 엎드리는 것도 힘든지 겨우 돌아누웠고 두삼은 그녀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요통의 경우 척추에 문제가 생겨서도 발생하지만 많은 경우 척추기립근이 과도하게 긴장되어 일어났다. 한데 이러한 척추기립근의 과도한 긴장은 앞에서 척추를 잡아주는 복근이 사라지면서 생겼다.
즉, 허리의 통증이 허리만의 문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악! 너무 아프구나. 너, 너무 강하게 누르진 말아주렴.”
척추기립근의 긴장도를 실험할 생각으로 어깨를 누르던 두삼은 노혜자의 비명에 깜짝 놀라 손을 뗐다.
‘뭐, 뭐지? 평소와 똑같은 힘을 썼는데······.’
긴장도를 실험하려는 거지 근육을 풀려는 것이 아니었기에 큰 힘을 쓰지 않았다. 게다가 악력이 없어 다른 사람에 비하면 많은 힘을 쓴 건 사실이었지만 결코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
‘혹시 근육이 많이 상한 건가?’
두삼은 약간의 힘을 빼고 조심히 눌렀다.
“윽! ···아, 아직도 아프구나.”
“이 정도로 누르면요?”
“으~ 그보단 조금 더 약하게 해주렴. 네 할아버지처럼 손이 아주 맵구나.”
“······!”
두삼이 살면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할아버지의 손힘을 닮았다는 말일 것이다.
할아버지는 손가락 힘만으로 동전을 구부릴 정도로 엄청났었다. 그러나 생김새는 닮았지만 악력은 유전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없던 악력이 갑자기 생겼을 리가······.’
뭔가 이상해서 자신의 왼손으로 채했을 때 누르는 엄지와 검지 사이의 합곡혈을 눌렀다.
‘큭! 아줌마의 몸이 이상한 게 아냐! 악력이 생겼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가볍게 눌렀는데도 화들짝 놀랄 정도로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해서 자신의 몸을 꾹꾹 눌러보던 두삼은 악력이 예전과 달리 강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그가 원하는 만큼 아주 강하게.
또한 자세히 보니 누를 때마다 은은한 빛이 손에서 일렁였다.
‘갑자기 왜 이런 힘이 생긴 거지? 이 빛은 뭐고? 뇌종양이라도 생긴 건가?’
힘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가 달가울 리는 없었다.
“가져왔다. 좀 어떤 거 같으냐?”
이봉래가 대야에 뜨거운 물을 가져오며 물었다.
두삼은 머리가 복잡했지만 일단은 앞에 있는 아픈 사람이 우선이었다.
“척추 쪽엔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 혹시 모르니 조만간 검사를 꼭 해보세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는데 그런 경우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좋았다.
그는 마사지사지 의사가 아니었다.
“시작할게요, 아줌마. 처음엔 많이 아플 겁니다.”
수건을 물에 담가 따뜻하게 만들어 허리에 덮어둔 두삼은 자신의 다리를 꾹꾹 누르면서 적당한 세기를 알아낸 후 노혜자의 어깨부터 손을 댔다.
“으~ 끄응!”
노혜자는 고통스러운지 몸에 힘이 들어가며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러나 두삼의 손은 사정없이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
수년 간 관리를 한 적이 없어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어깨를 푸는 일인데 고통이 없을 리가 없었다.
‘된다! 내가 원하는 대로 돼. 그리고 손가락 끝의 민감도도 좋아진 것 같아.’
어깨를 꾹 누른 후 손가락을 살짝 비틀며 돌리자 뭉쳐 있던 근육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사실 두삼은 악력은 없는 대신 손끝이 꽤나 민감했다. 그래서 사람의 피부를 만지고 근육을 눌렀을 때 상태가 어떤지, 어떻게 해야 풀리는지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근데 오늘은 그런 느낌이 유독 강했다. 전에는 막연한 느낌 같은 것이었다면 오늘은 근육 내부가 눈에 그려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능력을 가졌는데 손끝에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 오죽 답답했으랴.
두삼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힘을 쓰면서도 신이 나서 근육들을 풀어나갔다.
“으음~”
아픔을 참으며 신음 소리를 내던 노혜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사지를 받는 사모님처럼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간간히 근육이 쪼개지는 듯한 고통에 인상을 쓸 때도 있었지만 고통 뒤 찾아오는 시원함과 나른함에 참고 견딜 만했다.
“일단 풀었어요. 천천히 움직여 보시겠어요?”
두삼은 허리까지 근육을 풀어준 후 말했다.
“아! 안 아파!”
“그렇다고 그렇게 심하게 움직이지 마세요. 진짜 원인을 찾아야 하거든요.”
허리가 아픈 이유가 척추 혹은 디스크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신체의 균형이 깨져서 허리에 무리가 온 걸 수도 있다.
후자일 경우 원인을 치료하지 않으면 같은 증상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진짜 원인?”
“예. 아니면 몸에 계속 무리가 가서 같은 일이 반복될 거예요.”
“나야 좋지만 피곤하지 않아?”
“전혀요. 누워보세요. 다리 쪽을 살펴봐야겠어요.”
두삼은 짚이는 곳이 있었다.
그는 매일같이 보던 노혜자의 걷는 모습을 떠올리며 오른쪽 무릎 부근을 살폈다.
왼쪽에 비해 근육이 적었는데 걸을 때 왼쪽으로 치우쳐 걷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오른쪽에 어떤 상처가 있어 본능적으로 왼쪽에 중심을 두고 걸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두삼은 수풀을 헤치듯이 손끝으로 오른쪽 무릎 근육을 헤쳐서 상처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금 부근을 만졌을 때 노혜자가 비명을 질렀다.
“악!”
“많이 아프세요?”
“바, 방금 전기가 오르듯이 찌릿했어.”
“예전에 무릎 다치신 적 있으시죠?”
“으응. 지난겨울에 밭에서 발을 접질리면서 며칠 동안 고생한 적이 있었어.”
“혹시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거나 계단 오르내리기 힘들지 않으셨어요?”
“맞아, 그랬어! 간혹 그러기에 그냥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보다 했지. 왜··· 많이 안 좋아?”
“아뇨. 제가 보기엔 무릎 연골이 찢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다만 더 늦으면 심각해질 수 있으니 오늘은 쉬시고 내일 병원에 가보세요.”
“네가 못 고치는 거니?”
“아줌마도 참, 전 의원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설령 의원이라고 해도 아주머니의 경우 한의학보다 양의학으로 훨씬 쉽게 치료할 수 있는데 한의학을 고집할 이유는 없죠. 할아버지도 그러셨잖아요.”
한의학이든 양의학이든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었다. 양의학에서 쉽게 고칠 수 있는 것을 돈 욕심에, 혹은 분야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붙잡고 있는 건 죄악이라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하긴 어르신도 그러셨지.”
“아침은 제가 차릴 테니 드시고 오늘은 몸을 따뜻하게 해서 푹 쉬세요. 내일 병원 다녀오시고 나면 마사지 다시 해드릴게요.”
“나야 좋지만 네가 힘들어서······.”
“그런 말씀마세요. 아까 아저씨가 저한테 그러셨어요. 절 가족으로 생각하신다고요. 생각해 보니 저 역시 그렇더라고요.”
두삼은 미안해하는 노혜자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곤 밖으로 나왔다.
같이 따라 나온 이봉래가 괜찮다는데도 계속해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두삼은 이번에도 가족이라는 말로 그의 입을 막곤 부엌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