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89화 (189/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89화

34. BET BET(3)

왜 팬석을 모집했는가……. 이것은 사실 논란의 여지가 조금 있었다.

개편 전, 주말에 진행하던 2라운드 녹화는 1라운드처럼 방청객을 따로 접수받았다.

홈페이지 링크에다가 이름과 신상정보를 적어 신청하고 전화로 당첨을 통보받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방송 포맷이 전반적으로 개편되며, 2라운드 현장 관객은 팔십 퍼센트 이상 팬석이 되었다.

각 팀별로 팬을 동일한 인원수로 접수하고, 플러스 알파로 제작진이 섭외한 인력을 이더 넣는다.

섭외한 인력. 즉 마침 방송국을 견학하러 온 학생들, 인턴, 면접자, 직원, 신인 가수 등. 이 분들이 남은 이십 퍼센트였다.

다만 이들은 수가 투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 적어서 크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 외에 무대의 퀄리티를 판단하는 전문가도 함께해 점수를 주지만, 이쪽은 손을 쓰기 어려워 논외다.

‘팬석 논란도 사실 크게 불타오를 수준은 아니야.’

이도 제도를 처음 도입하기에 생기는 불평불만에 가까웠다.

대개 반박 역시 가능했다. 자체적으로 해보겠다.

* 팬석 균등하게 모집했는데 노쇼가 발생하면 어쩌냐. 다른 팀 팬이 못 들어가는 거 아니냐.

→ 온 사람은 다 들여보내고 투표 스위치 개수만 최소 인원 수에 맞게 지급한다.

* 팬석은 누가 모집하냐. 왜 각 소속사에게 일을 더 시키냐.

→ 그래도 소속사가 직접 하는 편이 팬인 척 위장하는 사람을 더 잘 골라낼 수 있다.

* A팀 팬석으로 들어가서 A팀은 투표 안 하고 B팀만 투표하면 어떡해.

→ A팀 팬석으로 들어가면 시스템상 A팀 무대는 자동으로 투표했다고 처리한다.

* 이런 대결은 결국 대중성 있는 팀과 팬덤을 우선하는 팀의 괴리를 불러일으킬 텐데.

→ 하지만 반대로 따지면 그래서 1라운드랑 2라운드의 관객 모집 방식이 서로 다른 것이다.

* 팬들은 평일에 일 안 하냐. 왜 주말 경연은 방청객이고 평일은 팬석이냐.

→ 이건……. 할 말이 없다. 그러게 말이다.

하여간 팬들은 각 무대를 보고 마음에 들면 투표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표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더불어 녹화는 모든 팬들과 제작진의 추가 인력, 전문가가 한 자리에 모여서 한큐에 진행된다는 것 같았다.

현장 분위기나 팬석의 위치, 규모 등은 직접 가서 봐야 알 테니까 이 이상 추측은 무의미할 듯하다.

“아.”

그제야 서난영도 무언가 깨달은 듯 허리를 곧게 폈다.

그러니까 〈밀제트〉의 현재 2라운드 규칙 및 특징은 이러하다.

OTV 음악방송 〈오트랙〉처럼 상암 공개홀에서 녹화를 진행한다.

따라서 무대 크기가 작고 제도적으로 무대 규모를 크게 키울 수 없다.

심사를 위한 현장 관객으로 각 팀의 팬들이 들어와 좌석을 채운다.

획기적인 콘셉트나 편곡, 기획을 적용하기 어려울 만큼 준비 기간이 짧다.

다시 말해 원래 있던 본인 노래를 하는 것이 가장 출제 의도에 알맞다.

우리처럼 퍼포먼스형 팀에 조건을 적용하자면, 안무가 다 나와 있는 노래를 해야 한다.

이 모든 특이사항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의외로 개념이 단순해졌다.

“음악방송 뛴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아.”

지금까지 다른 팀이 진행해온 2라운드를 보면 음악방송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역조공이라고 해서 커피차, 간식차를 부른다거나 포토카드 같은 공개방송 특전을 제공한다거나.

팬들도 응원봉을 가지고 와서 흔들고, 응원법을 아는 노래가 나오면 응원법을 외치기도 했다.

