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좋아질 수 없는 남자-82화 (82/102)

82. 이제 들려 줘요, 당신의 이야기

2019.01.15.

“혹시, 배우 현민혁 씨…… 아니세요?”

별안간 불린 제 이름에, 민혁은 순간 당황해 반문했다.

“……예?”

“그렇지!”

곧바로 이어진 큰 소리에 모두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근원지는 방금 전 말을 하다 말던 그 직원이었다.

“아, 아니. 실은…… 저도 아까부터 묻고 싶었거든요. 처음엔 좀 긴가민가했는데, 아무리 봐도 현민혁 씨 같아 보여서…….”

“…….”

어쩌면 이렇게들 눈썰미가 좋은 걸까.

이렇게 맥없이 정체를 들킬 생각은 없었는데.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굳이 밝히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잠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던 민혁은 결국, 겸연쩍은 듯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어 내렸다.

“……예, 맞습니다. 저 현민혁입니다.”

“허어!”

애 찾으러 왔다가 이게 웬 떡이냐!

여자는 놀라움을 차마 숨기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지금, 한창 촬영하느라 바쁘실 때 아니에요? 어떻게 여기까지……!”

“아, 촬영은 어제 막 끝났습니다. 아직 방영분은 조금 남았지만요.”

“어머 그렇구나……! 저 그 드라마 너무너무 잘 보고 있어요!”

방금 전까지 눈물 쏙 빠지게 아이를 혼내던 엄마는 이미 어디로 가고 없다.

오랫동안 선망해온 우상 앞에서는, 그녀도 또한 별 수 없는 소녀일 뿐이었다.

“실은 저 썬더스톰 1기였는데……! 아직도 집에 씨디랑 야광봉 있어요! 콘서트 DVD도!”

“하하, 정말요?”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직원이 남편으로 추정되는 남자에게 숨죽여 물었다.

“……‘썬더스톰’이 뭡니까?”

이윽고 남자는 대답했다.

“……‘스톰’ 팬클럽 이름이요.”

이전에도 이미 이런 일을 몇 번 겪어본 듯, 무덤덤하기 짝이 없는 말투였다.

한편, 그런 여자의 앞에 선 아이는 이제야 훤히 드러난 민혁의 잘생긴 얼굴을 올려다보며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 아빠가 더 잘생긴 것 같다던 자신의 판단이, 철저하게 틀렸음을 깨달은 게 분명했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소원아, 오빠랑 언니한테 고맙다고 인사드려야지? 얼른!”

“……고맙습니다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저씨’에 불과했는데, ‘현민혁’이란 사실을 밝히자마자 오빠가 되었다.

눈 깜짝할 새 달라진 스스로의 위상이 그는 우스웠다.

“고마워할 거 없어. 다음부턴 길 잃지 말고, 엄마 손 꼭 붙잡고 있어야 돼. 알았지?”

그가 피식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옆에 서 있던 예원이 괜스레 으스대듯 말했다.

“거 봐, 이소원. 언니 남자친구 잘생겼댔지?”

“또, 또. 남자친구 아니고 남편이라니까.”

“아,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중요하지 그럼 안 중요해?”

어김없이 다시 불거진 남편 vs 남자친구 논쟁.

별 것도 아닌 걸 갖고 진지하게 갑론을박하는 그들을 보며, 앞에 선 여자는 그저 신기한 눈초리를 했다.

“저 그럼, 옆에 계신 분이…… 아내 분?”

“아, 네. 맞아요.”

“어쩜……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세요. 티비보다도 실물이 훨~씬 나으시고요.”

“하하, 감사합니다.”

누가 부부 아니랄까봐, 쑥스럽게 웃는 모습까지 묘하게 닮았다.

바라만 봐도 흐뭇한 그 모양을 그렇게 넋을 놓고 지켜보고 있는데.

“저, 그런데 소원 어머님.”

웬일인지 그가 불쑥 입을 열었다.

“네?”

“초면에 죄송하지만, 저하고 약속 하나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야, 약속이요?”

어머. 현민혁이 나한테 뭔 약속을?

“그, 그럼요! 그게…… 뭔데요?”

잠깐 머뭇거리던 그는 이내 답했다.

“오늘, 여기서 절 만난 건 비밀로 좀 해주십시오. 사실 크게 문제 될 건 없긴 한데…… 그래도 바깥에 알려지면 괜히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요. 물론, 소원 어머님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 분들께도 마찬가지로 부탁드립니다.”

“…….”

“비밀, 지켜주실 거죠?”

“……아, 네! 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맘 같아선 내가 천하의 현민혁을 이 두 눈에 똑똑히 담았노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당사자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이상 그럴 수는 없고.

