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없으면 만들면 되지!
2019.02.26.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느낌에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긴 했습니다만, 이건 어쩌면 저희 부부의 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런 개인적인 사실까지 밝히며 소문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이유는, 저희 부부에게 더 이상 이런 시련이 없었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안절부절 마음 졸이며 이 기자회견을 보고 있을 제 아내, 그리고 곧 태어나게 될 저희의 소중한 아기를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부디 불필요한 잡음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오직 그것뿐입니다. 감사합니다.]
현민혁의 생애 첫 기자회견은 그렇게 끝이 났다.
우진의 조언을 양분 삼아 나름 패기 있게 마무리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먹힐지는 그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그냥 일종의 오기 같은 거였다.
우진의 말마따나, 그녀를 괴롭힐 만한 것은 뿌리부터 뽑아내기 위해.
그런데 정말 우스운 것은, 그의 기자회견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론이 정반대로 뒤집혔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모든 것이 예견돼 있던 것처럼.
[야 어제 그거 봤음? 현민혁 대박 멋있더라 진짜. 미쳤어…….]
[ㄹㅇ나 생중계로 봤는데 진짜 쩔었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박력이……. 나 같아도 반했겠더라.]
[현민혁 아내분은 진정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ㅠㅠㅠㅠ]
차세대 한류스타이자 내로라하는 대한민국의 슈퍼스타, 현민혁의 파급력은 실로 상상 이상이었다.
그 기자회견 하나로 대부분의 여론은 무지막지하게 긍정적인 쪽으로 변모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며 계약결혼설을 맹신하던 누리꾼들조차도, 섣불리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댓글을 재차 남길 정도였다.
관심을 끌기 위해 이렇다 할 퍼포먼스를 벌인 것도 아니었고, 그가 한 거라곤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글만 죽죽 읽어 내린 것뿐인데.
그런데도 그 기자회견은 벌써부터 나훈아의 뒤를 잇는 역대급 기자회견이었다는 평이 자자했다.
정말이지 놀라운 결과였다.
물론, 여론이 그렇게 긍정적으로 형성된 데는 기자회견의 영향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현민혁 계약결혼설이 희대의 개소리인 이유.jpg]
모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거기엔 지갑에 예원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넣고 다녔던 그의 파파라치 샷과 아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던 인터뷰 이모저모, 그가 아내와 함께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 들어가 있었다.
거기다 글 말미에는 한때 사생팬들로부터 지독하게 시달렸던 그를 알고 있는 오랜 팬의 인증글까지 더해져 있었다.
그를 시작으로 불이 붙은 각종 커뮤니티에는 온갖 인증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제일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것이었다.
[xx랜드에서 현민혁씨 부부 덕분에 아이를 찾았던 아이엄마입니다.]
스스로를 아이돌 그룹 ‘스톰’의 오랜 팬이라 칭한 여자는 두 사람과 직접 찍은 인증샷을 올리면서 그런 소문은 사실일 리 없다고 정성스레 글을 올렸다.
자신이 실제로 본 두 사람은 너무나 금슬 좋고 예쁜 부부였고, 그들 덕분에 아이도 무사히 찾을 수 있었다며.
글 마지막에는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다시 한 번 전해드리고 싶다는 말과, 부부의 임신을 축하한다는 말까지 적혀 있었다.
자작 스멜이라곤 정말 1도 나지 않는 성의 가득한 글이었기에, 그 글은 순풍에 돛 단 듯 여기저기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이 얼마나 컸으면, 오지산간에 묻혀 있던 예원의 엔스타그램까지 찾아온 사람들이 손수 축하글을 남길 정도였다.
어쨌든 그 덕분에, 잔뜩 긴장했던 민혁과 예원은 비로소 한 시름 덜고 웃을 수 있었다.
모든 게 생각 이상으로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그러나 한편, 웃기는커녕 울화가 치밀어 폭발하기 직전인 쪽도 존재했다.
물론.
“하. 아직도예요?”
“예……. 도무지 갈 것 같지가 않은데요. 아주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라…….”
몰래 바깥의 동태를 살피고 온 여자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태균의 자택 앞에는 소식을 접한 기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와 있었다.
예상한 것 이상으로 과하게 커버린 현민혁이, 제멋대로 기자들 앞에서 입을 놀려댄 결과.