이 정도가 되니 제작진도 스포일러 차단은 아예 포기하고 방송국 밖에서 의상을 찍어 올리는 것마저 제지하지 않았다.

대신 제작진은 이 모든 모습을 전부 녹화해서, 마침내 훈훈한 장면을 연출해냈다.

[〈밀리어네어 Z 트랙〉에서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무대]

그런 자막을 달기도 하고.

- 팬분들 앞에서 오래오래 노래할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이런 인터뷰를 따오기도 하면서, 제작진은 2라운드에 팬석을 모집하는 까닭을 제법 예쁘게 포장했다.

마지막일 수도 있는 무대니까, 팬서비스를 하고 팬들과 교감하도록 자리를 마련한 것이란다.

……대충 그런 연출 의도였다.

그렇다면 우리도 거기에 어울려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무대를 하자.”

타겟이 되는 관객을 미리 정확하게 설정해놓자는 이야기다.

내가 제안하자 김지상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되게 오랜만이네, 팬석은.”

“……형들은 그럴지도.”

서드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러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Run and Run〉 컴백 이후 처음인가.

‘아니다.’

나는 여기 와서 〈Run and Run〉 음악방송은 돌아본 적이 없으니까.

스테리나인이 해체하기 전 마지막 미니앨범 타이틀곡 활동이 최근이었다.

그 이후 개인으로도 무대에 자주 서고, 완전체 무대로도 관객 앞에 여러 번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동안은 내내 ‘이 사람들 사이에 우리 팬들이 섞여 있을 거야’ 하고 생각하거나, 여러 사람들이 뭉친 곳에서 틈틈이 보이는 우리 응원봉 혹은 슬로건을 찾아내야 했다.

개인 활동도 아니고 단체 활동에서 팬들만의 공간이 생기는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후보 있어?”

한이주가 마치 맡겨 놓은 것처럼 내게 질문했다.

그야 미리 정해두기는 했다만…….

인원 변경이 있어서 동선을 다시 짜야 하는 《Start Line》, 《Letters to》 앨범 수록곡은 일단 제외.

무대를 더 크게 꾸릴 수 있는 타이틀곡들은 지금 하기에는 아까운 면이 있어서 잠시 보류.

팬들이랑 함께하는 첫 무대인 만큼 호불호가 덜한 노래가 좋을 테니, 발라드 곡도 목록에서 빼자.

그러면 남는 노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추천곡은 〈Solitude〉.”

〈Solitude〉는 ‘즐거운 고독’이라는 의미로 2015년 6월 발매한 미니 4집의 수록곡이다.

수록곡이지만 노래를 짧게 편집해서 컴백 당일 음악방송에서 타이틀곡 직전 무대를 했다.

미니 4집 쇼케이스에서도 무대를 했고, 더블 타이틀이나 선공개까지는 아니지만 해당 앨범에서는 비중이 있는 노래였다.

무게감 있는 당시 타이틀곡에 비해서는 좀 더 스포티한 느낌이 드는, 생동력 있는 곡이다.

“……2안은 〈Hero〉.”

반면 〈Hero〉는 2015년 1월에 발매한 미니 3집의 수록곡이었다. 타이틀곡은 〈뛰어들어〉였고.

드럼이 쿵짝거리는 박자가 특징인 올드스쿨 붐뱁 스타일의 곡으로 〈Solitude〉보다 훨씬 느낌이 가벼웠다.

하이틴 콘셉트로, 격한 안무보다는 애교를 잔뜩 부리는 표정 연기가 주가 되는 노래라서 말이다.

‘사정이 있었다…….’

최초로 이 노래 무대를 선보인 장소는 그해 3월 진행된 레디 공식 1기 팬미팅이었다.

완전히 이벤트에 의한, 이벤트를 위한, 이벤트 무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팬미팅이 끝난 뒤로는 안무 영상을 공식 이튜브 계정에 업로드하고, 해외 공연에서 몇 번 보여준 게 전부였다.

다만 신인도 아닌 지금 가져오기에는 약간 과하게 상큼한 노래라서 2안으로 골랐다.

“커버곡은 생각 없어?”

천진섭이 질문했다.

