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좋아질 수 없는 남자-16화 (16/102)

16화. 잇츠, 쇼타임!

2018.05.29.

“……허.”

내가 을이라니! 어이가 없는 나머지 실소만 터져 나왔다.

‘누구 맘대로 갑을을 정해? 이 여자가 정말!’

순식간에 여자가 괘씸해졌지만, 이내 그는 욱하는 감정을 조금 가라앉히기로 했다.

뒤에도 뭐가 많이 있는 것 같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읽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는 계약서를 향해 다시 차분히 눈을 돌렸다.

그 흔한 프린터도 없었는지, 모두 손수 쓴 듯한 글씨들뿐.

여자의 동글동글한 필체가 그의 눈에 천천히 박혀들었다.

[홍예원(이하 ‘갑’)과 현민혁(이하 ‘을’)은 이 계약을 원만히 유지시키기 위해 다음의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여야 한다.

하나. 본 계약은 체결 후 1년이 되는 시점까지 유효하며, 절대 연장될 수 없다.

하나. 혼인신고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하나. 갑과 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쌍방 이용 관계이며, 만약 상대가 이 계약을 더 이상 원하지 않을 시 즉시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

하나. 갑과 을은 카페 ‘에덴’의 존속을 위해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 특히 을은…….]

“……모자란 커피 지식을 함양하여야 한다?”

나참, 단어선택 하고는.

그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뱉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하나. 계약 기간 중과 계약 만료 후, 을은 갑에게 구두 합의된 조건들을 제공한다.

하나. 갑과 을은 계약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말아야 한다. 피치 못하게 알렸을 시, 상대방에게 무조건 이야기하여야 한다.

하나. 갑과 을은 서로의 요청에 최우선으로 협조한다…….]

자연스럽게 다음 조항을 찾던 민혁은 순간 제 눈을 의심했다.

“……?”

계약서는 그걸로 끝이었기 때문에.

‘잠깐. 내가 유리한 조항은? 다 순 자기 얘기들뿐이잖아?’

이 계약을 제안한 건 엄연히 그였다.

그런데 여자는 갑을을 자기 맘대로 정해버린 것도 모자라, 기본 조항 외 자신이 지켜야 할 조항들은 하나도 넣지 않은 것이다.

그녀 덕에 그는 이제 필요 없는 커피 공부까지 해야 하는데도!

‘하, 뭐 이런 불공정 계약이 다 있어.’

그저 어이가 없었다.

혼자 계약서를 멋대로 만들어왔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

하지만, 이윽고 그는 제 기준에서의 엉터리 계약서를 살짝 흔들며 픽 웃고 말았다.

하긴, 그래도 뭐.

‘참 재밌는 여자라니까.’

덕분에 요즘은 심심할 틈이 없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따분했던 그에게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여자가 새로 생긴 활력소 중 하나였다.

‘어, 엄마!’

계약의 가부를 종결짓게 했던 그날 아침. 코끝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했던 여자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그 여자의 술동무가 되어주기로 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

문득 그의 눈길이 셔츠가 담긴 종이가방으로 향했다.

왠지 모르게 그 여잘 닮은 것 같은 하얀 셔츠. 그리고 그것이 몰고 온 여자 특유의 향기.

어느새 차안에 꽉차버린 그 향기를 느끼며, 입꼬리를 올린 그는 운전대를 잡고 유유히 그 곳을 벗어났다.

* * *

본격적인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모님. 현민혁이라고 합니다.”

이것이었다. 결혼 허락 받기.

예의바르게 절을 마친 그가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잔뜩 당황한 은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오직 하나뿐.

‘……네가 현민혁이라고? 진짜 현민혁?’

사실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진짜 현민혁이 맞다는 것을.

애초에 그 특출한 인물을 못 알아볼 수도 없었지만, 은아는 명실상부 이 구역의 드라마광이었다.

약 두 달간 매주 수목 밤 10시마다 어김없이 보았던 남자. 실상 딴 사람으로 착각하기가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은아는 그가 자신의 집에 있단 사실을 여전히 믿지 못했다.

<못 말리는 청혼>에서나 볼 수 있었던 놈이 제 눈앞에서 UHD 실사로 움직이고 있다니. 이런 날이 올 줄 그녀가 어떻게 알 수 있었단 말인가?

