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폭풍전야
2018.10.30.
“실언…… 이었다고요?”
실언이라니. 그게 뭐지?
속으로 그 단어를 다시 한 번 곱씹은 민혁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 어렵지 않은 말임에도, 순간적으로 그 뜻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네. 제 말은 들으시지도 않고 너무 일방적으로 화를 내시길래, 어떻게든 진정시켜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그랬어요. 저도 모르게 말이 헛나왔나 봐요.”
“…….”
“죄송해요, 괜한 말씀드려서.”
어제 저녁, 진주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에게 좋아한다 고백했던 여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태연하게 말하는 얼굴이 너무나 말갛고 무덤덤한 나머지, 민혁은 차마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불과 24시간도 채 되지 않은 일.
그런데 그게 한순간 전부 꿈인 것처럼 변해버렸다.
한껏 부풀어 있던 마음이, 구멍 난 풍선처럼 팍 쪼그라들어 있었다.
“참. 어제 걔랑은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조만간 유학 간다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뭐 좀 물어볼 겸, 그래서 만났던 거예요.”
“…….”
“다시는 그런 일 없을 테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여자에게서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줄줄 흘러나왔으나, 민혁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야.
내가 당신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은 그런 게 아니라고.
“할 말이…… 그게 답니까?”
“네.”
“…….”
“뭐가, 더 필요한가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순진해보이기만 하는 얼굴.
뭐가…… 더 필요하냐고?
‘하.’
일순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지난 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쳤던 자신이 말도 못하게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진정시켜야겠기에 한 말. 저도 모르게 헛나온 말이라니.
고작 그런 의도로 했던 말을 두고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어이가 없어진 민혁은 낮게 실소를 내뱉었다.
“…….”
하지만, 여전히 미지근한 의문 한 줄기는 남아있었다.
그것이 정녕 실언이었다면, 이 여자는 왜 그리 슬프게 울었던 거지.
왜 그렇게 애달픈 표정으로,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던 걸까.
왜.
왜 굳이.
“……홍예원 씨.”
“네?”
어느새 딸기잼을 다 바른 여자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식빵 조각을 베어 물며 답했다.
순간 그의 입술은 다시금 다물렸다.
그 표정에,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아닙니다.”
그 말엔……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아, 맞다. 내일 지방 촬영 간다고 그러셨죠? 갔다가 언제쯤 다시 오세요?”
그런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빵을 야무지게 씹으며 명랑하게 물었다.
“한…… 일주일 쯤.”
“어, 그럼 첫방도 거기서 확인하셔야겠네요?”
“……아마도요.”
영혼 없는 그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특유의 꾸밈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나. 그럼, 그동안 저는 이모 집에 가 있어야겠어요.”
“……이모님 댁엔 왜요?”
“이제 곧 지원이 합숙 들어가잖아요. 그 전에, 셋이서 같이 시간 좀 보내려고요.”
“……아.”
무려 일주일을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데, 외려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것을 무척이나 반기는 눈초리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순간적으로 모든 촬영을 내팽개치고픈 충동이 들었다.
한 번 떨어진 기분은 이제 끝 간 데를 모른 채 추락하고 있었다.
“……그래요. 예원 씨 편할대로 해요.”
“…….”
“난 그럼, 이만 일어날게요.”
“……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힐끗 쳐다본 민혁은 이내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전에 없이 난폭한 발소리였다.
그렇게, 그가 2층으로 올라가는 모양을 넌지시 지켜보던 예원의 눈길은 문득 그의 앞에 놓여 있던 접시로 향했다.
하얀 접시 위로 노릇한 식빵 몇 조각이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로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
그 순간, 양 볼 가득 햄스터처럼 빵을 우물거리던 그녀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입매가 시무룩하게 뒤집어지고, 시선은 밑으로 깔린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앉아있는데도 다리가 다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잘했어.”
잘했다, 홍예원. 이만하면 충분히 자연스러웠어.