그렇다면…….

“저…… 그럼, 혹시 사인은 해주실 수 있으세요……?”

“아, 그거야 당연히 해드려야죠. 여기 혹시 펜 있습니까?”

그 한 마디에, 미리 양손에 펜과 종이를 준비해놓고 있었던 직원이 득달같이 다가왔다.

“여기요! 저, 저도 몇 장만 부탁드릴게요!”

“저도요!”

“저도…….”

기다렸다는 듯한 손길들이 줄을 지어 이어졌고, 민혁은 기꺼운 마음으로 모두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자,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뭘요. 그럼, 이쯤하면 됐습니까?”

그가 묻자, 마지막 사인을 받은 직원이 살짝 쭈뼛거렸다.

“아, 예에. 그런데, 저…….”

“…….”

“같이 기념사진 한 방 찍는 건…… 혹시 안 될까요?”

“……사진이요?”

그가 잠시 멈칫했다.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찍지 않는 것이 맞았다.

좋은 맘에 괜한 흔적을 남겼다가, 공연한 구설수에 오르거나 하는 일들을 이미 여러 번 겪어 본 바가 있었으므로.

하지만 거절을 고하기엔, 퍽 간절해 보이는 이들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오늘은 무엇보다…….

“…….”

그들 부부에게도, 필히 ‘기념’해야 하는 날이지 않은가.

참 여러 가지의 의미로.

“……아뇨, 됩니다. 외부에 공개만 안 하신다면.”

예원을 슬쩍 곁눈질한 그가 흔쾌히 승낙했다.

“네! 저, 저 혼자서만 볼게요! 아무 데도 안 올려요!”

“그럼, 모두 이리로 오십시오. 다 같이 찍는 걸로 하죠.”

“오오, 네네!”

……우주대스타 남편의 옆에서, 어느새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된 예원은 그 일련의 과정들을 그저 멍하니 지켜보고 서 있었다.

아니, 놀이동산 미아보호소를 자기 팬미팅장으로 만들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못 살아, 정말.

절레절레. 고개가 저절로 살랑살랑 저어졌다.

“예원아. 이리 안 와?”

……하지만 뭐, 그녀로서도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진짜 아내로서, 이젠 이런 것도 무조건 익숙해져야 할 일이니까.

“……가요.”

피식 웃은 예원은 결국, 쪼르르 달려가 그의 옆자리를 냉큼 차지하고는 못 이긴 척 브이를 그렸다.

“자, 그럼 찍겠습니다. 모두 여기 보세요! 하나, 둘, 셋!”

찰칵.

* * *

온천지에 사람이 들끓던 놀이공원은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점점 한산해졌다.

뜨거운 열기와 왁자지껄한 소음 대신, 이제는 선선한 저녁 공기와 색색깔의 빛들이 놀이공원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와! 이렇게 보니까 진짜 크다, 여기. 그쵸?”

무엇을 먹을까 하다 아래층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쳤다.

다음으로 두 사람은 공원 전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타워 전망대에 올라와 있는 채였다.

“그러게. 생각보다 꽤 넓네.”

“이렇게 보니까 더 다행이에요. 이 넓은 데서, 무사히 소원이 부모님을 찾아줘서.”

“…….”

그는 말없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의 사건은 기념품가게를 둘러보던 도중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했다.

그 전에 잠깐 화장실에 들렀었는데, 그때 기다리라고 한 것을 아이가 잘못 알아들었던 것 같다고.

두 분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다며 부득불 사례를 하겠다는 통에, 그 후로도 한참 사양을 하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던 두 사람이었다.

“저로선 감히 상상이 안 돼요. 아이를 잃어버린다니…….”

“…….”

“진짜 심장이 덜컹 떨어질 것 같아.”

그녀가 조용히 중얼거린 말에, 민혁은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알고 떠나보내도 마음이 찢어질 것 같은데, 피치 못하게 잃어버린 입장이라면 당연히 더할 수밖에 없겠지.”

“……네?”

알고 떠나보내다니. 저게 무슨 말일까?

멋모르는 예원의 눈동자가 파도처럼 일렁이는 사이,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까, 그 애 무릎에 난 상처 말이야.”

“…….”

“그거랑 꼭 같은 자리에…… 비슷한 자국이 있었어.”

이윽고 짧게 덧붙여지는 목소리.

“……우리 민영이도.”

민영?

민영……이라면…….

“……그, 어렸을 때 입양됐다는…… 민혁 씨 여동생 말이에요?”

그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지고, 예원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예전부터 언뜻언뜻 듣기만 했지, 그가 이리 직접적으로 그 여동생을 화두로 올린 건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새삼 궁금해졌다.