거기다 한 술 더 떠, 조카인 예원은 무슨 연인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옆에 나란히 앉아있기까지 하고.

‘대체 이게 무슨 조화일까, 글쎄.’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던 은아는 어제 예원에게서 걸려왔던 전화를 문득 떠올렸다.

‘……이모, 나 내일 민혁 씨랑 집에 갈게.’

얼굴 본 지가 억만년도 넘어가는 듯한 조카 사윗감을 오래간만에 집에 데려오겠다는 반가운 연락이었다.

얼씨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오케이를 날렸다.

그 이름 뒤에 경어를 붙이는 것이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렇잖아도 요새 둘 사이가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아 걱정하던 차였다.

이참에 내가 나서서 둘의 사이를 확실히 매듭지어놓으리라.

그렇게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집에 ‘민혁’이가 오기는 왔는데…….

“갑작스러운 방문에 조금 당황스러우시겠지만…… 마음이 급한 나머지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실례를 범했다면 죄송합니다, 이모님.”

“……아, 아니에요.”

왜 ‘전’민혁’이 아닌 ‘현’민혁이가 온 거냐고!

“아참, 이건…… 예원 씨가 이모님께서 과일을 좋아하신다고 하길래, 개중에 예쁜 걸로 한 번 사와 봤습니다. 약소하지만 받아주십시오.”

평소였다면 ‘웬 떡이야!’ 하고 반겼을 탐스러운 과일바구니도, 지금 그녀에겐 별다른 효과를 미치지 못했다.

‘이거, 설마 꿈인가?’

그렇지. 꿈이 아니고서야 현민혁이 여기 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과일바구니 따위를 나한테 갖다 바칠 리도 없고.

“…….”

혼자서 심각하게 골몰하던 은아는 잠시 뒤,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저, 근데 미안하지만…… 여, 여긴, 무슨 일로…….”

남자에게 물은 질문이었으나, 뜻밖에도 대답은 예원에게서 나왔다.

“내가 어제 말했잖아. 민혁 씨 데리고 온다고.”

‘……내가 알던 민혁이는 이 민혁이가 아니잖아, 이 기집애야!’

소리치고 싶은 맘을 꾹 누른 은아가 큰 조카를 말없이 째려보았다.

그때, 문제의 ‘민혁’이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이모님. 설명을 충분히 드렸어야 했는데 깜빡 잊고 있었네요.”

“…….”

“오늘 제가 이곳에 오기로 한 건,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찾아뵙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직 얼마 되진 않았습니다만…….”

잠시 멈칫하던 그가 곧 말을 이었다.

“제가 현재, 홍예원 씨와 진지하게 교제를 하고 있어서요.”

“……예?”

뭣이라고라고라, 교제?

내가 설마 ‘교제’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건가.

눈을 부릅뜬 은아는 저도 모르게 입을 딱 벌렸다.

“교, 교제라니……. 어, 얼마나……?”

“한…… 한 달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것도 자그마치 한 달씩이나?

‘이건 꿈이 아니다. 현실이야.’

당황스러움에 은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온몸의 직감이 모조리 일어나 그녀를 깨우고 있었다.

“것도 그렇지만. 사실, 오늘 제가 이모님을 찾아뵌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가 거두절미하고 입을 열었다.

“이모님.”

“…….”

“저, 예원 씨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겨, 겨, 결혼?”

이건 또 웬!

고개를 내민 은아의 눈이 대번 휘둥그레졌다.

“많이 갑작스러우시고 놀라우실 거란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저희도 이 곳에 오기까지 많이 고민했지만…….”

말을 하던 남자의 따스한 눈길이 슬쩍 예원에게로 향했다.

“이 사람이 제게 너무 소중해서, 하루라도 빨리 말씀드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초면에 이리 결례를 범한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이모님.”

끝내주게 잘생긴 외모에, 깍듯하고 공손한 태도.

이 상황이 영 믿기지 않으면서도 은아는 왠지 모르게 황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방황하던 그녀의 눈길 또한 어느 새 홀린 듯 남자에게로 닿아 있었다.

‘아휴…… 대체 뭘 먹고 컸길래 저리 훤할까, 사내자식이.’

