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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81화 (181/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81화

33. Do It Like This (1)

천진섭은 지난 생이라고 할까, 내가 겪어온 역사에서 그룹을 탈퇴한 멤버다.

김지상과 비교하면 훨씬 뒤의 일이었지만, 아무튼 그룹 이름 속 숫자를 무색하게 만든 당사자였다.

탈퇴한 뒤로는 솔로 가수 활동이나 연기 등을 하지도 않고 아예 일반인이 되어버렸지만.

시기를 따지자면 천진섭 탈퇴는 안승준이 개인 활동을 중단하고 그룹으로 돌아온 일보다 먼저였다.

‘흠…….’

스테리나인 인원 변동의 전체적인 역사는 상당히 복잡한 편이었다.

완전체 - 서드림의 활동 중단으로 8인 활동 - 김지상과 안승준의 〈데프아〉 및 이후 개인 활동으로 그룹은 7명으로 활동 - 천진섭의 활동 중단 및 탈퇴로 6인 활동 - 안승준의 복귀로 다시 7인. 중간중간 건강 문제로 몇 달에서 몇 주 정도 결원이 생긴 것은 논외로 친다.

아무튼 –지상이만큼은 아니지만– 천진섭 없이 활동한 기간도 결코 짧지 않았다.

그렇지만 탈퇴 소동이 생길 무렵은 지금으로부터 한참 후였다.

진섭이가 본가 생활이나 스케줄 불참, 활동 중단 등으로 탈퇴에 시동을 걸던 시기는 〈데프아〉 종방 후 일 년 반이 지나서였으니까.

지금은 〈데프아〉 마지막 방송 이후 반 년이 조금 넘게 지난 봄이었다.

‘아니지, 이야기는 그전부터 나왔을 가능성도 있어.’

확인을 겸해 질문했다.

“언제?”

“조금 됐어. 작년 말? 올해 초?”

작년 말이면 〈데프아〉 파이널 콘서트 기간과 묘하게 맞물렸다.

나는 천진섭이 강주찬과 한이주를 이끌고 일본까지 왔던 일을 잠시 떠올렸다.

어느 쪽이 먼저였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체감상 꽤 오래 전 일인데…….

“……최근에는?”

“모르지. 생각이 바뀌셨을 수도 있고.”

천진섭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창밖만 보던 시선은 어느덧 방향을 틀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까지도 별일이 없었던 것을 보면 불화의 전조증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한데…….

과거에 있었던 일이 일이니만큼 신경이 쓰이는 것은 또 어쩔 수가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다름이 아닌 천진섭의 생각이었다.

“그 말씀에 너는 뭐라고 대답했는데.”

내가 연이어 묻자 천진섭이 불현듯 ‘푸핫’ 하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차 싶었다. 진지하지 않은 말에 내가 너무 심각하게 반응한 건 아닐까.

표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녀석의 웃는 모습을 보고만 있자, 진섭이는 제 앞머리를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미안. 예상 질문이 하나도 안 들어와서.”

“뭘 예상했으면 그래.”

“으음……. 우리 어머니가 왜 그런 말을 하셨냐거나?”

“…….”

“그건 형의 예측 범위 안이라든가, 그런 거야?”

대놓고 정곡을 찔러오는 천진섭이었으나, 다행히도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뭐, 예측보다는 눈치지.”

“그래서 그 눈치에 따르면 어떤 것 같은데.”

“말씀하셨을 때만 해도 그룹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었을 테니까…….”

“응.”

천진섭의 짧은 대답에는 묘한 코웃음이 섞여 있었다.

긍정은 긍정이었지만 그야말로 묘한 반응이었다.

따져 묻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을 뿐더러 물어봤자 제대로 답하지 않을 게 뻔했기에 내버려 두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데뷔하면 바로 톱스타라도 될 줄 알았나봐.”

그러자 의외라면 나름 의외로 천진섭은 정답을 밝혀왔다.

“말도 안 되는 망상이야……. 어림도 없지.”

택시는 좁았고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고작해야 말하거나 몸을 조금 기울이거나 고개를 돌리는 것만이 소통의 전부였다.

천진섭은 창문을 내리는 것으로 텁텁한 실내 공간에 새로운 소리를 불러왔다.

휘이잉, 쓸쓸한 소음과 함께 늦봄 오월의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 걱정하지 마. 말씀 들을 생각도 없고, 이미 끝난 이야기니까.”

