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69화 (169/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69화

31. REALLY REALLY(5)

“예리하구나, 서난영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난영이가 건네준 휴지를 도로 녀석의 손에 꼬옥 쥐여주며 대꾸했다.

무슨 대책이 있어서 해결방법을 말해준 것이……. 당연히 아니었다.

나라고 해서 이런 일이 생길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건 지금부터 구상해야지.”

“…….”

“왜.”

“뭐야, 진짜…….”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듣지 못한 척하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이제 안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

지금보다 우리에게 더 어울리는 형태여야 했고 안전해야 했다.

그 즉시 다시 바닥에 주저앉아서 십 분 정도 머리를 굴려 보았는데도 뾰족한 술수는 나오지 않았다.

스르륵 드러누워서 천장을 보면서 또 오 분이 지났고……. 세수를 마치고 서난영이 돌아왔다.

“이거 아직도 이러고 있네.”

결국 난영이가 나를 질질 끌고 일으켜서 숙소로 데리고 갔다.

브레인스토밍이 재개된 시점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 넘게 지나서였다.

나는 씻고, 늦은 저녁을 먹고, 옷까지 갈아입은 뒤에 내 방 노트북 앉았다.

시간이 조금 있긴 했지만, 넉넉한 수준은 아니라서 많은 것을 수정할 수는 없었다.

고작해야 한두 가지 동작이나 가사 몇 마디, 무대 효과 정도에만 손을 댈 수 있을 듯했다.

그래도 연습실에서 난영이와 고쳐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 대략적으로 이야기를 해서 다행이었다.

‘흠, 그러니까.’

문제의 발생지는 당시 후속곡이었던 〈Glitter〉와 타이틀곡 〈Express〉를 이어주는 파트였다.

말하자면 댄스 브레이크 부분.

가창을 생략하고 퍼포먼스만으로 십여 초를 충당하는 거기.

그리고 규모가 큰 무대인 만큼 평소에는 하지 않는 퍼포먼스를 준비했는데, 그게 바로 ‘인간 탑’이었다.

멤버들와 댄서들을 글자 그대로 차곡차곡 계단 모양으로 쌓아 만든 것인데, 여기를 서난영이 뛰어오르는 것은 유지할 계획이다.

한마디로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이 관건이었다.

원래는 도움닫기로 올라가고, 꼭짓점에서 앞으로 나오면서 점프하기로 되어 있었다.

점프까지는 좋은데, 바닥으로 내려오고 다음 안무로 이어가는 모습이 불안해서 그 난리가 난 거고.

‘여기서 요약하자면……. 내려오는 자세를 바꿀 거야.’

이건 서너 가지 예시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객관식 시험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주어진 조건과 주제 속에서 주관식으로 빈칸을 채워야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자세만 해도 설 수도,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있는 등 다양했다.

팔이나 다리의 위치, 손 제스처의 다양성까지 고려하면 방향은 수백 갈래였다.

아예 새로운 것을 창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성싶었다.

“야, 야. 지금 안 잘 거면 의자 끌고 이리 와봐.”

“귀찮게에에.”

“너 잘 되라고 하는 거니까, 잔말 말고.”

우선은 얼굴에 팩을 붙이고 침대에 누워 있는 서난영을 쿡쿡 찔러서 내 책상 옆에 앉혔다.

마사지기로 얼굴을 밀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얌전히 앉아있는 서난영에게, 나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시작해보려고.”

“좋지.”

왠지 공부할 때 인형을 옆에 세워놓고 소리내어 문제를 풀이하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지금은 이 녀석의 의견이 많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니 다를 바 없는 것도 같았다.

“그러면……. 어디가 처음이냐.”

“때는 2012년, 내가 열여덟이었을 때…….”

“아니, 이 애매한 시기 뭐지.”

“현우가 연습생으로 들어오고 스테리나인의 역사는 시작되었지.”

“이 자기중심적인 인간 뭐지.”

현우는 제삼자가 아니라 서난영의 개명하기 전 이름이다…….

어느 모로 들어도 긴장감 따위 없는 헛소리라서 나는 적당히 무시하고 이튜브에 ‘스테리나인 Express’라고 검색했다.

