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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91화 (191/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91화

34. BET BET(5)

수요일 오후 다섯 시.

이영하를 마지막으로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손바닥만 한 작업실에 모였다.

창문이 없는 답답한 지하, 푸르스름한 보랏빛 간접 조명을 틀어놓은 공간.

그리고 시커먼 성인 남성으로만 구성된 예술가 (비슷한 것들의) 모임.

이들은 대개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고, 전공 분야는 케이팝과 힙합이었다.

여기서 이영하가 아는 얼굴은 여섯.

그 중 세 명은 이영하가 ‘얼굴만 아는’ 사람이었다.

그 중에서도 두 명은 〈밀제트〉 대기실 복도에서 마주친 이들이었다.

“둘 다 댄서야. 임덕기, 조남균.”

“콜티라고 불러주세요. ‘전화’할 때 콜(Call), 가운뎃점 찍고, 영어 알파벳 티(T)입니다.”

임덕기라는 본명을 가진 사람이 씩씩하게 스스로를 소개했다. 예명은 콜티(Call톂).

그는 고추장 같은 색의 비니를 덮어쓴 남자로 전신을 회색 트레이닝복으로 휘감고 있었다.

말투도 거칠고 눈매가 길게 찢어져 이영하로서는 다소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반갑습니다, 누가 오시나 했는데.”

조남균은 이영하를 알은체하며 악수를 건넸다.

맞닿았다가 떨어지는 손바닥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저희 둘은 댄스팀 소속입니다. ‘나이트로건즈’라고 해요.”

스트릿 댄서의 정석처럼 보이는 콜티와는 달리 조남균은 말투부터 부드럽고 나긋나긋했다.

콜티에 비해서는 꽤 차려 입은 옷차림에 반지도 여러 개였고, 헤어스타일마저 단정했다.

이영하는 유독 이 사람의 낯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우연히 몇 초 보았을 뿐인데도.

“저희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겁니다.”

의기양양한 콜티의 말에 이영하는 확신했다.

그때 훔쳐본 새 참가자가 이들이라는 것을.

물론 콜티와 조남균 말고도 그날의 대기실에는 대여섯 명 정도 인원이 더 있었다.

그들을 통틀어 ‘나이트로건즈(NitroGunz)’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혹시 〈밀제트〉…….”

사석이고, 거리낄 것도 없었기에 이영하는 정확히 짚어 질문했다.

콜티가 웃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끄덕였다.

“좋은 기회가 왔죠.”

순간 이영하는 혼란스러웠다.

〈밀제트〉에 출연한 것을 보면 대단한 사람들인 것 같은데, 이영하는 그들을 잘 몰랐으니까.

완전히 소식이 처음이라고 하면 이 사람들의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을까.

그는 그런 것을 그는 고민했다.

나이트로건즈 두 사람의 첫인상이 강렬하기도 하고, 에너지 역시 끓어넘쳐 이영하로서는 조금 위축이 되기도 했다.

〈밀제트〉 출연자라고 하면, 왠지 스테리나인보다 더 수준이 높다고 느껴지는 면도 있었고.

머뭇거리는 이영하를 두 사람에게서 떼어낸 것은 모임의 주최자인 작곡가였다.

“사담은 나중에 하고, 여기도 인사해.”

그리고 작곡가가 인사를 아직 나누지 못한 마지막 한 사람을 이영하 앞에 밀어주었다.

이제까지 개인적으로 인사해본 적은 없지만, 얼굴은 알고 있는 그 사람.

“…….”

“…….”

묘한 눈싸움과 침묵이 오갔다.

“……이영하라고 합니다. 아이돌이에요. 그, 스테리나인이라고…….”

상대가 자신을 모를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면서도, 이영하는 줄줄 자기소개를 내뱉었다.

어색하기도 어색하고, 어쩐지 위축되는 기분에 점점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남색 빛이 도는 머리카락에 듬성듬성 분홍색 브릿지를 한 상대는, 냉랭한 인상에 표정 변화가 적었다.

목걸이와 반지도 화려하고 새까맣고 새하얀 옷에, 굽이 높은 워커를 신어 이영하보다 눈높이가 높았다.

과장을 붙이자면 ‘차갑다’는 단어조차도 부족한 강렬한 스타일이었다. 사신 같았다.