한 가지 의아하면서도 언밸런스한 점은 그런 말을 하는 녀석이 꽤 즐거워 보였다는 것이다.

“그냥 들은 게 있으니까 나도 말해주는 거야.”

“……기브 앤 테이크?”

아니, 천진섭의 입장에서는 테이크 앤 기브인가.

“말하자면? 나 이거 주찬이 형이나 한이주한테도 말 안 했어.”

진섭이가 코끝을 찡그리며 짓궂게 웃었다.

“형도 어디 가서 말하지 마, 그 비밀.”

결론이 이상했다.

나는 바로 그러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손가락에 끼운 반지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감람석 반지가 아니라 오늘 그 방탈출 사장님이 미스터리한 처리를 해준 내 소지품 반지였다.

두 줄로 홈이 파여 있는 원통형의 은색 반지.

데뷔 1주년에 팬에게 선물을 받아 나로서는 자주 착용하는 애착 악세사리였다.

아홉 개가 한 세트인 우정반지라고 하던데.

사실 일상적으로 하고 다니는 사람은 사실 나뿐이었다.

‘물건을 아끼는 방식이 저마다 다른 것이다.’

나는 매일 곁에 두고 싶어 하고, 또 누군가는 상자에 고이 보관해 가끔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옛날, 천진섭이 탈퇴하기 몇 달 전에 녀석이 이 반지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어느날 패션에 어울려서 착용하고 놀러 나갔다가 손이 잘못 미끄러져 반지만 호수에 떨어뜨렸단다.

‘너는 안 다쳤어?’

‘멀쩡해. 그런데 받은 건데 그 반지…’

‘네가 안 다친 게 중요하지 어쩌다가 그렇게 물가에 나갔대’

‘아… 짜증나 하필 그걸 잃어버려서’

그때 천진섭은 반지를 보관함에서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며 말했다.

창문을 여닫는 버튼에 올라간 녀석의 손가락에도 팀 반지는 따로 없었다.

어느 태도가 옳고 그르다고 분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요점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아홉 명 모두 목적도 그룹을 생각하는 자세도 성격도 달랐다.

그리고 천진섭은 그중에서도 특이한 편이었다.

웃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내게 남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권하는 걸까.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왜 그래. 무슨 생각해.”

천진섭이 농담조로 물어왔다.

나는 이마를 손으로 짚고 내 자리 창문도 슬쩍 내렸다.

아직 시퍼런 하늘, 그리고 자동차가 가득한 도로.

창밖은 시끌벅적했다.

“차 너무 막힌다…….”

“퇴근 시간이랑 겹쳐서 그래.”

“늦겠는데.”

“늦기야 하겠어.”

바람이 창문에서 창문으로 통과해 나가고 있었다.

* * *

정의헌 같은 사람은 모른다.

천진섭은 충분히 오만해도 되는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 치고는 드물게 자기 객관화가 상당히 잘 되는 인간이었다.

“죄송합니다, 이사님. 저희 너무 늦었죠.”

“아니에요 시작 전에 왔는걸. 우리도 방금 준비 끝났어요.”

사실 그가 그렇게 된 까닭은 단순했다.

오만해도 되는 근거를 어느 한 순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늘 발표는 기획팀 현미 씨가 맡아주실 거예요.”

“안녕하세요, 기획팀 김현미입니다.”

어나더뮤직에 소속되어 연습생을 시작하며 천진섭은 새로운 세상과 마주했다.

처음에는 강주찬을 놀라게 해줄 생각으로 오디션을 본 것뿐인데 예상보다 결과가 좋았다.

연습생 생활까지만 해도 인생에 생긴 특별한 이벤트처럼 느껴졌다.

엄격한 레슨도, 연습생 사이의 선후배 관계도, 주기적인 평가도 견딜 만했다.

경쟁하는 것은 즐거웠다,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면.

“……오늘 주제는 조금 이르지만, 어나더뮤직 하반기 활동 계획 및 비전에 관해서고요.”

다만 데뷔조가 결정되어야 하는 그때.

“멤버들이 와 있으니까 스테리나인 활동 위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데뷔 그룹 스테리나인은 어렵게 선발되었으나 이른바 ‘고정석’이 있었다.

꾸준히 월말 평가 성적이 좋고 각기 특징이 있어 절대 데뷔해야 하는 핵심 멤버들 말이다.

“먼저 복지 관련 사항부터 안내할게요.”

