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67화 (167/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67화

31. REALLY REALLY(3)

자체 평가라는 함정이 존재했지만, 그 말썽거리는 외적으로 해명을 했고 방송에서 판결을 뒤집기도 했다.

낮은 순위에서 높은 순위로 급등한 순간에 순위제가 폐지되어 그대로 해피엔딩을 맞이한 셈이다.

그리고 자체 평가를 제외한 현장 점수나 심사위원 평가 속 스테리나인은 여덟 팀 중 명백히 상위권.

대면식을 제외하면 이제 세 번째 무대였다. 방송이 끝날 때가 아니었다.

탈락할 때 탈락하더라도 지금은 자리를 유지해야 했다.

‘우리가 이 방송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을 생각해.’

첫째는 그룹으로서의 인지도, 둘째는 실력파 이미지.

셋째는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이 오래오래 볼 수 있는 퀄리티 좋은 무대 영상이고.

보너스로 방송 관계자들의 인맥 따위도 얻을 수 있겠지만, 당장 신경 쓸 것은 이 세 가지였다.

즉 몇 개월의 시간을 굳이 쏟아 방송에 참여한 이상, 언제 탈락하든 저 세 가지는 얻어서 돌아가야 했다.

첫 번째는 대중에게 보여줄 성과였고, 세번째는 팬덤을 위해서였다.

두번째는 둘 다에 포함되었다.

다시 말해 두 번째 요소 ‘실력파 이미지’가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그런데 여기서 지면 날개가 꺾인다.’

‘우리도 잘했지만 상대가 너무 잘 했다’든가 ‘졌지만 잘 싸웠다’를 경계해야 한다.

적어도 플레이어인 우리는……. 이 시점에서는, 그렇게 생각해야 했다.

반드시 승리로 증명하자고 우리 스스로를 몰아세워야 하는 타이밍.

부담을 등에 얹고 긴장하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필요했다.

말하자면 기필코. 스트레스를 느끼며, 독기를 품어야 했다.

“형, 빨리 와서 마이크 차.”

서드림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부터 들려왔다. 남은 생각 많은데, 참으로 태평한 녀석들이었다.

태평하고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사실 걱정할 것도 없었다.

대결에서 이기면 다 해결되는 문제니까.

하지만 이렇게 위기감을 느끼는 까닭은 역시, 우리가 이번 무대를 전력으로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연습을 위해 이어셋 마이크 선을 정리하며,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Express〉.’

이 노래에 관해서.

〈Express〉는 2015년 10월 12일 발매한 스테리나인의 5번째 미니앨범 타이틀곡이다.

무려 그 해의 세 번째 컴백 곡. 중간에 일본 데뷔도 했으니 앨범으로 따지면 그해 네 번째 앨범이었다.

미니 5집 이름 〈Midnight Train〉과 걸맞는 이 타이틀곡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런 뜻이었다.

Express. 동사로는 ‘나타내다, 표현하다’, 형용사로는 ‘신속한’…….

그리고 명사로는 ‘급행열차’.

콘셉트는 역무원과 철도 기관사를 적당히 섞어놓은 듯한 격식 있는 유니폼이었다.

그룹 세계관까지는 존재하지 않는지라 의상이나 포토북 정도에만 사용한 콘셉트였지만…….

하여간 그 해 활동이 반응이 꽤 좋다는 것을 깨닫고 힘을 꽤 주고 나온 컴백이었다.

노래 역시 사운드가 화려했고 퍼포먼스도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격렬했다.

‘전성기였지.’

행사 등에서 자주 부르기도 하고 우리도 좋아하는 노래라서 심지어 안무도 버전이 여러 가지였다.

6인, 7인, 8인, 9인 버전에 라이브 퍼포먼스를 편하게 하기 위해 각 동작 난이도를 약간 쉽게 조절한 버전까지.

나도 이제까지 발매한 –미래 노래를 제외하면– 곡 중 좋아하는 노래를 손꼽자면 〈Express〉가 ‘최애’였다.

아홉 명의 스테리나인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노래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Express〉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경연 무대도 다들 칼을 갈았다.’

우선 우리는 1라운드 무대 하나에 제작진이 준 여섯 개의 토큰을 탈탈 털어 모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댄서와 세트는 기본으로, VCR을 별도 촬영하고, 무대 뒤에 들어가는 LED 배경을 특수 제작하며 무대 장치도 설치했다.

