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90화
34. BET BET(4)
“둘, 셋!”
인사는 언제나 자신 있는 목소리로 웃으며.
“Keep Brightening! 안녕하세요, 스테리나인 인사드립니다!”
일부러 우리 팬석 가까이에 가서, 조금은 노골적으로, 그쪽만을 보고 말하자 곧 환호가 터져나왔다.
인사 이후로는 다른 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았고,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사실 삼 분이든 오 분이든 긴 시간은 아니지 않나.
우리는 멤버가 아홉이나 되니까 인당 최소 이십 초, 최대 삼십 초쯤 말하면 끝이었다.
그러므로 대단히 진지하거나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밥 먹고 왔어요?”
무난하다 못해 필수라고 여길 수 있는 질문으로 안승준이 말문을 텄다.
‘먹었어!’, ‘응!’이라는 답변 사이로 틈틈이 ‘얘들아, 고마워!’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양 괜찮았어요? 적지는 않았고?”
안승준의 등 뒤에서 (전혀 가려지지 않는) 서난영이 빼꼼 나와서 질문을 연발했다.
역조공 밥과 간식 이야기였다.
업체 선정이나 연락은 회사에서 했지만, 메뉴와 구성은 우리가 함께 이야기해서 골랐다.
방송국 바로 옆 카페의 음료 쿠폰과 한식 도시락, 빙수 쿠폰, 그리고 포토카드 세트였다.
녹화 시간에 비해 왠지 과한 느낌이라서, 후식은 전국에 많은 프랜차이즈 쿠폰으로 택했다.
비싸거나 고급 매장은 아니었지만 국내에서 제일 점포 수가 많아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빙수는 드림이가 넣자고 했어요.”
팬들의 목소리가 서로 섞여서 질문은 들리지도 않았는데, 강주찬이 뭔가를 캐치하고 대답했다.
구석에 있던 서드림이 손을 들고 스스로를 어필하려고 나섰다.
“제가 찾아보니까, 이런 데 오면 친구를 새로 사귀게 된대요.”
한시가 급하건만 미묘하게 긴 서론이었다.
“레디 친구 많이 생겼으면 해서 골랐어요.”
서론은 길고 알맹이는 생략이라…….
해설하자면, 빙수 같은 건 혼자 먹기 쉽지 않으니까 여기서 친구를 사귀어서 같이 가라는 이야기다.
두 명이서 하나를 먹으면 쿠폰이 남으므로, 다음에 또 만나라는 의도도 담겨 있다나 뭐라나.
최초의 의견은 드림이가 냈지만, 우리 모두 동의해 아이디어에 살을 붙였다.
‘내가 낯을 가려서 같은 팬인 친구가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나도 한두 번 받아본 것이 아니었기에…….
“이런 자리 좀 오랜만이잖아요.”
그때 김지상이 이어셋 마이크 위치를 손으로 고치며 말했다.
우리끼리 선곡을 회의할 때 꺼낸 말과 비슷한 멘트였다.
“저희도 오랜만이지만, 레디는 더 오랜만일 것 같은데.”
“맞아. 저희 다 같이 만나는 거, 진짜 오랜만이에요. 일 년 반도 넘었을걸요.”
한이주가 끼어들었다.
“네, 그렇죠. 그래서 되게 반가워요.”
방송에 나온다는 것을 의식하는지 왠지 다들 말이 조리 있고 침착했다.
말하는 멤버들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나는 다시 객석으로 눈을 돌렸다.
이목구비 하나하나까지 구분이 되는 거리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느낌이 왔다.
우리 응원봉을 들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슬로건을 흔드는 사람 중에서도.
익숙한 얼굴이 몇 없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 계세요?”
“와! 저도 궁금해요”
내가 질문하자, 저 앞에서 손을 흔들던 이영하가 반색하며 내게 다가왔다.
“설문조사 한번 해보면 안 돼?”
“음……. 이렇게 할까요.”
그때 머리를 스치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처음 오신 분들은 빨간색으로, 전에도 오신 분들은 파란색으로 색 한번만 바꿔주세요.”
나는 손으로 응원봉을 흔드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왜인지 우리 팬이 아닌 분들도 저 구석에서 응원봉 색을 바꾸는 게 보였다.