이영하가 내민 손을 붙잡으며 상대는 겨우 첫마디를 꺼냈다.

“채호원입니다.”

딱딱하게 굳은 인사가 오가자 오히려 작곡가가 놀란 것 같았다.

“둘이 정말 완전 초면이야?”

“아, 응.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중간 지인들이 있긴 해요.”

이영하가 반말로, 채호원이 존댓말로 대답했다.

“정의헌이라고, 우리 팀 멤버랑 호원 씨가 친분이 있어서.”

“지상이랑 승준이도요.”

“네, 네. 그렇죠.”

친구의 친구인데 이렇게까지 서먹한 것도 기적이었다.

“그러면 둘이 이 기회에 호칭 정리도 좀 하는 거 어때.”

“그, 그럴…… 까요?”

“영하가 빠른 94고 호원이가 그냥 94년생이거든.”

“아! 제가 의헌이랑 빠른년생을 안 따져서, 그냥 편하게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작곡가가 열심히 중계를 해주었고 이영하도 땀을 뻘뻘 흘리며 대응했다.

채호원이 다섯 시 십오 분을 막 넘긴 시계를 곁눈질하더니 가벼운 투로 물었다.

“그러면 말 놓을까?”

“그래요, 아니, 그러자.”

가까스로 합의가 성사되었다.

“둘 다 아이돌이니까 할 말은 많겠다. 호원이가 아이돌 친구가 얼마 없대. 영하가 같이 잘 놀아줘.”

작곡가는 그렇게 두 사람을 가까이 붙여놓고 컴퓨터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영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 이 모임에서 아이돌은 두 사람이 다였다.

다른 사람은 나이트로건즈처럼 댄서거나, 힙합 프로듀서, 사운드 엔지니어, 작곡가 등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이 자리에서 제일 유명하다시피 한 것이 여기 이영하와 채호원이었다.

둘을 제외하면 모두 어디까지나 일반인 내지 비연예인이었으므로.

“어떻게 아는 사이?”

채호원이 먼저 말문을 텄다.

작곡가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이영하에게 질문한 것이다.

말투가 갑자기 퉁명스러워진 것을 보면, 채호원도 어지간히 반말이 입에 붙지 않는 모양이었다.

“원이드 멤버 형이 소개해줘서……. 너는?”

“나도 여기저기 타고 소개로.”

다시 정적.

때마침 타이밍 좋게 작곡가가 믹싱이 다 끝난 노래를 틀었다.

성능 좋은 컴퓨터와 스피커에서 질감이 거친 음악이 흘러나왔다.

파티에 온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리액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영하는 옆에 선 채호원의 눈치만을 거듭 보았다.

할 말이 없으면 하지 않으면 그만인데도, 이상하게 흥미가 일어서 자꾸 신경이 쓰였다.

채호원과 둘이 대화할 일이 금방 다시 생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영하도 알았다.

지금이 아니면.

“의헌이가 네 얘기 많이 하더라.”

그래서 이영하는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깔고 운을 떼어보기로 했다.

그 이름을 말하자, 무표정하게 음악을 감상하고 있던 채호원의 얼굴에 은근한 화색이 돌았다.

이영하로서는 멋쩍게도, 경계가 풀어지는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뭐라고 하는데?”

“특별한 건 없을걸. 잘 놀고 왔으면 잘 놀았다고 하고, 컴백하면 했다고 보여주고.”

“그래?”

“같이 이야기하는 거 재미있대.”

전해줄 만큼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몰토크 주제로 선정한 효과는 있었다.

채호원도 흥미를 보이며 이것저것 질문해오기 시작했으니까.

“요즘 그룹 활동은 어때.”

“바쁘긴 바빠. 걔는 뭐, 한결같아. 연습 엄청 시키고. 알잖아.”

“그룹에서도 그런다고?”

“글쎄, 더하면 더했지……. 방송에 보이는 그대로가 우리 팀 분위기라.”

채호원의 날렵한 인상은 미소가 섞이면 금방 부드러워졌다.

“바쁜 것 같더라. 요즘 만날 시간 잡기도 어려워서.”

“최근 일주일은 진짜 잠도 못 잘 정도로 바빴어.”

