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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좋아질 수 없는 남자-17화 (17/102)

17화. 예쁘니까

2018.06.01.

그로부터 약 한 시간 쯤 뒤.

잘 차려진 상을 사이에 둔 네 사람은 나름 정다운 모습으로 거실에 둘러앉았다.

“차린 건 별로 없지만 많이 들어요.”

예원과의 독대 후 눈에 띄게 살가운 태도가 된 은아가 민혁의 앞으로 반찬을 밀어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예, 감사합니다.”

“어떻게, 입에는 좀 맞아요?”

“예, 맛있습니다. 말로만 들었는데 이모님께서 음식 솜씨가 정말 뛰어나시네요.”

잘 보이기 위해 하는 소리란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특유의 진중한 목소리 때문일까. 그것이 그녀에겐 마치 최고의 찬사처럼 들려서, 은아는 입을 가린 채 수줍게 웃었다.

“호호호, 내가 음식 솜씨로는 어디 가서 안 꿀리긴 하지. 그, 연예인들은 바빠서 밥도 잘 못 챙겨먹고 그러죠?”

스케줄도 스케줄이지만, 배우들은 보통 몸을 만들거나 관리를 한다는 이유로 못 먹는 일이 태반이었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긴 다소 귀찮았다.

“아무래도요.”

“역시 그렇구나. 이왕 이렇게 온 김에 많이 들고 가요. 밥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어쨌든 그 말이 무색하지 않게, 민혁의 앞에 놓인 밥은 머슴에게나 줄 법한 고봉밥이었다.

‘이모나 조카나, 인심이 많다 못해 넘쳐흐르는 집이군.’

시니컬한 미소와 함께 밥을 뜨던 민혁이 살짝 멈칫했다.

“……저, 이모님.”

“예?”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말씀 낮추십시오.”

“아. 그래도, 되나……?”

“그럼요. 저도 그 편이 편합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조카 남자친군데.”

조카 남자친구.

그 말에 여자의 얼굴엔 곧장 화색이 돌았지만, 그 옆에 앉은 남자애의 얼굴은 그렇지가 못했다.

“…….”

지원과 은아를 번갈아 보는 민혁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그, 그럼…… 그러지 뭐. 내가 아직 좀 적응이 안 돼서 그러는 거니까, 자꾸 존댓말이 튀어나와도 이해 좀 해줘요…… 아니, 해줘. 알았지?”

“예, 이모님.”

“음. 그건 그렇고, 자네 부모님들께선…… 혹시 어떤 분들인가?”

딱히 보탤 말이 없는 나머지 그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예원은 그 말에 화르륵 놀라 은아를 쳐다보았다.

“아니, 이모는 벌써부터 뭐 그런 걸 물어봐? 오늘 처음 본 사람한테 무슨…….”

예비 사위에게 한 번쯤 물어볼 수도 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정이 남다른 그에겐 어쩌면 과할 수도 있는 질문.

그러나 당사자 민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를 잘라냈다.

“……돌아가셨습니다, 어렸을 때.”

예원의 고개가 그를 향해 홱 돌아갔다.

‘어?’

그녀로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어머. 아이구, 내가 괜한 걸 물어봤네. 미안해.”

“아닙니다. 제가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깜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유, 아냐, 아냐. 근데 그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혼자 산거야?”

“예. 가끔 외삼촌이 살펴주실 때 빼곤, 주로 저 혼자 지냈습니다.”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치고는 굉장히 무덤덤한 남자의 얼굴.

‘아, 그래서 외삼촌이랑 그렇게 친한 거였구나.’

예원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살짝 안쓰러워졌다.

눈빛을 보니, 맞은편의 이모도 아마 마찬가지인 듯했다.

“많이 외로웠겠네.”

“……예. 하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이제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뭐. 소속사 식구들도 가족처럼 잘 챙겨주시고요.”

“그럼 다행이기는 한데…….”

말끝을 흐리던 은아는 왠지 모르게 또렷한 눈빛이 되어 말을 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가족이랑 같나. 앞으론 종종 놀러와요. 내가 이렇게 밥도 해주고 그럴 테니까. 응?”

“……네, 감사합니다.”

어느새 살짝 숙연해진 분위기.

예원은 그 속에서 씩씩하게 밥을 먹고 있는 남자의 옆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매스컴을 통해 들은 바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뜬 지도 몇 년 되지 않았고 워낙 신비주의를 고수하던 연예인이라 그러려니 했었는데. 거기에 이런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

문득 이상한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도 저 못지않게 고달픈 삶을 보낸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리 잘생긴 외모에, 사업적인 부분만 빼면 그닥 나쁘진 않은 인성,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처연한 눈빛, 비극적인 가족사까지.

