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73화
32. My Turn(1)
시끌벅적하던 대기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전주가 시작되자 다들 리액션 카메라 눈치를 보며 주섬주섬 소파에 앉았다.
공원처럼 꾸며진 세트에 주홍빛 조명이 드리우는 모습을 보며 안승준이 웃었다.
“잘하셨으면 좋겠다.”
“그러게.”
TV 바로 위에 설치된 카메라를 곁눈질하면서도, 멘트는 참 자신만만한 게 특징이었다.
그러나 안승준이 말하고 한이주가 동의한 그 말은 빈정거리는 의미가 아니었다.
우리는 진심으로 원키드가 전심전력을 다해 경연에 임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해외 투어 도중에도 연습을 잊지 않고, 편곡도 피처링도 기가 막히게 사용하기를 바랐다.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하고 싶었지만…….
쉬운 게임은 원하지 않았다.
둘 다 최선을 다해 싸우지만, 결국 우리가 이기는. 그런 그림이 필요했다.
화면 속에서 첫 소절이 시작되면 나는 위잉거리며 돌아가는 휴대용 미니 선풍기 전원을 껐다.
이따만치 강철 금고 벌어 채워
24K 순금 돈을 넣고 잠궈
처음과 끝 시간을 계산해 보면 무대는 3분하고도 30초 정도가 더 소요된 듯했다.
우리는……. 카메라가 얼굴을 촬영 중이라는 것도 잊고, 다 함께 심각하게 무대에 몰입했다.
세트 있고, DJ가 현장 사운드를 채우고, 댄서에, 음원에도 피처링한 원키드의 절친이 특별 출연…….
노래도 연간 차트인에 성공한 〈Low〉라는 원키드의 히트곡이었다.
한마디로 모르는 관객이 없는 노래에 대규모 퍼포먼스.
제작진이 지급해준 초기 토큰도 다 털어 소모하는 등 원키드는 우리의 소원대로 진지하게 임했다.
노래가 진행되어 피처링 래퍼가 등장하고 비눗방울 날리는 순간부터 우리는 말을 잃었다.
그 전까지는 기계적인 리액션이나마 중얼중얼 주고 받았는데, 그마저도 멈추었다는 이야기다.
무대 효과에만 노력을 쏟은 것이 아니라, 랩을 하는 원키드 본인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공연을 펼쳤다. 호응 유도야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잘하고.
“너무 잘하시는데…….”
무대가 끝나자 이영하가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 말뜻은 인정했지만, 지금은 동의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야, 그래도 우리가 더 잘했어.”
그렇게 말하며 나는 선풍기 바람을 영하 얼굴에 쏘아주었다.
앞머리를 스프레이로 고정해서 앞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연출은 불가능했지만.
이영하는 눈을 질끈 감고 얼굴로 바람을 맞았다.
“우리가 제일 잘했다고 말해.”
“우리가 제일 잘했다아.”
“옳지~”
그제야 내가 선풍기 전원을 다시 꺼주었다.
참 쉬운 친구들이다……. 나 포함해서.
* * *
〈밀리어네어 Z 트랙〉 3차 경연 1라운드 결과 발표 시간.
빈 무대 위에 모든 출연진이 올라와, 경연 순서대로 두 팀씩 승패를 공개하는 규칙이었다.
속도는 여느 때처럼 빠른 편에 속했지만, 네 번에 걸쳐 일어서고 앉고 그자리에서 소감을 발표하다 보니 전보다는 아무래도 루즈한 감이 있었다.
그리고 점수 계산 시스템이 변하기도 했다.
현장 관객 수 자체를 기존 200명에서 두 배가 넘는 인원인 500명으로 늘렸는데, 이들은 한 대결에 한 무대만 골라 투표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지선다 밸런스 게임이라는 거다.
관객 투표는 한 표를 1점으로 계산하고, 심사위원은 0점부터 20점까지 제한 없이 채점할 수 있다는 규칙.
