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22국 - 하윤서
아까부터 자꾸 얼굴을 간지럽혀 신경 쓰이는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쥐어뜯은 하윤서는 반쯤 짜증 난다는듯 스마트폰을 가방에 반쯤 던져 넣었다.
버스로 통학을 하는 그녀는 가끔 할 일이 없을 때 스마트폰으로 프로바둑기사들의 기보들을 읽는데 그럴 때마다 기분을 망쳤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똑같아.'
여기도 인공지능, 저기도 인공지능.
짜증이 날 정도로 모두가 인공지능을 따라 하고 있었다.
하윤서는 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어.'
과거, 모든 프로기사가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팬들은 그 개성에 열광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50%의 인공지능에 50%의 성격을 섞으면 그것이 인공지능 시대의 기풍이다.
하윤서는 바둑기사들이 인공지능을 신처럼 섬기는 모습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었다.
그녀는 오히려 나이 지긋한 인터넷 바둑의 고수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트렌드에 관심 없는 그 사람들의 바둑은 말 그대로 ‘사람’의 바둑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협회에 입단하고도 프로 생활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마추어 고수들을 만날 수 있는 인터넷 바둑에 더 집중했다.
그마저도 가끔 인공지능을 따라 하는 기분 나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원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그건 트렌드를 거스르는 사람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니 싫지만 어느 정도는 감안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인터넷 바둑에 접속했다.
그녀가 접속하자 할 짓 없이 대기 채널에서 시간이나 때우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그녀에게 대국 신청을 해왔다.
'오늘은 누구랑 둘까.'
그녀는 대국 신청 메시지를 천천히 확인하며 상대를 골랐다.
이 사람은 연구생이고, 이 사람은 프로다, 이사람은 아마추어지만 저번에 뒀을 때 기분 나쁜 바둑을 둬서 짜증이 났다.
오늘따라 하나같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들만 가득했다.
'그냥 적당히 한 명 잡아서 두어야 하나.'
띠링-
결국, 대국 상대를 고르는 데 실패한 하윤서가 눈 감고 대국 상대를 구하려던 찰나,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Threelight
아는 닉네임이다.
자신과는 결이 다르지만 그래도 괜찮은 바둑을 두는 사람.
그의 메시지를 확인한 하윤서는 그게 대국 요청이 아니라는 것에 조금 아쉬움을 느끼고 반대로 대국 요청을 보내봤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는 대국 요청을 깔끔하게 거절했다.
'다시 둬 보고 싶은데 짜증이 날 정도로 비싼 척을 한단 말이야.'
그때는 아주 조금,한 끗의 차이로 통한의 반집 패를 당했지만, 다시 두면 이길 자신이 있었다.
분명 상대도 다시 두면 질 것 같으니 자신과의 대국을 피하는 것이리라.
'치사한 인간.'
하윤서는 잠시 속으로 Threelight를 욕하고 그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링크? 무슨 스팸메일도 아니고.'
이 인간이 아이디 해킹이라도 당했나 싶었지만, 자세히 보자 한국기원 웹사이트의 링크였다.
아무 말 없이 링크만 딸랑 보낸 꼴이 미심쩍었지만 결국 그녀는 링크를 클릭했다.
호기심이 불안감을 이겼기 때문이었다.
인터넷 바둑도 가까스로 돌아가는 고물 컴퓨터가 자신을 혹사시키지 말라며 항의하는 듯 크게 소음을 내뱉었고 잠시 기다리자 인터넷 창이 켜졌다.
링크의 정체는 얼마전 있었던 협회 입단대회의 기보였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입단대회 때문에 말이 많았었지.'
하윤서는 기본적으로 바둑계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가끔 기보 몇 장 보는 게 다였지만 얼마 전에 어떤사람의 입단 때문에 바둑계가 들썩인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도 짜증 날 정도로 인터뷰 요청이 몰려와서 기자들을 쫓아내는데 고생했으니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입단하는데 왜 나한테 인터뷰를 요청한 것인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입단 과정만으로 화제가 될 만한 사람이면 실력은 있겠지.
'그 사람은 블루스팟 일치율이 한 60%라도 되는 건가?'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동시에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인공지능을 닮았길래 그렇게까지 화제가 된 걸까.
하윤서는 천천히 기보를 읽었다.
포석은 평범한 인공지능 포석.
솔직히 말하면 이 포석은 신물이 날 정도로 봐서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애초에 포석이라는 게 아무리 싫어도 선수의 의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니 하윤서 자신도 가끔 이런 식의 포석을 두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 기보의 진가는 포석 이후의 중반부였다.
10의 171제곱, 바둑판에서 배치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
인공지능 등장 이전, 사람들은 이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천변만화, 끝없이 변화한다는 뜻의 사자성어.
인공지능 이전의 바둑에 이것보다 잘 어울리는 수식어가 있을까.
이 기보에서 그 모습이 보였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그녀의 심장을 꿰뚫었다.
하윤서는 이런 바둑을 두는 사람이 궁금해져서 기보에 쓰여 있는 이름을 확인했다.
정도찬, 이 기보의 주인이었다.
이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끓어올랐다.
만나고 싶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 만나서 같이 바둑을 두고 싶다, 만나서 이 사람을 이해해주고 자신도 이해받고 싶었다.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해줄 거야.
이런 바둑을 두는 사람인걸?
그런데…. 어떻게 만나지?
