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79화
32. My Turn(7)
“잠시만요…….”
갑자기 스케일이 커지려는 대화에 나는 다급하게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 타이밍이면 시끄럽게 데시벨을 높여서 뭐라도 말을 걸어와야 하는 천진섭도, 눈치를 보는지 이상하게 조용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누가 조용하든 말든 그 상태를 살필 만한 정신이 없었다.
과부하가 일어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나는 질의할 내용을 신속히 다시 리스트업 해보았다.
“한 명이면 우리나라에서인가요, 아니면 지구에서? 정확한 수치입니까? 그전에 미션을 따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데요?”
“전 지구를 의미합니다. 요즘은 뭐가 많이 발전해서 카운트하는 방법이 생겼어요.”
질문과 대답을 하나씩 핑퐁하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을 모조리 말했는데, 답은 차근차근 돌아왔다.
그리고 사장님은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물음에 답하기 전, 뒤를 돌아 책장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전 사람들은…….”
말하는 도중 뜸을 들이던 사장님이 책장에서 무언가 찾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파일을 철해놓은 책이나 서류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그 정체는 스크랩북이었다.
표지 없는 스크랩북의 한 페이지가 팔을 벌리고 우리 앞 테이블에 놓였다.
사진, 신문, 종이봉투, 인터넷 뉴스 기사 등이 짧은 메모 따위와 함께 덕지덕지 붙은 페이지였다.
“……실패했죠.”
사장님은 이어 종이봉투를 열어젖혀 그 안에 들어 있던 사진 몇 장을 꺼내놓았다.
전부 인물 사진으로 그 수는 십수 장이었다.
한 사람 얼굴에 동그라미 표시가 된 가족사진, 여행지에서 혼자 찍은 폴라로이드 인화지, 팔짱을 끼고 웃는 양복 입은 중년, 국기에 대해 경례하는 운동선수 등…….
얼핏 보면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유명해 보이는 사람들마저 얼굴이 낯설었다는 의미다.
“저희가 파악한 국내 사례는 이 정도입니다.”
사장님은 테이블 위 사진을 한 장씩 앞으로 내밀며 설명을 시작했다.
“다들 성취를 잃었죠. 원래대로 되돌아갔다고 해야 할까요.”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라는 미션을 받았던 사람은 음악대학을 졸업하기 직전 교통사고로 연주하는 방법을 포함해 모든 기억을 잃었다.
기적적으로 부상을 극복한 체조선수는 올림픽의 문턱 앞에서 부상이 벌어져 평생 후유증을 달고 살게 되었고.
재벌가의 숨겨진 사생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업을 불리다가 가족의 배신으로 검찰에 기소되어 현재 교도소에 복역 중이란다.
기적이 일어나기 전 혹은 처음보다 더 나쁜 상태로 되돌아간 것이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천진섭이 손을 뻗어서 테이블을 뒤덮은 사진 중 한 장을 집어들었다.
“이 사람…….”
사진 속 인물은 과거에 포기한 재능을 살려 의류 사업에 종사하게 되었지만, 해외 진출 미션 실패로 되돌아갔다는 50대 여성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사진을 엄지와 검지로 확대하려고 하던 천진섭이 핫, 하고 손을 멈추었다.
녀석은 괜스레 큰 소리로 헛기침을 하고는 사진을 내게 건네주었다.
“아는 사람인 것 같아.”
순간 열이 오른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패션 쪽 일하시던 분 맞아. 어머니 친구분이셨어.”
“……어쩐지 과거형이네.”
“절친은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연을 끊기도 했고.”
이 친구분의 사연도 기구하기 짝이 없었다.
이분은 남편이 사업 빚을 지고 이혼한 뒤 몇 달쯤 지나 음주운전자의 트럭에 치이는 사고가 났단다.
몇 주나 가사 상태에 빠져서 진섭이의 어머님도 걱정이 많았는데, 문제는 이분이 깨어나고 난 뒤로 태도가 묘하게 이상해진 것이다.
불시에 나타나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 증상을 주로 보였는데, 천진섭이 사는 집에도 자주 찾아와서 진섭이도 오며 가며 들은 말이 많다고 한다.
“……무슨 말을 하셨는지 기억나?”
“자신이 미래 패션 트렌드를 알고 있다고, 생산 라인을 늘리기로 했는데 이상하다고, 그리고 이대로는 ‘승혁 씨’가 얼굴도 나이도 달라진 자기를 찾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어.”