둥근 응원봉 머리가 흰색, 노란색, 빨간색 번갈아 빛나더니 곧 빛깔이 고정되었다.
“와…….”
무대에 서서 그 모습을 보는 멤버들 모두가 한번에 감탄했다.
우리 반응에 이어 팬들도 서로를 둘러보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처음 오신 분들이 많네요?!”
천진섭이 놀라서 외쳤다.
과장이 아니라, 파란색은 눈으로 개수를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여섯 명. 전체 팬석 수의 10퍼센트 남짓한 인원이었다.
“저희 처음 보니까 어때요?”
“감동적이다…….”
“어떻게 오셨는지 한분한분 다 너무 궁금해요!”
멤버들이 내는 사운드가 상도덕 없이 서로 포개졌다.
안승준은 신이 났고, 이영하는 감격했으며, 한이주는 방방 뛰었다.
한편 나로서는 생소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백 명도 되지 않는 이 인원 수는, 표본으로 삼기에는 지나치게 적었지만…….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경험은, 머리를 내리치는 듯한 깨달음을 주었다.
‘조금 더…….’
우리 정규 1집이.
‘친절한 느낌이면 좋겠는데.’
대중이 아니라, 팬들을 대하는 것처럼.
‘너희는 이제까지 우리를 몰랐던 게 당연해. 왜냐하면 우리가 평범한 척 힘을 숨겼거든. 그러니까 지금부터 보여줄게. 우리가 얼마나 빛나는 사람들인지.’
나는 내가 콘셉트 회의에서 했던 말을 잠시 속으로 곱씹어보았다.
자신감은 넘쳤지만, 아무래도 상냥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는 멘트였다.
눈꺼풀 안쪽에서 붉은 불빛이 아른아른 가실 줄을 몰랐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사람들이야말로 메시지의 대상이 되는 것 아닌가?’
우리를 처음부터 알아봤던 사람도 분명 있고.
여섯 개의 파란 불빛.
이 여섯 명에게도 아주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야 하니까.
몇 가지 키워드가 어지럽게 머릿속에 뒤섞였다.
따로 한번 아이디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스테리나인 마무리할게요!”
순간 제작진의 외침이 흐트러지는 집중을 되찾아주었다.
그제야 대형이 엉망이 된 멤버들이 겨우겨우 일렬로 모여 섰다.
“저희 내려갈게요!”
“와줘서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서난영이 손을 크게 흔들고, 이영하가 말했다.
나도 상황을 정리했다.
“자, 마무리 인사하겠습니다!”
허겁지겁 인사를 하자 겨우 팬들의 앓는 소리가 멎었다.
마지막 멘트는 처음 인사를 할 때처럼, 노래할 때처럼 힘차게 이루어졌다.
무대 아래로 내려와 확인해 보면, 약속한 오 분은 훌쩍 넘어간 지 오래였다.
* * *
“두 번째 생존자, 스테리나인입니다!”
스테리나인의 이름은 네 팀 중 두 번째로 불렸다.
2라운드 점수 계산은 1라운드와 달리 현장에서 발표하지 않고, 자막으로 따로 나온다.
차이를 얼마나 기록하며 탈락했는지는 민감한 주제이니까……. 나쁜 제도는 아닌 듯했다.
생존 소감은 한이주가 대표로 마이크를 잡고 발표했다.
“2라운드가 진짜네요, 여러분. 긴장감이 두 배라서 2라운드인가 봐요.”
싱겁기는…….
우리 순서 다음으로는 곧바로 탈락자 발표가 이어졌다.
MC는 1라운드에 비해 한참이나 뜸을 들이더니, 탈락 팀의 이름을 불렀다.
“4차 경연 탈락자는……. 바로크벤티입니다.”
〈데프아〉 트레이너였던 체리본 선생님이 담당을 맡은 댄스팀이었다.
울음을 참으며 〈밀제트〉에 참여한 소감을 발표하는데 듣는 내가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다.
대개 학생인 데다가 구성원 각각이 경험도 많지 않아 대면식부터 약한 취급을 받은 팀인데…….
어떻게 지금까지 온 것도 기대 이상으로 잘 해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참가자들은 전부 가수니까, 어떤 면에서는 불리한 싸움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 다음에는 퍼포먼스 위주 팀이 합류하면 좋겠는데.’