하윤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기보를 자신에게 보낸 Threelight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인공지능죽어: 님 이 사람 알아요?
Threelight: ㅎㅎ,,,그냥,,,가끔,,,만나요^^
인공지능죽어: 아는 사람이면 소개해줘요.
인공지능죽어: 만나보고 싶음
Threelight: 그,,,정도는,,,아니라서,,,ㅎㅎ,,
'키보드에서 쉼표 버튼 뽑아버리고 싶네 진짜.'
하윤서는 살짝 솟아오르는 짜증을 참고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인공지능죽어: 왜 나한테 링크 보냈어요?
Threelight: 마음,,에,, 들죠? ^^
인공지능죽어: 마음에 들기는 한데 왜 보냈냐고요.
Threelight: 그냥,,,보냈어요,,ㅎㅎ,,,
Threelight: 좋아할,,것,,,같아서,,,^^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네 진짜.'
그녀는 Threelight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걸 포기하고 인터넷 검색창에 정도찬의 이름을 검색했다.
정도찬 나이는 스물다섯, 신창연 명인의 제자.
막 입단한 사람치고는 나이가 많았다. 조금 이상해서 더 찾아보니 트라우마 때문에 늦게 입단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연맹의 해설자로 활동하다 연맹과 협회에 동시 입단.
'이래서 이 사람이 입단할 때 시끄러웠던 거구나.'
특히 협회 입단 루트가 하윤서 자신과 같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둘이 같은 루트로 입단을 했다.
이게 운명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운명이란 말인가.
그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검색하면 검색할수록 뭔가 이상했다.
'평균 블루스팟 일치율이 54% 저런 바둑을 두는 사람이?'
뭔가 잘못됐다.
하윤서는 급히한국기원 사이트에 접속해서 정도찬의 다른 기보를 확인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눈이 썩을 것만 같은 쓰레기 같은 바둑.
자신의 길은 생각지도 않고 인공지능만 따라 하는 양산형 바둑기사.
뜨겁게 달아오르던 심장이 싸늘해졌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드디어 자신과 같은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하윤서는 정도찬의 입단 대회 마지막대국의 기보를 다시 바라봤다.
다시 봐도 기분 좋아지는 아름다운 ’사람‘의 바둑.
이런 바둑을 두는 사람이랑 저런 쓰레기 같은 바둑을 두는 사람이랑 같은 사람이라고?
그럴 리가 없었다.
'이게 다 인공지능 때문이야.'
인공지능이 정도찬을 망가뜨린 게 분명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둑을 두는 사람을 더럽히다니.
하윤서는 원래도 인공지능이 싫었지만, 지금은 혐오감마저 느껴졌다.
더 늦기 전에, 정도찬을 만나야 한다.
만나서 당신의 길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줘야 한다.
흔들리는 그를 잡아줘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를 어떻게 만나지?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지?
기원 사장이라고 했었나? 지금 그 기원에 가면 만날 수 있나?
아니면…. 대국장에 찾아가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이건 너무 민폐야.
그 순간 한 기사의 제목이 하윤서의 눈에 들어왔다.
[정도찬 초단, 초단 대회 참가 확정.]
그 순간 그녀는 프로바둑기사 자격을 유지한 자신이 대견해졌다.
일 년에 한 번씩 무려 3번이나, 일부러 한국기원까지 가는 수고를 들여서, 거추장스러운 카메라 앞에서, 짜증 나는 상대와 쓰레기 같은 바둑을 둔 것은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초단 대회 신청 기한은 내일까지.
단 하루라도 늦었다면 이 기회를 놓쳤으리라.
모든 상황이 자신이 정도찬을 만나는 것을 돕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초단 대회 참가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건 운명이야.'
초단 대회에 나가면 분명 짜증 나는 대국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참는다면 정도찬과 만날 수 있다.
그와 만나서 같이 바둑을 둘 수 있다, 분명 그와 바둑을 둔다면 그도 자신을 알아보리라.
그녀가 정도찬을 한눈에 알아본 것처럼!
정도찬을 만나기 전에 상대하게 될 다른 바둑기사들은 운명의 상대를 만나기 위한 시련이다.
하윤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시간이 흘러 초단 대회 당일.
대회장에 도착한 하윤서의 눈이 대회장 곳곳을 훑었다.
한시라도 빨리 정도찬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지? 어디 있지?'
혹시 무슨 일이 생겨서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아무리 찾아도 정도찬이 보이지 않자 하윤서는 점점 초조해짐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을 대회장 곳곳을 살펴보던 그녀의 눈이 드디어 멈췄다.
수많은 사람 속에 묻혀있었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모습만은 또렷이 보이는 듯했다.
하윤서는 바로 정도찬에게 다가갔다.
그의 주변에 이상한 여자가 붙어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인공지능이나 따라 하는 쓰레기 같은 여자일 테니까.
아니, 어쩌면 저 여자 때문에 정도찬이 인공지능을 따라 하게 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짜증이 몰려왔다.
'역시 저 사람 옆에는 내가 있어야 해'
그래야지 정도찬이 인공지능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지 정도찬이 오롯이 사람의 바둑을 둘 수 있을 것이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사람의 앞에 멈춰선 하윤서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도찬도 뜬금없이 나타나서 걸어갈 길을 막은 하윤서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
“보고 싶었어요….”
“...누구세요?”
비록 그녀가 바라던 서로가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보는 로맨틱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하윤서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