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68화
31. REALLY REALLY(4)
그러나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내 몸도 이상함을 감지하는 머리보다 더 빠르게, 들여놓은 습관대로 움직였다.
닿지 않은 손길이 의아해 초반 감정을 제대로 잡지 못했던 것을 제외하면 연습은 물 흐르듯 잘 흘렀다.
멤버들도 그 외에 튀는 부분 없이 노래를 제대로 소화했기 때문에.
결과만 놓고 보면 내가 과민하게 반응한 꼴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흠…….’
오늘은 전체 안무 연습 3일 차로 안무 디테일을 하나하나 다듬기 전에 전체적인 그림을 보기로 한 날이었다.
안무는 우리나 댄서들이나 이미 따로 숙지를 해왔고, 단체 동작을 새로 배우는 것은 앞서 이틀 동안 끝냈다.
다시 말해 오늘은 움직임을 박자 단위로 뜯어보면서 배우는 날이 아니었다.
중간에 멈추자고 요청하면 흐름이 아예 끊길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알아채고도 약간을 고민했다.
다만 한 곡이 끝나고 촬영한 안무 영상을 보며 피드백하는 시간에도 서난영은 입을 닫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나서서 한마디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야. 난영아.”
“……어, 왜?”
이름을 부르자 서난영은 수건으로 땀에 젖은 얼굴을 문지르고는 한박자 늦게 되물었다.
원래 연습 시간에는 다들 예민해지기 마련이라서 데뷔한 이후로는 나도 말을 조심하려고 하는 편인데…….
지금은 심지어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외부에서 온 댄서들도 많고(우리 그룹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은 지적할 일이 있다고 해도 분위기가 심각해지거나 실수한 당사자가 무안하지 않게 살펴야 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예외다. 왜냐하면…….
“너 착지 불안한 거 알지.”
다칠지도 모르니까.
몰랐든, 알고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든, 그 정도 부족함은 숨기려고 했든, 당장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막말로 사람 키만한 높이에서 뛰어내려서 발목으로 중력과 체중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퍼포먼스였다.
무리하면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그렇게 멋대로 구르다가 춤을 그만둔 아이돌이나 댄서들을 내가 모르는 게 아니었다.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나는 딱히 물음을 숨기지도 않았다.
“…….”
“대답을 해야지.”
“핫, 불안하다고 할 정도인가…….”
서난영은 웃으려고 했으나 소리가 조금 안으로 먹혀들어갔고, 나는 잠시 쳐다봐주었다.
솔직히 서난영이 뛰어내리는 동작은 우리의 이번 퍼포먼스에서 제일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우리가 처음 《Midnight Train》이라는 앨범을 제작하면서, 그리고 두 개의 서로 다른 노래 〈Glitter〉와 〈Express〉를 연결하면서 구축한 스토리.
그 점프는, 그 서사를 상징하는 움직임이었으며 두 노래의 이음매였고 분위기를 전환하는 시작점이었다.
“너 할 수 있겠어?”
“해야지……?”
난영이는 그렇게 말했고, 그로 인한 내 첫 번째 결정은 ‘보류’였다.
우선 잔소리는 미뤄두고 착지 동작만 집중해서 연습을 되풀이할 수 있게 건의하는 것으로 대처했다.
두꺼운 매트를 바닥에 깔아두고 모여서 지지대를 만드는 과정부터 〈Express〉 초입까지 반복 연습.
단순히 숙련 부족이 문제라면 연습하면 된다. 어차피 오늘은 그러기 위한 시간이니까.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확신은 그날의 연습이 거의 끝났을 때쯤 들었다.
“형, 나는 회사에 내려주라.”
“난영이 형 가면 나도.”
오늘 스케줄을 마무리하며 퇴근하는 길.
숙소에 다 다다랐을 무렵 서난영이 매니저 형에게 말했다.
서난영을 따라 천진섭과 강주찬도 손을 들었는데, 내리고 보니까 진섭이는 사물함에서 짐을 찾아서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강주찬도 근처를 뛰겠다고 도착하자마자 헤어져서, 정신을 차리니까 은근슬쩍 같이 내린 나와 서난영만이 회사에 남았다.