다른 아이돌 노래의 커버라면 수요가 제법 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커버곡이야말로 2라운드에 하기에는 손이 너무 많이 갔다.

“생각은 있지. 시간이 없어.”

“수록곡 너무 듣보인데.”

“그건 우리 타이틀도 그래.”

천진섭의 논리는 김지상의 뼈 있는 농담으로 격추되었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나도 그만 정신을 놓고 웃을 뻔했다.

“〈Hero〉가 진짜 재밌었는데.”

한이주가 가장 먼저 선택했다. 망설임은 없었다.

“진짜 열심히 준비했지.”

강주찬이 말을 얹었다.

“라이브 연습도 하고, 안무도 우리가 직접 만들고…….”

안승준도 아련하게 말했다.

무슨 뮤지컬 합창처럼 아련한 기억이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속수무책이었다.

다음 경연 노래는 〈Hero〉다.

* * *

가벼운 소품은 허용되는 정책에 따라, 우리 무대 중앙에는 소파가 하나 놓였다.

소파를 중심으로 앉고 눕고 서로에게 기대는 안무가 꽤나 빠르고 현란했다.

그리고 우리는 무대에서 내려와 화면을 통해 노래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중이었다.

재도전은 불가능하지만, 모니터링 뒤 보정이나 사운드 믹스 등에 의견을 보탤 수는 있었다.

수많은 사람 중에 너는 하나뿐야

나만이 아는 모습 I’m your Fan

You’re ma Hero

한이주가 후렴을 부르며 내게 손가락으로 총을 쏘면, 다른 구석에서 내가 동작을 받아 움직였다.

발뒤꿈치를 축으로 삼아 한 바퀴 돌고 다음 순서인 서난영에게 신호를 보내고, 짧은 독무가 꼬리 물듯 이어졌다.

우리 팬이 아니라면 십중팔구 초면일 노래라서, 춤과 노래 그리고 표정 연기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노래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동경하는 사람을 닮고 싶어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는 내용이었다.

가사만 따지면 다소 집착적인 부분도 있으므로 일부러 언밸런스하게 안무와 노래하는 톤을 가볍게 조정했다.

가볍고 재미있게, 장난스럽게.

‘역시 좀 나이가 들어서 하니까 그렇게 귀엽지만은 않군…….’

산뜻하려고 노력한 것이 무색하게, 어쩐지 뒤에 계략을 숨기고 있는 사람처럼 표현되었다.

시간이 지나 차이가 생기는 것도 또 재미 요소라고 생각하기에,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현장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이 노래를 할 줄 전혀 몰랐다는 듯, 전주가 나오자마자 오열에 가까운 함성이 쏟아졌다.

……더러는 레디 중에서도 아예 무슨 노래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튼.

“괜찮은 것 같아요.”

내가 의견을 냈고 멤버들도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요구사항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오히려 같이 보던 어나더뮤직 직원분께서 이런저런 의견을 남겼고, 잠시 땀을 식히기를 몇 분.

정리가 끝나자 현장 촬영을 주도하는 PD님께서 팬들도 다 들을 수 있을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그러면 멤버들 다시 올라가서,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마무리할게요!”

앞 순서를 보면 이 과정에서 삼 분에서 오 분 정도 멘트를 나눌 시간을 주는 것 같았다.

PD님께 ‘올라갔다가 바로 내려와요?’라는 의미로 내가 손짓하자, 그건 아니라는 답도 돌아왔다.

바로 옆에서 허윤아 작가가 ‘촬영해서 쓰여요’라고 스케치북에 써서 내게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러면 어느 정도는 팬들과 대화를 해도 된다는 뜻일 테다.

“가자.”

뒤에서 이영하가 내 허리를 쿡 찔렀다.

이미 몇몇 녀석은 이미 출발해 내가 마지막이었다.

멤버들의 표정을 돌아보면, 어쩐지 모두 무대 위에서보다 더 밝은 낯이었다.

‘참나.’

무대에 서서 내려다보면 객석 한구석에 응원봉 불빛이 환히 무리지어 있었다.

나는 그 빛과 멤버들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인사부터 할까요.”

선창은 내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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