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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좋아질 수 없는 남자-32화 (32/102)

32화. 죽이는 여자

2018.07.24.

그로부터 3시간 전.

“김지.”

“어? 왜.”

“결혼식 가는 건 난데, 어째 네가 더 신난 것 같다?”

매우 능숙한 솜씨로 예원의 볼에 색을 입히던 지영은 개구진 미소를 지었다.

“신나지, 그럼! 내 친구가 ‘현민혁 부인’이 돼서 연예인 결혼식까지 간다는데. 덕후한테 이런 횡재가 또 어딨냐.”

한껏 업된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하듯 지영은 얼굴 전체에 화색이 만면했다.

그러나 그런 지영과 달리, 정작 당사자인 예원은 죽상을 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겠지.”

나도 너처럼 그렇게 속편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호기롭게 도움을 요청하던 때와는 다르게, 잔뜩 구름이 껴 있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지영은 화장을 해주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너 뭐 안 좋은 일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보답할까 하다 덜컥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벌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녀는 초조해지고 있었다.

“그냥, 내가 가도 되는 자린가…… 싶어서.”

“뭔 소리야. 민혁 씨가 직접 오라고 했다며?”

“그건 맞는데…… 하여튼.”

지영은 대수롭지 않은 듯 다시 브러쉬를 둥글리기 시작했다.

“참내. 걱정도 팔자다. 누군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자린데, 엄살은.”

그러게나 말이다.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된 걸까…….

가늘고 길게, 지극히 평범한 삶을 누리려던 그녀의 모토가 조금씩 깨져가고 있는 듯했다.

지금의 자신은 누가 봐도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니까.

이 세상 어떤 일반인이 연예인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간단 말인가.

“근데, 결혼식에 누구누구 오는지 알아?”

“글쎄. 그것까진 잘 모르겠는데.”

유명하지 않다고는 해도 연예인은 연예인이다.

함께 작품한 배우들도 많을 테고.

모르긴 모르지만 예쁜 연예인들도 잔뜩 올 것이었다.

에효. 그녀는 벌써부터 주눅이 드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혹시, 조혜인도 오냐?”

그때, 쉐딩 브러시를 집어들던 지영이 지나가듯 물었다.

“……조혜인?”

너무나 익숙한 이름에,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몰라. 근데 그건 왜?”

순간, 어떤 느낌이 빡 왔다.

지영은 그의 오랜 팬이었고, 그만큼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뒷이야기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걸핏하면 튀어나오는 것도 모자라 유난히 남자를 동요케 했던 그 이름.

어쩌면 조혜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몰랐다.

“아니, 별 건 아니고.”

아니나 다를까, 지영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어놓기 시작했다.

“예전에 잠깐 그런 루머가 있었어. 현민혁이 조혜인이랑 사겼었는데, 조혜인이 현민혁을 아주 뻥! 찼다더라. 그런 소문.”

“……진짜?”

“어. 그냥, 둘 다 나잇대도 비슷하고 선남선녀니까. 작품도 몇 개 같이 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잘 모르면서 엮고 본 거지, 뭐. 왜, 그런 거 있잖아. 망상분자. 망붕들.”

“…….”

“사실이야 모르지만, 그냥 알아두고는 있으라고. 쳇, 그러거나 말거나 이젠 네 남잔데 뭔 걱정이냐.”

……내 남자가 아닌 거면, 난 걱정을 해야 하는 건가?

예원은 순간 혼란스러워졌다.

“어어…….”

“근데, 원래 민혁 씨가 루머가 많아. 조혜인 말고도 별별 루머가 다 있었지. 하여튼 지긋지긋한 것들. 그놈의 게이니 뭐니…….”

“게이?”

예원의 반문에,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고 있던 지영은 화들짝 놀랐다.

“어머. 아니, 그것도 루머라고. 그냥 그런 소문이 있었어. 워낙 곱상하고 잘생겨서.”

“…….”