어젯밤부터 지영과 함께 열심히 시뮬레이션을 한 보람이 있었다.
그래. 이런 식이면 된다.
맨 처음 그에 대한 마음을 깨달았을 때, 혼자서 굳게 다짐하지 않았던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관심 없는 척하는 거야.’
그럼, 저 남자도 자연히 그러려니 하게 될 테니까.
또 그 말도 안 되는 고백도, 자연스레 망각 속에 묻혀버릴 테고…….
마음 한 구석에서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예원은 그것을 애써 무시했다.
‘내가 살려면…… 이 수밖에 없어.’
고개를 주억거리며 스스로를 부지런히 칭찬한 그녀가 남은 빵 조각들을 꾸역꾸역, 속으로 밀어 넣었다.
* * *
며칠 뒤.
“다녀왔습니다.”
“어, 왔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원을 예원이 부리나케 반겼다.
“오늘은 일찍 왔네?”
“응. 이제 컨디션 관리도 해야 하니까, 너무 무리해서 연습하지 말자고 그래가지고.”
“그래, 잘 생각했어.”
지원이 가방을 벗어놓으며 픽 웃었다.
“근데, 집에 왔는데 자꾸 누나가 있으니까 왠지 좀…… 이상하다.”
“뭐? 이게. 그래서 뭐. 싫어?”
“하하, 아니 좋다고.”
민혁에게 말한 대로, 그가 없는 며칠 동안 예원은 이모네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간만에 이모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도 먹고, 셋이서 여가 시간도 함께 보내고 있으니 ‘힐링’이란 게 무엇인지 아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그를 향한 걱정이나 생각은 불쑥불쑥 들곤 했지만, 예원은 그것을 의식적으로 피하려 노력했다.
안 그럼, 굳이 이곳에 와 있는 의미가 없으니까.
“아참, 오늘 치킨 시켰어. 간만에 이모랑 치맥이나 한 잔 하려고.”
“오, 나도 한 잔 끼면 안 돼?”
“새파랗게 어린 고딩이 무슨! 안 돼. 넌 콜라나 마셔.”
에이. 지원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컸다한들, 저렇게 입술을 삐죽거릴 땐 영락없는 제 동생 홍지원이다.
서로를 향해 피식 웃은 남매는 이미 치킨과 함께 티비 앞에 대기하고 있는 이모 은아의 옆으로 가 사이좋게 자리를 잡았다.
“어, 지원이 왔니.”
“네. 몇 시에 시작해요?”
“10시인가……. 아마 곧 할 거야.”
사실 오늘, 그들이 이렇게 티비 앞에 모여 앉은 이유가 있었다.
“드디어 첫방이네. 민혁이 형 떨리겠다.”
오늘은, 결혼 이후 그가 열심히 찍어왔던 드라마가 마침내 첫방송을 하는 역사적인 날이었으므로.
“그러게나 말이야. 아휴, 지방에서 촬영하느라 고생할 텐데. 첫방송은 챙겨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
“아마 촬영 중간 중간에 스태프들이랑 다 같이 보지 않을까요? 요즘은 폰으로도 워낙 잘 나와서 뭐.”
“아, 그럴 수도 있겠다.”
“…….”
……휴, 여기선 그 남자 얘기 좀 안 나오나 했더니.
두런두런 얘기하는 지원과 이모의 사이에서, 예원은 아무 말 없이 치킨만을 뜯었다.
눈에서 안 보이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요 며칠 그를 보지 않는 동안만큼은 그나마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그녀였다.
따라서 원래는 오늘 방송될 드라마도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허나 원체 드라마 광인 이모의 성화도 있었고, 뒤늦게 매형의 짱팬이 된 지원도 있었기에 그 생각은 차마 실현되지 못했다.
맘 같아선 당장이라도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가족들로부터 괜한 의심을 사긴 또 싫은 까닭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어, 시작한다!”
