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좋아질 수 없는 남자-46화 (46/102)

46. 마지막 인사

2018.09.11.

한 시대를 풍미한 여배우, 채수진의 장례식은 마치 생전 그녀의 삶처럼 치러졌다.

화려한 듯하지만 소박하게. 떠들썩한 듯하지만 조용하게.

살아생전 남편도 자식도 없었던 그녀이기에 평소 고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소수의 이들만이 장례의 주축이 되었다.

다만, 상주를 누가 맡느냐는 것이 문제였다.

식장 관계자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 상주를 맡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민혁은 굳건하게 주장했다.

‘……제가 아니면 안 됩니다. 반드시, 제가 해야만 해요.’

울음기로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선 너무나도 강력하게 피력해오는 통에 차마 아무도 그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그에게 큰아버지뻘 되는, 수진의 친오빠와 함께 상주가 되어 조문객들을 맞았다.

“……들어가서 좀 자요.”

장례 이틀 차, 손님이 조금 잦아든 새벽.

민혁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예원이 그를 향해 조용하게 읊조렸다.

여느 며느리들처럼 상복차림에 흰 머리핀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민혁은 굳은 입꼬리를 애써 올렸다.

“괜찮아요. 예원 씨나 가서 좀 쉬어요.”

사실, 병원에 도착하고부터 지금까지 그는 거의 한숨도 자지 못한 채였다.

몸도 힘들었지만 정신이 더욱 고달프고 힘들었다. 저를 오롯이 받쳐주던 지지대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느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 바로 예원이었다.

그녀는 당장 예정되어 있던 근무 스케줄을 모조리 취소하고, 에덴 식구들에게도 갑작스런 휴점을 공지한 채 그의 곁에서 준비를 도왔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어깨 너머로 본 기억이 있었던 탓인지, 예원은 상주를 맡은 그 못지않을 만큼 분주하게 움직였다.

덕분에 장례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만일 그녀가 곁에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은 그에게 더욱 크나큰 고난이었을지도 몰랐다.

“이러다가 정말 몸 상해요. 전 아까 쉬었으니까, 가서 잠깐이라도 눈 좀 붙여요. 어차피 큰아버님도 계시잖아요.”

“……괜찮아요.”

휴, 하여튼 고집 한 번 정말 쇠심줄이라니까.

못마땅하게 신음한 예원은 문득, 얼굴 전체에 피곤함이 내려앉아 있는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엄마…….’

그녀와의 통화를 마친 후, 촬영장에서부터 정신없이 달려온 그는 숨이 멎은 수진의 손을 잡은 채 한참 동안 오열했다.

그 모습에, 먼저 도착해 1차 눈물을 쏟아냈던 예원도 마찬가지로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결국엔, 두 사람 모두 수진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 사실은 그들에게로 하여금 어마어마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조금만 더 눈치를 빨리 챘더라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들렀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자꾸 해봐야 부질없는 후회만이 밀려들었다.

괴로움이 온몸을 관통하는 것만 같았다.

‘……너무 그러지 마라.’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30년 가까이 수진의 곁을 지켜온 사람이자 임종을 지켜본 유일한 이였던 매니저 영덕은 위로라도 건네듯 말했다.

‘꼭 잠에 들듯이, 그렇게 편하게 가셨어. 저 얼굴 좀 봐라. 너무 편안해 보이지 않니.’

슬프게도 그건 사실이었다.

숨을 거둔 수진은 언제 아프기라도 했었냐는 양, 아주 평온하게 미소 짓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정말…… 편안해지셨구나.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곳, 행복하고 좋은 곳으로 가셨겠구나.

눈물이 터지는 와중에도 예원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번다했던 마음이 그나마 가라앉았다.

“…….”

허나 그 일은 그 일이고.

지금은 그보다 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나저나, 촬영은 어떡해요.”

“…….”

“괜찮……겠죠?”

언론들은 수진의 갑작스런 작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득달같이 식장으로 들이닥쳤다.

TV에서도 연일 그녀의 유작이 된 마지막 미니시리즈 드라마와, 평생을 연기에만 바친 그녀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또 하나 이슈가 된 것이, 바로 민혁의 촬영장 탈주였다.