이 남자는 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 사랑하는 여동생과 그런 생이별을 해야 했던 걸까.

그리고…….

‘내 추억들을 산산조각 낸 사람들이거든.’

‘우리 엄마, 동생…… 그리고 나까지.’

그 사람들은 당신에게, 대체 무슨 짓을 했던 걸까.

무슨 짓을 했기에 소중한 추억이 산산조각 나버렸다는 건지.

“이제 그만, 얘기해 줄 때도 되지 않았어요?”

“……뭘?”

“……민혁 씨 얘기 말이에요. 아버님이랑 어머님 얘기도……. 그 여동생 얘기도.”

“…….”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이 잠자코 기다렸어요. 주제를 넘는 것 같아서……. 그치만, 이제는 나 진짜 민혁 씨 아내잖아요.”

그에게 눈을 맞춘 예원이 부러 밝게 웃어 보였다.

“왜…… 동생이랑 헤어지게 된 거예요?”

“…….”

“듣고 싶어요. 들려 줘요, 민혁 씨 이야기.”

지금까진 미처 알지 못했던,

그리고 당신이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그 모든 이야기들을.

“…….”

그는 그 상태 그대로 예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자는 어쩐지 주저하는 기색이었지만, 예원은 채근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끈기를 가지고 얼마쯤 있었을까.

민혁은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내 손으로 버렸어.”

“……네?”

이윽고 입가에 번지는 씁쓸한 미소.

“내가 버렸다고. 내 행복을, 내 동생을.”

* * *

……어렸을 때는 나도,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했었어.

능력 있고 멋진 아버지, 자애롭고 따뜻한 엄마.

그리고 곧 태어날 예쁜 여동생까지.

그런 가족 안에서 부족한 거 하나 없이 오냐오냐 자란 내가, 더 이상 뭘 바랄 수 있었겠어.

단지…… 우리 집은 언제까지고 이렇게 행복하기만 할 거라고.

그렇게 굳게 믿었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이 깨어진 건…….

어느 날, 아버지의 통화를 우연히 훔쳐 듣고 난 뒤부터였어.

“……어디 몸 아픈 덴 없지? 그럼, 내 걱정은 말고. 며칠 이따가 내가 그리로 갈게. 응. 사랑해. 사랑해…….”

우리 엄마는 저기 저 방 안에 있는데. 아버지는 대체 누구를 향해서 저렇게 사랑한다 말하는 걸까.

혼란스러웠어. 동시에 충격도 받았고.

왜 그 전엔 알아채지 못했을까.

엄마가 임신하고부터 급격하게 아버지의 외박 횟수가 늘어난 것도.

이따금씩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향수 냄새를 묻히고 돌아오셨던 것도.

생각해 보니까, 그 모든 것들이 가리키고 있는 정답은 딱 하나였는데.

……아버지가 우릴 배신했다는 거 말이야.

……난, 적어도 엄마는 그걸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남김없이 이야기했어. 하나도 빠짐없이.

물론 엄만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더 충격을 받으셨지.

그래도 그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난 미처 몰랐던 거야.

임산부는 자그마한 충격에도 엄청나게 큰 영향을 받는다는 걸.

자칫 잘못하면 유산이 문제가 아니라, 산모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걸…….

내가 한 말 때문에, 엄마는 그걸 어디에도 말 못하고 혼자 끙끙 앓으셨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잖아도 몸이 약했던 엄만, 그 일 때문인지 예정일보다 더 일찍 민영일 낳다가 돌아가셨고.

표면적으로 ‘사별’을 한 아버지는…… 아무 탈 없이 그 바람피우던 여자와 재혼을 했어.

미혼모였던 그 여자가 데리고 있던 아들까지 데려와서.

……그때부터 난, 하루아침에 현 씨 집안의 장남에서 ‘둘째아들’이 됐어.

사실 아버지는, 애초부터 나랑 민영일 둘 다 버리려 했던 것 같아.

그런데 그 여자가 말렸어.

나는 이미 너무 컸고 아들이니까, 그냥 그대로 놔두는 편이 좋겠다고.

아마도 차후에 날 꼬여내서 이용하려는 속셈이었겠지.

결국 아버지는 고민 끝에, 민영이만 입양보내기로 결정했어.

모든 일을 간편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아이지만, 결정적으로 그 애는 더 이상 키울 쓸모가 있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외삼촌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버지는 민영일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입양시켰고.

그리고 난…… 그걸 다 알고도 막지 못 했어.

만약 그 앨 보내지 않으면, 그 대신 내가 버림받을 수도 있단 게 무서워서…….

차마 말리질 못했어.

찍소리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고, 더럽고 역겨워도 참았어.

……그러니까.

