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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80화 (180/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80화

32. My Turn(8)

그리고 ‘다스린다’라니, 표현이 제법 이질적이었다.

미션은 초자연적인 문제고, 남소리 선배님은 앞서 이 거대한 우주의 이상 현상을 태풍이나 홍수 따위의 자연재해에 빗대지 않앗던가.

솔직히 나로서는 이 제안이 ‘사람 힘으로 자연재해를 극복해 보자’라는 말로 들렸다.

따져서 물어봐야 하는 것도 굉장히 많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어떻게 미션을 다스릴 방법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에요. 연결이 이상합니다.”

“알아듣기 쉽게 비유하자면, 의헌 씨는 지금 방어력이 높은 상태입니다. 게임에 나오는 탱커 알아요? 탱커처럼.”

사장님이 현미경 렌즈처럼 생긴 곳에 눈을 댄 채로 웅얼거렸다.

“그리고 아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미션 체계에는 특징이 있거든요.”

“특징이 여기서 더 있어요?”

“예, 보통 상태창이나 미션에 정서적으로 의존할수록 악화되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이 중요한 이야기를 왜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은근슬쩍 꺼내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요컨대 전략은 이런 겁니다. 방어를 유지하고 의존도는 낮추는 것.”

이른바 버티기 전략이었다.

사장님의 말대로 게임으로 따지자면, 공격력을 포기하고 방어력과 회피율을 높여 오래 살아남는 전술.

아예 전쟁으로 생각하자면 요새에 성벽을 세우고 그 안에서 병력을 정비해 침입자를 막아낸다는 계책일까.

어느 쪽이든 장기적으로 갈수록 내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전략이었으나……. 그보다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의존도를 낮춘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맨몸으로 승부하는 거죠. 예를 들어 미션을 확인하지 않고, 알림을 무시하고,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는 식으로요.”

사장님이 기계에서 눈을 떼고 굽은 허리를 곧게 폈다.

다만 듣자 하니 사장님의 설명에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의아한 개념이 하나 있었다.

“스테이터스 포인트가 뭔데요?”

“예?”

“네?”

낯선 제안과 낯선 단어가 연달아 등장해서 당황한 나.

그리고 당황한 나를 보고 당황한 사장님.

우리 둘의 대화는 물음표 일색이었다.

“레벨업 해보신 적 없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까지 스테이터스 관리를 어떻게 하셨는데요?”

“그냥 봤는데요. 보는 용도 아니에요?”

“예?”

“네?”

바보들의 화음이 한 번 더 반복되었다.

“퀘스트를 달성하고, 경험치를 쌓고, 레벨업을 하고, 상태창을 열고, 잔여 포인트를 능력에 투자하고, 성장하고! 당연하잖아요!”

“그런 게 가능해요?”

“아니, 하려고 하지 마세요! 이제 하지 말자는 이야기니까. 아니?”

“……설마 저의 특이한 점이 이걸까요?”

“이, 이건가. 아니, 진짜, 근데, 잠시만.”

깨달음을 얻었다.

아무리 기인이어도 현대인이라면 당황할 때 ‘아니, 진짜, 근데’부터 나오는구나.

“그러면 지금까지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은요?”

“방송 보셨어요?”

“당연하죠. 그러면 그게 다 보정 없는 실력이라는 말입니까?!”

“사운드 후보정은 방송국에서 해줬겠지만…….”

“세상에 맙소사.”

더 이상 대화하면 바보 같은 행동에 쿵짝을 맞춰주는 꼴이 될 것 같아서 나는 슬쩍 말을 아꼈다.

입을 벌린 채로 이마에 손을 올리며 드라마틱하게 놀란 사장님이 정신을 추스르기까지는 몇 초나 더 걸렸다.

“진정했습니다.”

“다행이네요. 방금까지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래요.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상태창을 이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페널티 영향이 이렇게 적을 수는 없습니다. 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어요.”

사장님이 삐질삐질 흘린 땀을 휴지를 뽑아 닦고는 말을 이어갔다.

“의헌 씨가 해야 하는 일은 상태창과 미션을 최대한 무시하며 지금 하시는 일을 이어나가는 일이죠.”

“깔끔하게 정리되네요. 흠…….”

