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84화 (184/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84화

33. Do It Like This(4)

“발매 시기를 생각하면 아무튼 청량하고, 여름 느낌이 많이 나는 콘셉트가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발표 자료에는 작년 4월부터 9월까지 나온 아이돌 음악을 몇 가지 예시로 첨부했다.

보이그룹 노래 위주였지만 걸그룹 노래도 있고, 작년 노래는 아니지만 여름이 될 때마다 역주행하는 스테디셀러 등도 포함된 목록이었다.

이 다양한 레퍼런스에는 여느 스테리나인 노래처럼 리듬감 있는 댄스곡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는 〈Express〉의 비공식적인 후속작을 새 앨범 콘셉트로 주장해보려고 합니다.”

본론에 〈Express〉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었다.

내가 주말 이후 인터넷에서 찾아본 댓글과 반응 캡처가 하나씩 프레젠테이션에 팝업되었다.

일부러 효과를 화려하게 준 건데, 생각보다 이미지가 드러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타이틀 곡 〈Express〉가 수록된 앨범 《Midnight Train》의 콘셉트는 이런 내용인데요.”

나는 모두가 아는 〈Express〉와 후속곡 〈Glitter〉의 가사 속 스토리를 짧게 설명했다.

우주를 여행하는 급행열차 〈Express〉의 이야기, 그리고 고등학교의 천문 동아리 〈Glitter〉의 이야기.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내용이었지만, 당시 기획에 참여하지 않았던 직원들은 잘 모를 서사가 더 있었다.

바로 두 곡의 연결점 말이다.

〈밀제트〉 경연을 준비하면서 한번 멤버들끼리는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저희가 후속 활동을 결정할 때 〈Express〉에 나오는 우주의 모습을 〈Glitter〉에서 관측한다는 비하인드를 넣자고 회의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Glitter〉의 뮤직비디오에는 뜬금없이 기차표 소품이나 기차역 로케이션이 등장하기도 한다.

천문부 학생들이 관측한 혜성이 사실 기차 차량이었다든가 , 비슷한 별자리가 두 뮤직비디오에 다 나온다거나.

노골적이라기보다는 암시 수준으로 간단히 이미지를 겹친 수준이었다.

“〈Express〉와 〈Glitter〉의 스토리가 그렇게 연결된다고 하면…….”

그 다음 활동곡들의 스토리도 잘 끼워맞춰 연결할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 따지자면 〈Express〉의 서사는 《Midnight Train》에서 끝이 났다.

《Midnight Train》 이후 발매한 앨범은 《Start Line》이라고 해서, 여덟 명이 참여한 〈Run and Run〉이 타이틀 곡이었다.

그 다음 앨범은 〈데프아〉 이후 여섯 명이 참여한 《Letters to》라는 앨범.

타이틀곡은 〈나에게〉였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두 곡은 모두 특별히 깊은 콘셉트가 없는 노래였다.

요점만 쏙쏙 뽑아서 말을 잘할 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이후 타이틀인 〈Run and Run〉은 ‘성장 직전의 방황’, 〈나에게〉는 ‘방황 이후 자기애를 되찾음’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두 노래는 옆길로 샌 느낌이 강했지만 어떻게든 우겨보았다.

각각 노래의 가사를 발췌하고, 동일하게 사용되는 오브젝트도 캡처해 붙인 식으로.

다들 진지하게 들어줘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성장한 다음의 스테리나인을 〈Glitter〉의 콘셉트와 연결해 보여주려는 기획을 짜봤는데요.”

아무튼 본론.

“〈Glitter〉가 고등학교 배경이었으니까, 거기서 성장한 대학생으로 우선 컨셉을 잡았습니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고, 우리가 다 성인이기도 하고.

처음에 생각한 성숙한 퍼포먼스에도 대학생인 편이 용이했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전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천문부가 아니라 아예 사교 클럽, 사교 동아리로 키워드를 바꿔보려고 합니다.”