[현민혁, 드라마 촬영 중 무단이탈…… 그 이유는?]

[현민혁, 故채수진 장례식장서 두문불출]

[현민혁 탈주, 故채수진과 연관 있나]

뉘앙스는 조금씩 다르나 꼭지는 비슷한 기사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왔다.

사실, 수진과 민혁의 관계는 이제껏 세간에 크게 드러난 바가 없었다.

기껏 해봐야 한때 모자사이를 연기한 것이 다였기에, 그들 사이에 그렇게 애틋한 친분이 있었을 거라고는 다들 짐작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때문에 여론은 점점 민혁에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연기자가 촬영을 하다가 무단이탈을 하는 게 웬 말이냐, 이제껏 이미지 좋았던 거 다 헛것 아니냐는 풍문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지, 심지어는 라희에게서까지 전화가 왔을 정도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상황이 너무 안 좋아지는 것 같은데. 얼른 손을 좀 써야 하는 거 아니니? 이러다 이미지 다 망가지겠다.’

쳇. 꼴에 신경 써주는 척하던 그 말에 예원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저희가 알아서 하겠다 대답하고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솔직히 뒷맛이 좋지가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상황들 속에서도 남자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태도를 유지했다.

수진의 앞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던 눈물도, 어느 샌가 거짓말처럼 멎어버린 상태였다.

“……안 괜찮아도 할 수 없죠. 내가 벌인 일인데.”

“…….”

“걱정 마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가 무단으로 촬영장을 이탈하고 난 뒤, 장 감독이 현장에서 성난 황소처럼 펄펄 뛰었다는 전언이 있었다.

다행히 관련 보도자료 같은 건 나지 않았지만, 촬영장 복귀에 난관이 있을 거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어차피 엎질러진 일, 이제 와 수습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비난과 의심, 질타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뿐.

그리고 그는 기꺼이 그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막 떠드는 사람들을 감내하는 것쯤이야, 그에겐 이미 과하게 익숙한 일이었으므로.

“어떻게…….”

하지만, 예원은 달랐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

“남편인데.”

물고기 등뼈처럼 오목한 눈매에 이어 꼬리가 축 처져 있다.

어째 저보다 더 근심이 역력해 있는 듯한 여자의 얼굴에, 그는 짐짓 미소를 지었다.

“믿어줘야죠, 남편이니까.”

“…….”

“걱정 마요. 별 일 없을 거예요.”

“……하지만,”

뭐라 대꾸해보려던 그녀의 입술이 금방 다물렸다.

미소 짓는 남자의 얼굴이, 오히려 펑펑 눈물을 쏟아내던 때보다 더 안쓰럽게 느껴진 탓에.

지금의 그는, 얼핏 보기에는 단단해 보여도 잘못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듯한 유리 같았다.

그것을 깨닫자 이상하리만큼 심장이 지끈거리고 아렸다.

“……우리 엄마, 참 예쁘네.”

마지막 가는 길까지 곱디고운, 수진의 영정사진을 올려다 본 그가 문득 중얼거렸다.

“안 그래요?”

그의 물음에, 예원은 발개진 눈시울을 한 채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누구 어머님인데.”

* * *

화장을 마친 수진의 유해는 서울 인근의 목 좋은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발인은 역시나 힘들었지만, 두 사람 모두 울기도 많이 운 데다 예전부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해뒀던 터라 다소 후련한 마음으로 그녀를 보낼 수 있었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피곤에 쩐 두 사람은 하루를 꼬박 잠으로 때웠다.

물론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예원이었다.

“민혁 씨, 일어나 봐요.”

“…….”

“민혁 씨.”

침대 위, 사정없이 흔드는 손길에 잠이 깬 그의 등이 꿈틀거렸다.

“……왜요.”

“잘 땐 자더라도 이것 좀 먹고 자요. 벌써 저녁이라고요.”

“…….”

“자꾸 안 먹고 자기만 하면 몸 버린단 말이에요. 이거 한 술이라도 들고 자요. 네?”

아, 귀찮은데…….

게다가, 솔직히 말해 아직은 뭘 먹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그는 여자의 거듭된 성화에 못 이긴 나머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왜요.”

잠기운에 몽롱해진 그의 눈앞으로 잽싸게 쟁반을 가져온 예원이 살짝 소리 내어 웃었다.

