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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78화 (178/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78화

32. My Turn(6)

날카로운 지적에 나는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진지한 분위기를 잡았다.

어느 모로 보나 괴짜인 방탈출 사장님은 일관적으로 튀었기에, 침착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였다.

상대가 아군이든 적군이든 나는 집중해서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의 정보를 얻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저, 고성수 씨 이야기를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내가 질문하자 사장님은 턱수염을 손톱으로 긁적이고는 이야기를 꺼냈다.

“특이한 친구였죠. 마지막으로 본 것이 벌써 십 년도 전인 것 같은데.”

“십 년까지는 아닐 거예요.”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중요한 건 시간이 꽤 흘렀다는 점이고.”

즉각 말을 정정하느라 깜빡했는데, 특이하기로는 이 사람도 만만치 않았다.

“저도 당시에 지인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수사가 잘된 것은 아니지만.”

“기억하고 계시는 일이라도 있을까요.”

“글쎄요. 주목할 것은 고성수 씨, 그러니까 성수가 성인 남성이었다는 점이죠.”

사장님은 이름을 막역하게 부르는 친구에 관해 말하는 것치고는 냉정하게 사건을 회상했다.

예희의 외삼촌 고성수는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도 아니었고, 평범하지 않은 버릇과 행동 따위로 주변과 다소 트러블이 있었으나 폭력 사태를 불러올 만큼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았다.

친구나 가족, 지인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빌린 적도 없었으며 거액의 생명보험 역시 전무.

게다가 말마따나 성인 남성이었으므로 쉽게 납치나 유괴를 당할 만큼 어리거나 약하지도 않았다.

즉 경찰은 단순 가출이나 도피로 사건을 취급했고 따라서 수사 우선 순위가 밀려났다.

그 사건이 미제로 남게 된 것 역시 한참 전이고 그 상태로 어영부영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돌아가신 걸까요.”

“아, 살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

“여기서부터는 공식적인 정보는 아니니까 참고만 해요.”

당시 실종 사건을 경찰이 수사할 때에도 실종자의 ‘생활반응’이 관찰되었다는 말이 있었단다.

여기서 말하는 생활반응이란 사라진 사람의 카드 사용, 현금 인출, 병원 진찰, 핸드폰 요금 이체, 출국 등 모든 기록 및 이력을 의미하는 용어다.

당연히 경찰은 단서 삼기 위해 이 기록들을 전부 조사했는데, 이 반응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평소 생활할 때보다 훨씬 띄엄띄엄했으나 실종 이후로도 분명히 기록이 존재했다.

흉기 구매나 목돈 출금 따위의 특이한 결과도 없고.

그래서 경찰은 실종이 아닌 잠적으로 사건을 보았다고 한다.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가족들에게는 알렸을 거예요. 그러니까 한참을 그렇게 찾다가 포기했겠죠.”

어머니와 사이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던데, 이런 정보가 공유가 되지 않은 것도 그 맥락일까.

아니면 너무 어릴 때라서 듣고도 잊었거나 알려주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고도 추측이 되었다.

“최근에 메일로 연락을 받고 아는 관계자에게 물어 반응을 다시 스캔해봤는데요.”

“반응이 있었나요.”

“최근은 아니고 몇 년 전이지만, 있긴 있었습니다.”

“아…….”

이 이야기를 어떻게 예희에게 정리해 전달해줘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단순히 가출로 가족을 버리고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평화롭게 생활하고 있다…… 라는 결론이라니.

본인을 찾아서 물어보지 않는 이상, 어느날 갑자기 다 버리고 집을 나간 이유를 알 수도 없고.

나도 모르게 깊게 한숨을 내쉬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나라도 좋은 면을 봐야겠다.

‘살해당해 어디 몰래 매장당한 건 아니라니까 그래도 다행일지도 모르겠네…….’

그 다음에는 고성수 씨에 관해 이어지는 질문을 몇 가지 더 건네어보았다.

“메일을 꾸준히 보낸 것은 그 이유에서?”

