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72화
31. REALLY REALLY(8)
앵콜을 부르는 소리는 한참이나 시간이 걸려 잦아들었다.
기립해서 손뼉을 치거나, 슬로건을 머리 높이보다 위로 흔들어 카메라를 가리는 사람도 있었다.
스테리나인은 그 광경에도, 관객석과 무대까지 거리가 있어도, 웃고 손을 흔들며 응대를 해주었다.
‘경연 심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팬서비스였지만, 그 자리 누구도 이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먼저 이 스테이지를 본인들의 콘서트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팬서비스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심사평 멘트 슬슬 해주세요!]
그때 심사위원석 앞 프롬프터에 PD가 보낸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점수는 맨 마지막에 일괄 공개하지만, 코멘트는 무대가 끝나자마자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제야 그들은 허겁지겁 자리에 놓인 마이크를 잡아 후후 숨을 불며 바삐 테스트했다.
먼저 말하고자 하는 이들의 말소리가 겹치자, 겨우겨우 MC가 진땀을 빼며 교통을 정리해 주었다.
“먼저 스테리나인을 담당하시는 이용익 심사위원부터 한마디 해주실까요?”
담당 출연진은 심사할 수 없었으므로 보통 심사위원들은 이 기회를 이렇게 사용하고는 했다.
“예, 우선 우리 스테리나인은…….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여러분!”
투표 영업과 칭찬, 그리고 주접을 떠는 시간으로…….
“너무 잘하죠? 아니, 솔직히 말해주세요. 제가 막 부럽지 않으세요?”
“우~ 그래도 저희 애들이 제일 자랑스러운데요~”
심사위원 하나가 웃으며 엄지를 거꾸로 들었다.
그러나 그도 조금 전 무대를 보며 서류 종이를 반으로 찢어 ‘무대 찢었다’ 리액션을 한 전적이 있었다.
다른 심사위원 중 하나는 마이크를 잡고 이용익의 멘트에 동의하기도 했다.
“저는 그런데 정말 부럽다고 생각해요. 비교를 해서 하는 말은 당연히 아닌데요, 그냥……. 아니, 너무 멋있잖아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잘 어우러지고, 결점이 하나도 없고. 이게 하루 이틀 연습해서 되는 게 아니거든요. 준비 기간 2주? 2주 아니었어요? 그 시간 만에 어떻게 이런 무대를 해내요?”
“맞아요, 이게 진짜 오래 준비한 느낌이 있어요. 혹시 이거 나오기 전에 이 무대만 저희 몰래 몇 년 연습한 거 아니에요? 아니면 이 팀만 하루가 72시간이었다거나?”
손짓과 발짓을 해가며 칭찬을 더 화려하게 수식하고자 하는 심사위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중에는 폭탄 같은 발언으로 말문을 여는 사람도 있었다.
“저는 사실……. 아쉬움이 많아요.”
다른 무대라면 싸늘하게 얼어붙을 만한 발언이었지만, 아예 이번에는 객석에서 바로 ‘아아’, ‘우우’ 하고 안타까운 목소리가 쏟아졌다.
표현은 모나지 않았으나 사실상 반사적인 비난이었다.
방송인의 발언에 현장에서 이렇게까지 반응이 돌아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발언 즉시 혼쭐이 나버린 심사위원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미간에 힘을 풀었다.
“아, 죄송합니다. 웃기려고 한 말인데. 한국 말은 끝까지 들어주세요.”
“방송국 놈들한테 이런 발언 걸리면 예고편에 쓰이고 다섯 번 리플레이됩니다.”
긴장이 풀린 이용익이 껄껄 웃으며 대화에 양념을 살짝 쳤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방송까지 일주일 넘게 남았다는 게 아쉽다는 말이었어요!”
객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해명하자 방청객이 일시 ‘오오!’ 환호했다.
“이 무대를 아직 저희랑 여기 현장 관객분들밖에 못 봤다는 게 너~무 아쉬워요!”
훌륭한 멘트를 남긴 심사위원에게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점수는 공개되지 않았을 뿐더러 매기지도 않았지만, 이쯤이 되면 다들 눈치를 챌 만했다.
확실히 달랐다. 무대 퀄리티도, 분위기도, 리액션도.