보좌관의 브리핑을 들으며 태균과 라희는 그저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렸다.
“의원님. 여론이 정말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 상태라면 이번 선거는…….”
“이번 선거가 뭐요. 뭘 어쨌다고요?”
“……이런 말씀 드리긴 죄송합니다만, 아무래도 상황이 너무 안 좋아진 것이 사실이라…….”
선거가 당장 코앞이다. 이렇게 끝 간 데까지 치달은 상황을 역전시키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 문제에는 뒤집을 만한 구실이 없었다.
외도를 한 것도 사실이었고 친아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일각에서는 이미 현태균의 정치 생명이 실질적으로 끝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었다.
평소 타 후보들에 비해 깨끗하고 청렴한 사생활을 강조했던 만큼, 돌아오는 부메랑의 효과도 엄청날 수밖에.
표정을 구긴 태균이 이를 악물었다.
“……그 망할 놈이, 결국엔 내 등에 칼을 꽂아.”
“어떡하죠, 여보. 이걸 어쩌면 좋아요 이제.”
초조해진 라희가 답지 않게 발을 동동 굴렀다.
잠시 생각하던 태균은 낮게 입을 열었다.
“됐어. 이번은 어쩔 수 없다 쳐야지.”
“……여보?…….”
“다음도 있어. 이번 선거만이 꼭 답은 아니야.”
실질적인 포기 선언이었다.
후보 사퇴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이번 선거에서는 기대를 접겠다는 뜻.
늘 당사자인 태균보다 더 당당하고 이성적이었던 라희의 얼굴은 곧장 당황으로 물들었다.
이걸 이렇게 쉽게 포기하다니.
“그치만……. 그럼 우리가 이제껏 노력한 것들이 다 수포로 돌아가잖아요!”
“상황을 냉정하게 봐. 안 되는 걸 계속 붙잡고 있을 순 없어. 이번이 안 되겠으면 다음을 준비해야지.”
잔뼈가 굵은 정치인답게, 그는 현 상황을 냉철하고 현명하게 바라보았다.
이대로 모든 걸 놓을 수는 없다. 목표했던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선 반대로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할 타이밍을 재는 것도 중요했다.
단, 결단을 내린 그에게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그렇지만……. 민혁이 그 놈만큼은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겠어.”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천하의 현태균이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멋모르고 덤빈 그 놈에게 본때를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았다.
다시는 제게 이딴 식으로 대서지 못하도록.
“여론이 긍정적이고 깨끗할수록 삐끗하긴 더 쉽지. 그렇게만 되면 이까짓 거 뒤집는 것쯤은 일도 아니야.”
“……여보.”
“경고했을 때 알아먹었으면 이럴 일도 없었겠지만. 뭐, 어쩔 수 있나. 지가 지 무덤 판 거지.”
“…….”
“삐끗할 일이 없으면, 삐끗하게 만들면 돼.”
칼을 갈듯 혼잣말을 중얼거린 태균이 티 나게 조소했다.
제 앞길을 방해한다면 자식마저 아무렇지 않게 내팽개칠 수 있는 그의 비정한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
이제 그는 서울시장이 목표가 아니었다. 그저, 제 손으로 현민혁을 망가뜨리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 그를 보며 잠시 당황해하던 라희는 이내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천부당만부당 옳은 말씀이에요, 여보.
“오늘부터 사람 풀고 그 자식 당장 따라붙어. 최대한 약삭빠른 놈들로 많이 붙여서 감시해. 이상하다 싶은 거나, 하나라도 건수 잡힌 거 있으면 바로바로 보고하고.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 * *
거사를 치른 후 며칠 만에 돌아오는 집이었다.
예원은 집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남자에게로 폭 안겼다.
오랜만에 마주한 품은 언제나 그랬듯 태산 같이 넓었다.
“어서 와. 이모님이랑 잘 있었어?”
“그럼요. 민혁 씨는요?”
“……음, 나는 잘 못 지냈어.”
“왜요?”
“네가 없었으니까.”
만나자마자 초장부터 이렇게 낯간지러운 말을.
여전히 그의 품에 안긴 예원이 그의 가슴팍을 아프지 않게 콩, 때렸다.
그래도 마냥 행복한 걸 어쩌겠는가.