“사실 반쯤은, 받는 사람 이메일 주소를 수동 처리하다가 실수한 겁니다.”

“하이고.”

인간아…….

“그 분도 특이한 분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이야기도 좀 더 해주세요.”

“어떤 점을 말씀하시는 거죠?”

질문을 듣고 나는 사물함에 보관하지 않고 슬쩍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냈다.

오늘을 대비해 모바일 메모장에 적어놓은 질문 리스트가 있었다.

내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본격적으로 질의응답을 시작하려고 하니, 사장님은 물론이고 천진섭도 놀란 듯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요. 좋은 일, 착한 일이라는 게 대체 뭔가요.”

핸드폰이 들어있던 주머니 반대편에는 감람석 반지가 들어 있었고, 이 반지가 이어준 사람은 셋이었다.

하나는 나를 이곳에 데려온 ‘천사’ 남소리 배우였고, 다른 하나는 강주찬이 어릴 때 만난 동네 할아버지, 마지막으로는 예희의 외삼촌까지.

남소리 선배님이야 내 존재를 알고 말을 아끼는 편이니까 제외한다고 치자.

그러나 강주찬이 만난 할아버지는 강주찬에게 ‘친절하게 살아라’라고 말했고, 예희의 외삼촌도 특이한 취미가 있었다.

그 취미는 공공단체에 민원을 제기하고 불편을 고발하는 일로, 그분께서는 시민을 위한다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꽤나 느끼고 있던 모양이었다.

또한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말한 내용은……. 나쁜 일 뒤에는 좋은 일이 발생한다는 것.

“아, 그거 말이지요!”

사장님이 과장된 동작으로 제 무릎을 탁 두드리더니 말했다.

“되게 오래전부터 있었던 속설이에요. 쉬운 말로 균형 이론이라고 하죠.”

그리고 사장님은 양손을 기역 자와 뒤집어진 기역 자로 굽혀서 두 손끝을 맞댔다.

“개인에게는 운의 총량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사장님의 왼손이 위로 올라가고, 오른손이 그만큼 아래로 내려갔다.

오르내리는 행운의 양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운 좋은 일이 일어나면 운이 나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이후 사장님이 아래로 내려간 오른손을 옆으로 슥슥 움직여 강조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떨어진 운을 보충해주는 것이 바로 선행이다.”

“오…….”

“굉장히 동양의 고전 철학 사상 같죠.”

“스터디하신 건가요.”

물어봤더니 사장님이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전문성 없이 그냥 해본 말이라는 뜻 아닌가?

손동작을 거두며 사장님은 덧붙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속설입니다. 기준도 애매하고, 증명하기도 쉽지 않고.”

“그러네요. 선행이나 행운도 본인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반박하는 사람도 많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긴 해요.”

하지만 그 외국인 할아버지나 예희의 외삼촌은 균형 이론을 신뢰했다는 것이다.

선행은 본인에게 돌아오고, 불행을 막아준다는 이론.

“듣다보면 조금 징크스 같은 느낌으로 들리는데.”

천진섭이 나에게, 그러나 사장님도 들릴 만한 음량으로 말했다.

그에 대한 대꾸는 내가 아니라 사장님이 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징크스 있으세요?”

“저는 딱히 없는데 신상품 포장 뜯기 전에는 꼭 목욕재계를 한다는 사람이 떠오르네요.”

“……주찬이 형.”

천진섭이 중얼거렸다.

“우리 멤버 중에서는 무대 오르는 날에는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고 물만 마시는 애도 있고요.”

“영하 형……. 그러면 건강 안 상해?”

“내 말이 그 말이다. 음식 먹으면 체할 것 같대.”

그 이론을 징크스나 본인만의 행동 방침이라고 여긴다면 또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성수는 그 법칙에 지나치게 몰입한 면이 있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궁금해할 것 같아서 천진섭에게도 슬쩍 사례를 알려주었더니, 진섭이는 소리없이 얼굴로 험담했다.

“어쨌든……. 행방은 잘 모르신다는 거네요.”