지금은 스테리나인 앞 여섯 팀이 무대를 마쳤고 남은 순서는 뉴페이스 출연자 원키드뿐인 상황.
뒤에 나올 무대는 차치하고 앞의 여섯하고만 비교하더라도 현장 반응이 천지 차이였다.
한마디로, 지나치게 화기애애했다.
“사실 저는 처음에 스테리나인이 이 〈Express〉라는 노래를 한다고 들었을 때 염려를 조금 했어요. 스테리나인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 많이 유명한 노래는 아니잖아요? 차라리 커버곡을 하거나, 팝송에 댄스 퍼포먼스를 하거나, 이런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거든요.”
케이팝 분야보다는 대중가요, 보컬 장르에 조예가 깊은 심사위원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게, 어우! 정말! 바보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오히려 이 노래를 왜 세상 사람들이 여태껏 몰라준 건가 싶을 정도예요. 노래가 너무 잘 어울리고, 노래 자체도 좋고, 집에 가서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들으려고요. 저만 이렇게 생각한 거 아닐걸요?”
이용익은 그 말에 공감했다. 〈Express〉는 실제로 과소평가된 노래고 춤이고 콘셉트였으니까.
MC는 이번 촬영에 특별 심사위원으로 찾아온 게스트에게도 마이크를 넘겼고, 그의 발언으로 불붙은 칭찬 릴레이가 더 크게 타올랐다.
“무대를 잘한다는 말은 앞에서 너무 다들 하셔서…….”
2세대 아이돌 출신인 그는 오늘 촬영 중 가장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심사평을 발표했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콘셉트는 묘하게 섹시한 느낌이 있는데, 무대 위에서의 시선이나 동작은 참 따뜻하고, 서로를 위하는 게 잘 보여요. 그런 갭이 되게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하더라고요. 좋은 무대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극찬에 극찬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모두가 같은 노래를 들었고 같은 무대를 보았지만, 비슷하게 기뻤고 서로 다른 것을 좋아했다.
고작 오 분의 무대로 저마다의 찬란한 모험을 끝나고 이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다.
“리더인 의헌 씨가 한마디 하실까요.”
MC가 이번에는 마이크를 무대 위 멤버들에게로 건네주었다.
무대가 끝난 이후부터 아직도 얼굴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청년이 핸드마이크를 받아 말했다.
“……다들 정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면서도 조금 부끄럽네요.”
무대 시작 전 상영된 VCR에서의 나레이션과 달리, 흥분감을 속일 수 없는 어투였다.
“오늘 한 〈Express〉라는 노래가……. 저랑 멤버들이랑, 준비하는 과정에 도와주신 분들이랑, 다들 아끼고 좋아하는 노래예요. 저희는 사실 주제를 듣고 고민이 없었거든요. 우리 그룹을 많이 드러내고 싶었고, 모르는 분들께 알리고 싶었고……. 저희가 얼마나 재미있게 무대를 하고 어떤 힘을 여러분께 드릴 수 있을지 보여드리고자 했어요. 그 일념만으로 준비한 것 같습니다.”
정의헌은 눈시울을 붉히는 서드림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감상을 마무리했다.
결과도 나오지 않았건만 뉘앙스가 묘하게 수상 소감 같기도 했다.
“잘 전달되었다면 기쁘고 다행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서 MC는 코를 훌쩍이는 멤버들에게도 소감을 몇 마디 물었고, 인터뷰가 곧 마무리되었다.
스테리나인 멤버들이 대기실로 돌아가고, 다음 무대 세트를 설치하러 제작진들이 올라오는 순간.
심사위원들은 조용히 –그러나 마이크에 소리가 잡히는 것을 의식하며– 여담을 나누었다
“솔직히 이제 스테리나인은 걱정이 안 돼.”
“저도요.”
“뭘 해도 잘할 것 같아.”
이용익 바로 옆에서 그 음성이 들려왔고, 반대편에서는 이용익에게 다른 주제로 말을 걸어왔다.
“우리 PD들도 다음 주부터는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네.”
이 말은 마이크에 잡힐 테지만 방송에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이용익은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무대를 보고 가장 기뻐할 사람은 스테리나인 본인들도 그 팬들도 아니었다.