“세 번째 대결, 승자는 노이즈입니다!”
MC가 큰소리로 외치자 카메라가 보이그룹 ‘노이즈’ 멤버들의 얼굴에 줌을 당겼다.
“노이즈는 현장 관객 점수 346점, 심사위원 점수 128점으로 474점을 기록했습니다.”
특별 심사위원을 포함해 심사자는 9명이지만, 본인 담당에게는 점수를 못주니 만점은 160점일 테다.
MC는 집계된 점수를 말해주었고, 팀 인터뷰도 짧게 이어졌다.
“그리고 패배한 소은윤 팀은 현장 관객 점수 154점, 심사위원 점수 141점, 총점 295점을 받았습니다.”
나는 희비가 교차하는 장면이나 소감보다는 점수 계산에 주목했다.
첫 번째 대결, 달고나밴드와 욕설 일색인 래퍼는 각자 총점 500점과 294점으로 달고나밴드가 이겼다.
두 번째 대결은 댄스팀과 2차 경연부터 합류한 걸그룹의 승부로, 각각 365점, 417점이었고.
관객 표수는 두 팀을 더해도 500표가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자연스러운 오차로 여기기로 했다.
‘합해서 500점만 넘으면 성공이겠군.’
선공에 유명하지 않은 노래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 정도도 감지덕지라고 속으로 계산할 때였다.
“마지막, 네 번째 대결 결과 발표를 위해 스테리나인과 원키드는 앞으로 나와주세요.”
우리 그룹 이름이 불렸다.
언제 풀어졌냐는 듯이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상황.
양옆에서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자 나까지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우선 대결 상대에게 한마디씩 덕담하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MC를 중앙에 두고 우리가 마주보는 자세로 양옆에 서자, MC가 웃으며 바람을 잡았다.
마이크는 둘 중 원키드에게로 먼저 돌아갔다.
“아, 너희 오늘 잘하더라.”
원키드가 헛기침하고는 턱을 들어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칭찬과 방송에 양념이 될 만한 기싸움 그리고 실언을 오가는 발언이 이어졌다.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에서는 여기 멤버 몇이 내 제자였는데.”
실언을 오가는…….
“거기서 내가 늘 하던 말이 있지? 너희 그러면 데뷔 못한다고.”
하하하. 원키드가 웃어젖혔다.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끝?!’
여기서 더 사운드가 비면 방송사고라는 것을 알면서도 즉각 대처할 수가 없었다.
누가 들어도 칭찬으로 이어질 빌드업이었는데, 마무리 안 되고 끊긴 기분이다…….
당황한 것은 우리만이 아니고 MC는 아예 목소리 톤을 높여서 수습해버리기까지 했다.
“아아아! 오늘 스승의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이런 말이군요!”
“……그렇지!”
“좋아요, 그러면 스테리나인도 한마디 해주실까요?!”
꼭 이럴 때 대표로 리더에게 마이크가 온다.
구원투수를 바라보는 듯한 MC의 간절한 눈빛이 느껴졌다.
아예 분위기를 망쳐버리고 통으로 편집당할까, 나는 0.3초 생각했다.
“쌤. 살살 해주셔서 감사해요.”
“야, 타임! 타임!”
MC가 두 팀 사이를 비집고 나오면서 싸움을 중재하는 모습을 만들어냈고, 비로소 출연진과 제작진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잘 치고 나온 MC 덕분에 겨우겨우 악담 릴레이는 끝을 맞이했고, 결과 발표가 시작되었다.
“이 대결은 먼저 점수부터 공개하겠습니다.”
MC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큐카드를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패배한 팀의 점수는 심사위원 점수 148점, 그리고…….”
〈밀제트〉답지 않게 시간을 끄는 연출이었다.
여기서부터 심상치 않다는 것이 느껴졌는데…….