“승혁 씨는 누구신데.”
“뭐라더라……. 거래처? 협력사? 젊은 사장인데, 사귀는 사이였대.”
승혁 씨를 찾아내서 당신의 연인 ‘인나’가 여기 있다고 알려야 한다고, 친구분은 간곡히 말했다.
그러나 의아함을 느낀 천진섭의 어머님이 수소문을 해봤는데, 친구분이 말씀하신 ‘승혁 씨’라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승혁 씨의 회사나 사업품, 비슷한 외형을 가진 사람도 전무했다.
그리고 또한……. 그 친구분의 이름도 결코 ‘인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려주어도 자칭 인나 씨는 점점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승혁과 인나의 사랑 이야기에 심취했다. 마치 병을 앓는 사람처럼.
“그러다가 언제 내 방에 찾아와서 ‘이 방이 내 방이었는데’ 같은 말을 해서 다시는 찾아오지 못하게 쫓겨났어. 그게 끝이야.”
선을 넘은 행동에 진섭이의 어머님께서 불같이 화를 내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다른 존재가 되고, 타인으로서 성취를 거두었다고 착각에 빠진 건가.
‘따지고 보면 나와는 케이스가 다른 것 같은데.’
어느 정도 맥락은 눈치챘지만, 여전히 나로서는 알기 힘든 의아한 부분이 많았다.
나는 정확한 해명을 듣고자 사장님께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당시에는 저희도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미숙했어요. 안내와 위로를 제때 드리지 못했죠.”
사장님이 무안한 듯 인중을 문지르며 부연했다.
“그때 당사자나 주변 분들이 겪은 혼란을 생각하면 저로서도 마음이 아픕니다.”
“이전에 계셨던 모든 미션 수행자들이 다 그렇게 된 건가요?”
“지금 말씀하신 분은 상태가 굉장히 나쁜 편입니다만…….”
이번에도 태연한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사장님은 말끝을 흐렸다.
“미션에 실패 벌칙이 붙기 시작하신 분들은, 사실. 예. 곤란하게 되었죠.”
깔끔한 긍정에 상황을 잘 모르는 진섭이의 낯빛조차 창백해졌다.
천진섭을 보면 내 얼굴은 또 얼마나 새하얗게 질려 있을지 대략 짐작이 되었다.
“십 분만 생각 좀 할게요.”
나는 마침내 타임아웃을 선언하고 소파에 등을 파묻고 생각에 잠겼다.
단기간에 지나치게 많고 충격적인 정보를 접해서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내가 해야 되는, 해야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우선 돌아가서 예희에게 외삼촌 이야기를 전하고 계속 추적할 것인지 물어보는 것.
균형 이론의 발견에 관해서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
그다음에는 여기서 사례로 소개된 사람들의 근황을 확인하거나, 사건 관련 자료를 사장님께 요청해 보고 그 사건들을 추가로 더 조사하는 것도 방법일 테다.
‘상태창이 처음 등장했을 때나 페널티를 운운할 때에도 이 정도로 위기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비로소 ‘실패’의 무게가 심각하게 체감되었다.
실패한 이후를 떠올리면……. 지금과 비교해 썩 잘 풀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저, 생각하는데 죄송합니다만.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그때 사장님이 어렵게 운을 다시 떼었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이야기해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미션 등장과 게임 오버에 평균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은 5년 정도입니다.”
“좋지 않아요.”
“대개는 12월 내로 게임 오버를 겪게 되지요.”
“그 말을 들어도 여전히 울적합니다…….”
내가 중얼거리자 천진섭이 본능을 참지 못하고 지적했다.
“왜 이렇게 순식간에 늘어졌어.”
“진섭아, 형 힘들어하잖아.”
“우우…….”
천진섭은 그렇게 찌그러졌지만, 사장님은 꿋꿋했다.
“정정하겠습니다. 대부분 12개월 내로 미션 실패가 누적되어 유혈 사태가 일어나요.”
“예?”
“보통은 사고가 발생하는 편이죠. 안전사고라든지 교통사고, 드물게는 범죄 사건도 있고.”
좋은 소식이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과거 어떤 경우와 비교해도 여기 의헌 씨만큼 페널티가 미미한 경우가 없었어요.”
“아…….”