그는 진정 브라운관 안팎을 막론하고 한없이 비현실적인 남자였다. 누구나 홀랑 빠져버릴 법한.

아니나 다를까.

아까 전까지 ‘우리 민혁이’를 부르짖던 이모마저도, 어느새 남자에게 매료된 듯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신기한 듯 보고 있었다.

“근데, 아무리 봐도 실물이 훨~씬 낫다. TV로 볼 땐 영 기생오라ㅂ…….”

“…….”

“아, 아니. 좀 많이 곱상해보였는데. 실제로 보니까는 아주 남자답네.”

“……과찬이십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을 은아는 몸소 실감했다.

이 엄청난 인물을 두고 웬 이상한 남자를 데려왔냐 했던 것이 절로 미안해질 정도였다.

‘어쩜, 저리 훤칠한 놈이 다 있을까.’

은아는 제 마음 한 구석에서 거대한 욕심이 스멀스멀 자라나는 것을 느꼈다.

이 놈을, 우리 집의 조카사위로 꼭! 들이고야 말겠다는 욕심이.

“얘가 혼자 자취를 하고 있다 보니까, 만날 괜찮다고 해도 걱정이 됐었는데. 이런 멋진 남자친구가 있다니까 조금은 안심이 되네. 가끔 애가 좀 까탈스럽게 굴 때가 있어서 그렇지 본성이 못된 애는 아니니까, 옆에서 잘 좀 챙겨줘요. 응?”

“예,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 지금 누가 누굴 챙기라는 거야……?’

예원은 무척 신나있는 것 같은 이모를 할 말을 잃은 채 쳐다보았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뭐라 할 수도 없고.

“아유. 아무튼 첨엔 좀 놀랐는데…… 이제 보니까 둘이 아주 잘 어울리는 거 같아. 선남선녀야, 선남선녀.”

“…….”

“그치, 지원아.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은아의 물음이 대뜸 옆에 앉은 지원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묵묵히 밥만 먹고 있던 지원은 제 앞에 있는 민혁을 힐끔 올려다보더니, 곧 그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했다.

“……글쎄요. 전 잘 모르겠는데.”

“…….”

“우리 누나가 훨씬 아까운 것 같은데요.”

순간, 밥상 위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물론 물어본 은아가 가장 놀랐지만, 누나인 예원도 약간 놀란 눈이 되어있었다.

쟤가 갑자기 왜 저래?

“……하하하, 어휴, 참. 얘가 워낙 누나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애라, 괜히 질투가 나는 모양이네. 으이그, 유치하긴.”

민망해진 은아가 지원을 바로 타박하고 나섰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지원아. 장차 네 매형이 될지도 모르는 분인데.”

어쩌면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민혁은 오히려 은아를 향해 살짝 미소 지을 뿐이었다.

“괜찮습니다. 저도, 저에 비해서 예원 씨가 많이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어머, 생각도 깊은데 배려심까지 있잖아.’

200% 만족스런 대답에 은아의 입가에는 또다시 흐뭇한 미소가 띄워졌다.

“…….”

입술을 감쳐물던 지원은 곧장 젓가락을 놓고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먼저 들어가 볼게요.”

“어? 지원아!”

은아가 재빨리 불러보았지만, 지원은 이미 제 방으로 휘적휘적 들어가고 난 후였다.

“쟤가 밥도 다 안 먹고 왜 저래……?”

“…….”

“아이구, 신경 쓰지 마요. 아직 애니까 그런가 보다 해. 곧 고3이라 그런가, 요즘 좀 신경이 날카로운가 봐.”

조카의 무례를 애써 수습하려는 은아에게, 민혁은 대답 대신 괜찮다는 미소를 보냈다.

그렇게 잠시 뒤, 잠깐 망설이던 은아는 다시금 그를 깨웠다.

“근데 그러면, 주위에 연예인 친구들도 많겠네? 그…… 박해준이나, 김주성 같은……?”

“예. 해준이 형이나 주성이는 예전에 같이 작품을 한 적이 있어서요. 아무래도 친하죠.”

“어후, 그래?”

그렇잖아도 화색이 만면하던 은아의 얼굴이 전구 백 개를 켠 듯 급격히 밝아졌다.

‘엄청난 드라마광이라더니 사실인가 보네.’

여자에게서 미리 전해들은 은아의 정보를 떠올리던 민혁이 살짝 웃었다.

그런데,

“그러면 혹시…… ‘조혜인’이랑도 알어?”

“……예?”

곧바로 이어진 질문을 들은 그에게선 웃음이 싹 사그라졌다.

“조혜인 말이야. 예전에 같이 드라마 찍은 적 있었잖아. 그것도 몇 년 됐지, 아마? 내가 그거 엄청 좋아했었는데.”

“…….”

