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77화
32. My Turn(5)
스테리나인이 미래에 어떤 모습인가, 성공할 수 있는가.
실로 무척 곤란한 질문이었다.
그야 우리는 음악방송 1위도 한 번 하지 못하고 해체했으니까.
멤버는 둘이 탈퇴했고, 활동 중단이나 인원 변경도 잦았으며, 그 탈퇴 멤버 중에는 천진섭도 있었다.
탈퇴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고(애초에 순탄한 탈퇴라는 단어의 조합 자체가 낯설다), 일 년에 한 번씩 컴백하다가 해체했다는 말을 어떻게 쉽게 꺼낼까.
으음.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좋은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히 우리가 잘 되는 느낌은 아니야.”
그렇게 말하자 진섭이는 순식간에 김이 새서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여기서는 사실을 무기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건 〈데프아〉도 〈밀제트〉도 출연하지 않았을 때의 미래라서 정확하지는 않다.”
“뭐야, 그러면 미래 예지가 전혀 아니지 않아?!”
“지금 상황에서는 사실 그렇다고 할수있지…….”
진실을 알려주었는데 오히려 천진섭은 더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점점 더 대화가 미궁으로 빠지려는 것 같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이해를 도우려 애썼다.
“지금은 이미 이것저것 선택한 다음이니까.”
“……나 이런 거 영화에서 본 것 같아.”
“뭔데.”
“예전에 그런 영화가 있었거든. 성공한 사업가가 우연히 첫사랑을 재회하게 되어서, 무슨 새로 개발 중인 과학 장치를 사용해서 첫사랑이 없는 미래와 첫사랑과 무사히 연애하는 미래를 다 겪어보는 내용. 주인공은 그러다가 결국 일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했어. 형도 이런 거 아니야?!”
……?
“그러니까 자칫 버려질 수도 있었던 우리가……. 냉정한 사업가 정의헌을 흔든 거지…….”
“아니……. 전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사랑보다는 일이야.”
굳이 따지자면 내가 너에게 포기당한 쪽이었다고도 말해주려다가 말았다.
“그러면 뭔데.”
슬슬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해졌는지 천진섭이 미간에 힘을 주고 나를 노려보았다.
손가락으로 녀석의 미간을 문질러 펴주(는 동시에 얼굴에 손대지 말라고 잔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대답할 말을 고민했다.
진섭이는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와 과거를 바꾸었다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왜일까.
그 까닭을 헤아려보자, 설득을 여기서 그만두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치게 진섭이에게 익숙한 것이다.
서바이벌에서 인기를 거두고 인기가 다시 급등하기 시작하는 이 현재가.
그렇다면 자세히 알리고, 알아봤자 이 시점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스테리나인이 해체한 것은 나에게 과거이지 미래가 아니었다.
음울한 과거 따위는 이미 극복한지 오래였다.
‘미래에는 그럴 일 없다.’
기어코 이 모든 시간은 우리가 나쁜 결말에 처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과정 아닌가.
“호떡아.”
“내가 뭐!”
“걱정하지 마. 우리 잘될 테니까.”
천진섭이 합, 하고 입을 다물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던져보았는데 이게 정답인 모양이었다.
진섭이가 미래를 물어본 이유는 설레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장래 위대한 꿈을 이룬 본인 모습을 궁금해하는 것 같은 심리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미래를 말하는 기대감 저편에서는 이 길을 걸어가면 성공할 수 있을지에 관한 불안이 엿보였다.
‘아직도 확신이 약해, 진섭이는.’
이상한 지점에서 불안을 느끼는 녀석이었다.
그 원인이 심리적인 문제인지 외부의 요인인지 조금 궁금해졌으나, 지금은 묻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공교롭게도 이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그룹의 마지막을 겪어본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경험은 나도 처음이지만…….”
“…….”
“왠지 느낌이 좋아. 잘될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지금 우리의 분위기가 과거와 비교해 얼마나 달라졌는지 정도는 천진섭도 모를 수가 없었다.