엄마를 그렇게까지 만든 것도, 민영이가 그렇게 되어버린 것도.

결국엔 내 탓이었던 거지.

내가 한 말. 내 알량한 이기심 때문에.

.

.

.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예원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간신히,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네요.”

“…….”

“……원래 나쁜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야.”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분노가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당장이라도 그 인간들을 찾아가 아작 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털어놓은 그는 정작 느슨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뭐, 나도 별반 다르지 않잖아. 나도 나쁜 사람이긴 매한가지인 걸.”

“……그건 민혁 씨 잘못이 아니잖아요!”

굳은 얼굴의 예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때 민혁 씨가 뭘 알았겠어요. 나 같아도 당연히 엄마한테 제일 먼저 말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여동생 문제도 그래요. 민혁 씨가 설령 말렸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눈 하나 깜짝 했을 것 같아요? 어린 꼬마애가 하는 말이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최악의 경우엔 어쩌면, 둘 다 다른 집으로 입양돼서 절대 서로를 찾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요.”

“…….”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은, 적어도 희망이 있는 거잖아요.”

찾아서,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희망.

엄마와 동생을 그리 허망하게 떠나보내야 했던 무력감, 그리고 그로 인한 뼈아픈 죄책감을 평생토록 안고 살아왔을 남자를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질 듯 아팠다.

왜 그게 당신 탓이야. 진정 탓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똑똑한 척 한다고 저를 타박하더니, 알고 보니 정말이지 바보 같은 남자가 아닐 수 없었다.

“동생…… 찾고 싶은 거죠?”

예원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고개를 숙인 그는 피식 웃었다.

“……모르겠어. 내가 아직도 그 애를 찾고 있는지, 아님 포기를 한 건지. 아직 찾고 싶은 맘은 여전한 것 같은데, 은연중에는 항상…… ‘못 찾을 수도 있지’, 하면서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

“그 애는 태어날 때부터 무릎에 희미한 점 같은 게 있었어. 그 비슷한 자국만 보면 그 애 생각이 나. 언제는 여자 무릎만 보고 미친놈처럼 달려가서 물어본 적도 있었지. 죄송하지만 혹시, 이름이 뭐냐고.”

그가 씁쓸하게 자조했다.

“성환이 형도, 영덕 아저씨도. 자기 일처럼 찾아주고 도와주고 계시지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 그쪽에서도 우릴 찾고 싶어 하면 그나마 수월해질 텐데, 아직까진 그런 기미가 없었거든.”

“…….”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겠지. 자기가 입양아란 사실을 모르거나, 아니면…….”

“…….”

“다 알지만, 나를 별로 찾고 싶지 않거나.”

그의 무거운 목소리에, 예원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집어 삼켰다.

“이 정도로 찾았는데도 못 찾는 거면, 나 없이도 충분히 잘 지내고 있다는 거라고. 너무너무 행복해서, 굳이 날 찾으려 들지 않는 거라고…….”

“…….”

“그렇게 믿고 싶어. 그러려고 노력 중이야. 실제로도 그런 거였으면 좋겠고.”

어쩌면 이건 부질없는 미련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슬슬 단념해야 하나, 싶은 생각까지도 드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예원은 그런 그를 향해 가만히 도리질을 했다.

“……동생도 분명히 민혁 씰 찾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동생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

“내가 별로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도와줄게요. 그러니까 힘내요.”

남자의 애수어린 눈을 마주한 순간, 예원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비록 별 볼 일 없는 나라도…… 부디 당신에게는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할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행운을 끌어 모아서 당신에게 주고 싶어.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당신이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고마워, 말만으로도.”

그리고 다행히, 그는 그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전달받은 듯했다.

엷은 웃음을 짓던 그는 이윽고 걸음을 옮겨 여자의 가녀린 몸을 뒤에서 천천히 끌어안았다.

“헉. 미, 민혁 씨……!”

예원의 얼굴은 곧장 당황으로 물들었다.

사람들 다 보는데 이게 뭐하는 짓이래!

가슴께를 둘러 안은 굵은 팔뚝을 황급히 떼어내려 해봤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다행이야.”

그 와중에, 귓가에 와 닿는 목소리가 과하게 뭉클했다.

“당신이 내 옆에 있어줘서, 정말로 다행이야.”

“…….”

또 한 번 절로 간질간질해지는 심장.

에이씨. 이 남잔 시도 때도 없이, 정말.

예원은 그의 팔뚝 밑으로 격렬하게 요동치는 가슴을 애써 억누르며 침을 삼켰다.

그런데 바로 그때.

“여보.”

그가 대뜸 물었다.

“우리도, 하나 낳을까?”

“…….”

“당신 같이 예쁜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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