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75화
32. My Turn(3)
천진섭은…….
평소 자체 콘텐츠나 라이브 방송 속 모습만 보아도 유달리 예민한 느낌이 있는 멤버였다.
김지상이 다소 퉁명스러운 느낌이라면, 천진섭은 막말로 히스테릭한 면모마저 있었다.
물론 이것도 따지자면 단톡방이나 익명 사이트에서나 하는 말일 뿐.
객관적으로 따지면 어울리지 못할 수준은 당연히 아니었으며, 비교군이 워낙 둥글어 생긴 참사였다.
오히려 멤버들이 잘 받아주는 덕분에, 그룹 내 취급은 재미에 양념을 쳐주는 존재 정도였다.
이 아르바이트 스태프도 사실은 ‘같이 있으면 조금 눈에 띄는 인물’ 수준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잘생겨서 좋아했다, 진섭아…….’
그러나 이렇게 보니까 또 감회가 새로웠다.
그룹에서 최단신이라고 해도 성인 남성을 웃도는 신장이었고, 인상도 몹시 날카로웠다.
무대 메이크업을 지우지 않은 상태라서 심지어 냉한 얼굴은 더욱 차가워 보였다.
“이리 좀 와주세요.”
아르바이트가 망설이는 사이에 천진섭은 빠르게 다른 관계자를 불러냈다.
고용주나 면식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직급으로 따졌을 때 알바보다는 높은 사람이 다가왔다.
그리고 천진섭은 자연스럽게 뒤로 빠졌다. 마치 이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이.
얌체처럼 물러나는 솜씨가 과연 좋은 집안에서 잘 배워먹은 엘리트 같다고, 알바는 생각했다.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요. 이름 뭐예요?”
관계자가 우악스럽게 알바의 핸드폰을 낚아채며 물었다.
갤러리에는 당장 오늘 찍은 사진만 수백 장이었고, 단톡방을 캡처한 스크린샷도 몇십 장이었다.
그 수백과 수십 장 전부 들켜서 좋을 것이 일절 없는 이미지 파일이었다.
* * *
내가 다시 대기실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그때.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실랑이하는 소리 같았는데, 탈의와 의상 정리가 덜 끝난 터라 나는 조금 늦게 고개를 들었다.
파티션을 세워 만들어둔 임시 탈의실 밖으로 나오자, 열린 대기실 문틈으로 다들 밖을 보는 중이었다.
주변과 문밖을 훑어본 결과 매니저 형이 복도로 나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중 같았다.
“무슨 일이야.”
내가 묻자, 밖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이영하가 알려주었다.
“스태프 사칭하는 사람이 있다나 봐.”
“……스태프를 사칭한다고?”
문에 다가가면 스태프 옷을 입은 사람과 얼굴이 익은 미술감독이 다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다.
자세히 보니 다투는 것이 아니라 미술감독이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화내는 그림이었다.
혼나는 쪽은 자세가 구부정하고 머리카락을 초록색으로 염색한, 그러나 정수리는 검은 사람이었다.
매니저 형은 둘을 지켜보면서 틈틈이 말을 걸고 있었고, 그 뒤에 서 있는 것은 천진섭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이건 어떻게 찍었냐고요.”
“이거하고는 관계 없잖아요! 전 찍힌 줄도 몰랐어요.”
“편집한 거 아니에요, 이거? 그래놓고 찍힌줄을 어떻게 모릅니까.”
사칭범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소리 높여서 반박을 하기도 했지만, 금방 저지당하고 말았다.
“이거 콘서트장에서 사진 찍고, 영상 찍고, 이런 수준이 아니에요. 몰카, 불법 촬영, 이런 말 몰라요?”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스태프 사칭이 문제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귀기울여 파악한 결과 사칭범도 아니었다.
현장 일일 스태프 아르바이트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우리 대기실도 오간 사람이라 방송작가 아니면 청소 일하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대화할수록 움츠러드는 알바와 미술감독을 두고 나는 문간에서 그 대화를 몇분쯤 지켜보았는데…….