하얀 볼에 담겨 있는 노란 빛깔의 액체.

“……뭐예요?”

“옥수수 스프요.”

“……옥수수 스프?”

“네.”

자그맣게 미소를 띤 예원이 설명했다.

“저 어렸을 때, 조금만 골골거리거나 아프면 엄마가 밥 대신 이거 해주셨거든요. 실은, 이거 먹고 싶어서 일부러 꾀병 부린 적도 있다니까요. 하하.”

“…….”

“며칠 간 먹은 게 거의 없으니까, 속에 부담이 덜 되는 게 낫겠다 싶어서 해 봤어요. 얼른 먹어 봐요, 뜨끈할 때. 자.”

제 손에 손수 숟가락까지 쥐어주는 여자를, 그는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

“어서요.”

저 초롱초롱한 눈을 도무지 거부하려야 거부할 수가 없다.

머뭇거리던 그는 마지못한 듯 한 술을 입안으로 넣었다.

“어때요? 맛있죠.”

“……네.”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한 술 넣더니 두 술, 세 술 입안으로 떠 넣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는 걸 보면.

금세 어미제비와도 같은 눈빛이 된 예원은 며칠 새 눈에 띄게 핼쑥해진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가 그다지 큰 도움은 못 될 테지만, 목숨처럼 소중한 이를 잃은 그에게 작게나마 위안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힘든 상태에서, 필요 이상으로 명랑하게 구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면 우울해져 있는 남자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싶어서.

“민혁 씨.”

“…….”

“많이…… 힘들죠?”

“…….”

“내가 너무 당연한 걸 물어봤나…….”

문득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 예원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당분간은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그래도, 힘내요 민혁 씨.”

“…….”

“내가 옆에 있잖아요.”

‘내가 옆에 있잖니.’

순간적으로, 그 옛날 수진이 했던 말이 오버랩 되었다.

생각보다 일이 잘 안 풀려 힘들어하는 그에게, 연신 힘을 북돋아주며 했던 말이었다.

고작 말 한 마디로 이런 벅찬 충만감을 느끼기는 너무도 오랜만이다.

민혁은 졸지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고마워요.”

“뭐가요?”

그러다 불쑥,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냥, 다. ……고마워요.’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정작 뱉은 말은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갔다.

“……이거요, 옥수수 스프.”

“아…….”

예원은 그런 그가 귀엽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난 또 뭐라고. 또 먹고 싶으면 언제든 말만 해요. 얼마든지 해줄 테니까.”

그때, 쟁반과 함께 테이블에 올려져있던 그녀의 폰이 울렸다.

발신자가 영덕임을 확인한 예원은 잽싸게 전화를 받았다.

“네, 아저씨. ……아, 네. 마침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어떻게 좀, 쉬셨어요?”

옅은 웃음과 함께 통화를 이어나가던 예원의 표정이 일순 의아하게 변했다.

“……네? 지금요?”

* * *

“둘 다 아주 얼굴이 말이 아니네. 잠은 좀 잤어?”

정말 갑작스런 방문이 아닐 수 없었다.

집에 거의 다 왔다는 소식을 고작 5분 전에야 전한 그들은 매우 천연덕스럽게 집안으로 들어왔다.

수진의 매니저 영덕과, 수진의 친오빠 형진.

“어……. 두 분께서, 여긴 어쩐 일로……?”

예원의 물음에, 두 중년의 남자들은 잠시 뜻 모를 시선을 교환했다.

“아직, 너희들이 모르는 게 하나 남아 있어서.”

“……네?”

그러고 보니 방문자는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뒤쪽에 물러나 있던, 정장을 입은 남자가 순간 그들의 앞으로 척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고 채수진 씨 법정대리인, 변호사 이양호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민혁이 다소 얼떨떨한 얼굴로 악수를 받았다.

옆에 선 예원이 눈짓했으나, 그 또한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영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이, 일단, 서 계시지 마시고 다들 여기로 와서 앉으세요.”

안주인의 주도로 그들 모두가 거실에 있는 소파로 착석했다.

형진이 힐끗 눈짓하자, 영덕은 그것을 받아 냉큼 토스했다.

