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70화
31. REALLY REALLY(6)
나와 서난영의 의견은 일치했다.
먼 여행길에 오르더라도,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우리는 영영 떠나지 않을 것이다.
갈 곳이 없으면 언젠가는 돌아올 테고 지구에 남은, 가진 것들을 버리고 싶지 않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면, 그 공통점이 우리 둘에 국한된 것은 아니리라는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그 순간 우리는 눈을 맞추고 시선을 교환했다. 내가 제안했다.
“애들한테도 물어보자.”
“그러자.”
우리는 그 즉시 멤버 전원과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단톡방에 말하기도 하고, 아예 윗집으로 가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질문한 순서대로 서난영은 ‘지금이 좋다’고 답했고, 거실에 있던 안승준과 한이주 –내 룸메이트들인데 방에서 난영이랑 이야기할 게 있다고 쫓아냈다– 역시 각각 부정의 의사를 보였다.
“준비를 많이 했으면 또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출발도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듯.”
“나는 엄마 아빠랑 누나들 빼고 혼자 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그리고 핸드폰을 보고 있던 김지상은 이렇게 답했다.
“떠난다는 게 보통 결심으로 되는 일인가.”
다음에는 윗집으로 올라가 먼저 천진섭과 서드림 방문을 열고 둘에게 물어보았다.
두 사람은 꽤 오래 곰곰이 궁리하더니 응답했다.
“우주는 좋지만! 질문 밸런스가 이상한 거 아니야? 떠나면 못 오는 거잖아.”
“나는 우주 가서 사는 생각은 가끔 해……. 비밀인데, 사실 별로야.”
‘별로’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추궁하자 서드림은 ‘무서워서 별로다’라고 첨언했다.
……엄청난 비밀이었다. 우리는 그룹 이름에도 별과 밤이 (변형된 형태지만) 들어가는데 말이다.
여덟 번째 대상은 거실이 소란스럽자 방문을 열고 제 방에서 나온 강주찬이었다.
“솔직히 그렇게 훌쩍 떠나려면 엄청난 낭만 같은 게 필요하다고 봐.”
퉁명스러운 태도로 단답할 줄 알았는데, 녀석은 의외로 꽤 진지한 답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나는 되게 현실주의자란 말이지. 솔직히 스나는 다 좀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흐음…….”
“그렇게 떠나 버리는 사람이라면 나는 네가 제일 가능성 있다고 본다.”
강주찬은 나를 콕 짚어 지목했지만, 나는 고개를 기울이듯 가로젓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낭만이 있어 보인다는 칭찬만 골라서 듣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문을 들은 사람은 이영하였는데, 영하의 대답은 지금까지와 결이 약간 달랐다.
한바탕 열띤 토론이 끝나고 뒤늦게 방에서 나온 녀석은 답을 고민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음……. 돌아오지 않는다면 여행이라고 이름 붙일 이유가 없지.”
이영하는 식탁 의자를 빼내어 걸터앉고는 말했다.
영하는 의자에 앉아 있고, 나와 난영이는 거리를 두고 서서 녀석을 내려보았다.
“나는 사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하거든.”
“그래?”
“그래서 그런가, 생각이 났다고 바로 떠나는 사람이 대단한 것 같아. 난 못 하거든.”
“왜 너는 못 한다고 생각하는데?”
감탄하는 듯한 말투에 나는 무심코 물었다.
그런데 이영하는 웃을 뿐이었다.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이.
“……소중하니까 그렇겠지?”
“소중하니까?”
“지금 지구에서 가지고 있는 것들을 좋아하니까?”
……여기까지로, 설문조사는 끝났다.
개개인의 입장은 달랐지만, 결론을 두고 보면 만장일치였다.
우리는 아무튼 이곳으로 돌아온다. 먼 길을 떠나더라도.
편도가 아닌 왕복 ‘여행’…….
발을 땅에 붙이고 사는 삶.
“그러면 그렇게 먼 거리를 떠나는 마음은 뭘까…….”
방으로 다시 돌아오자, 서난영이 방문을 닫으며 혼잣말 같은 질문을 남겼다.
이 질문에는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난 그건 꿈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가벼운 단어로 풀어보자면.
“이루고 싶은……. 목적 말이야.”