“의헌아, 진섭아. 너희 들어가 있어. 내가 끝나고 얘기해줄게.”
매니저 형의 권유로 대기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현장과 차단되었다.
그러자 자극적인 썰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한이주가 후다닥 달려와 천진섭 옆에 붙었다.
“형, 형, 형. 뭐였는지 들었어?”
“잘 몰라! 저 사람 이상해.”
“사진 얘기는 뭔데?”
“우리 대기실 찍었나 봐, 저 사람이.”
서난영까지 가담한 질문공세를 천진섭은 빠르게 일축하고 상황을 종료했다.
우리끼리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서로 얼굴 보고 쑥덕거리는 사이, 복도의 대화가 갈무리되어 매니저 형이 돌아왔다.
우리가 전달받은 결론은 간단했다.
“대충 넘길만한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경찰 불렀고, 회사에서 처리를 할 거야.”
그러려면 여기 방송국과도 이야기를 해야 하고 경찰이 처벌해야 할 일도 있단다.
매니저 형도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천진섭이 말하는 것과 맥락은 비슷했다.
우리가 사진을 찍혔다고.
다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신고를 제외한 처리는 내일 진행할 예정이라며 공지가 끝났다.
스토킹 특별법이 존재하지 않는 시기이기에, 경범죄 사건으로 취급되어 구속을 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바로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는 동안에는 파일을 복사나 유포하지 못하게 감시할 거라고 한다.
“아무튼 다들 충격받았을 텐데……. 좀 진정하고.”
매니저 형이 정리했다.
“마저 할일 끝내고 퇴근하자.”
“그래, 잡혔다니까 걱정 너무 하지 마.”
나도 말을 얹었고, 또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면 분위기는 의외로 평소처럼 돌아왔다.
그러나 석연치 않게 봉합한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고, 그 문제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대두되었다.
퇴근 절차가 끝나고, 일찍 샤워하고 나서……. 외출 전에 널어놓은 빨래를 접고 있을 때였다.
“그 사람 누구였는지 알지?”
문득 천진섭이 다가와 내게 물었다.
이유도 없이 1층 숙소에 내려와서 한참 혼자 핸드폰이나 보고 있더니, 기어코 말을 걸었다.
티셔츠를 반으로 접던 손을 멈추고 나는 질문의 의도를 생각했다.
“아까 그 복도 아닌가?”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고, 잡힌 사람의 생김새나 실루엣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지 않았던 만큼, 거기서 대놓고 카메라를 들이밀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현행범으로 잡혔다고 하면 그 정수기 근처 복도 말고는 생각나는 장소가 없었다.
“조심 좀 하지? 갤러리에 사진 엄청 많았어.”
“찍힌거 봤어?”
“한두 장이 아니던데. 형 밥 먹는 거랑, 옷 갈아입는 거랑, 연지쌤 가방 챙기는 거, 효민쌤한테 드립치는 것도 사진 있었고.”
연지쌤은 메이크업 실장님이고, 효민쌤은 스타일리스트다. 외주인력이지만 같이 일하는 분들이고.
저기서 말하는 ‘드립’도 수위가 아슬아슬한 발언이 아니라, 드라마 성대모사하는 농담이었다.
……아무튼, 진섭이의 이 핀잔 아닌 핀잔에서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대상이 그룹 전체가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아니, 남이랑 있는 장면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건 조심해서 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밥 먹는 사진이나, 심지어 옷을 갈아입는……. 사진까지 찍힌 것을 보면 말이다.
“알아서 생각해. 조심할 수 있는 부분은 조심하는 게 좋다는 말이잖아.”
“……알겠어. 너는 그런데 어쩌다가 그 뒤에 있었던 거야.”
“봤으니까.”
그 자리에 있었나. 어깨를 으쓱이는데 천진섭은 더 할 말이 있는 듯 조용했다.
슬쩍 남은 빨랫감 반절을 천진섭 쪽으로 밀어주엇는데, 녀석은 손도 안 대고 나를 빤히 보았다.