다만 이 무대의 수혜를 직격으로 입은 대상은 바로 〈밀리어네어 Z 트랙〉 제작진들이었다.
“다음주에 200만까지는 가능할 것 같지 않아요?”
마이크를 손으로 내리면서 이용익을 가운데에 두고 반대편 심사위원이 말을 얹었다.
“조회수가? 일주일만에?”
“그럴 만한 무대였잖아요. 우리도 진짜로 감탄했고.”
바네사 장의 탈락과 ‘갑질 폭로’ 사건 이후 제작진은 여러 의미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 까닭은, 팬덤 규모를 뛰어넘는 무대가 아직껏 ‘터져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팬덤이 큰 아티스트들을 모셔왔지만, 프로그램 향유자는 각 출연진의 팬들이나 이런 음악 방송 경연을 좋아하는 예능 매니아뿐.
요약하자면 대중적인 인기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 타이밍에 폭로 사건이 터져서 안 좋은 쪽으로만 구설수에 올랐으니…….’
제작진이 결방을 감행하고 정비 시간을 가지지 않은 까닭도 마음이 급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밀제트〉는 지금 폭로 사건으로 상승한 피로도를 낮추면서도 화제성을 끌어올릴 한 수가 필요했다.
그런데 과연 여기서 다른 카드가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밀제트〉의 주 콘텐츠는 무대였다.
즉……. 독보적인 무대가 딱 하나라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다.
이런 서바이벌은 출연진 한 팀이 프로그램 유입을 만들고, 고정 소비자를 만들어주니까.
그래서 제작진은 토큰을 넉넉하게 지급해 퀄리티 높은 무대를 유도하고 준비 시간도 길게 주는 등 노력했다.
그들의 제사는 그리고……. 드디어 빛을 발했다.
이용익을 포함한 심사위원단은 이번 무대를 보고 일시에 느꼈다.
“말마따나 아쉽네, 아쉬워. 아직 방송까지 시간이 남았다니.”
“금요일에 녹화하고 토요일에 방송해 주면 안되려나?”
“그렇게 되면 우리 방송국 놈들 과로사로 진짜 쓰러져요!”
그 ‘무대를 터뜨려 주는’ 주인공은…….
대중성이 높은 가수도,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개인 크리에이터나 힙합 신의 거물 래퍼도 아니고.
……의외로 스테리나인이 되리라는 것을.
오늘 그들이 보여준 무대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젊고 열정적이고 활기차며 서로 서로를 아끼는 모습.
그러면서도 프로페셔널한 자세까지.
“……어디까지 올라가나.”
그때 심사위원 체리본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이용익의 귀에도 들렸다.
“그게 기대되네요.”
+ + +
성공한 무대는 우리가 제일 잘 안다.
수십 수백 번을 연습해 본 이 노래의 주인인데 당연하지 않나.
실수가 일어나도 우리가 누구보다 빨리 알고 평소보다 잘해도 우리가 가장 잘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Express〉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이루어진 최고의 무대였다.
무대에서 내려와 빠른 걸음으로 대기실로 들어오면서 글자 그대로 모두가 흥분했다.
무대에 올랐던 우리 멤버들도, 무대 아래 가까이에서 올려다본 매니저 직원들도, 헤어 메이크업 팀도.
“수고했다, 스테리나인!”
“다들 고생했어~!”
“무대 부쉈다!”
대기실로 돌아오면 기다리고 있던 다른 직원들도 우리를 반겼고, 한이주는 익룡같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달려가 직원들을 한 명씩 안아주기까지 했다.
“안아줄거면 우리가 먼저여야 되는 거 아니야?”
“싫어. 축축하고 끈적거려.”
그 사건에 나는 이의를 제기했다가 곧바로 차였다.
‘네가 끈적거림을 전파하는 건 괜찮냐’고 물었다가 무시만 당할 뿐이고…….
땀을 식히고 소파에 앉아 늘어지는데, 대기실 TV로 다음 무대 순서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마지막 무대 시작한다.”
김지상이 검지손가락으로 콕콕 TV 방향을 가리켰다.
화면 속에서 새 출연진 소개와 인사가 끝나고, 스테이지 조명이 어둡게 꺼졌다.
그리고 우리의 일대일 적수인 래퍼 원키드가 나무 벤치 세트에 걸터앉는 실루엣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