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1화 (1/122)

# 1

프롤로그

“두삼 씨, 나 좀 볼까?”

두삼은 요양 병원 관리실장의 부름에 열심히 할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던 두 손을 멈췄다.

“할머니, 제가 금방 다시 와서 주물러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두삼은 마사지를 하느라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한데 할머니는 별로 반가운 기색이 아니었다.

“···아니, 난 괜찮아. 조금 기다렸다가 희원 총각에게 받으면 돼. 신경 쓰지 말고 편히 일봐.”

두삼을 배려해서 하는 말처럼 들렸지만 사실상 알고 보면 그에게 마사지를 받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빌어먹을! 온 힘을 다했는데······.’

할머니에 불만을 토하는 게 아니었다. 이상하리만치 악력이 없는 자신 손에 대한 자책이었다.

아무리 근육이 뭉친 곳을 잘 찾고 어떻게 풀면 될지 알면 뭐 하는가. 10분이면 될 일은 1시간을 넘게 끙끙거려도 하지 못하는데.

할머니가 말한 희원이라는 선배는 물리치료사, 스포츠 마사지 자격증만 가졌지만 10여 개의 자격증을 가진 자신보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기가 훨씬 많았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나이든 분들이 주로 거하는 요양원의 물리 치료실은 사실 대부분 말뿐인 시설이었다.

물리치료사로 들어오긴 했으나, 물리치료사가 아니라 어르신들의 마사지를 담당하는 식이었다.

어쭙잖은 기구 몇 개와 사람을 두는 게 다였는데 이곳에선 잡일까지 병행해야 했다.

“실장님, 어떤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당연히 잡일을 시키려 불렀다고 생각하고 물었다. 한데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두삼 씨, 여기 잠깐 앉아봐.”

“······네.”

두삼은 그의 표정과 말투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직감했다.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됐지?”

“6개월 조금 넘었습니다.”

“음, 오래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요즘 병원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이곳에 일할 때 꽤 인간적으로 대해주던 실장이었던지라 크게 반발은 못 하고 한마디 던졌다.

“환자분들이 너무 많아 병원을 확장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커험! 잘 아는군. 한데 투자자들이 생각보다 모이질 않았어. 그래서 긴축재정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실장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눈을 피하며 추가적인 설명을 했다.

딱 보니 거짓말이었다.

잡일을 하다 보니 병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들과 도우미들과 친했다.

병원 원장이 내 5년 치 연봉보다 비싼 차를 구매했다든가, 직원을 더 모집하고 있다든가, 투자자들이 너무 몰려 조만간 새로운 건물을 짓게 될 거라는 등의 소문이 파다했다.

“···해고라는 말씀입니까?”

내가 병원에 어느 정도 공헌한 것이 있었다면 어디서 개 뻥을 치냐고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삼년 새 벌써 아홉 번짼가.’

자격증 스펙이 되다 보니 취업은 잘됐다. 그러나 가진 자격증에 비해 능력이 없어 불평, 불만이 들어와 금세 잘렸다.

얌전히 해고라고 통보하는 경우도 있었고 나 때문에 손님이 떨어졌다며 월급까지 떼어먹은 곳도 있었다.

요즘 애들은 그런 경우에 돈도 잘 받고, 노동청에 고발한다며 위로금까지 챙겼지만 두삼은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냥 수긍하고 나오는 편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물리치료사라는 타이틀 덕분에 이 정도였지, 만약 마사지를 전담하는 마사지사였다면 손 한번 못 써보고 잘렸을 게 분명했다.

"······."

그가 성격이 바보 같아서가 아니었다. ‘염치 있는 인간이 되자!’라는 할아버지의 가훈 때문이라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해고가 아니라 스스로 그만둬 줬으면 하는 거야. 월급 말고 한두 달 치 정도는 더 챙겨줄게.”

그냥 나가라고 했어도 말없이 나갈 생각이었다. 한데 한참 확장하고 있는 요양 병원 입장에선 고용노동부에 괜스레 이름이 오르내려 봐야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나쁘지 않은 제안을 했다.

“언제까지 정리하면 되겠습니까?”

“빠를수록 좋지.”

장가를 가서 처와 자식이 있다면 하루라도 더 버티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로지 내 몸뚱이만 건사하면 됐기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럼 오늘까지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해해 줘서 고맙네. 증거가 필요하니 사표를 작성해 주면 월급은 바로 입금해 주지.”

돈까지 바로 준다니 두삼은 당장에 사표를 적어 관리실장에게 건넸다.

“어디 갈 데라도 있어?”

입금을 시켜준 관리실장이 자른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착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주 살갑진 않지만 인간적으로 보자면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시골에 내려갈 생각입니다.”

사표에 적은 대로 말했다.

“정말? 그냥 적은 줄 알았더니.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곳 말이지? 차라리 귀농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뇨. 할아버지께서 제가 남겨준 시골집이 있는데 거기로 갈 생각입니다.”

사실 요양 병원에 들어오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배워온 것들이 아까웠지만 더 이상 타인에게 상처받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군. 그럼 기회가 되면 또 보세.”

그의 예의상 하는 말을 듣고 밖으로 나와 탈의실로 향했다.

“후우.”

탈의실에 들어온 두삼은 혼자가 되자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었기에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기분만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다.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잖아. 힘내자, 두삼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중얼거려 보지만 옷을 갈아입는 속도만큼 그는 힘이 없었다.

덜컹!

막 옷을 다 갈아입었을 때 탈의실 문이 열리며 문희원이 들어왔다.

그는 옷을 갈아입은 두삼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있는지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며 한쪽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틈틈이 빨던 전자 담배를 입을 몇 번 빨며 말했다.

“드디어 잘린 거야?”

“···뭐라고?”

두삼은 그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서로 취향이 달라 아주 친하게 지내진 않았다.

나이가 자신보다 두 살 어렸지만 선배였고, 번번이 손님들이 그에게만 가려 하는 것이 미안해서 몇 번 밥과 술을 사면서 나름 친구처럼 지내왔었다. 한데 말투가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야!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동안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실장님께 널 자르지 않으면 내가 그만두겠다고 했어.”

“······!”

“일은 내가 다하는데 고작 밥과 술로 넘어가려 하는 너도 참 대단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어디 가서 마사지 배웠다고 하지마라. 존나 자격증만 많으면 뭐 하냐? 두 개밖에 없는 나보다 못하는데.”

“너······!”

두삼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언짢았던 기분을 더럽게 만들어주는 문희원에게 한마디 해주려는데 지금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간 옛날 성격이 나올 것 같아서 눌러 참았다.

“내가 마사지협회와 물리치료사협회 게시판에 너에 대해 좀 적어놨으니 한동안 다른 곳에 취직하긴 힘들 거다.”

두삼은 더 듣고 있다간 한 대 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력이 부족하다고 주먹 힘이 없을 것이라 문희원이 착각하는 것 같아 가르쳐 줄까도 싶었지만 다시 한번 화를 억눌렀다.

‘네게 빚진 것은 지금 이 순간으로 다 갚았다. 만날 일도 없겠지만 다음에 보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후일을 들먹이는 것만큼 쪽팔린 짓도 없지만 그것마저 안 하면 화병이 생길지도 몰랐다.

“엄한 사람 애먹이지 말고 다른 일이나 찾아. 잡일은 잘하니까 노가다 쪽으로 가면 되겠더라. 큭큭큭!”

나오는 순간까지 빈정대는 문희원을 뒤로 하고 요양 병원에서 나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걷다가 한적한 곳에 이르러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 악!”

엿 같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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