“사실 듣기도 했어.”
진섭이가 말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 아니다.”
“그런 오해 안했거든?! 그것보다는……! 음…….”
천진섭이 펄쩍 뛰었다가 내려와서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우물거렸다.
그러더니 양손으로 내 팔을 덥썩 붙잡았다. 더 이상 반복 작업을 못하게 하려는 듯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내가 예희와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들었다면 수상하게 생각할 만한 대화였던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천진섭의 불만은,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 지점에서 터져 나왔다.
“왜 그렇게 숨기는 게 많아.”
“……응?”
“난 그런 거 이해 못 해.”
차라리 속상한 반응이었다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천진섭은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고,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단순히 사적인 비밀이나 인간관계라고 덮고 넘어갈 주제가 아니라고, 녀석도 아는것이다.
그러고보니 한참 전에 강주찬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도 천진섭이 있었다.
또한 그 당시에도 나는 비밀은 나중에 말해주겠다고 대화를 미루었고.
“뭐가 그렇게 중요한 일인데 말을 못 하냐고.”
진섭이가 쏘아붙였다.
방에 있는 다른 멤버들이 들을 수 없게 작은 목소리로.
“비밀 있는 거 싫어. 아무리 나나 우리를 위한다고 해도.”
표현은 솔직했고 가감이 없었다. 저차원적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단순했다.
녀석은 무엇이 싫은지, 그리고 그게 왜 마음에 들지 않는지 정확하게 밝혔다.
천진섭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 같기도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몇 가지 변명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나도 모르는 게 많으니까, 지금은. 그리고 위험에 처할 수 있잖아.’
예희의 외삼촌이라는 사람이 실종된 것만 해도 그렇고. 미스터리가 아직 너무 많았다.
만약에 이게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실존하는 적이 지구 어딘가에 있다면?
나도 갑자기 사라지게 된다거나, 비밀을 아는 사람들에게 마수가 뻗어 온다면 어떨까.
……그러나 변명을 생각하면서도 나는 한편으로는 깨달은 지 오래였다.
만약 상황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면……. 이런 변명을 내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가.
내가 아는 천진섭은 ‘네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신경 꺼라’ 같은 말을 듣는 녀석이 아니었다.
꾸러미에 담긴 궤변들은 입밖으로 내지 않더라도 내 머릿속에서 전부 반박할 수 있었다.
“같은 그룹인데.”
천진섭이 문득 조그맣게 중얼거렸고, 그 표현에 일순 내 집중력이 흩어졌다.
“같은 그룹인데, 왜.”
“……!”
“……아니, 미안. 그렇게 배신감 느끼는 표정은 하지 말고. 네가 그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물은 거니까.”
질문하자마자 진섭이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잽싸게 수습했다.
그러나 열이 오른 낯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천진섭이 더듬더듬 생각을 꺼내놓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나, 나는.”
“응.”
“안 좋은 일도 나눠야 된다고 생각해, 그룹이면!”
목소리가 어찌나 커졌는지, 방 안에서 한이주가 ‘워우!’ 환호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본인이 말하고도 웃긴지 내 팔을 (아직도) 잡고 있는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긴장이 풀어진다 마음은 정했고 생각은 끝났다.
“알았어……. 그래.”
차분하게 대답했다.
사실 나는 지금껏 어떠한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던 셈이다.
이렇게까지 홀로 걱정을 떠안을 이유가 있나. 그 자문에 답할 말이 없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장점이니까.
“며칠만 더 기다릴 수 있냐.”
“미쳤어? 말이 돼? 언제까지!”
날짜를 생각했다.
금요일에 촬영이 끝났고 집에 들어왔으니, 이제 토요일 새벽이다.
그리고 예희가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기로 한 날은…….
다음주 수요일 오후 4시였다.
“수요일.”
내가 대답했다.
“너 수요일 오후 4시에 뭐 해. 강남에서 봐.”
“…….”
“주소 알려줄게.”
나흘 정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