후보가 될 팀이 누가 있을지 생각하는 사이 녹화가 종료되었다.
이미 다음 경연 주제 등은 정산을 받았고 참가 팀도 절반이라서, 촬영은 생각 이상으로 금방 끝났다.
개별 인터뷰까지 끝내야 완전히 끝이었지만 그 정도라면 부담이 덜하니까, 뭐.
“다들 오늘도 고생했다!”
“아, 힘들어! 퇴근하자마자 잘래!”
안승준의 응원 및 한이주의 앓는 소리와 함께 우르르 빠져나와 대기실로 도착한 그때.
머릿수를 세어보니 멤버 하나가 부족했다.
“영하 어디 갔어?”
“손에 반짝이 묻어서 씻고 온대.”
어느새 소파를 차지하고 누운 김지상이 대답했다.
화장실 방향을 가리키는 손짓에, 나는 무심코 대기실 문을 열어 복도를 내다보았다.
바삐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위해 비켜주고, 밖을 돌아다니는 옆방 팀원에게는 꾸벅 인사했다.
몸을 쭉 빼고 복도 끝을 주시하자, 어느 문 열린 방 안을 힐끔거리는 이영하가 보였다.
‘다음 참가자인가.’
원래 새 참가자 공개 리액션은 1라운드 오프닝에 촬영하고 공개가 되었다.
그러나 방송 분량과 화제성을 위해 새 참가자 인터뷰와 특별 공연은 2라운드 끄트머리에 실리기 마련이었으니…….
원키드 때처럼 새 참가자가 촬영을 위해 미리 방문했다고, 추측은 자연스레 흘러갔다.
“누구?”
눈이 마주치자마자 도도도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영하에게 내가 질문했다.
영하는 내가 막고 있는 문틈을 비집고 대기실에 들어서며 대꾸했다.
“새로 오신 분 같은데.”
“그러니까 누구신데.”
“잘 모르겠어.”
으음?
모를 수가 있나.
〈밀제트〉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방송이었다.
그리고 이영하는 유명한 가수라면 이름, 앨범, 발매곡은 전부 꿰고 있는 가요계 아카이브 아닌가.
“솔로가 아니라 그룹인데, 20대에서 30대 정도일까……. 남자들.”
아이돌 보이그룹에서 그 정도 평균 연령이면 절대 이영하가 모를 수가 없었다.
30대 멤버가 있다면 대개 군백기를 보냈을 만큼 연차가 어느 정도 되고, 재계약이든 다른 회사에서 그룹 유지든 무사히 해냈을 만큼 인기 또한 오래 유지되었다는 말인데.
이러한 조건의 보이그룹은 국내에서는 손에 꼽을 만큼 수가 적었다.
다만 아예 아이돌이 아니라고 가정하면 또 다른 방향으로 추론해볼 수 있었다.
“……이튜버라든지? 아니면 밴드?”
“그럴 가능성도 있겠다.”
이영하는 순순히 인정했다. 아이돌 비주얼이 아니었나 보다.
“그쪽은 내가 잘 모르니까.”
영하가 김지상을 밀어낸 강주찬을 밀어내며 소파에 앉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복도 너머를 다시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누구지…….”
“그러게, 궁금하다.”
영하의 목소리도 내 목소리 못지 않게 진지했다.
* * *
이영하는 의외의 장소에서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4차 경연 2라운드 촬영 바로 다음날 이른 저녁.
아는 작곡가 형이 앨범이 발매되었다고 지인을 전부 불러모은 일이 계기였다.
본인이 앨범을 전부 프로듀싱한 것도 아니고 앨범 아티스트도 따로였지만…….
그로서는 처음으로 대기업 아이돌을 프로듀싱하게 되어 꽤 신이 난 모양이었다.
[영하 너도 올 거지?
노래만이라도 듣고 가라! ㅎ]
시간이 없다고 에둘러 거절해도 한 시간이라도 방문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까지 제안해 온다면 이영하도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었다.
사람이 싫어서 고민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는 양해를 구하고 시간을 조정했다.
[오케이! ㅎ 5시에 시작할게
일찍 올 수 있으면 일찍 오길 ㅎ]
그렇게 이영하는 지각생으로 늦게 작업실에 방문하기로 정했다.
작곡가가 직접 이름 붙인 모임의 이름은 무려 ‘청음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