다소 곱상해서 평소 제 취향이 아니라 생각했던 남자는 막상 실제로 보자 TV에서 보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멋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말 후광이 날 것처럼 잘생긴 얼굴.

역시 연예인은 연예인이다. 외모만으로도 덜컥 합격점을 주고 싶어지는 걸 보면.

하지만 그렇게 넋을 놓고 구경하던 것도 잠시, 그녀는 배를 쥐며 구시렁거리는 예원으로 인해 곧장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이모. 근데 아직 밥 안 됐어? 나 배고픈데.”

……저건 눈치가 없는 거야, 일부러 저러는 거야?

‘넌 시끄러, 이것아!’

당장이라도 조카의 등짝을 세게 후려치고 싶은 맘을 누르며, 은아는 겨우겨우 말을 뱉어냈다.

“저기, 일단은. 내가 지금 좀 많이 놀래서…… 반응이 영 이상해도 이해 좀 해줘요. 그…… 그쪽이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니까, 응?”

“예, 이해합니다.”

거기까지 말한 은아가 잠시 머뭇거렸다.

일단은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아는 것부터가 순서였다.

“어…… 잠시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러는데, 미안하지만 나랑 예원이만 바깥에 좀 다녀와도 될까. 잠깐이면 돼요.”

“아, 예. 그러십시오.”

남자는 다행히 그녀의 말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길로 곧장 일어선 은아가 예원을 향해 턱짓했다.

“예원이 얼른 나와.”

“……뭐, 왜.”

“빨리!”

“아, 왜에!”

“잔말 말고 나오라면 나와!”

‘……아이 씨.’

예원은 결국, 우거지상을 한 채 은아를 따라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은아는 매서운 눈길로 예원을 돌아보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너!”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민혁이는 어쩌고, 갑자기 어디서 웬 이상한 남자를 데려왔냐고!”

……이럴 줄 알았다. 내가 이럴까봐 저 남자를 대령한 거지.

예원은 스스로의 선견지명에 만족하며 천천히 답했다.

“이상한 남자라니. 방금 말했잖아. 나랑 결혼할 사람이라구.”

그래, 결혼. 비록 ‘가짜 결혼’이기는 하지만.

예상대로 이모는 경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또 잠시 안쪽의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이내 한껏 소리를 죽이고 물어왔다.

“저거…… 진짜 현민혁이니?”

참내. 지금껏 뭘 본 거야.

“그럼, 이모는 저런 얼굴이 이 세상에 또 존재할 거 같아?”

아.

은아는 예원의 말에 잠시 수긍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의심의 눈초리를 했다.

“아니, 네가 현민혁을 대체 어떻게 알아? 네가 무슨 연줄이 있어서!”

하아. 이 기나긴 스토리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어차피 언젠간 해야 할 일이었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생각보다 더 귀찮았다.

“두 달 전에 새로 온 사장이야. 우리 카페에.”

“……뭐어? 아니, 그럼. 그 윤 교순가 뭔가 하는 그 사람은 어쩌고?”

“……유학 간 아들 보러 미국에 가셨어, 사모님이랑 같이. 저 사람은 윤 교수님 조카고.”

너무나 담담한 설명.

잠깐 할 말을 잃고 만 은아는 잠시 뒤에야 황급히 덧붙였다.

“그, 그럼 민혁이는? ‘우리 민혁이’는 어떻게 된 거야!”

예원의 눈매가 대번 날카로워졌다.

“우리 민혁이는 무슨! 걔가 왜 우리 민혁이야?”

“어머, 민혁이가 남이니?”

“남이지 그럼, 가족이야?”

“……너!”

이모는 아직 사정을 모르고 있기에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 일만 없었다면, 나도 아마 이렇게 말했겠지.’

예원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짓눌린 입술 끝이 마치 독약을 들이켠 것처럼 썼다.

“이모. 나 걔랑 헤어졌어. 그것도 아주 더럽게 헤어졌다구. 그러니까 이모도 이제 그만해. 다 끝났으니까.”

“……뭐?”

이럴 수가.

잔뜩 커진 은아의 눈은 좀처럼 줄어들 줄을 몰랐다.

“왜…… 왜 헤어져, 늬들이? 대체 뭐 땜에. 응?”

이모가 그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까.