그리고 제작진의 허락 하에 당시 후속곡이었던 〈Glitter〉의 1절을 편곡해 초반에 삽입되도록 노래를 합쳤다.

편곡까지 해서 토큰 여섯이 들어갔고 제작진이 토큰 청구 없이 제공하는 안개 효과나 종이 폭죽도 요청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패배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그 정도 무대를 해낸다면 탈락해도 여한이 없을 테지만, 그 무대로 탈락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Express〉는 그런 의미였다.

가장 행복한 시기의 상징이므로 그 노래로 무대에 서면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

“노래 틉니다!”

“예!”

안무 트레이너가 말했고, 각자의 자리에 포즈를 잡고 선 우리는 입을 모아 외침으로 응수했다.

오늘은 회사에 〈밀제트〉 제작진이 찾아온다고 해서 당장 보여줄 수 있을만한 콘텐츠를 골라 연습하기로 했다.

바로 ‘라이브 퍼포먼스’ 연습.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 곡을 이은 편곡은 이미 나왔고, 녹음도 마쳤고, 댄서가 없어서 허전했지만 라이브 컨디션은 좋았다.

어두운 밤 음악이 시작되면

개찰구를 뛰어넘어

널 만나러 갈게

리드미컬한 기타 사운드가 반복되는 리프에 빌드업이 점차 쌓이고, 고조되는 순간이었다.

내 허벅지를 밟고 이영하가 멀리 뛰어 전진해 마저 보컬을 이어가야 하는 고난도의 동작.

하지만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안정적이었고 호흡도 매끄럽게 잘 뽑혔다.

막말로 분량이 될만한 장면이 없어서 제작진에게 미안했을 정도로 실수가 전무했다.

다들 징그러울 만큼 진지했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환경이 바뀌었을 때 일어났다.

* * *

[일대일채팅] 밀월님

[밀월님: 아니 근데 진짜]

[밀월님: 숨쉬듯이 조롱하는사람 너무많아요]

[밀월님: 슈스되니까 좋은데 별일이 다생기네여 ^^...]

[ㅋㅋㅋ 그니까요]

[안보려고 해도 영업글 하나만 쓰면 댓글 만선되구 ㅡㅡ.]

[밀월님: 하 진짜 툿투나 복덕방이나]

[밀월님: 인간들 하루에 인터넷 너무 많이해서 뇌가 썩엇어요]

[걔들보면 저희는 뭐 상대적 일반인이죠]

[전 솔직히 스나만 안 까인다는 글이 제일 어이없어요]

[밀월님: 아 ㄹㅇㄹㅇ 스나 올려치면서 비교 유도하는 애들도 넘많구]

[밀월님: 당장 오늘만해도 애들 무대얘기는 안하고 성적만 따지고 ㅡㅡ ㅋㅋ]

[밀월님: 아니 뭐 저희애들이 1위한것도 아닌데 왜저러는지 모르겠어요]

[무대 솔직히 평가 잘나올 퀄리티였잖아요]

[밀월님: ㅁㅈ!!! 무대를 못했는데 성적잘받앗으면 몰라!!]

[걔들이 진짜 머리가 나쁜게]

[아이돌 욕먹는 분위기 만들어놓으면 걔들 본진 나오면 더 욕먹을텐데]

[어떻게든 스나 성과 축소하고 싶어서... 견제하다가 미쳤어요]

[밀월님: 진짜요!! 뭐 밀젵 경쟁자 팬덤에서 견제하는것도 아니고 뭔 여돌인장한 애들이]

[밀월님: ㅠㅠ애들 진짜 고생했는데 ㅠㅠ]

[밀월님: 점수 잘나와도 부당하고 점수 안나와도 부당하고 어쩌란건지]

[하진짜 밀월님 ㅠㅠ 데프아는 어떻게 버티신거예요 ㅠㅠ]

[밀월님: 아니 그남자가 먼저... 아닙니다]

[밀월님: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해도 애들 잘해서 좋아요 ^ㅡ^]

[밀월님: 사실 뭐라하는 애들도 다 열폭인거라서 보다보면 그냥웃김 ㅋㅋㅋ]

[ㅋㅋㅋ 진짜요 행실문제X 이상한짓X 실력좋음O 잘생김O]

[성적잘나옴O 팀워크좋음O 심사위원평가도 좋음O]

[어 그래봤자 스나 이번에도 1라운드통과~!~!!]