상단에는 뮤직비디오가 노출되었으나 마우스를 옮기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아, 잠시만. 이거 보기 전에…….”

그리고 나는 앉은 자세로 의자를 밀어 방 한구석 책장으로 다가갔다.

책장은 장식장 겸용이었는데, 맨 아래칸에는 음악 방송이나 행사를 돌며 다른 선후배 가수들과 교환한 앨범과 우리가 스테리나인 이름으로 지금까지 발매한 앨범이 세로로 꽂혀 있었다.

크기별로 정렬한 앨범 사이에서 공책 크기만한 앨범 두 장을 꺼내들었다.

2종 1세트로 민트색 커버가 ‘One-way’ 버전, 청록색 커버가 ‘Round-trip’ 버전이었다.

앨범 이름 《Midnight Train》과 기차 콘셉트에 맞춰서 한 버전은 편도, 한 버전은 왕복.

스티커나 엽서, 렌덤 포토카드 등의 구성과 포토북 콘셉트가 조금 달랐다.

“이때 사진은 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그러게.”

서난영도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고, 앨범을 펼치면 포토카드가 툭 무릎 위로 떨어졌다.

포토카드를 주워 앞면을 확인하고 난영이에게 보여주었다.

“와, 이거 잭팟이다.”

서난영은 대답 대신 턱을 떨구고 눈을 삼백안으로 치켜뜨고 나를 봐주었다.

셀카 포토카드 주인공은 나였는데, 뮤직비디오 촬영 의상으로 살짝 비스듬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머리는 연한 커피색에 이마를 까서 지금과는 스타일링이 다소 차이가 있었다.

내가 손에 들고 있는 ‘One-way’, 편도 버전은 기차역 세트를 배경으로 제복 유니폼 콘셉트.

“나 이주 나왔다.”

서난영이 보여주는 한이주의 포토카드는 ‘Round-trip’, 그러니까 왕복 버전이었다.

그 포토카드 속 의상은 편도 버전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 비교적 캐주얼한 셔츠와 슬랙스였다.

포토카드와 왕복 버전 앨범을 받아서 두 앨범 포토북을 놓고 차근차근 사진을 뜯어보며 관찰했다.

스테리나인에게는 세계관이 따로 없었지만, 각 콘셉트마다 최소한의 스토리나 일관성은 존재했다.

예컨대 《Midnight Train》에서 무대로 활동한 두 노래 〈Express〉와 〈Glitter〉에도 접점이 있었다.

“밑에 USB 선 연결됐는지 좀 봐주라.”

“불 들어오고 있어.”

나는 앨범에서 CD를 꺼내, 노트북과 연결한 외장 CD 플레이어에 집어넣고 재생했다.

여섯 곡 중 두 번째 트랙 〈Express〉.

앨범 제작 단계에서도 몇백 번은 들은 음악이었고 최근에도 연습하면서 매일 수십, 수백 번을 들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전혀 질리지 않았다.

하루의 끝 불 꺼진 창을 열어

특별함을 원한다면

널 만나러 갈게

도시적인 사운드에 기타와 드럼, 베이스가 로큰롤 분위기를 자아냈다.

열차 운행이 끝난 시각에도 ‘너’를 만나겠다는, 낭만과 설렘이 가득한 노랫말.

사실 이 노래는 단순히 철도 기관사나 역무원 콘셉트가 아니었다.

〈Glitter〉를 음원으로 듣기 전에 나는 인터넷을 다시 열어 〈Express〉 뮤직비디오를 재생했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김지상이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궤도 안에 갇혀

같은 자릴 공전하는

평범함이 끔찍하면 너는

노래의 도입부터 등장하는 단어가 확고한 테마를 가지고 있었다.

‘궤도’라든지 ‘공전’이라든지.

그러니까……. 〈Express〉는 실제로 육로를 달리는 기차의 심상이 아니었다.

이때의 콘셉트는 은하수를 달리는 우주의 급행열차였다.

……영영 떠나는 편도 버전과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왕복 버전.

