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17국 - 막간 (18/75)



〈 18화 〉17국 - 막간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말이 있다.

남의 싸움에 약한 사람이 해를 입는다는 뜻의 말이다.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느냐고?

왜긴 왜겠어…. 내 메시지를 받고 기원에 쳐들어온 침략군들 사이에 내가 껴서 실시간으로 등이 터지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바둑 공부를  때 사용하는 기원의 가장 큰 방.

내 메시지를 받자마자 달려온 일곱 명의 침략자들은 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튀기는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우선 청코너, 협회.

 친구들인 이재영 협회 6단, 신세연 협회 6단.

“저 실력에 연맹 입단이라니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도정도가 있지.”
“애초에 도찬이는 아버지 제자라고요.”

이 둘은 내가 무조건 협회에 입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내가 스승님의 제자이기도 하고 실력도 부족하지 않으니 굳이 연맹에 소속될 이유가 없다는 논리였다.

이에 반하는 홍코너 연맹.

한소율 한국바둑 연맹장.

“도찬 씨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연맹의 도움이 컸고 애초에 우리 연맹의 해설자니 연맹에 입단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한소율 연맹장은 내가 당연히 연맹에 입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내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 연맹 소속 인사들의 도움이 컸고, 내 현재 신분이 연맹 소속 해설자니 연맹에 소속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팝콘이나 씹으며 상황을 구경하는 나쁜 인간들.

“어차피 선택은 본인 몫인 것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지 뭐.”
“저는 그냥 인사하러 온 건데요….”

너 알아서 하라는 듯 방관하는 내 스승님 신창연 명인, 실실 쪼개면서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건너 불 구경 중인 정휘운 협회 7단, 축하의 인사를 건네려 찾아왔다가 이 자리에 휩쓸린 제2의 피해자 니시카와 나오미 해설위원.

물론 제1의 피해자는 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잠에서  지 얼마 안 되어 상황 파악이  되는지멍한 눈빛으로 앉아있는  제자 김수정10살 어린이.

사실상  상황에서 내 유일한 아군이었다.

아, 나도 졸리는데  쫓아 보내고 자고 싶다.

애초에 내가 결정하지 않으면 끝날 수가 없는 논쟁이라는 것은  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애초에 저 셋은 말은 서로에게 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 말을 내가 듣고 설득당하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실력이 충분한데 굳이 저평가받는 연맹에 들어갈 이유는 없습니다.”
“저평가라니요? 저희도 6단 이하의 프로들이 저평가 받는 거지 7단 이상의 프로들은 협회 소속 프로들과 비교해서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듣는걸요?”
“그분들은 대부분협회 소속이시던 분들이 연맹으로 넘어간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서 연맹 소속이라는 점이 변하진 않아요.”

재영이의 말문이 막히자 이번에는 세연이가 입을 열었다.

“애초에 도찬이는 우리 아버지의 제자예요, 본인도 자연스럽게 프로가 된다면 당연히 협회 소속 프로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요.”
“협회 소속 프로의 제자가 연맹에 입단하는 경우는 지금도 많으니까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그리고 자연스러운 거로 따지자면 연맹의 해설자가 연맹의 프로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한 단체의 수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듯 한소율의 말발은 무시무시했다.

결국, 밀린다는 생각이 든 둘은 원군을 요청했다.

중립국에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표적은 당연하게도 우리 스승님.

“아버지도 도찬이가 협회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하지만 스승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일없다.”
“아빠!!!”
“도찬이 선택이니 우리가 뭐라고 할 건 아니지.”
“그건 그렇지만….”

첫 번째 회유 실패.

세연이 실시간으로 회유에 실패하는 장면을 본 재영은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두 번째 표적은 정휘운

“야, 우리 어렸을   약속 기억 안 나냐?”
“......?”
“뭘 모른 척을 하고 있어 지가 말했으면서.”
“아 맞다. 같이 팀 짜기로 했지.”
“아 맞다는 새끼야 네가 그걸 까먹고 있으면 어떻게 해!”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우리 넷이 팀 짜서 바둑리그 나가면 개털리고 다니지 않을까? 안 하는  나을  같은데.”
“죽빵마렵네 진짜.”
“생각해보니까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정휘운이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재빨리 한소율이 끼어들었다.

“바둑리그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딱히 연맹 소속이랑 협회 소속이 팀을 짜지 말라는 규정은 없어요. 전례가 없었을  하고자 하면 가능해요.”
“아 그럼 저는 뭐….”

 번째 회유 역시 좌초되자 둘의 패색이 짙어졌다.

남은  이 상황이랑 별 상관없어 보이는 나오미와 김수정.

수정이는 여전히 별생각이없이 반쯤 졸고 있었고, 졸지에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자 나오미는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냥 반으로 갈라서 나누면  되나요?”

“......?”
“......?”
“......?”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솔로몬식 극단적 탕평책이 등장했다.