“근데, 그거야말로 진짜 완전 루머지. 네가 바로 그 증거잖냐. 신경 쓰지 마. 다 개소리야.”

……과연, 정말 루머일까.

그러고 보면, 그는 이제껏 그 사실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대놓고 ‘게이세요?’ 하고 물어본 적도 있는데, 아직까지도 그 진상을 알 수 없다는 건……

그녀로 하여금 자연히 ‘그는 게이가 맞다’는 쪽으로 해석되게끔 만들었다.

‘하긴, 그 사람이 게이이건 말건 이제 무슨 상관이라고. 난 그저 가짜 부인일 뿐인데.’

예원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지영의 탁월한 손길이 더해져서 그런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예뻐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단장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한편으론 살짝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 알았어.”

“아무튼, 그래도 기왕이면 조혜인보단 예쁘게 가는 게 좋겠지. 너 옷은 뭐 입고 갈 거야?”

예원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몰라? 그냥 옷장에 있는 거 아무거나 입고 갈 건데.”

화장은 지영 덕분에 해결됐으니, 옷이야 적당한 걸로 입고 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영은 곧바로 뭔 소릴 하냐는 듯 몸을 곧추세웠다.

“아, 뭐야. 그래도 좀 튀어야지.”

“튀긴 뭘 튀어. 메뚜기냐.”

중요한 건 그 남잘 놀라게 하는 것 뿐.

그것만 끝나면 난 그냥 그 옆에서 조용히 짱박혀 있다 올 생각이었는데.

“야, 안 되겠다. 여기 좀 서 봐. 내 옷 대보게.”

“뭐? 아, 왜!”

그런 건 딱 귀찮다.

예원은 얼굴근육 전체로 싫음을 표현했다.

“내 옷 놔두고 네 옷을 왜 입냐! 싫어!”

지영은 ‘이 딱한 중생아…….’ 하는 듯한 얼굴로 맞받아쳤다.

“결혼하고 나서 친구들 처음 만나는 자리라며! 그런 자리에 아무거나 입고 갈 순 없잖아. 나 아님 또 청바지랑 티셔츠 쪼가리나 입고 갈 거면서!”

“……에이씨, 아니거든!”

나도 최소한의 TPO라는 건 안다고! 이거 왜 이래!

“가만 있어보자…….”

그럼에도 지영은 막무가내였다.

그녀는 어느 새 제 옷장 문을 열고 예원에게 어울릴만한 옷을 부산하게 고르고 있었다.

“야, 내가 죽이는 걸로 골라줄게. 아마 다들 뻑 갈 거다.”

“아, 무슨! 내가 결혼해? 왜 날 보고 뻑 가?”

“잔말 말고 넌 나한테 한 턱 쏠 생각이나 해. 나 같은 친구가 어디 있는 줄 아냐? 이 복에 겨운 기집애야.”

“…….”

방안은 어느 새 지영이 옷을 뒤적거리는 소리로만 가득 채워졌고, 예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정말 부담스러운데…….’

화려한 결혼식장, 연예인들로 가득찬 결혼식장에 외로운 도토리처럼 있을 자신을 생각하니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벌써부터 온몸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꼴값 한다는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인데…….’

예원의 입술이 잘근 깨물렸다.

나, 정말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 * *

“자, 확인하신 거 맞죠? 거짓말 아니에요. 저, 진짜…….”

“…….”

“현민혁 씨 ‘아내’예요.”

예원이 대동하고 온 남자의 눈은 저절로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잘 빠진 정장차림의 현민혁과,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품에 딱 맞는 벨벳원피스를 걸친 이름 모를 여자의 모습.

마치 처음부터 붙어있으라고 태어난 양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자태였다.

“크흠…….”

누가 봐도 커플다운 그 모습에, 남자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당사자 현민혁도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예,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범했네요.”

“아뇨,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럼 전 이만.”

그들의 눈치를 본 남자가 그대로 뒤돌아 떠나고, 예원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민혁을 돌아보았다.