슬그머니 엘리베이터에 따라 들어갔더니, 서난영이 지하 층수를 눌러놓고 내게 물었다.
“그런데 형은 뭐하려고.”
“너 하는거 볼까 싶어서.”
“내가 뭐할 줄 알고.”
말장난으로 빠질 것 같아서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여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새까만 벽의 연습실 구석에는 해체하지 않고 치워두기만 한……. 2미터가 조금 덜 되는 구조물이 보였다.
퍼포먼스를 연습하려고 책상이나 목재 따위를 이것저것 붙여서 급조해둔 임시 발판이었다.
발판은 굉장히 불안정했지만, 사실 사람 등을 밟고 올라선다는 것이 훨씬 더 아슬아슬해 오십보백보였다.
둘이서 그것을 밀고 당겨 중앙으로 가져온 뒤 나는 음악을 틀었다.
이 모든건 묵묵히 이루어진 감이 있었다.
“한번 해봐.”
나 혼자서 계단 자세를 잡을 수도 없었기에, 나는 몇 걸음 뒤로 떨어져서 난영이에게 요청했다.
‘계단’을 올라서 끝에서 떨어져 착지하기까지의 과정. 거기까지만 보면 그리 이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Glitter〉 시작부터 〈Express〉 인트로까지 시도해보라고 하면 순식간에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동작에 실수는 없었으나 –끝도 아니고 노래 중간까지인데도– 초반의 여유가 도무지 이어지지 못했다.
세 번까지는 항의 없이 지켜보다가 네 번째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자 나는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
“…….”
서난영은 뻗었던 팔을 제자리로 되돌렸고, 나는 재생되던 음악을 중지했다.
노랫소리를 조정하던 핸드폰을 내려놓자마자, 그러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서난영이 외쳤다.
“한 번만!”
검지를 들어올린 채였다.
아주 어색한 웃음을 흘리면서.
“나 딱 한 번만 더 해볼게.”
그래서 다시 노래를 틀어주었다. 왜 저러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니 원없이 해보게 둔 셈이다.
하지만 한 번 더 뛰어본다고 해서 부족한 부분이 온전히 메꾸어지지는 않았다.
내가 보고 있으니 긴장해서, 하루 내내 연습한 뒤라 지쳐서, 오늘이 왠지 안 되는 날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저 단지, 지금 난영이의 조건이나 기술로는 ‘해낼 수 없다’……. 그게 진실이었다.
‘…….’
어렵다. 무엇이 문제인지 말을 꺼내고 어떻게 하자고 제안하기가.
누구보다, 분명히 나보다도, 서난영이 한계를 잘 체감하고 있을 테니까.
경연 당일까지는 기한이 조금 남았으니 그때까지 보완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답답할 수도 짜증이 날 수도 있고, 속상하거나 절망적일 수도 있겠다.
어느 것이든 결코 좋은 종류의 감정은 아닐 터였다.
렌즈 너머 아름다운
저 하늘에 닿고 싶어
내가 저지하지 않으면 음악은 반복 재생되었고 서난영은 은근슬쩍 다시 뛰었다.
착지 동작에 성공하는 경우가 아예 자세조차 잡지 못하는 경우보다 월등히 많았다.
그러나 문제는 어디까지나 안정성이었다.
무리 없이 이 다음 춤을 소화할 수 있는가. 실전에서도 잘할 수 있는가.
하늘에 닿고 싶다는 이영하의 목소리가 텅 빈 연습실 천장에 그로부터 몇 번이나 더 울렸을까.
쿵.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매트에 몸이 부딪히는 소리.
땅바닥에 내려오는 지점을 잘못 잡아서 녀석은 말 그대로 한 바퀴를 앞으로 굴렀다.
그쯤 되면 보고 있기만 할 수도 없었다.
바로 음악을 종료하고 다가갔다.
서난영은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앉은 자세로 고개를 떨구어 바닥을 쳐다보았다.
에어컨을 아무리 세게 틀어놓아도 등과 목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서난영.”
“…….”
녀석이 입을 열었다.
“안 되나봐……. 못하겠다.”
항복 선언이었다.
깔끔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목소리였다.
나는 털썩 맨바닥에 주저앉았다.
“나 이제 말해도 되냐.”