‘사랑하는 네게 우주를 달리는 것처럼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줄게’. 가사는 말하고 있었다.

뮤직비디오 영상이 끝까지 재생되면 알고리즘은 자동으로 다음 영상을 보여주었다.

후속곡인 〈Glitter〉.

이 노래는 브라스와 스트링이 들어가는 펑키한 노래였다.

똑같은 별자리를 신호로 삼아

너와 나 이제부터 혼자가 아냐

의상 콘셉트는 이른바 교복이라고 말해도 좋은, 스포티한 느낌의 와이셔츠와 넥타이.

따로 촬영한 뮤직비디오에는 저녁 시간 모여서 산으로 올라가는 우리 모습이 담겼다.

산 꼭대기에 오르면 한 사람이 가방에서 망원경을 꺼내고, 또 밤하늘을 본다.

천체 망원경의 둥근 렌즈 너머로.

“추억이네…….”

“진짜 이 산에 벌레 엄청 많았는데.”

내가 벌레 이야기를 꺼내자 서난영이 피식 웃었다.

처음부터 후속곡 활동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앨범이라서 두 곡은 이러한 접점을 자랑했다.

별똥별처럼 흰 꼬리를 그리는 은하 열차 〈Express〉와 학교 천문부의 일상을 담은 〈Glitter〉.

두 노래 모두 밤하늘을, 우주를 올려다보고 먼곳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나 그 삶을 상상한다.

하늘에 닿고 싶어

1절이 끝나자 나는 스페이스바를 눌러 영상을 멈추었다.

그게, 이 노래를 발매했을 때 의도는 〈Express〉 다음에 〈Glitter〉가 이어지는 구조였다.

우주를 떠도는 기차를 〈Glitter〉의 주인공들이 발견할 수 있도록……. 복선처럼 연결되는 식이었다.

“〈Glitter〉 다음에 〈Express〉가 온다는 것도 난 중요한 요소라고 봐.”

내가 멈춘 영상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중얼거렸다.

원래 우리가 해석한 〈밀제트〉 버전 〈Glitter+Express〉 무대는 이런 느낌이었다.

어려서부터 우주를 꿈꾸던 사람이 마침내 뛰어올라 우주를 여행하게 되는 것.

따라서 공연의 서사를 따지자면 올라가는 것이 중요했고, 착지는 새 삶을 위한 도약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난영은 뛰자마자 다음 파트를 준비해야 했고 최대한 멀리 뛰어나가야 했다.

“……그러니까 사실상 〈Glitter〉와 〈Express〉에서 화자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거지.”

선곡 때부터 멤버들과 자체적으로 연구한 내용과, 협업하면서 주고받은 아이디어를 종합해 한번 말로 간추려보았다.

서난영이 턱 위로 마사지기를 굴리면서 코멘트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좀 섬뜩한데. 사후세계 같은 느낌인가.”

“사후세계까지는 너무 갔지만……. 돌아오지 않는 여행일까? 어떻게 생각해.”

“어……. 나는 돌아오는 것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그 말은 즉 서난영은 돌아올 생각 없이 탑 끝에서 점프했다는 의미가 된다.

잠시 생각했다. 편도와 왕복……. 앨범에서는 무엇이 옳다고 정의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이렇게 자문해야 했다.

지구로 돌아오는 것과 돌아가지 않고 영영 우주에서 사는 것 둘 중 무엇이 ‘스테리나인’인가.

“너는 그 상황이면 지구로 다시 오고 싶을 것 같아?”

정답은 ‘멤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새 삶을 찾아 우주로 떠나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연출하려고 한 무대의 서사였다.

다만 멤버들이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퍼포먼스를 잘못 꾸린 셈이었다.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보여주어야 하니까.

나는 심사숙고 끝에 제일 가까이 있고 퍼포머 본인이기도 한 서난영에게 그렇게 물었다 .

“나는……. 응.”

“왜?”

“난 지금이 좋아.”

난영이가 되물었다.

“형은 어떤데.”

“나?”

“응. 떠나고 싶어?”

내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니.”

“…….”

“여기서 살겠지, 나는.”

떠나더라도 다시 돌아올 거고. 내가 답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