“……현장 관객 점수 46점으로 총 194점을 받았습니다.”
믿을 수 없는 숫자에 출연진 좌석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잠깐만. 46점?
단순 계산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500표 중에, 46표?’
그렇다는 건 라이벌 점수는…….
“승리한 팀은 심사위원 점수 152점, 현장 관객 점수 452점으로 총점이 무려!”
머릿속으로 빠르게 주판을 튕겨보았다.
둘을 더하면 목표한 500점을 훨씬 웃도는 숫자가 나오는데…….
“……604점입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이긴 팀이 우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걱정은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지워졌다.
단지 너무나도……. 그 비현실적인 점수가 우리 것 같았다.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승리 팀은……. 축하합니다, 스테리나인!”
그리고 그 믿음이 옳았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아!”
“와아아아!”
옆에 있던 녀석들이 그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멤버들을 보고 맞은편의 원키드를 살폈다.
원키드는 좌절하기보다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MC가 다시 전해준 마이크를 붙잡고 짧게 소감을 남겼다.
“너무 고생했다, 얘들아!”
“우리 진짜 잘했다!”
언제 마음을 졸였냐는 듯이 이영하가 활짝 웃으며 멤버들을 격려했다.
적수의 마음을 살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우리끼리 축하하기도 바빠서…….
바라마지 않던 압도적인 승리였다.
* * *
인터뷰룸.
“압도적인 점수차로 이겼어요.”
멤버 아홉을 카메라 앞에 앉혀두고 PD가 질문했다.
“사실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저희가 노력했던 게 보상을 받은 기분이에요……. 기쁩니다.”
안승준과 강주찬이 한마디씩 하고, 질문이 이어졌다.
“사실 노력을 되게 많이 하셨잖아요, 이게 2015년 노래고.”
“네. 〈Express〉가 음악방송에서 처음으로 1위 후보에 들었던 곡이거든요.”
“1위 후보요?”
“그러니까, 사실 1위는 못 했지만……. 저희에게는 의미가 있는 타이틀이에요.”
이영하가 PD와 문답을 주고 받았고…….
“여기서 이렇게 승리한 것도 스테리나인에게 특별한 일이겠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죠. 이겨보니까 되게 좋네요.”
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나는 일부러 슬쩍 빗겨나갔다.
그에 응수하듯 PD가 웃음 짓고 흐름을 돌렸다.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 다음 경연 이야기를 해주시겠어요?”
중요한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
한번의 승패로 자만하지도 주저앉지도 않을 것이다.
그게 내가 드디어 결정한……. 상승에 익숙해지는 방식이었다.
지금까지는 기회가 없었지.
있어도 금방 사라지거나.
이제부터는 이렇게 누려보기로 했다.
* * *
인터뷰까지 끝내고 대기실로 돌아오자 모두가 기진맥진했다.
무대를 끝내고 결과를 발표하고, 두 번이나 흥분하고 가라앉아서 지치고 말았다.
신체의 피로보다는 감정을 추스르고 평범한 상태로 돌아오는 일이 힘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액세서리도 정리해야 하는데, 다같이 말도 없이 대기실에 앉아있기를 오 분.
나라도 솔선수범해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아서 멍한 심경을 잽싸게 가다듬고 벌떡 일어났다.
“집 가자.”
그러면서 내가 대기실 문고리를 붙잡자 서난영이 기울인 상체를 바로잡았다.
“그러고 가게?”
“아니, 물 떠오게……. 너희도 일어나라.”
“그래…….”
괜히 나간다고 어필했다가 심부름을 뒤집어쓰고 물병 하나에 플라스틱 컵 두 개를 받아 나서는 길.
나는 정수기 앞에 도착하자마자 대하기 유쾌하지만은 않은 상대를 발견했다.
그 사람 그러니까 예희는.
“……저기요”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복도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예희의 손끝에 작게 접은 종이 쪽지가 한 장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