나는 졸음이 확 깸과 동시에 배신감을 느끼며 나오미를 쳐다봤다.

이 무슨 악마적인 발상인가.

천사인 줄 알았는데 악마였어!

그래도 덕분이라고 할까? 솔로몬 대왕의 등장에 잠시 평화가 찾아왔다.

“초면에 죄송한데 혹시 솔로몬이세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멀쩡한 애를 반으로 가르자는 건 좀….”
“니시카와 씨, 사람은 반으로 가르면 죽어요.”
“네? 반으로 가르면 죽어요? 왜요?”

순진한 얼굴로 전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저렇게 말하자 나오미가 조금 무서워졌다.

이게…. 순수악?

충격적인 발언의 장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고 있자 그제야 나오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한 듯 한소율 연맹장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도찬 씨가 연맹이랑 협회 양쪽에 소속되는 건 어떻겠냐…. 이런 말씀이시죠?”
“네 맞아요! 그거에요.”

아무래도 단어 선택을 잘못한 듯싶었다.

평소에 워낙 똑 부러지게 한국어를 잘 해서 의식하지 못했는데 아직 한국에 온 지 5년밖에  됐다고 했던가.

그렇게 생각하자실수할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그런  치고는 방송할 때는 말실수가 한 번도 없어서 석연찮기는 했지만 그게 중요한  아니니 일단 넘어가자….

어쨌든 나오미의 말에 세 사람은 잠시 고민에 빠지는 듯했다.

여기서 반으로 나누니 양쪽에서 활동하니 어쩌니 말이 나오면 대화가  길어질 것 같다는 것을 느낀나는 상황이 복잡해지기 전에 먼저 입을열었다.

“일단 제가 나중에 연락드릴 테니까 오늘은 다들 돌아가 주시면 안 될까요?”

한세빛 국수와 밤을 새워 바둑을 둔 여파가 몰려오고 있었다.

졸려 죽을 것 같네.

반쯤 자고있는 수정이가 너무 부럽다.

다행히도 내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줬는지 다들 별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주는분위기가 생겼다.

가장 먼저 일어난 한소율 연맹장이 나오미를 반쯤 강제로 일으키며 말했다.

“애초에 선택을 하는  도찬 씨니까 어쩔  없죠.”

그렇게 말한 한소율 연맹장은 나오미와 함께 쿨하게 나가나 싶더니 다시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말했다.

“말하는 걸 잊었는데  단체 메시지 싫어해요. 그냥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또각 또각, 똑 부러지는 발걸음 소리와 반쯤 질질 끌려가는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이제 가줬으면 한다고 말하자마자 일어나서 나가는 것 봐.

진짜 행동력 하나는 인정해줘야 한다니까.

내가 한소율 연맹장의 행동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 세연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 그 문자 단체 메시지더라?”

평소와 다른 스산한 목소리, 나는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뭐야 이거, 한세빛 국수랑 바둑 두는 것보다 무서워!

“어? 어 그런데?”
“왜 그랬어?”
“그야…. 누구한테는 먼저 보내고 누구한테는 나중에 보내는 게 좀 그래서?”
“어휴….”

세연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러는 거지?

“다음부터는 이런 일 있으면 나한테 먼저 메시지 보내.”
“......?”
“대답.”
“넹….”

이해는 가지 않지만 뭔가…. 뭔가…. 무서웠기 때문에 바로 대답을 해버렸다.

그렇게 말하자세연이는 잠시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더니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축하해.”

그렇게 말하는 세연이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그 모습에 반쯤 멍한 정신 때문에 실감하지 못했던것이 드디어 제대로 실감 나기 시작했다.

-*-*-

라는…. 내 생각에는 꽤 감동적인 복귀 신고라고 생각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난리가 나 있더라.

단체 메시지의 복수라면서  인간들이 밖에서 하고 다니는 짓을 봐라.

합동 인터뷰에, 댓글 분탕질에, 언론 폭격에….

 인간들 분명 반쯤은 즐기고 있는 걸 거야.

특히 나 놀릴 기회는 절대  놓치는 정휘운 저 인간은 100%다.

푹 자고 일어난 것인지 눈을 반짝이며 옆에서 같이 기사를 읽던 수정이가 내게 물었다.

“스승님, 입단하시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종일 졸고 있던 수정이는 아직 제대로 상황을 모르는구나.

그나저나 애가 밤낮이 바뀌면 많이 힘들 텐데 지금이라도 더 재워야 하나?

모르겠다.

나는 수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응 그렇게 됐어.”

하지만 애초에 입단 자체가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최대한 빨리 결정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연맹? 협회? 아니면둘 다?

트라우마만 없으면 뭐든 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작하기도 전에 난관을 만난 느낌이었다.

이럴 땐 한소율 연맹장의 행동력이 부럽기만 했다.

 여자는 이거다 싶으면 바로 움직이잖아.

나도 그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은해소될 길 없이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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