놀 시간도 없이 바빴지만, 활동하는 매시 매분 생기가 돌았다.
멤버들 사이도 더없이 좋고, 회사 관계자들이나 팬들도 모두 의욕적이고.
“……여기.”
천진섭이 손가락에서 감람석 반지를 빼내어 내게 돌려주었다.
나는 필통이 아닌 바지 주머니에 반지를 집어넣었고, 잠시 우리 둘은 말이 없었다.
그렇게 삼 분 정도 지났을까. 카운터 안쪽과 통하는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카키색 밀림 탐험가 코스튬을 위아래로 맞춰입은 남자는 액면가로 40대 초반은 되어 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수염이 자란 턱, 그리고 길게 길러 묶은 곱슬머리까지…….
‘……이 사람도 괴짜다!’
1초도 흐르지 않아서 첫인상이 결정된 그때,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전화가 길어졌네요. ‘스타트 버튼 방탈출’의 매니저 도가회입니다.”
신속하게 우리의 손을 하나씩 잡고 흔든 뒤, 직원이 정리 중인 안쪽을 향해 소리치기를…….
“야, 유정아! 내가 정리할 테니까 슬슬 퇴근해라!”
그 뒤로는 단거리 달리기를 하듯이 숨가쁘게 현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복도로 나와 슬쩍 우리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직원 유정 씨와 카운터에서 컴퓨터를 다루는 사장님.
그리고 사물함을 열어서 짐을 맡겨두게 한 다음, 굳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 같은……. 방향 자물쇠 사용법을 설명해주기까지 하는 사장님…….
결국 4시 30분이 되기 몇 분 전.
한 명 있던 직원은 앞치마를 벗어두고 퇴근했고, 방탈출 카페에는 세 사람만 남았다.
“자, 그러면 입장합시다! 앞 사람 어깨에 손 올려주시고요~”
“예?”
“아, 아니! 죄송합니다. 정신이 없어서. 그냥 갑시다.”
장소도, 사람도, 사장님의 정신머리도 혼란의 연속이었다.
길지 않은 복도를 따라서 이동하는데, 천진섭이 내 바로 뒤에 붙어서 귓속말로 중얼거렸다.
“저 사람, 방금 CCTV 지웠어.”
그래서 내가 앞에 가는 사장님한테 바로 물어보았다.
“죄송한데요, CCTV 삭제하셨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자동 녹화 기능을 껐지요.”
사장님은 주절주절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가 강남이라서 연예인도 가끔 방문하는데, 예전 알바생이 걸그룹이 방문했을 때 CCTV 녹화 데이터를 자기 핸드폰에 저장하다가 걸렸단다.
소송은 걸지 않고 자르기만 했는데, 그 이후로 중요한 사람이 찾아오면 CCTV 녹화를 중단한다나 뭐라나.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투 머치 토크를 천진섭이 끊어냈다.
“그러면 제가 따로 음성 녹음이라도 해둬도 괜찮을까요.”
“예, 그러세요.”
흔쾌한 승낙…….
방 안으로 들어서면 꽤나 퀄리티 있게 꾸며놓은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정글 테마라고 하던데, 바닥에는 모래가 옅게 깔려 있었고 천장에는 인조 덩굴이 치렁치렁했다.
‘하하하! 보물을 찾아 이곳까지 온 필멸의 영혼들이 참으로 가엾구나!’ 하는 성우 음성이 스피커에서 들려오고…….
우리가 낯선 환경에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사장님은 뚜벅뚜벅 걸어가서 벽의 장치를 조작해 다음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안쪽 와이파이가 잘 안 터져요. 그것만 유의합시다.”
허리를 숙여서 들어가야 하는 어두운 길이 이어지고, 곧 다음 방이 등장했다.
사원 내부처럼 꾸며진 두 번째 방 벽에는 황토색 벽돌이 붙어 있었다.
“스케일 크다……. 이건 재단인가.”
“감사합니다. 저희 매장 자랑이죠.”
천진섭이 혼잣말을 하는데, 사장님이 받아서 대답해주었다.