“잠 제대로 안 자면 관리하기 더 힘들지 않나?”

채호원이 자신의 목을 툭툭 두드리며 물었다.

그룹에서의 포지션 따위의 정보를 이미 알고 있다는 신호나 다름없었다.

거기서부터는 초점이 완전히 정의헌에게서 빗겨나가 잡담이 원활하게 흘렀다.

아이돌 활동 이야기를 하고, 그중에서도 〈밀제트〉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준비 과정이나 지금까지 했던 무대 이야기를 하고, 방송에는 나오지 않을 비하인드를 알리고.

“스나는 2라운드 안 갈 줄 알았는데…….”

“그건 제도 바뀌면서 정의헌이 억지 부려서…….”

까내리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고도의 칭찬 화법이었다.

걔가 아이디어 내서 갑작스러운 규칙 변경에 곤란해하는 새 참가자도 구제하고, 팬들 직접 만나고, 직접 선곡해서 팬들이 좋아할 만한 무대도 하고, 준수한 성적으로 다음 경연 진출하고, 방송 화제성도 2라운드까지 유지하게 해주고, 베네핏도 받았지롱.

일부러 얄밉게 표현하면, 그런 자랑이었다.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채호원은 코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아까 들었어?”

문득 대화 주제가 바뀌었다.

“응?”

나이트로건즈. 채호원이 조용히 입모양으로 말했다.

맨 구석에서 둘이 떠들고 있기 때문에, 남들은 이쪽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공간에서 대놓고 언급하는 대담함에 이영하는 약한 충격을 받았다.

“……새로 참가한다는 말?”

이영하가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꽤 자랑하고 다니긴 하더라.”

기세 좋게 다음 곡이 재생되었다.

베이스가 쿵쿵 울려퍼지는 노래 위로 주최자가 크게 소리쳤다.

노래와 작곡 비화를 소개하는 멘트였는데, 이영하는 딱히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채호원이 이어가는 이야기가 훨씬 집중할 만하기 때문이었다.

“들어봤어?”

조금 전과 유사한 표현으로, 채호원이 재차 질문했다.

“뭘?”

“저 팀 이름.”

이영하는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스트릿 댄스 팀이야.”

채호원이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손톱으로 화면을 토독토독 두드렸다.

옆에서 보니까, 인터넷 포털에 ‘나이트로건즈’라는 이름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채호원은 검색 결과 페이지를 또박또박 그러나 작은 목소리로 읽어주었다.

“대한민국의 힙합 기반 댄스 크루. 2008년 팀을 결성한 뒤 아시아, 유럽, 미국 등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외국에서 얼마나 상을 받았고, 얼마나 큰 대회에서 우승했고, 팀원을 오디션으로 선정한다, 등등.

검색만 하면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를 구태여 짚어서 알려주는 까닭을 이영하는 알 수 없었다.

“콜티가 단장이자 디렉터고, 조남균이 부단장이야. 창립자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나왔어.”

채호원이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나온 사람이 안무가 김산 쌤. 알지.”

“……알지.”

김산이라면 케이팝 안무가 중에서는 손에 꼽을 만큼 유명한 사람이었다.

스테리나인 데뷔곡 〈Rise Up〉과 미니 3집 타이틀곡 〈뛰어들어〉 안무에 참여해, 이영하는 직접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데뷔 전 정의헌과 댄스 신에서 잠시 같이 활동한 적 있다고도, 알고 있었다.

“되게 안 좋은 일로 크게 싸워서 탈퇴했다는 말이 있거든.”

이 단계에서 이영하는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면 김산의 탈퇴 문제 때문에 정의헌과 나이트로건즈가 사이가 좋지 않다는 뜻인가.

하지만 정의헌이 누군가와 사이가 나쁘거나, 싸울 만큼 싫어하는 모습 자체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라면 싫은 사람을 피하는 모습도, 싸우고 화해하지 않는 모습도 어울리지 않았다.

정의헌의 이런저런 면모를 떠올리는 이영하를 막아선 것은, 이어지는 채호원의 발언이었다.

“이건 나도 아는 형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응?”

채호원은 잠시 뜸을 들였다.

“정의헌이 그때 그 일에 얽혀 있었대.”

이영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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