화사한 타이틀 롤 영상과 광고 몇몇 개가 지나가고, 드디어 드라마는 시작되었다.
“시청률 잘 나와야 될 텐데…….”
“잘 나오겠지. 아무렴 누구 드라만데.”
이야기 초반 잠시 잡담이 이어졌다.
하지만 저마다 치킨 조각을 하나씩 문 세 사람은 금방 티비 속으로 빠져 들어갈 듯 집중했다.
<……피고인 쪽에서 지난번 공판 기일에 석명을 요구했다던데요.>
미스터리 로맨스를 표방한 이번 드라마에서 그는 극중 검사로 등장했다.
명실상부 원탑 주인공답게, 남자는 초장부터 등장해 드라마를 서서히 휘어잡기 시작했다.
또한 드라마 중반부에 이르자,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혜인의 활약도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반가워. 오랜만이네.>
<아니, 넌……?>
사건을 맡은 검사와, 그 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바리스타.
좀처럼 보기 힘든 조합을 가진 두 남녀의 운명적인 재회장면에 이어, 얼기설기 얽힌 두 주인공의 과거 회상장면이 흘러나왔다.
<대체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
<……울 엄마 산소.>
<거긴…… 갑자기 왜?>
<그냥, 자랑하고 싶어서.>
여주인공의 눈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나 이만큼 잘 컸다고. 또…… 엄마한테 보여주고 싶은 멋있는 남자친구도 생겼다고.>
<…….>
<다음엔, 너도 같이 갈래?>
몇 달 전의 민혁과 같은 모습인, 그의 탈을 쓴 남자주인공이 엷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로 혜인의 모습을 한 여주인공은 서서히 그에게로 다가가, 나비처럼 가벼운 입맞춤을 선사했다.
그리고…….
눈빛이 달라지는가 싶더니, 그는 이내 혜인의 얼굴을 붙잡고 키스를 퍼부었다.
전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노린 듯한 상당히 짙은 키스신이었다.
“……오.”
“…….”
이, 이걸 어째.
생각지 못한 장면에 찬물을 맞은 듯 숙연해진 은아와 지원은 중간에 앉은 예원의 눈치를 슬슬 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티비에 달라붙은 채 떨어질 줄을 몰랐지만, 다행히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연기니까. 저 정도 장면은 다 이해하고 보는가 보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남편의 키스신을 보면서 저렇게 무감한 표정은 살짝 의외다.
쌍으로 어깨를 살짝 으쓱거린 지원과 은아는 몰래 눈빛을 교환하고는 다시금 드라마에 집중했다.
……그러나 잠시 뒤.
“……!”
예원의 얼굴에는 별안간 이채가 띠었다.
그녀의 표정이 변한 타이밍은, 고작 그런 진한 키스신 따위가 아닌…….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사랑스럽게 빤히 바라보는 장면에서였다.
<……사랑해.>
<나두.>
티비 속의 남자는 녹아들 듯 달콤한 눈빛으로 여자에게 사랑을 고하고 있었다.
슬로우 모션이 걸린 것처럼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그 얼굴과 눈빛을, 예원은 홀린 듯 좇았다.
문득 깨달았다.
저 얼굴은…… 저 익숙한 표정은…….
‘…….’
애석하게도, 실제 그녀가 남자에게서 이따금씩 보았던 그 표정이었다.
저에게만 보여주는 거라 생각했던 미소.
저에게만 향하는 거라 생각했던 시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다른 여자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너무나도 예쁘게.
“…….”
그 사실을 깨닫자, 치킨을 움켜쥔 손에 힘이 쭉 빠졌다.
……그래.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저 남잔 배우고, 그만큼 연기력이 투철한 사람이라는 것을.
잠시 착각했었다.
혹시, 나에게만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저 남자가 진심으로 날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역시나 그랬다.
착각은, 말 그대로 착각이었던 것이다.