“아무튼, 연락해?”

그녀의 질문엔 바로바로 대답을 하던 그였지만, 이번엔 잠시의 텀이 있었다.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를 같이 찍게 됐습니다. 아마, 당분간 자주 볼 거예요.”

“어머, 정말? 그건 또 몰랐네.”

“…….”

“저기, 그러면은 말이야. 나 박해준이랑 조혜인 사인 좀 받아다줄 수 있을까? 내가 진짜 진짜 팬이어서 그러는데.”

“…….”

“어려우면…… 어쩔 수 없구.”

말은 그렇게 하지만,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얼굴.

이런 얼굴 앞에서 어찌 안 된다 말할 수 있을까.

“……예, 말해보겠습니다.”

“어머, 정말?”

은아의 볼은 금세 사춘기 소녀처럼 한껏 상기되었다.

“아휴, 고마워! 내가 증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렇게 멋진 조카사위 덕도 다 보고, 호호호.”

“…….”

민혁의 입꼬리가 살짝 부자연스럽게 올라갔다.

해맑게 좋아하는 은아를 일견하던 그는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이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어? 응. 응, 그래.”

“……그럼 전 잠시만.”

예의바르게 양해를 구한 그가 돌연 밖으로 나가자, 예원은 참고 있던 말을 바로 토해냈다.

“이모는 왜 쓸데없는 소릴 하구 그래? 사인은 무슨 사인이야, 쪽팔리게!”

“왜, 뭐가 어때서!”

창피는 순간이되, 사인은 영원하다.

원하던 것을 쟁취해낸 은아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대꾸했다.

“조카사위가 연예인인데, 그냥 뒀다 뭐하니. 그깟 사인 좀 받아다 줄 수도 있는 거지.”

……진짜 조카사위가 아니니까 문제라고!

“으유. 내가 이모 땜에 못 살아, 정말.”

그때, 그제야 막 밥을 뜨기 시작한 은아가 한숨만 푹푹 내쉬는 예원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방금 좀…… 이상하지 않았니?”

“어? 뭐가?”

“아니, 약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서. 그전까진 별 반응 없더니 조혜인 얘기가 나오니까 유독…… 넌 못 느꼈어?”

“……그랬나?”

어리둥절해진 예원이 방금 전의 그를 떠올렸다.

“응, 눈빛이 좀…… 혹시 좀 껄끄러운 사인가. 괜히 어려운 부탁했나 싶네.”

안 그러다가도 괜한 일에 걱정을 시전하는 이모의 병이 또 도진 것일까.

잠시 생각하던 예원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거야. 껄끄러운 사이에 드라마를 어떻게 같이 찍어? 것두 두 번째라며.”

“……그렇겠지?”

“그럼.”

그런데, 말을 하고 보니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정말 평소답지 않게 대답을 약간 망설였던 같기도 하고…… 저렇게 바로 나가버린 것도 어째 약간 수상한데…….

‘에이, 아니겠지.’

게이라는 그가 여자연예인과 껄끄러울 이유는 딱히 없지 않은가. 차라리 어색한 사이라면 모를까.

그가 말끔히 비운 밥공기를 괜스레 내려다보며, 예원은 제 몫의 밥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 * *

똑똑. 지원의 방문에 노크소리가 울렸다.

한창 공부 중이었던 지원이 퍼뜩 고개를 돌리자, 닫힌 방문을 통해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들어가도 돼?”

“…….”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그 목소리가 그 말도 안 되는 ‘예비 매형’의 것이란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지원의 얼굴은 절로 찌푸려졌다.

“…….”

잠깐의 생각 후, 지원은 미적미적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재수 없을 정도로 잘빠진 남자의 얼굴이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공부 중이었어?”

“……네.”

“…….”

“……들어오세요.”

민혁은 아까 전과 달리 좀 더 조심스러운 태세로 발을 들였다.

남의 방을 함부로 들여다본 죄가 있는 터였다.

“방이 되게 깨끗하네. 남자애 방이 이러기 쉽지 않은데.”

나름의 칭찬이랍시고 던진 말. 그러나 등 뒤의 지원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이미 눈여겨보았던 포스터들을 권태롭게 죽 훑던 민혁은 지원에게로 돌아서며 큼지막한 손을 척 내밀었다.

“인사가 늦었지. 반가워.”

피차 알고 있는 사이에 통성명은 불필요했다.

지원은 매우 마지못한 얼굴로 그의 악수를 받았다.

“……무슨 일이세요.”

자식, 급하기는.

“그냥, 못 한 인사도 할 겸…… 아까 일, 사과하고 싶어서.”

“…….”

“주인 허락 없이 본의 아니게 남의 방을 훔쳐봤네. 미안해.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어.”