[밀월님: 애들 너무잘해여 진짜...]

[밀월님: ㅠ0ㅠ 뛰들을 여기서 보게될줄 몰랐어요 우우 스나뽕차]

[제발 익프도 해줬으면... 저 진짜 요즘비주얼로 익프보고싶어요]

[이 명곡을 저희만 알수는없어]

[전설의 익 스 프 레 스]

[밀월님: 걱정ㄴㄴ]

[밀월님: 익프는 안할수가없어요]

[밀월님: 다음경연이나 늦어도 다다음경연에는 꼭함]

[뭐 스포들으신거예요??]

[밀월님: 아뇨 그냥 감입니다 ㅋㅋㅋ]

[밀월님: 익프내놔 to.스나]

[강경익프내놔단 (2/nnn)]

* * *

토요일에는 〈뛰어들어〉 무대로 참여한 2차 경연 1라운드 방송이 공개되었다.

방송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제작진은 방송 초입에 피드백 및 경연 규칙 변경을 미리 발표해 비난을 방지했고, 어차피 무대 위주로 시간은 편성되었다.

딱히 영상으로 보았을 때와 현장에서 보았을 때 퀄리티 차이가 많이 나는 무대도 없었고.

스테리나인은 〈뛰어들어〉 무대로 자체 평가에서도 현장 순위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았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자체 평가로 야기된 문제는 전부 봉쇄했고, 아직까지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그냥……. 그 사람들이 문제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하루가 더 지나 오늘은 완성된 세트에서 댄서들과 함께 안무를 맞춰보는 날이었다.

오늘이 되기 전까지는 다들 라이브 연습도 하고 세부 수정 사항을 조절하기도 하고…….

그 외에 VCR도 촬영하고, 무대의상도 피팅하고, 개인 연습도 이어가며 일정을 소화했다.

수십 명의 댄서 앞에서 우리는 누가 대표라고 할 것도 없이 다들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면 처음부터 한번 가볼까요.”

트레이너 선생님의 주도로 연습이 시작되어 한 동작 한 동작 진행하는 것은 꽤나 재미있었지만…….

일부러 무리해가면서 삽입한 퍼포먼스가 많았기에 어떤 의미로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예를 들어서 〈Glitter〉 이후 〈Express〉로 노래가 이어지는 바로 전환 구간.

이 대목에서 멤버들은 댄서들과 한데 뭉쳐서 커다란 ‘인간 계단’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등을 밟고 최상단까지 올라선 서난영이 그 끝에서 떨어져 착지하는 퍼포먼스.

고난도 안무였다.

이 정도로 어려운 동작을 소화할 수 있는 멤버는 우리 중에서도 셋밖에 없었다.

나나 서난영, 그리고 김지상.

그러나 김지상은 사람을 밟고 올라서기를 어려워했고, 나는 무게감 때문에 그림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날렵하고 가볍게 뛰어서 착지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내 경우는 힘이 지나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Express〉 인트로 센터가 나라서 둘 다 내가 맡으면 동선 맞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서난영이 맡게 된 파트였다.

하늘에 닿고 싶어

녹음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넓은 스튜디오 안에 울렸다.

〈Glitter〉 전주부터 시작한 노래가 1절 끝을 맞이할 때.

자세를 잡기 무섭게 등 위로 둔탁한 감각이 닿았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밟고, 달리고, 점프하고.

이후 서난영의 착지를 기다려주지 않고 바로 계단 자세를 풀어 다음 동작이 이어졌다.

많이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Express〉라는 곡도 멤버들이 한데 엉켜서 시작하는 노래였기 때문에.

내 왼팔과 어깨, 오른팔과 어깨, 허벅지에 멤버들이 팔을 뻗어 고정해야 했다. 원래는.

서난영은 즉, 땅에 닿자마자 빠르게 대형에 합류해서 내 왼팔을 붙잡아야 했다.

그런데.

‘……?’

〈Express〉 전주가 악기가 사운드에 섞일 때가 되어서도 왼팔이 잡히지 않았다.

대형에 합류했는데, 손이 애매하게 올라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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