“좋은 소식을 들려드리고 싶었는데, 안타깝습니다.”

사장님이 고개를 숙이는데 이 인사를 받을 대상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하여간 나는 질문 리스트에 메모해 놓은 다음 문항을 읽었다.

여기서부터는 예희에게 심부름을 받은 용건이 아니라 내가 알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다음 질문은……. 이 스터디 그룹의 정체는 또 대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야기는 이미 전해 듣지 않았어요? 기적과 이상현상을 연구하는 민간의 비밀 단체입니다.”

너무 당당해서 천진섭 눈치가 보일 지경이었다.

일부러 진섭이의 시선을 외면하며 나는 다음 질문으로 순서를 넘겼다.

“저는 거기서 유명인인가요.”

“예의주시하고 있죠.”

“어째서요?”

방탈출 사장님은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는 않았다.

대신 ‘잠깐만요’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가 서랍을 열어서 무언가 꺼냈다.

〈데프아〉를 마무리한 뒤로 반년동안 몇 번이나 꾸준히 보아온……. 감람석 반지였다.

반지는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과 달리 장식이나 보석도 멀쩡하고 온전하게 새 것처럼 생겼다.

익숙한 물건이 등장하자 오히려 내 옆에 앉은 천진섭이 놀라서 어깨를 움찔 떨었다.

안심하라는 의미로 손등에 손을 올려 잡아주자 떨림은 오래지 않아 멎었다.

“……페널티 대가를 이미 지불하셨군요?”

반지를 착용하고 나를 응시하던 사장님이 대답 대신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네, 조금 됐어요. 한 달이 넘은 것 같네요.”

“어떻게 되셨나요? 상처가 남았나요?”

“아뇨, 멀쩡합니다.”

나보다 더 초조해하는 태도에 나는 손바닥을 보여주며 내게 일어난 일을 최대한 자세히 묘사했다.

상태창이라는 것이 나타나서 손을 맞댔더니 불에 타는 것 같은 뜨거운 감각이 느껴지더니 사라졌다.

피가 약간 흐른 것도 같았는데, 현재로서는 화상 자국은 물론이고 베인 상처도 없다.

“다쳤어?!”

“조금 아프다가 말았어.”

“으으으.”

어쩌면 내가 겪은 것 이상으로 꼼꼼하게 아픈 척을 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천진섭이 진저리를 쳤다.

그런데 호들갑을 떠는 진섭이와 달리 사장님은 꽤나 심각한 얼굴이었다.

“왜 눈여겨보고 있는지를 여쭤보셨죠, 의헌 씨.”

내가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큰일이 없었다는데 반대로 이렇게 심각해진다는 게 의아했다.

“먼저 미션이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를 드려야겠군요.”

“혹시 징크스 이야기랑 관련이 있다거나……?”

사장님은 양팔을 들어 엑스 자로 만들어 천진섭의 질문을 부정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큰 동작으로…….

“둘은 완전히 별개입니다. 그보다는 행운을 만들어내는 방법…… 에 가까울까요.”

그 말을 듣자 불현듯, 아주 처음에 ‘천사’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천사가 내게 ‘미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힌트나 가이드라인이라고 했던가요.”

“맞아요! 원래는 그겁니다. 힌트, 가이드라인, 팁.”

이번에는 사장님이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 힌트가 미션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꽤 최근이에요.”

“……얼마나요?”

“십 년쯤 되었을까요.”

인류 역사와 행운, 기적이 함께했다고 생각해보면……. 십 년 전도 최근이 맞는 것 같았다.

고성수 씨의 실종과 미묘하게 시기가 겹치는 듯했으나, 나로서는 사장님의 시간 감각을 완전히 신뢰할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 일만 생각해 보아도 그랬다.

약속에 늦은 데다가 회상에서 언급되는 시간 개념도 한두 번 틀린 게 아니었으니…….

“미션을 수행한 사람은 그동안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지금은 몇 명인데요?”

“정의헌 씨 한 명입니다.”

…….

단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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