그 말에 지원은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원의 고개가 홱 들렸다.

그의 눈빛은 일순 강렬해져 있었다.

“우리 누나, 도대체 왜 만나시는 거예요?”

……정말 뜻밖의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민혁은 순간 어이가 없어져 반문했다.

“……뭐?”

“유명 연예인에, 부족한 것도 하나 없으신 분이 왜 하필 우리 누나 같은 평범한 여자를 만나려고 하시냐고요. 게다가 그냥 여자도 아니고 부하직원인데. 솔직히 이상하잖아요.”

“…….”

“뭔가 다른 속셈이 있다면 모를까…….”

지원이 민혁을 상대로 이렇게 적대적으로 나서는 덴 다 이유가 있었다.

‘또라이인 것 같아. 최소 사기꾼이든지.’

그날 밤, 지영이 남겼던 말이 아직까지도 지원의 귓가에 맴맴 돌았다.

누나의 연애사정에 관여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어쩐지 조심스러웠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누나가 상처받는 꼴은 죽었다 깨어나도 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진지하게 한 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오늘 집에 와보니 웬 멀쩡한, 아니,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잘난 이 놈이 등장해 있는 것이 아닌가.

자기가 바로, 누나의 남자친구라며.

‘……!’

그가 현민혁임을 단번에 알아본 지원은 그제야 지영의 말을 이해했다.

어떤 남자인지까지는 지영도 모른다고 했으나, 잘나가는 연예인이자 누나 카페의 사장이라는 ‘현민혁’이 그 사기꾼이라면…… 이야기가 아주 딱 맞아 떨어지는 거였다.

‘……그래, 저런 놈이 아무 이유 없이 우리 누나랑 사귈 리가 없지. 분명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라고.’

맨 처음 들었던 의심은 둘의 투샷을 보며 점점 확신으로 변했다.

하나뿐인 동생 된 도리로서, 누나의 잘못된 선택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어쭙잖게 갖고 놀려는 거면 당장 그만두세요. 우리 누나, 그럴 만한 여자 아니에요.”

“…….”

“그쪽이 원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요. 그러니까…….”

“……이제 보니까.”

하지만 민혁은 그런 지원을 잽싸게 잘라냈다.

“동생이…… 누나를 참 많이 닮았구나.”

얼굴만 그런 줄 알았더니, 눈앞의 남자애는 모든 게 영락없는 홍예원 판박이였다.

성격도, 말투도.

“…….”

하지만 정작 지원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듯 민혁을 의문스럽게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아직 덜 여문 남자애의 얼굴을 집요하게 스캔했다.

남고생 치고는 무척 반반한 얼굴. 또래에서 꽤나 인기가 있을 법했다.

‘물론, 한창 때 나보다는 아니겠지만.’

민혁이 다소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한데, 갖고 노는 거 아니야.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시간은 금이거든. 고작 그런 일로 시간 낭비할 생각은 아예 없어.”

“…….”

“혹시 이상한 생각 하고 있는 거면 그거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난, 지금 네 누나한테 엄청 진지해. 이 세상 어떤 남자보다 더.”

너무나도 태연한 말투. 자신감 있고 진중한 표정.

하지만 지원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향해 더욱 짙은 경계심을 내비칠 뿐이었다.

“그럼, 우리 누나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건데요?”

“…….”

“이유를 하나라도 대 보세요.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하, 쪼끄만 게 되게 피곤하게 구네.

팍 짜증이 난 민혁의 눈썹이 불안정하게 들썩였다.

“내가 ‘왜’ 널 납득시켜줘야 하지?”

“…….”

“아홉 살이나 차이 나는 누나가 결혼 좀 해보겠다는데, 귀찮게 동생 허락까지 맡아야 돼? 여기 법은 그런가?”

일부러 비꼬듯 말했지만, 지원은 당연하단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야 돼요. 생전 처음 보는 사람한테, 대체 뭘 믿고 우리 누날 맡겨요?”

“…….”

“진짜 우리 누나랑 결혼을 하고 싶은 거면, 최소한 내가 그쪽을 믿을 수 있게라도 해보라고요.”

앳되지만 나름 맹렬한 눈빛엔 제 누나를 어떻게든 지켜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곁에 남은 가족이라곤 이모와 누나 단 둘뿐이기 때문일까. 누나를 향한 애정이 남다르게 각별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런 상황은 좀 의외였지만.

잠시 뜸을 들이던 민혁은 이내 허심탄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정 그렇다면야, 이유 정돈 대 줄 수 있지. 그럼 일단 첫째.”

날선 얼굴의 지원이 일자로 다물린 남자의 입술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예쁘니까.”

남자의 대답에, 지원의 얼굴엔 금세 허를 찔린 표정이 떠올랐다.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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