한번 사용한 콘셉트를 두 번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나는 회의에 참여한 이들이 궁금할 만한 내용을 자문하고 답을 냈다.

“왜일까요, 그건 처음에 보여드린 〈Express〉 반응에 답이 있습니다.”

앞 페이지에 나왔던 댓글 캡처가 발표 자료에 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Express〉 반응이 다가 아니었다.

사실 그 말은, 〈데프아〉 출연 당시부터 무척 많이 들어 왔으니까.

– 나는 얘들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 빨리 못 알아봐서 미안해 ㅠㅠㅠ

– 이 노래를 이제 알았다니

나는 반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터넷 게시물을 발굴해 발표 자료에 넣었다.

좋은 내용의 댓글이었으나 그 말을 듣는 입장에서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내용이었다.

띄우려고 했지만 우리는 묻혔고, 우리 존재를 알리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몰랐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실패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교 동아리]

나는 클릭 한 번으로 프레젠테이션에 적힌 제목에 두 글자를 더 띄웠다.

[비밀 사교 동아리]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포장해보는 거다.

우리는 실패한 적 없다고.

나는 기획을 간추려 입밖으로 외쳐보았다.

“너희는 이제까지 우리를 몰랐던 게 당연해. 왜냐하면 우리가 평범한 척 힘을 숨겼거든.”

“…….”

“그러니까 지금부터 보여줄게. 우리가 얼마나 빛나는 사람들인지.”

일부러 연기하는 톤으로 말했다.

말 사이사이의 침묵에서 모든 직원들이 발표에 깊이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요즘 신인 아이돌 그룹들에게는 다 세계관이 있잖아요.”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정말 최근에는 신기한 세계관 콘셉트가 많았다.

그룹 멤버들이 평행세계에서 온 존재라든가, 싸워 이겨야 하는 적이 있다거나, 조상을 위해 노래로 힘을 기른다거나…….

결국 세계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이돌의 콘셉트를 유기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그래서 팬들의 몰입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몰입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존재하는 편이 좋을 테니까.

스토리의 힘은 강력하다.

그래서 회사에서 인위적으로 서사를 만들어 지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세계관이 꼭 필요한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든다.

“저희에게는 그만큼 설득력 있는 스토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하지 못하고, 몇몇 멤버가 먼저 알려지고, 다시 그룹으로 뭉치고, 끝내 같이 활동하게 된 역사 말이다.

지금은 팬이 아니어도 우리 그룹의 변천사를 아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 그룹의 성장 스토리만을 가사에 가져와도 듣는 이들은 충분히 속뜻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다.

“그러니 비밀을 드러내고 새롭게 도약한다는 느낌으로 기획해 봤습니다.”

그 뒤로는 주장을 덧붙이는 근거의 나열이었다.

이번에도 ‘동아리’를 고수하는 까닭은 팀을 하나로 묶어 서술하기 좋아서라든지.

대학교를 콘셉트 모티브로 잡으면 굿즈나 로고 등을 제작하기 편하다는 말이라든지.

발표가 끝나면 박수 소리와 함께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기획팀 직원뿐만 아니라 참관한 이사님, 매니저팀 팀장님, 기획팀 팀장님까지 질문으로 거수했다.

“뮤직비디오 로케이션 아이디어가 더 있을까요?”

“〈Express〉 이전 스토리를 엮어내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혹시 추구하는 음악 장르도 의헌 씨가 구체화해줄 수 있어요?”

적어도 오늘 회의에서는 이만큼 활발한 반응이 없었다.

발표 결과는 한번 통으로 정리해 직원 전체 투표 및 이사진 회의를 몇 차례 더 거쳐 나중에 나오겠지만…….

현장 반응은 훈훈하기 그지없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이 분위기에서 바로 다음 순서로 발표하려니까 긴장이 많이 되는데요…….”