“…….”
“뭐, 자유롭고 싶은 마음도 말이 된다고 보지만.”
나는 책상 위에 널브러진 앨범 속지를 갈무리해 접어 다시 두 앨범을 책장 제자리에 집어넣었다.
댄스 브레이크에서 어떻게 바닥으로 착지해야 할지 그림이 윤곽부터 머릿속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구성부터 처리하지는 않기로 했다.
아예 콘셉트까지 수정하기로 결정했다면 같이 손봐야 할 부분이 몇 가지 존재했으므로.
“나 아직 필요해?”
“어, 가기만 해봐.”
아까 숙소를 돌아다니는 사이에 팩을 떼어낸 서난영이 의자에 앉아 제로칼로리 탄산수를 마시며 질문했다.
나는 입으로 대답하며 손으로는 인터넷 창을 최소화하고, PC 카톡에 접속해 단톡으로 전송된 파일을 하나 내려받았다.
“지금 하는 건 뭐야?”
“내일 나 나레이션 녹음 들어가거든.”
여기서 말한 나레이션이란 별도 영상인 VCR에 삽입되는 해설 몇 줄을 의미했다.
촬영팀에서 내 목소리로 녹음을 하면 좋겠다고 하필 정확히 지목해서……. 그렇게 되었다.
이미 촬영은 끝났고, VCR 자체는 무대가 시작되기 전에 배치될 예정이다.
“그게 그 파일이랑 무슨 상관인데.”
“이게 나레이션 대본이니까.”
정확히는 나레이션 대본이 포함된 스토리보드로, VCR 촬영팀에서 며칠 전에 보내주었다.
‘NAR’이라고 적힌 줄을 찾아서 대사를 눈으로 읽어보았다.
(NAR.)
우리가 만나지 못한 과거에도, 먼 미래에도 별은 그곳에 존재한다.
별의 바다. 파도치며 빛나는 항성.
밤마다 당신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먼 훗날을 희망한다.
우주 너머로 자유롭게 여행하는 꿈을 꾼다.
……감정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무안해질 것 같은 진지한 대사였다.
편집을 마치면 영상 사이사이에 들어갈 테니까 조금 괜찮을지도……. 괜찮으면 좋겠다.
“이거, 여기만 바꿀 거야.”
문서에 빨간색으로 체크하고 나는 서난영을 가까이로 불렀다.
녀석은 ‘오’ 하고 가볍게 놀라더니 뒤늦게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전달하고 조정하고 다 하려면 시간이 또 부족하겠네…….”
“그렇지…….”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일이라는 게 원래 다 그렇다.
* * *
대망의 <밀리어네어 Z 트랙> 6회 경연 녹화일.
스테리나인의 담당 심사위원인 이용익은 일찌감치 촬영장에 도착했다.
제작진이 고지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는데도 이용익보다 빨리 자리를 잡은 심사위원이 많았다.
그가 이렇게 서둘러 출근한 까닭은, 오늘 1라운드 무대 리허설을 가까이에서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필수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고, 권고 사항조차 아니었으나 여덟 명의 심사위원들은 다들 그렇게 했다.
……사실 이 방송의 ‘특별 담당자’ 제도에 가장 깊이 심취한 것이 그들이었다.
“제가 사실 윤이가 혼자 준비하는 게 어색하다고 해서 편곡하는 걸 봤거든요.”
“저기요, 저도 자랑할 거 있거든요? 애들이 연습하다가 어렵다고 영상통화를 걸어주는데…….”
“저는 우리 노이즈 컴백한다고 해서 방송에 커피차도 보냈습니다.”
만난지 겨우 두 달 된 관계인데, 사이가 벌써 애틋해져서 모두 자식 자랑하듯 출연진을 아꼈다.
제작진부터가 숙고해서 호들갑을 잘 떠는 여덟 명을 모았더니 리허설 현장이 이렇게 시끌벅적해졌다.
이용익은 스테리나인을 잠시 생각했다.
사실 그는 이 사람들처럼 담당 출연진과 많이 친해진 상태는 아니었다.
정말 좋은 청년들이지만, 그 그룹은 자기들끼리 너무 끈끈하고 친한 경향이 없잖아 있었으니까.
