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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화 〉63국 - 극한직업 정도찬 인터뷰어 (65/75)



〈 65화 〉63국 - 극한직업 정도찬 인터뷰어

드디어 TH 배 전국 기전 4강전이 시작되었다.

A조에 속한 정도찬의 상대는 갑조리그에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안기우 연맹 8단.

죽음의 조를 뚫고, 우승 후보를 꺾고 올라온 정도찬과는 달리, 안기우의 4강 진출은 어느 정도 운이 따라줬기에 가능했다.

32강에서는 같은 상대를 두  이기고 16강에 진출했고, 16강과 8강에서도 상대적인 약체를 만난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상대적으로 약했다는 거지 약한 상대를 쉽게 이기고 올라온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어려운 상대들을 이기고 올라온 정도찬보다는 임펙트가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오히려 정도찬을 안기우보다 윗선에 올려두기도 했고.

포인트를 걸고 대회의 승부를 맞추는 시스템이 있는 바둑 커뮤니티들에서는 정도찬으로 역배당 노리는  달달했는데 이제 그게 안 된다며 하소연하는 유저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당연히 여러모로 정도찬과 비교되며 심사가 뒤틀린 안기우였다.

“정도찬 2단이요? 저한테 평가받으시려면 우승 두 번은 더 하고 오셔야 할 것 같은데요.”

사전 인터뷰에서 ‘정도찬 2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급발진하는 안기우를 보며 인터뷰어, 김유희는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미친놈인가?’

원래 자존심이 좀 세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들이받을 줄이야!

하지만 인터뷰는 생방송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떻게든 잘 포장해서 수습하는 수밖에.

잠시 눈동자를 굴리던 김유희는입을 열었다.

“정도찬 2단은 아직 내 상대가 아니다! 난 자신 있다! 뭐 이런 말씀이신 거죠?”

“그렇죠, 솔직히 요즘 정도찬 2단이 저보다 실력이 위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자칫하면 팬들을 비하할 수도 있는 말이 나올 수도 있었기에 김유희는 재빨리 안기우의 말을 가로챘다.

“그런 분들이 있지만. 이번에 확실하게 실력을 보여 드리겠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네? 아…. 네, 맞습니다.”

안기우는 자신의 실수를 막아준 김유희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있던 정도찬은 감탄했다.

‘와…. 이래서 전문 인터뷰어가 있는 거구나.’

솔직히 말하면 전문 인터뷰어라는게 왜 있는 건가 싶었는데.

역시 프로는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김유희가 들었으면 정도찬의 명치를 다섯 대는 때렸을 만한 생각이었다.

정도찬이야말로 정말 인터뷰어가 필요한 종류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정도찬의 인터뷰를 앞둔 김유희는 큐카드를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 하기 싫다….’

정도찬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으로 움직이는 외계인이 분명했다.

지금만 해도 안기우가 저 정도의 수위로 도발했으면 정도찬도 어느 정도 반응을 보여야 한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라고, 작용이 있으면 반드시 반작용이 있어야 하는  아닌가?

하지만 저 잘생…. 아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을 보라.

김유희도 처음에는 저 모습에 속아 ‘우와 포커페이스 유지 대단해!’라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건 포커페이스 따위가 아니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거지!

정도찬은 완벽하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있었다!

그래도 결국 한쪽이 도발했으면 다른 한쪽도 장난이든 진심이든 도발을 받아주는 쪽이 그림이 좋았기에 김유희는 정도찬의 입에서 원하는 말이 나오기를 기도하며 질문을 던졌다.

정도찬의 생방송 인터뷰는 말이 인터뷰지 사실상 가챠를 돌리는 거랑 다름없었으니까!

“안기우 8단이 정도찬 2단은 아직 나한테  된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도찬 2단도 한마디 해 주시죠!”

마이크를 든 정도찬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안기우 8단은 지금까지 우승 몇 번 하셨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안기우가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세 번…. 했습니다.”
“아, 그래요?”

정도찬은 알겠다는 듯 마이크를 내려놨다.

그 태도에 안기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뭐지? 그러니까 지금 나도 우승 세 번밖에 안 해본 주제에 어디서 우승을 논하냐고 비꼰 건가? 그러고 보니까 정도찬도 초단대회우승자였지? 자기도 우승한 적 있다고 시위하는 건가? 내가 지금 화내야  타이밍인  맞나?’

정작 안기우의 복잡한 시선을 받는 정도찬은 별생각이 없었다.

그냥 말 그대로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으니까!

궁금해서 물어봤고, 대답해줬으니 해결됐다.

그것뿐이었다.

생방송에서는 3초 이상 오디오가 비면 방송사고였기에 김유희가 재빨리 치고 들어왔다.