“놀랐죠?”

민혁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조금? 조금일 리가 없었다.

그는 정말로, 엄청나게 놀라있었으니까.

그녀의 등장 자체도 놀랍긴 했지만, 그보단 완전히 딴 사람이 된 듯한 모습이 더 놀라웠다.

웃음소리며 말투며, 평소 떽떽거리던 그 여자와는 도저히 매치가 안 될 정도였다.

무엇보다 여자가 왜 마음을 바꾸어 이 곳까지 온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무렵, 옆에서 기척이 들려왔다.

“큼큼.”

“…….”

“소개…… 안 시켜줘?”

옆에 선 해준이 티 나게 눈치를 주고 있었다.

데려오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여기려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할 수 없는 일이다.

민혁은 마지못한 얼굴을 애써 지우며, 먼저 예원을 향해 소개를 시작했다.

“……참, 정식으로 소개할게. 이 쪽은 당연히 알죠. 해준이 형. 그리고 이 쪽은, 나보다 두 살 어린 주성이. 그리고…….”

그의 팔이 자연스레 예원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이 쪽은, 내 ‘아내’. 홍예원 씨.”

그 덕에 예원은 흠칫 놀랐지만, 이내 밝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홍예원입니다.”

예원이 기품 있게 머리를 숙였다.

해준은 인사도 하기 전에 싱글벙글한 얼굴로 그녀를 관찰했다.

“야……. 제수씨가 생각보다 엄청 미인이시네. 안 그렇냐, 주성아?”

“그, 그러게요. 되게 미인이시네. 민혁이 형한테 너무 아까우신데요.”

하하.

해준은 흡족한 듯 빙긋 웃더니 그녀에게 손을 척 내밀었다.

“반가워요, 박해준이에요.”

음. 악수를 하자, 이거지.

“네, 반갑습니다.”

예원은 떨리는 마음을 숨기며,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화답했다.

“…….”

예원의 조그만 손이 해준의 손아귀 속에 꽈악 잡히자, 그걸 내려다보는 민혁의 눈빛엔 살짝 날이 섰다.

하지만 그녀는 기특하게도 얼른 손을 빼내고는 민혁을 향해 물었다.

“어…… 그건 그렇고, 아직 식 시작하려면 조금 남았죠?”

입술을 일자로 만든 민혁이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원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그를 잡아끌었다.

“그럼 우리 잠깐 나가요. 저흰 잠시만 실례할게요. 좀 이따 봬요.”

“아, 예! 다녀오세요.”

여자의 리드로 이끌려 가는 민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해준과 주성은 그저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꽤 오랜 시간 함께 일을 해왔지만 현민혁 옆에 여자가 붙어있는 꼴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특히나 저런 여자는.

“……햐, 저 자식이 어떻게 저런 여자를 꼬셨지.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왜요, 민혁이 형 정도면 여자들이 따를 만도 하잖아요.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어깨를 으쓱거리는 주성에게, 해준은 픽 비웃음을 날렸다.

“넌 저 자식 알고도 그러냐? 사내구실도 못하는 놈을 어떤 여자가 좋아해. 저 여자가 특이한 거지.”

“에이, 그거 다 루머잖아요. 저 형이 조용히 살아서 그렇지, 혹시 알아요? 알고 보면 카사노바 중에 카사노바일지.”

“……카사노바 같은 소리하고 있네.”

저런 놈이 카사노바면,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 제대로 긁는 거지.

그들이 떠난 자리를, 해준은 영 의심스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 * *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인적이 드문 곳으로 나온 민혁은 그녀를 향해 다짜고짜 따져물었다.

“여긴 왜 왔어요? 그 옷이랑 화장은 또 뭐고.”

크리스마스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

예원은 성가신 긴 머리를 귀 뒤로 휙 넘기고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허, 참. 언제는 얼굴 비추고 가라면서요. 그래서 왔잖아요.”

“안 온다고 했었잖습니까.”