애들 노는데 끼어들면 어색해지기나 할 것 같아서 그는 멀리서 속으로 응원하고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이용익보다 말이 없는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나만 빠질 수는 없어서 오기는 왔는데…….”
그렇게 운을 떼는, 2차 경연까지 걸그룹 멜로딕걸즈의 담당을 맡고 이제 원키드 담당이 된 작곡가였다.
그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낯을 가리는 데다가 상당히 계획적인 성격이라고, 이용익은 느꼈다.
“아직 나는 조금 어색해서 좀…….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재로서는 연차가 조금 있는 걸그룹 멜로딕걸즈는 경연 규칙이 바뀌면서 하차 의사를 밝혀왔다.
프로그램 콘셉트가 본인들이 생각한 것과 다르기도 하고, 건강에 문제가 생긴 멤버도 있다나…….
미리 촬영된 분량을 고려해 대기 중이던 원키드가 곧바로 투입되었는데 그는 특별 담당자와 좀처럼 성격 상성이 맞지 않았다.
“저도 잃어봤더니 은근 타격이 있더라고요. 새 사람으로 잊으세요.”
“그러니까 그 새 사람으로 잊는 게 어렵다는 말이잖아~”
1차 경연에서 바네사 장을 보내준 다른 심사위원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작곡가는 여전히 투덜거렸다.
작곡가가 돌려 돌려 불편하다고 말하고, 주변에서는 방송 분위기를 의식해 원키드를 감싸주고……. 대화가 맴돌다가 사그라들었다.
‘원키드가 고집이 조금 있기는 하지.’
프라이드도 있고. 나쁜 말로 하면 오만했다.
조금 전이 원키드의 리허설이었는데, 그때 태도만 보더라도 판단이 가능했다.
한마디로 자신이 심사위원이 아니라 경연 참가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기가 그런 친목을 받아주는 방송은 아닌데.’
이용익은 그리고 원키드가 이번 경연에서 스테리나인과 맞붙는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일대일로 싸운다는 것은 방송 면에서는 좋았지만, 이번 대진은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새 참가자는 관객의 기대와 시선이 더 몰릴 수밖에 없었고, 보여줄 것이 보여준 것보다 많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베테랑 가수인 원키드 쪽이 무대매너라든지 라이브 실력이 더 좋지 않겠는가.
스테리나인을 진심으로 낮잡아보는 마음보다는, 대결을 앞두니까 뭐든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도 이왕 대결하는 셈이니 이기면 좋을 텐데, 흠흠.’
그때 스태프 중 하나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스테리나인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헤어부터 메이크업, 의상까지 전부 준비된 채로, 가슴에 이름표만 붙이고 하는 마지막 드레스 리허설.
VCR도 돌고, 세트를 세우고, 무대 효과도 전부 사용하며, 댄서도 들어온다.
사실상 관객 없는 본공연인 셈이었다.
스테리나인 아홉 멤버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서 씩씩하게 단체 인사를 하고, 심사위원들이 앉은 자리를 향해서도 고개를 숙였다.
“인사 두 번 받았네요.”
“절도 아니고 인사정도는 겸손히 받으세요.”
그들이 사설을 주고받는 사이, 인이어 마이크와 시작 위치를 확인한 스테리나인 멤버들은 자리를 잡았다.
시작은 댄서가 들어오지 않는 상태로 아홉 명이 각자 자리에서 무대를 채우는 구성.
불이 들어오지 않은 무대, 전주도 시작하기 전.
관객석 양옆에 붙여둔 벽걸이 TV 화면에 VCR이 재생되었다.
“…….”
이용익은 숨을 죽이고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영상의 시작을 알리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컴퓨터 그래픽.
거대한 행성 사이를 혜성이 긴 꼬리를 그리며 파고든다.
“외국 영화 같다!”
“야, 이거 제작비 많이 들었겠다…….”
카메라 시점이 빠른 속도로 굽이쳤다. 롤러코스터에 탄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 화면의 각도가 옆으로 약간 비틀렸다.
흰 빛을 내는 궤적은 별의 꼬리가 아니라 기차의 차량이었다.
소리는 고요했다.
보는 이로서는 진공 상태의 우주에 흠뻑 빠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