“그러니까 정도찬 2단은 안기우 8단도 우승은 세  밖에 못 해봤으니까 그럴 말 할 자격은 없다. 이런 말씀을 하신 거군요?”

정도찬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아닌데요.”

김유희의 속이 실시간으로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나도 아니까 그냥 그런 거로 치고 넘어가지좀….’

카메라만 없었어도.

아니 하다못해 생방송만 아니었어도!

김유희는 분노를 삭이며 상황을 수습했다.

오늘의 정도찬 인터뷰 가챠도 대실패였다.

#

정도찬은 대국이 진행되는 내내 아쉽다는 감정을 느꼈다.

‘차윤석 9단이  잘 두는데?’

8강 상대였던 차윤석 9단에 비하면 안기우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인공지능을 따라 하는 것도 어설프고, 그렇다고 자기만의 무엇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상위권 프로바둑기사다운 기력은 있었지만 날카롭다는 느낌은 없었다.

나이를 생각하면 딱히 기력이 쇠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본  같은 수, 어디서 본 것 같은 스타일, 어디서 본 것 같은 정석 진행.

 하나 봐줄 만한 게 있다면, 수를 읽는 속도.

같은 시간을 줘도 더 많은 수를 읽을 수 있는 그 재능만이 정도찬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안기우의 장점이었다.

특히나 바둑 엔터테인먼트 시대가 열리며 제한시간을 점점 줄이는 것이 트렌드가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 수읽기가 빠르다는 것은 좋은 장점이기도 했고.

하지만 수를 빨리 읽으면 무엇하겠는가.

형세판단도, 가치판단도 미묘하다.

판단력이 결여된 수읽기만큼 의미 없는 능력도 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바둑에 실속이 없다.’

속기 바둑 연습 상대로는 괜찮은 상대.

정도찬에게 있어서 안기우는 딱 그 정도 상대였다.

한편 안기우는 안기우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자신이 조금 강하게 도발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도찬을 흔들어보기 위해서였다.

다름 아닌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차윤석 9단을 이기고 올라온 정도찬이 아닌가.

처음부터 방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대국이 시작된  막상 좌상귀에서 한번 탐색전을 벌여보니 이건 그냥  두는 정도가 아니었다.

‘존나 잘 두네….’

마치 지금보다 어렸을 때 자신의 스승님과 지도 대국을 두던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 높고 멀어서, 막막함마저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

안기우는 자신이 짜온 전법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승리를 위해서.

‘네가 아무리  둬봤자 수읽기 속도는 내가 더 빠를 거야.’

대국을 속기로 몰고 간다.

정도찬이 자신의 도발에 응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전장으로 따라와 주면 좋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정도찬의 시간을 소모해 초읽기로 몰아서 실수를 유도할 수도 있다.

안기우의 손이 점점 빨라졌다.

하지만 상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정도찬은 그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정도찬의 모습을 보며 안기우는 생각했다.

‘안 받아주는 건가?’

솔직히 안기우는 자신이 속기를 요청하면 정도찬이 기꺼이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

자존심이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걸까?

그래도 이건 이거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

이대로 정도찬의 시간을 소모해서 초읽기로 몰고 들어간다면 그때부터는 좋든 싫든 10초 제한의 속기 바둑이 시작된다.

그것도 정도찬에게만 제한시간이 있는 불공정한 속기 바둑이.

안기우는 빠르게 두되 손바람을 타지 않도록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정도찬의 수에 안기우가 연속으로 노타임으로 받아칠 무렵….

‘뭔가 이상한데?’

정도찬도 이상함을 감지했다.

아무리 대국 도중상대방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정도찬이었지만 연속해서 노타임으로 밀고 들어오는것마저 눈치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속기로 붙어보자는 거구나.’

정도찬은 잠시 고민했다.

굳이 여기서 같은 속기로 맞불을 놓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대로 둬도 이길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던 정도찬은 대국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안기우의 눈을 바라봤다.

그의 눈은 조용히, 맹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바둑을 두는 것은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

그 순간 계룡산 이 사범의 말이 생각난 이유는 어째서였을까.

 말이 상대방의 의도대로 따르라는 말은 아니었을 터인데.

‘아 몰라!’

정도찬은 계시기를 누르기 좀 더 편한 자세로 바꿔 앉았다.

상대방의 속기 신청에 기꺼이 어울려줄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뭘 어떻게 하든 내가 이겨!’

처음부터 질 자신 따위 없었다.

#

결국, 4강 A조의 제1국은 정도찬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그 대국을 지켜보던 유연아는….

“한소율 연맹장한테 다시 전하세요, 우리 GSG는 저 사람 없이 창단할 생각이 없다고요.”
“네, 그렇게 전해두겠습니다.”

잠시 한소율의 말을 빌리자면….

오늘도 어김없이 ‘정도찬 내놔 빼애애애액!!!’을 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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