내 뒤로는 기획팀 직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멤버들은 아이디어 제출이 필수가 아닌데 직원들은 인당 하나씩 발표가 사실상 필수라서……. 안타까웠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입모양으로 양해를 구하고 매니저팀 팀장님이 회의 자리를 슬쩍 비운 것이 시작이었다.

손에 들린 핸드폰 화면이 빛나는 것을 보면 무음 모드로 전화가 걸려오는 것 같았다.

회의실 바깥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그 내용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발표에 나선 직원까지도 연신 문가와 빈 자리를 곁눈질하며 눈치를 보느라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발표하는데 미안해요. 저, 이사님.”

그리고 팀장님이 전화가 끝난 뒤에 이사님을 부르고, 이사님도 슬쩍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다음 발표자도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소개하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순서로 불려 나간 사람은 기획팀 팀장님이었다.

회의는 멎지 않고 발표자도 계속 바뀌었지만, 세 사람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획팀 팀장님이 먼저 돌아오고, 다른 두 사람은 아예 어딘가로 가버리고, 그리고 약 사십 분 뒤.

모든 직원의 발표가 먼저 끝났고 이후 이사님이 회의실 문을 열고 입장했다.

“여러분,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 하나 생겼어요.”

콘셉트 발표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화제는 ‘늦여름에서 초가을, 청량, 성숙함과 섹시 한 스푼’이었다.

한마디로, 시즌 송으로 의견이 모였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소식이 무엇일까.

정확히 그 일이 이사님의 발언으로 전달되었다.

“저희, 7월 말 컴백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네?!”

항의에 가까운 볼멘소리가 동시에 사방에서 쏟아졌다.

“언제 가능할까요?”

“컴백이 엎어지는 거예요?”

“시기가 문제인가요?”

이사님이 손을 들어 지휘하듯 모두를 멈추고 부연 설명했다.

“7월 말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예요.”

정규 1집이기도 하고, 스테리나인이 이제 인지도가 조금 생겼다는 이유로 회사에서는 컴백 프로모션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음악방송도 빽빽하게 출연하며 라디오나 다른 방송 콘텐츠 스케줄 역시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스케줄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딱 7월 말이라는 시기에 여러 유명 가수의 컴백이 몰려서, 아무리 강행하려고 해도 원활하게 조정이 어려울 것 같단다.

“그 시기면 음악방송 세트 촬영도 어려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사님이 제안하는 시기는 7월 초, 혹은 8월 말이었다.

순식간에 낯빛이 창백해진 직원들이 서로 의견을 냈다.

“……7월 초가 낫지 않을까요?”

첫 번째 의견, 7월 초.

근거, 우리가 빌딩한 콘셉트가 여름에 어울리고 활동이 밀리면 이후 스케줄에도 차질이 생긴다.

한 달이나 밀리는 것보다는 한두 주 앞으로 당기는 것이 스테리나인의 상승 흐름을 이어나가기에도 좋다.

“저는 8월 중순이 차라리 괜찮다고 봐요.”

두 번째 의견, 8월 중순.

근거, 준비 시간을 줄이면 음반 퀄리티가 낮아질 수도 있다.

아직 앨범 콘셉트도 덜 잡은 단계기 때문에 앨범 콘셉트는 다시 고민해서 2차 회의를 하면 된다.

“7월 말로 강행하는 것은 어떨지…….”

세 번째 의견, 어떻게든 그대로 간다.

근거, 그러지 말고 이사님이 힘을 좀 써주세요.

치명적인 약점, 이사님은 힘이 없다.

“의견은 잘 알았어요. 저희도 조금 더 이야기하고 다시 공지할게요.”

이사님이 비실비실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게 회의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싸늘한 상태로 마무리되었다.

‘아……. 곤란하네.’

뒷정리도 못하고 이마를 짚고 서 있자 옆에서 멤버들이 말을 걸어왔다.

“……형 생각은 어때?”

대표 안승준의 목소리였다.

여덟 명 전부 회의실에서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내 의견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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