당장 사실대로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예원은 일단 이번은 참아보기로 했다.

이모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그 야속한 새끼를 위해.

그리고…… 불쌍한 자신을 위해.

“설명하자면 길어. 암튼 걔랑 난 이제 아무 관련도 없는 사이니까…… 제발 그만해. 그만 잊어버려.”

아닌 밤중의 홍두깨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당사자의 저 침착한 태도라니.

은아는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기 위해 입술을 다물었다.

가만, 가만있어 봐.

“그러니까…… 이게 정말 다 사실이라구? 네가 민혁이랑 헤어지고, 저 ‘현민혁’이랑 사귀는 게?”

“응.”

“아니 근데, 저 놈 여자친구 있잖아. 그 왜, 저번에 뉴스에도 났던 애. 그 여잔 어떻게 하고 또 금세 너랑 사귀어?”

하하하. 웃음만 나온다, 이제.

예원은 옆에 세워진 자전거를 부러 척 짚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이모.”

“응.”

“그 여자…… 나였어.”

“……뭐?!”

“진짜야. 우연히 사진이 찍혔었는데, 그게 스캔들로 난 거야.”

“……허, 말도 안 돼.”

“뭐가 말이 안 돼?”

뭔가 직감한 듯한 은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혹시…… 뭐 이상한 짓 했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에 예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현민혁 같은 놈이 뭐가 아쉬워서 널 사귀어? 네가 뭐 볼 거 있다고!”

“…….”

그녀의 얼굴은 일순 종잇장처럼 팍 구겨졌다.

“이모!”

한편, 우두커니 거실에 홀로 앉아있던 민혁은 바깥의 동태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제법 큰 소리가 나는 걸로 보아 무슨 일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

흠, 잘은 모르지만 대충 짐작은 가는군. 바깥을 힐끗 돌아본 그가 피식 웃었다.

사실 그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진행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모의 맘을 편하게 하기 위해선 하루빨리 찾아뵈어도 모자라다는 여자의 주장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들고 말았다.

‘갑 앞에서 을이 뭐 별 수 있나.’

어쨌든 두 여자의 대화가 끝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민혁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

아까부터 내내 무릎을 꿇고 있었더니 절로 좀이 쑤신다.

등을 쭉 펴며 살짝 스트레칭을 한 그의 눈은 자연스레 집안의 모습을 훑었다.

옛날에는 셋이서 살았고, 지금은 남동생과 이모 둘이서만 살고 있는 중이라는 아담한 집.

보통의 가정 주택 모습을 하고 있는 집은 막상 세간이 그리 많지 않은데도 왠지 모르게 꽉꽉 들어차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그리고……

그와는 조금 이질적인 분위기.

눈가가 저도 모르게 약간 찌푸려졌다.

“…….”

그렇게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시선이 불현 듯 어딘가로 가 닿았다.

현관 바로 옆에 딸린 방이었다.

그 곳은 문이 살짝 열려 있었는데, 그 좁은 틈 사이로 보이는 벽에는 뭔가가 많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이상하게도 무척 낯에 익었다.

‘뭐지?’

민혁은 뭔가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그 방으로 다가갔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빠끔히 들여다보였던 그것의 정체가 바로 드러났다.

‘아, 오아시스.’

그것은 영국 밴드의 포스터였다.

뿐만 아니라 그 옆으로는 마룬5, 아델, 제이슨 므라즈 등의 유명 가수 포스터들도 즐비했다.

너무나도 익숙한 그 광경이 자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의 방과 오버랩 되어서, 그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여기 미친놈이 또 하나 있나 보네.”

미소를 띤 그가 나지막이 읊조리던, 그때.

탁!

현관문이 열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고, 민혁은 퍼뜩 뒤로 돌았다.

단정한 교복을 입은 웬 남자애 하나가 집안으로 척척 들어서고 있었다.

“……!”

예상치 못한 등장에 그가 살짝 얼어버린 사이, 민혁의 시선이 닿아있던 곳을 알아챈 듯한 남자애는 그를 적대적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누구세요.”

교복을 입고 있는 것 치고는 무척 낮은 목소리.

민혁은 이내 표정을 고쳐 앳된 남자애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

흐음.

두 번째 공략 대상의 등장이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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