“미션을 무시하게 되면 실패나 벌칙이 쌓일 수도 있고, 사실은 이 방법으로 미션 시스템을 격파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미리 경고하죠. 이제까지 성공한 사람은 물론이고 시도한 사람조차 없습니다.”

방금 전까지 흥분해 떠들던 것이 무색하게 분위기가 삽시간에 진지해졌다.

이 시점에서 나는 실패해 원점으로 돌아간 이후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원래대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스테리나인이 해체한 미래로의 귀환을 의미했다.

<데프아>도 <밀제트>도 없고, 천진섭도 김지상도 탈퇴한 데다가, 팀도 해체되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실패하고 돌아가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5년이라고 했다.

또한 나는 이미 첫 미션을 받은 뒤로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어렵게 드리는 제안이고, 실은 제안보다 부탁에 가까운…….”

“해볼게요.”

“……거절하셔도 어쩔 수 없지만……. 예?”

“그 제안, 받아들이겠다고요.”

나는 사장님이 기계 장치를 다루는 모습을 옆에서 보다가,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으며 말했다.

내 흔쾌한 승낙에 오히려 상대가 더 놀란 것 같았다.

“……진심으로요? 이렇게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닌데요?”

하라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물어올 줄이야.

더 고민해 보라는 말 같아서, 나는 잠시 말없이 뒷목을 주무르고 근처에 있는 책장을 눈으로 살폈다.

세로로 세워진 책 제목을 찬찬히 읽어내고 무슨 기준으로 정렬되어 있는지 가늠해 보았다.

신문이나 인터뷰 파일, 논문, 기술을 다루는 방법, 철학 이론 등의 자료가 많았는데 문학책도 드문드문 꽂혀 있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옆표지가 하나 있었다.

시집 『프리미엄 카페 라떼』.

연갈색 배경에 세로로 적힌 흰 글자.

“여기 시집도 있네요.”

“휴게실도 겸하고 있다 보니까요. 동료들이 놓고 간 책인데, 문제라도 있을까요.”

“아……. 아니에요, 그냥.”

아빠 책을 여기서 보니까 반가웠다.

“있잖아요, 제 태몽은 아빠가 꾸셨대요.”

불현듯 그 말로 운을 떼자 사장님이 기계장치를 다루던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가만히 책상 의자에 앉는 것이 시야 끝에서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책장에 꽂힌 시집을 집어 들었다.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신 스승님께 화분을 받는 꿈이었다고 하더라고요.”

화분에 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집에 두고 키우니까 그 나무가 너무 빠르게 자랐다는 거예요.

가만히 두면 화분이 깨지고 뿌리가 죽을 것 같아서, 며칠을 끙끙 노심하며 앓다가 아버지는 결국 화분을 안고 뒷산에 갔대요.

뒷산 해가 잘 드는 공터에 아빠는 화분을 내려놓았어요. ‘여기서 쑥쑥 원없이 자라라’ 기원하며 옮겨 심어주기로 했대요.

그 공터가 참 흙도 곱고 하늘도 예쁘고 바람도 살살 불고 시냇물도 가까이에서 흘러서 너무 좋은 곳이었다는데…….

아버지로서는 나무를 옮겨 심는 게 이상하게 아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손이 흙범벅이 되어 펑펑 울었다는 거예요.

결국에는 잘 심어주었죠. 그리고 몇 달 후인지 며칠 후인지 아니면 다음 날인지, 아빠는 그 산에 다시 올라가 봤대요.

하지만 아무리 산을 오르고 그 공터를 찾아봐도 심어놓은 나무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어요.

그냥……. 다시 가 보니까 나무가 너무 많았대요. 공터였던 장소에…….

온 산이 죄다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아빠는 자기가 심은 나무를 알아보지 못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 나무를 찾으려고 했대요.

“같은 자리를 돌고 돌고 또 도는데 갑자기 발에 뭐가 턱 걸리는 기분이 들었대요.”

나무 뿌리였죠.

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뿌리가 서로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봤대요.

기어코 아빠는 그 중 가장 굵은 뿌리를 타고 올라가며 출발점을 추적해 보려고 했어요.

그러자 가장 큰 나무가 한 그루 나왔는데, 아빠는 그 나무가 당신이 심은 나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셨대요.