그녀의 마른 등을 더욱 세게 끌어안으면서, 민혁은 실없이 웃었다.
기자회견장에서 한껏 각을 잡던 그와는 백팔십도 다른 모습이었다.
“맞다. 이제 드디어 만났으니까, 나 자진납세 할게.”
“……뭘요?”
“나, 당신한테 잘못한 거 있잖아.”
무슨……?
고개를 뒤로 뺀 예원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뭔 소리지, 이게?
“기자회견 때. 상의도 없이 그런 말 해서 미안해.”
“……네?”
“우리, 아이 가졌다고 한 거 말이야.”
아! 그거.
그제야 예원은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 멍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풉.”
필사적으로 다문 입가로 피식 웃음이 새고 말았다.
이번엔 반대로 민혁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왜 웃어? 난 사실 화낼 줄 알았는데.”
“엥. 내가 왜 그런 걸 갖고 화를 내요?”
“……그야.”
잠시 망설이던 그는 머뭇머뭇 답했다.
“미리 말도 안 해주고, 사람들 앞에서 내 멋대로 그렇게 말해버렸으니까.”
“…….”
“누가 그러더라고. 부부인 거 증명하는 데 그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어디 있겠냐고. 처음엔 거짓말하는 게 좀 걸렸는데, 생각해보니까 맞는 말이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
“……이해해 줄 수 있지?”
그렇게 묻는 남자는 꼭, 뭐 마려운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 그렇게 생긴 남자가 이럴 땐 왜 이렇게 귀여운지.
예원은 다시 피식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고 답했다.
“……당연하죠.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좀 놀라긴 했다.
제가 말도 안 했는데 이 남자가 그걸 어찌 아나 싶어서.
혹시 이모가 몰래 전해주었나 싶기도 했지만 그 후의 태도로 보아할 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 그 사람 많은 데서 완전 쌩 거짓말을 쳤다는 건데.
생각할수록 간 큰 남자가 아닐 수 없었다.
아니, 무작정 질러 놓기만 하면 다야?
진짜 임신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어?
“근데, 들키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그럼 또 우리 의심 받을 수도 있잖아요.”
“……아. 안 들킬 방법을 다 생각해 놨지.”
“응? 그게 뭔데요?”
순간, 그녀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눈길이 한순간 음험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큼지막한 손이 그녀의 허리께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살짝 야릇하게.
“뭐, 그게 어렵나.”
“…….”
“없으면 만들면 되지.”
아, 그렇구나.
……아니, 잠깐만. 뭐라고?
“……네?!”
생각 이상으로 화들짝 놀라는 그녀를 보며, 고새 한 마리의 늑대가 돼 버린 남자는 능글맞게 웃었다.
이 여잔 아직도 이렇게 부끄러워할까. 귀엽긴.
“말했지. 이제 같이 있기 싫다 해도 같이 있을 거라고.”
“…….”
“우리, 이제는 매일매일 같이 자자.”
더 이상의 각방 생활은 안녕. 이제는 진정 행복한 부부 라이프의 시작이었다.
이미 저 혼자 단꿈에 부푼 그가 다부진 팔로 예원의 허리를 감아 당겼다.
현저한 힘의 차이 덕분에 그녀는 거부할 새도 없이 바로 딸려왔고, 민혁은 그 사랑스러운 얼굴에 부드럽게 입 맞추려 했다.
그런데 그때.
“미, 민혁 씨!”
그의 입술 위로 득달같이 무언가가 올라앉았다.
다름 아닌 그녀의 손바닥이었다.
“자, 잠깐. 잠깐만요.”
“……왜.”
“아, 아직, 안 돼요.”
“뭐가.”
이렇게 안고 입 맞추는 게 대체 얼마만이던가.
당장 위층으로 올라가고 싶은 것도 겨우 자제하고 있구만 이게 무슨.
미간을 좁힌 그는 자연스레 애가 닳았다.
“왜, 왜 그러는데.”
“……그, 그게…….”
위로 바짝 치켜뜬 눈동자에 그의 얼굴이 가득 비쳤다.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긴 한데, 입술만 달싹달싹.
예쁜 목소리는 좀처럼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튼 안 돼요! 나 먼저 올라가요!”
“어?”