“변호사님, 그럼 시작하시죠.”

“아, 예.”

변호사라 불린 남자가 옆에 놓아두었던 서류가방을 슬그머니 들었다.

“아마도 모르고 계셨겠지만, 돌아가신 채수진 씨께서는 생전에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고인이 남기신 유언을 집행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이윽고 가방 안에서는 빳빳한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이것이, 고 채수진 씨께서 저에게 공증을 부탁하신 유언장입니다.”

“…….”

생전 처음 듣는 소식에 민혁은 당황했다.

하지만 변호사는 한 번 읽어보라는 듯 그에게 유언장을 내밀었고,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보시다시피 고 채수진 씨께서는 본인이 가진 재산 중 일부는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셨습니다.”

“…….”

“다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여기 계신 현민혁 씨께 증여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

“네?”

유언장을 읽지는 않고 멍하니 들기만 하고 있던 민혁과, 그런 그를 경황없이 쳐다보던 예원이 동시에 놀라 반문했다.

“본래대로라면 고인의 직계존속 혹은 직계비속이 상속을 받는 것이 관례이지만, 채수진 씨께서는 생전 배우자와 자식이 없으셨던 관계로 그에 따른 상속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고인의 형제 관계로서, 제3순위 재산상속인이신 채형진 씨가 계시기는 하나, 여기 계신 채형진 씨 또한 고인의 뜻을 헤아려 그에 대한 유류분을 청구하지 않으시기로 합의하셨습니다.”

“그, 그럼…….”

“고인의 거의 모든 유산이 현민혁 씨께 귀속된다는 말입니다. 제 옆에 계신 두 분이 이 유언장의 증인이 되어주셨습니다.”

이럴 수가.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민혁은 제가 듣고 있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

영덕은 괜스레 씩 웃어보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던 일이었어. 아마 지금쯤, 하늘에서 흐뭇하게 지켜보고 계실 거다. 너밖에 없어, 받을 사람.”

“…….”

“아이고. 안 그래도 돈 많은 놈이 더 많아지게 생겼네. 안 그렇습니까?”

너스레를 떨던 영덕은 품안에서 또 하나의 봉투를 꺼냈다.

“자, 이것도 받고.”

“…….”

“유언장하고는 별개로 누님이 너희한테 특별히 남겨놓은 거야. 유서라기엔 뭐하고, 그냥 편지 같은 거라고 하더구나.”

편지…….

열어보지 않았지만 그 내용이 어떤 것일지는 훤히 보이는 듯했다.

곁에 있는 모두가 봉투와 유언장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민혁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뭐라 말하고 싶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영덕이 다시 불쑥 적막을 깨뜨렸다.

“참, 지금 TV 좀 틀어볼래?”

“TV는…… 왜요?”

“지금 <연예집중> 할 시간이잖아. 나 그거 애청자라 꼭 봐야 되거든.”

어라. 갑자기 웬…….

“네?”

“얼른 틀어봐. 다 놓치겠다.”

그의 말이 어쩐지 이상하다 여기면서도, 예원은 순순히 구석에 있는 리모컨을 가져와 TV를 켰다.

<연예집중>의 방송사 KBC로 채널을 돌리자, 마침 주요 소식을 담당하는 베테랑 리포터의 멘트가 기다린 것처럼 이어졌다.

「이번 주 연예가는 여러 가지 소식들로 인해 굉장히 떠들썩한 하루하루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중 가장 큰 소식은 배우 故채수진 씨의 별세 소식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답게 모두가 그녀의 죽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되었고, 거듭된 애도의 물결은 지금까지도 식지 않은 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일순 숙연해진 상태로 TV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리포터의 낭랑한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故채수진 씨는 혹시나 주변에 영향이라도 갈까, 임종 직전까지도 자신의 투병 소식을 바깥에 알리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저희 <연예집중>에서는 약 3주 전, 故채수진 씨의 마지막 인터뷰 영상을 단독으로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 만나보시겠습니다.」

“……!”

생각지 못한 소식을 접한 민혁과 예원은 삽시간에 토끼 눈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TV 속에서는 이윽고 침대에 앉은 파리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배우 채수진입니다.」

그들을 향해 힘겹게 웃고 있는, 수진의 모습이.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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