“저희 아버지가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 꽃이나 나무 종을 잘 아시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 나무는 무슨 종인 줄 알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어요.

하염없이, 하염없이 처음 보는 나무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을 관찰하다가 아빠는 꿈에서 깨어났어요.

그게 제 태몽이었죠.

“제가 잘하는 것이나 특징할 만한 점 말이에요,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일지도 몰라요.”

“…….”

“그냥 잘 사는 거요. ‘끄떡없는 것’.”

본인 입으로 말하자니 민망한 점이 없지 않았지만…….

나는 시집을 몇 페이지 넘겨보다가 다시 제자리에 꽂아 넣었다.

“저는 실패해 돌아가더라도, 잘 지낼 것 같아요. 조금 슬프기는 할 테지만.”

잘 찾아본다면 다른 기회를 잡게 될 수도 있었고, 먹고살 만한 재주는 있었다.

나는 결국 언젠가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하지만 그게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말은 아니죠.”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시간을 되돌려 도착한 지금이 좋았다.

어째서일까.

과거에 비해 성취해 낸 것이 많아서? 더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주니까?

무대에 더 많이 설 수 있어서? 아니면 새로운 인간관계 덕분에?

모두 정답이었지만 정답이 아닐 수도 있었다.

“요즘은 활동하는 게 꽤 즐거워요. 여유가 생겨서 그런가.”

이제가 되어서야, 나는.

나를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러니 주변을 살피고, 받은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이들을 위하고, 사랑하고,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따라서 나는 여기에서…….

어린 날에 아껴주지 못한 것들에게 더 표현해 주고 싶었다.

“가볍게 결정한 게 아닙니다. 도박도 아니고요.”

내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장님이 제 눈가를 꾹 누르면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요청해오기를…….

“그 반지를 잠시 제게 주시면…….”

“가지고 계시잖아요.”

“이거 말고요, 지금 착용하고 계신 거요.”

무슨 일이냐고 하니까, 서로 연락과 확인이 용이하도록 일종의 프로그램을 내 반지에 설치해준단다.

데뷔 초에 팬에게 받은 반지라서 내가 망설이자 오랜 소지품이라면 오히려 말을 잘 듣는다고 좋아했다.

“일방적인 알림을 최대한 차단하고, 위험 상황이 발생하면 제게 연락이 오는 구조입니다. 핫라인인 셈이죠.”

“내 인권…….”

긴장이 한 차례 풀렸을 때쯤 드디어 천진섭이 안쪽 방에서 나왔다.

녀석은 찾아낸 오렌지 주스 병(내용물은 주스가 아니겠지만)을 사장님께 건네주며 의연하게 말을 걸어왔다.

“다 끝난 거 맞지?”

“기다렸냐.”

“당연하지! 둘 다 말이 너무 길어.”

사장님이 오렌지 주스 색 액체를 현미경 닮은 기계에 쪼르륵 따르며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두 개 합쳐서 처리에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습니다.”

나는 시계를 힐끔 보고 질문했다.

“그러면 저희 방탈출 하면서 기다려도 돼요?”

+ + +

방탈출 사장님과의 대화가 예상보다 훨씬 늦어져 다음 약속까지 시간이 빠듯했다.

어플로 예약해 놓은 택시가 도착하고 둘이서 나란히 뒷자리에 탔다.

“이거 인리얼에 찍어서 올려야지.”

천진섭은 재미있게 놀고는 무척 들떠서, 탈출한 뒤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 천재인가 봐.”

“그래, 좋겠다.”

머리를 쓰느라 힘들어서 기운이 빠진 나와 달리 천진섭은 텐션이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택시 안이라는 특징 때문일까, 그것도 오래 유지되지는 않았다.

곧 녀석은 사진을 손에 쥔 채로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나도 비밀 이야기 하나 할래.”

천진섭의 웃는 얼굴이 서서히, 평소의 굳은 표정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왜, 무슨 말을 하려고.”

“형 그거 나한테만 말한 거 맞아?”

“지금은 그렇지.”

“흐음…….”

잠시 말이 없던 천진섭이 꺼낸 이야기는…….

“나 어머니가 아이돌 그만하라더라.”

충격적인 비밀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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