“어. 해봐.”
“올라가는 건 괜찮거든. 무게중심이 지금 보면 좀 위에 있긴 한데, 이건 연습하면서 잡으면 될 거고.”
먼저 나는 오늘 단체 연습부터 나머지 연습까지 옆에서 보고 느낀 점을 모조리 피드백했다.
이미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해 정리하는 느낌이기는 했다.
무게중심 이야기나, 감정을 잡는 방법이나, 어떤 근육을 더 써야하는지 등등.
“그런데 솔직히 착지는 더 나아지는 게 없어.”
“…….”
“너도 뭐 느낀 점이 있을 거 아니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봐.”
“아니……. 나도 아는 말을 하니까.”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그것도 몇 분 더 기다려주어야 했다.
휴지도 물도 받아간 난영이가 내게 쓰레기를 고스란히 돌려준것은 그로부터 오 분은 지나서였다.
조그마한 음성으로 서난영은 중얼거렸다.
“짜증나…….”
나한테 하는 말은 아니겠지…….
서난영은 자기 무릎을 끌어안고 쪼그려 앉아 질문했다.
“……그러면 우리 이제 어떡해? 형이 해?”
“너 내가 왜 제외된 건지 잊은 거냐.”
“〈Express〉 인트로 해야 해서……. 아니면, 아예 점프를 없애게?”
“아니, 뭐……. 굳이.”
나는 작게 헛기침하고 조금 전 촬영한 서난영의 점프 영상을 본인에게 보여주었다.
〈Glitter〉 도입부터, 점프, 착지, 그 다음 새로운 도입을 위해 다가오는 파트까지 찍힌 영상이었다.
부족한 부분과 조금만 더 다듬으면 될것같은 부분 그리고 이미 충분히 잘하고있는 부분이 섞여 있었다.
“내려오는 게 문제라서 그렇지, 밟고 올라가는 것까지는 잘해.”
“한참 뭐라고 하더니 이제와서 잘한대.”
“어쭈. 내 말은 계속 보니까 뭐가 괜찮고 나쁜지 세세하게 다 알겠다는 말이지.”
나도 동생이 넘어지는 꼴이 재미있어서 그 모습을 옆에서 두눈 부릅뜨고 다 보고 있었던 게 아니다.
조금 더 움직임 단위로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일주일이 채 안 되는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더 해야 할지 판단하기 위해.
그렇게 계산하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만 고치면 되는지, 그 최소한의 범위를 지정할 수 있었다.
“떨어지는 장면만 수정하자.”
움직임을 작게 하든, 동선을 바꾸든, 착지점에 장치나 사람을 두든.
이대로는 안 된다.
“수정하면 더 안좋아지는 거 아니야?”
“안 좋은 게 뭔데.”
걱정스러운 질문을 내가 되물어 받아쳤다.
“첫 아이디어가 꼭 제일 좋은 거라고 할 수는 없잖아. 우리한테 주어진 거 그렇게 완벽한 상태 아니야. 네가 특별히 부족한 것도 아니고.”
“…….”
“우리가 소화할 수 없으면 완벽한 게 아닌 거야. 우리가 무슨 숙제 받아서 수행평가 하는 학생도 아니고. 프로잖아.”
서난영은 조용했다.
“곡 주인은 우리고, 그 파트 주인은 너지.”
“……응.”
“그냥 뭐……. 핏이 안 맞는 거야. 그런 건 고쳐도 돼.”
난영이는 대꾸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연습용 구조물의 책상 부위에 다시 걸터앉았다.
나는 여전히 매트 없는 바닥에 앉아 있는 중이었다.
“너무 혹사하지 마……. 너 허리 때문에 병원 간 거 반년도 안됐어.”
막 〈데프아〉 파이널까지 끝나고 스테리나인도 투어 끝나고, 에이레가 결성된 시점 얘기였다.
수술이나 입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서난영은 허리 통증을 호소해 잠시 병원을 드나든 적 있었다.
“오래 해야지.”
나도 몸을 일으켜서, 시선을 내려 눈을 보았다.
정적도 눈싸움도 길게 이어졌다.
“……고치면…….”
결국 서난영이 먼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어떻게 할 건데?”
그렇게 질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