“실패가 이렇게 천천히 쌓이는 경우 역시 없었고요.”
그쯤 듣고 결정했다.
“좋습니다. 생각이 절대 십 분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으니 나머지는 집에 가서 생각해 볼게요.”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셨을까요?”
“혼란만 얻었지만 괜찮습니다. 남은 질문이 있으니까 그것부터 여쭤봐도 될까요.”
목록 맨 마지막의 질문이 남아 있었다.
드디어 나는 주머니에서 감람석 반지를 끄집어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천진섭이 ‘상태창’을 본 뒤로 보석에 한 줄 더 금이 가게 된 반지.
반지를 보게 된 사장님의 눈썹이 격렬하게 들썩거렸다.
“이 반지, 한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사장님이 반지를 집어들어 눈 가까이에 대고 천천히 살폈다.
“어디서 났어요?”
“아마 고성수 씨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용하신 적은요?”
“열람이라면 두 번이요. 제가 한 번, 이 친구가 한 번.”
묻는 말에는 내가 대표로 대답했고, 진단 결과는 즉시 나왔다.
“오염이 조금 있네요. 손상도 그렇고. 마음만 같아서는 수거하고 싶습니다만…….”
“저도 최소한의 확인 용도로 가지고 있고 싶어서요.”
“네, 역시 그렇겠지요. 그러면 잠시……. 두 분? 약품을 찾는 것을 좀 도와주시죠.”
그리고 사장님은 우리 둘에게 각자 다른 심부름을 주었다.
나는 근처 냉장고로, 천진섭은 안쪽 방에 있는 선반으로 가야 하는 일이었는데, 진섭이가 등을 돌려 멀어지자마자 사장님은 내 옆으로 슬쩍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의헌 씨, 설명을 제가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요.”
“어떤 설명을요?”
“흠, 요지는 의헌 씨가 미션 진행이 느리다는 말이 아닙니다.”
옆방에서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가 속닥속닥 귓가에 울렸다.
왠지 나도 덩달아 음량을 낮추고 대답하게 되었다.
“그러면……. 제가 남들보다 더 미션을 잘 성공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성취율이 높은 건 맞지만, 그 이야기는 아니지요. 원인 이야기입니다. 의헌 씨만의 체질이나 형편, 행적, 환경 등의 사유로 같은 상황에서 받아야 하는 벌칙의 강도가 굉장히 약해진 것 같다는 말입니다. 남들이면 벌써 병원에 실려갔을 일인데 두통 한 번으로 끝났다고나 할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증거가 있어요?”
“사례가 있지요, 그것도 꽤 다양하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사장님은 현미경처럼 생긴 장치의 플레이트 위에 반지를 집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미션이 갑자기 의헌 씨 앞에서 이상현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의헌 씨의 특징으로 인해 페널티가 본래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가설입니다. 소위 말하는 돌연변이, 아주 특별한 재능, 특이 체질이라는 거죠.”
“……제가 왜요?”
“그러게요. 장점이나 특이하게 자랑할 만한 거, 뭐 없어요? 출생의 비밀이라든가.”
고민해 봤다. 출생의 비밀은 없고, 나의 장점이면…….
“춤은 현직 아이돌 중에서는 꽤 상위권이죠……?”
“……?”
“아니면 제 인생 최고의 아웃풋인 서바이벌 1위 경력?”
“이걸 물어본 게 아닙니다.”
“어렵군요……. 제 의지로 기회를 얻은 게 아니라는 점도 특이한 요소 아닐까요.”
내가 무색 투명한 액체가 담긴 페트병을 건네주며 추측을 덧대자,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무던한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원인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용건이 있어서 꺼낸 말 같았다.
“의헌 씨, 제안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역시나.
“일단 들어보죠.”
“으음, 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사장님은 장치 한쪽을 열어 페트병 속 액체를 아주 약간 부었다.
미스터리나 판타지의 영역이라고 생각한 장비를 저렇게 현대적으로 생긴 장치로 처리하다니…….
일 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그 전이었다면 이런 세계 따위 보여줘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미션을 다스려보는 겁니다.”
사장님이 말했다.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하시는 일만 열심히 하시면 되니까.”
“왜 이런 결론이 나는 건가요?”
“그야 본인 장점을 아이돌 활동이라고 하시니까.”
“이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요?”
아니, 심지어 나는 진심으로 고민하고 말한 건데……. 뭔가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