살쾡이를 피해 도망치는 다람쥐처럼 쌩 계단을 올라가 버린다.
어찌나 재빠른지 뒤꽁무니를 잡을 새도 없게끔.
오랜만에 그녀를 안은 덕에 펄펄 끓어올라 있던 욕정이 일순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한순간 한 마리 늑대에서, 닭 쫓던 개 신세가 돼 버린 민혁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멀거니 좇을 뿐이었다.
‘뭐, 뭐야.’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 * *
처음엔 그저 장난인 줄로만 알았는데, 안 된다고 했던 그녀의 말은 정녕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장장 이틀간, 그는 입맞춤은 물론이거니와 그녀를 털끝만치도 건드릴 수 없었다.
좋아하는 맘을 숨기느라 그녀가 무턱대고 저를 피했던 지난번과는 약간 그 종류가 달랐다.
그를 향한 눈빛과 상냥한 태도는 분명 평소와 같은데, 뭔가가 이상하고 당황스러웠다.
은근슬쩍 분위기를 좀 잡아볼라치면 생쥐처럼 슬금슬금 뒤로 빠지고.
하다못해 포옹조차도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최소한의 눈치라도 있으면 도저히 못 알아챌 수가 없을 정도였기에, 민혁은 영문을 모른 채 혼란에 빠졌다.
‘혹시,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 있었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든 스킨십을 전면 거부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무슨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피해대는 통에 이제는 남자로서의 자존심마저 상할 지경.
급기야는 이제 내가 싫어졌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만인의 연인이라는 현민혁이 고작 이틀의 냉전─어디까지나 그의 기준에서─ 끝에 이런 고민이라니.
누가 보면 우스울지 몰라도, 그는 정말 진지하게 고뇌하고 있었다.
“어, 민혁 씨. 왔어요? 이리 와서 치킨 먹어요!”
그리하여 다시 한 집에 살게 된 지 삼 일째 저녁.
바쁜 아내는 저를 피하기 일쑤고, 작품 하나가 끝나 일시적으로 거의 반 백수 신세가 된 터라 본의 아니게 시간이 넉넉해진 민혁은 어쩔 수 없이 원래 자주 들르던 헬스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속은 하나도 모르고 있을 그녀는 식탁 앞에 선 채 발랄하게 그를 불렀다.
“뭐해요, 얼른 오라니까.”
“어, 어.”
그래도 저러는 거 보면 정이 떨어진 것 같진 않은데.
아. 뭐가 문제야, 대체.
그는 다소 풀이 죽은 얼굴로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어디 갔다 와요?”
“아…… 운동.”
“그렇구나. 사람이 말도 없이 없어졌길래 걱정했잖아요.”
당신이 나랑 통 안 놀아주는데 그럼 어떻게 하라고.
저도 모르게 애 같은 투정이 불쑥 튀어나올 뻔했다.
어휴. 홀로 멋쩍어진 그는 큼큼거리며 식탁 위를 살폈다.
어, 그런데…….
“근데 예원아. 무슨 치킨을 세 마리씩이나 시켰어? 한 마리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요사이 스트레스를 받더니 이 여자가 갑자기 식욕이 늘었나.
눈앞에 놓인 세 마리 치킨의 압박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으면 나중에 먹어도 되잖아요. 그래도 1인 1닭이 진리죠.”
“1인 1닭? 세 마린데?”
사람은 두 명. 닭은 세 마리. 분명 짝이 맞질 않았다.
뭐지, 내가 이상한 건가?
요즘 인생 자체가 다큐멘터리였던 그는 웃음기란 웃음기는 싹 빼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던 그때, 옆에서 풉 웃음소리가 들렸다.
마치 이 상황이 재밌어 죽겠다는 것처럼.
“뭘 그렇게 심각하게 봐요, 세 마리 맞는데.”
“아니, 1인 1닭이라길래.”
“네. 맞아요. 1인 1닭.”
“우린 둘 뿐이잖아.”
“에이, 하나는 여기 있잖아요.”
“어?”
왠지 모르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제 배를 통통 가볍게 두드렸다.
“여기 있잖아요. 안 보여요?”
아직 말귀를 못 알아들어 벙해 있는 그와 달리, 그녀의 입가에는 싱그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
“우리 아기요.”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