예를 들어, 이른바 대기업이 놓친 인재이자 어나더뮤직에서는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는 실력자 정의헌.

행실도 바르고 회사 간부 및 직원들의 신임을 일찍이 얻어 그는 그룹 리더로 미리 내정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이돌 그룹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메인 보컬 한이주. 심지어 어리고 잘생기기까지 했다.

춤도 출 줄 모르는데 ‘이 정도로 노래를 하면 무대에서 서 있을 수만 있어도 붙여야 한다’고 신인개발팀이 입을 모아 합격을 외쳤단다.

또한 연습생 생활을 오래 했고 실력 역시 시간에 비례해 늘 우상향을 그리는 맏형 이영하라든가, 메인래퍼로 등극할 만한 실력은 물론이고 프로듀서로 성장할 자질이 보이는 강주찬, 댄스 위주 올라운더에 그룹 활동에 어울리는 원만한 성격을 가진 서난영까지…….

“최근에 소란스러운 일이 하나 있었잖아요. 사생활 침해 관련해서 비슷한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기도 하고, 8인 숙소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어서 불편하다는 제보를 많이 받았어요.”

그렇게 다섯 자리는 사실상 확정이 되어, 다른 연습생들은 남은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남은 자리가 둘이 될지 넷이 될지는 연습생을 포함해 회사 관계자들 누구도 몰랐다.

“지금 그래서 계약보다 이르게 멤버들 숙소를 이사할 계획이 있고요 늦어도 8월 내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이사 너무 좋아요!”

여유 구성원은 결국 셋으로 결정되었다.

그 와중에 김지상이 갑작스럽게 입사해 데뷔조에 합류했으므로.

유력한 후보는 태도가 불성실하지만 이름이 알려져 있고 실력이 좋은 안승준과, 어리고 그 어린 나이 또래 중에서는 가장 안정적인 보컬 능력을 가진 서드림이었다.

천진섭은 아주 불안정하게 마지막 한 명의 멤버가 되었다.

“이사하니까 말 나온 김에. 더 미래 계획이지만 이야기해둘게요.”

“아, 이사님.”

“이사 이야기를 하는 이사가 되었네요. 내년 상반기로 사옥 이사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하하…….”

여전히 정의헌은 모른다.

그는 첫 번째 멤버였기 때문에.

아홉 번째이자 마지막이었던 사람의 마음은 모를 것이다.

“그러니까 옮기기 힘든 물건들은 적당히 가져다가 놓고, 뭐 새로 설치한다면 신경 쓰라는 이야기랍니다.”

너무 잘하는 멤버가 많았다.

노래도, 춤도, 랩도, 프로듀싱이나 아크로바틱, 퍼포먼스 구성, 콘셉트 기획, 의사소통, 중재, 예능까지.

아무리 노력해도 닿기 힘든 영역이 눈높이 위에 존재했다.

천진섭은 한마디로 비주얼 멤버였고……. 그 역할조차 김지상의 입사로 위협을 받았다.

“네, 그러면 복지 계획 마저 발표하겠습니다.”

어머니의 권유는 강요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들을 생각해 해주는 제안에 가까웠다.

그녀는 아들이 바라는 것을,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기민하고 빠르게 알아차렸다.

“아티스트 분들께서 자주 불편을 겪는……. 좁은 음악 작업실 문제는 사옥 이사 계획 때문에 증축이 어렵다는 결론이 났고요.”

천진섭은 특별해지고 싶었다.

여러 명 중에 하나, 수백 중에 하나, 수천, 수만, 수백만 중에 한 사람.

“대신 작업실은 근처 외부 스튜디오와 계약을 맺어 일 년 이상 대실할 계획을 세워서, 업체 선정을 진행 중입니다. 이번 달 내로 마무리될 예정이니 그때 다시 공지를 드릴게요.”

평범하지 않아서 사랑받는 사람.

“그리고 7월 초에, 스테리나인…….”

아이돌.

“……할 계획입니다”

팀이라서 안심이었고, 팀이라서 미칠 것 같았다.

아홉 중 하나가 되면 가장 빛나지 않는 존재가 자신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진섭아, 왜 멍때려.”

“……아.”

새로운, 특별한…….

자신밖에 모르는 어떤 비밀이.

그를 정신 들게 했다.

“우리 7월에 컴백한대. 정규 1집.”

그 비밀의 주인공이 옆에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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