그녀는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그를 째려보았다.

“내가 언제요. 잘 생각해보세요. 난 한 마디도 한 적 없거든요? 그쪽이 다 알아서 판단한 거지!”

“……?”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날 밤의 기억을 곱씹어보던 민혁은 아차, 했다.

‘부담 가지지 마요. 안 가도 별 상관은 없으니까. 그럼, 나 혼자 가는 걸로 하죠.’

……그러고 보니, 여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었다.

그가 먼저 지레짐작해, 안 가고 싶은 거구나 하고 못 박았을 뿐.

“그럼 온다고 말을 했어야죠. 그리고, 내가 언제 그렇게 꾸미고 오랬습니까? 난 그냥…….”

말을 잇던 그가 우뚝 멈추었다.

저도 모르게 화가 난 투가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러지.’

원래대로라면, 그녀가 제 요청을 따라 이렇게 와준 것이 응당 다행이라고 여겨져야 한다.

게다가 중요한 자리인 것을 고려해 이렇게까지 신경 쓰고 왔다는 사실이 고맙고, 기뻐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뭐랄까…….

싫었다. 이 여자를 애먼 놈들에게 내보이는 게.

그리고 순간적으로 화도 났다. 이 여자가 그들 앞에서 그렇게 환하게 웃어주었다는 것에.

왜 이럴까.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감정이 그는 낯설었다.

“아니 그럼 결혼식인데, 그 꼬질꼬질한 유니폼 차림으로 오라고요? 그게 말이 돼요?”

하지만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예원은 그의 긍정적이지 못한 반응에 그저 씩씩거렸다.

“놀라게 해 주고 싶어서 말 안 했어요. 사장님도 우리 집 올 때 나 몰래 왔잖아요. 사장님은 되고, 난 안 돼요? 그런 게 어딨어요!”

그도 나름 어려운 자리에 행차한 거였겠지만, 이 자리에 온 그녀도 피차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결혼식이라면 굳이 이러고 올 필요도 없었다.

한데 다른 곳도 아니고, 난다 긴다 하는 연예인들이 잔뜩 오는 결혼식이지 않은가!

‘나는 누구 체면 생각해서 각별히 신경 쓰고 왔더니만!’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녀는 실시간으로 부어오르고 있는 듯한 발목을 빙빙 돌렸다.

이런 구두는 간만에 한 번 신는 것도 고역이었다.

“오늘 이거 준비한다고 두 시간도 넘게 걸렸단 말이에요. 이왕 온 거, 칭찬 좀 해주면 어디 덧나요?”

애초에 그의 선심이 고마워서 시작한 일이다.

즉 뭔가를 바라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 또한 여자이다 보니 내심 기대한 바가 있었다.

평소엔 제 감정을 잘 내보이지 않는 남자가, 그녀의 화려한 등장에 놀라서 나자빠진다거나, 혹은 환골탈태한 그녀를 보며 눈을 못 뗀다거나 하는 일들.

남자의 반응은 후자 쪽에 가깝긴 했지만, 뭔가 미적지근한 부분이 있었다.

‘아이씨, 괜한 짓을 했나. 아님, 내가 너무 오버했나?’

순간 그녀는 걱정이 앞섰다.

“저기. 저, 이상……해요?”

“…….”

“실은, 제가 커피는 잘 만들어도 이런 재주는 없거든요. 친구한테 도와달라고 하긴 했는데, 좀 어설픈가.”

“…….”

“그래도 걔, 나름 이쪽에 일가견 있는 애라서…….”

어느 샌가 그녀는 저도 모르게 변명을 하고 있었다.

“저는 좀 더 차분한 걸로 입고 오려고 했거든요? 근데 걔가 자꾸 이거 아니면 안 된다고 난리를 떠는 바람에, 더 그러고 있으면 늦을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그런데 그때.

“……예뻐요.”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녀의 말끝을 자르고 들어왔다.

“예쁩니다.”

“…….”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엔 가장.”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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