그러더니 사장님은 벽을 더듬어 [게임 진행과 관련 없는 장치입니다. 손대지 말아주세요!]라고 적혀 있는 뚜껑을 열었다.
사장님이 그렇게 뚜껑 아래에 놓인 레버를 내리고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
쿠구궁…….
우리 맞은편에 있는 벽이 회전하면서 전혀 ‘정글’ 같지 않은 디자인의, 검은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전하는 벽에서 한걸음 뒤로 떨어지면서 나랑 진섭이는 우리도 모르게 감탄했다.
“와…….”
“여기입니다. 계단이 바로 나오니까 조심하시고요.”
뒤를 따라가며 나는 너무 신경쓰이는 점을 질문했다.
“이거 소방법 위반 아니에요?”
“하핫, 예리한 질문이군요.”
명확한 대답은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면 누가 보더라도 수상한 사무실이 하나 모습을 드러냈다.
사무실이라고 해야 할까, 서재라고 해야 할까, 연구실이라고 해야 할까…….
책장은 천장까지 높았고 ,컴퓨터를 올려놓은 책상이 중앙에 있었으며, 인테리어는 전체적으로 하얀색이었다.
천장 형광등은 아주 밝았고 내부에 다른 사람은 없었는데, 종이 냄새와 커피 냄새가 이질적으로 뒤섞여 실내에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즉시 사장님은 우리를 긴 소파와 무릎 높이 테이블이 있는 한구석으로 안내했다.
“이제 대화를 조금 나누어볼까요.”
우리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기 전, 사장님은 매장 명함을 우리 손에 한 장씩 쥐여주었다.
그 후 본의 아니게 자기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우리는 명함도 없었지만…….
“이쪽 분은 우리 한능검 스터디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한능검이면…….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인가요.”
“지금은 그렇습니다. 그 전에는 조주기능사였고, 더 과거에는 피부미용, 버섯종균, 지게차 운전 기능도 공부했죠.”
지나온 분야에 공통점조차 없었다. 위장을 잘 하고 있다고 해야 되는 건가, 이거.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주변 책장을 보니까 정말 자격 시험 관련 서적이 한가득이었다.
“그렇게까지 정체를 덮어써야 하는 건가요?”
“이름이 있는 편이 낫더라고요. 아니면 남들이 사이비 종교인 줄 알아서.”
“아하…… 예.”
이름이 있어도 수상하기는 매한가지라고 말해주려다가 말았다…….
내 설명과 지나치게 어긋나는 소개에 천진섭의 표정이 점점 의아함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한번 이야기하기는 했는데, 진섭이는 거의 아무것도 몰라요.”
“저는 참관인으로 온 거니까 신경쓰지 마시고 둘이 대화하세요.”
내 대답을 천진섭이 받아서 마무리했다.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였고 오래지 않아 우리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감람석 반지와 함께 따로 챙겨온 사진 한 장을 사장님께 건넨 것이다.
예희에게서 받아온 외삼촌의 옛날 사진이었다.
“이 분에 관해서부터 알고 싶은데요.”
“누구야.”
어떤 참관인이 신경 쓰이는 질문을 했다.
“실종된 사람인데……. 여기랑 관련이 있다는 말을 들어서.”
“뭐……!”
화들짝 놀라는 천진섭에게 나와 사장님이 거의 동시에 해명했다.
“내가 진정하라고 했다. 그런 의미의 관련이 아니야.”
“진정하세요, 저희 스터디가 용의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스터디라는 정체성을 계속 고수하시려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망설임 없는 대답에 나는 그냥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무튼, 이 스터디와 관련된 분은 맞는 거죠?”
“네, 고성수 씨요. 사실 저희 스터디의 멤버였으니까요.”
“어느 세대의 스터디였나요.”
“흠. 버섯 세대라고 기억합니다.”
둘이서 대화를 주고받으니까 천진섭이 도무지 참지 못하겠다는 듯 질문했다.
“……지금 진지한 대화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