‘넌, 대체 저 남자한테서 뭘 기대한 거니.’
그녀가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가슴께에서 울컥, 무언가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누나. 왜 그래?”
“어?”
순간, 그녀가 멍하니 지원을 돌아보았다.
“왜 그러냐고. 갑자기 왜 울어. 어?”
아. 어느새 또 주책맞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나 보다.
퍼뜩 정신이 든 예원은 들고 있던 치킨 조각을 내려놓은 뒤, 황급히 눈물을 슥슥 닦아내고는 헤헤 웃었다.
“아~ 그, 그냥…… 드라마 때문에. 감동 받아서 그랬나 봐. 되게 재밌네, 저거…….”
“…….”
“나 잠시만 나갔다 올게.”
……망했다.
지원의 의문 가득한 얼굴을 뒤로하고, 예원은 도망치듯 마당으로 나갔다.
.
.
.
바깥은 어느덧 봄날이 완연해져 있었지만, 밤공기는 여전히 꽤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바깥 공기라도 쐬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한 번 터진 눈물은 쉽사리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폭포수처럼 흐르는 눈물을 서둘러 닦아내며, 예원은 눈물을 말리듯 얼굴에다 손을 팔랑거렸다.
“아후, 진짜. 왜 이러냐…….”
그 남자 앞에서만 티를 안 내면 뭐하냐고.
딴 사람들 앞에선 이렇게 다 티내면서.
안 돼. 참자.
울지 마, 홍예원. 응?
“……흑.”
하지만 방금 전 환히 웃던 그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자, 또다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것뿐이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고개를 돌리기가 무섭게, 늘 그렇듯 옆 편에 세워져 있던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그녀의 울음을 한껏 부채질했다.
“흡…….”
결국 그 자리 그대로 주저앉은 예원이 속으로만 삼켰던 울음을 꺽꺽 토해냈다.
잘 참았는데……. 며칠만 더 참으면 됐는데.
그를 향한 마음 앞에서, 예원은 한없이 무력했고 또 무력하기만 했다.
……그때였다.
“……누나.”
덜컥, 심장이 떨어졌다.
번쩍 고개를 든 예원은 눈물로 잔뜩 얼룩진 얼굴을 서둘러 닦아낸 뒤 뒤를 돌아보았다.
문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밖으로 나온 지원이 그녀를 놀란 눈초리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우는 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주변 소음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흠칫한 예원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 아냐! 아냐, 그런 거…….”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 우는데.”
“…….”
“어? 왜 울어.”
인상을 찌푸린 지원이 거듭 물었지만, 예원은 힘겹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아, 참.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냥, 무슨 생각이 나서 그래……. 슬픈 생각.”
“누나.”
“넌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들어가. 드라마 봐야지.”
“…….”
석연찮은 얼굴을 한 지원은 애써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다독이고 있는 듯한 누나의 마른 등을 내려다보았다.
누나인 예원이 지원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지원 또한 제 누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묻는데도 답해주지 않는 건,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다.
즉, 당사자인 누나에게서는 더 이상 답을 구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알았어. 누나도 얼른 들어와. 아직 추워.”
해서, 지원은 일단 한 보 물러나기로 했다.
“으응. 먼저 들어가.”
“……어.”
그는 모른 척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지만, 전처럼 티비 앞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훤칠한 조카사위의 얼굴을 여전히 흐뭇하게 감상하고 있는 이모를 지나쳐 제 방으로 들어간 지원은, 제일 먼저 책상 위에 놓여있던 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손에 익다 못해, 눈을 감고도 입력할 수 있는 번호를 다급히 눌렀다.
“여보세요. ……어, 누나.”
이쪽에서 한 보 물러나야 한다면,
“혹시, 내일이나 모레쯤…… 잠깐 만날 수 있어요?”
다른 쪽으로 두 보 나아가면 될 일이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심각해진 얼굴의 지원이 조용히 물었다.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