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66화 (166/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66화

31. REALLY REALLY(2)

과감한 결단이 까만 볼캡 모자를 눌러쓴 PD의 잇새로 흘러나왔다.

“지난 2라운드는 탈락자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나도 모르던 디테일이었는데, 자세한 설명을 듣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그저께 제작진은 2차 경연 출연진 5위부터 8위 팀을 모아놓고 2라운드 경연을 촬영했다.

하지만 경연을 치르기 전에 규칙 변경을 공지하고, 탈락자를 아예 발표하지 않고 무대만 찍었다.

2라운드부터 변경한 규칙을 적용한 것은 아니지만, 자진하차자가 생길 것을 우려해서였다.

방송이 초반인데 한 주에 여러 팀을 물갈이하면 아무래도 제작진 입장에서도 버거울 테니까.

“대신 1라운드로 생존한 상위 네 팀에게는 토큰으로 보상을 해드릴 예정이고요.”

엄숙한 분위기로 공지가 이어졌다.

“그전까지의 시스템이 부담스러웠거나, 새 규칙에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면 스테리나인도 언제든 촬영 중단 의사를 밝혀주셔도 좋습니다.”

아마도 전 출연진에게 짚어줄 성싶은 안내를 받고, 나는 시선만 좌우로 돌려 멤버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다들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2라운드에서 탈락자가 나오든 나오지 않든……. 사실 나도 그랬다.

우리는 1라운드에서 이미 생존을 결정지었으니까, 보상까지 준다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촬영 일자는 미리 안내드린 대로 각각 금요일, 화요일로 옮기게 될 예정이고요.”

촬영 스케줄은 일찌감치 연락을 받아 우리는 이미 연습 일정 조정도 다 끝낸 상태였다.

아, 이번 1라운드 일정은 다음주 월요일에서 금요일로 미루어진 셈이라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월요일이면 조금 빠듯하다고 생각했는데, 조절하고 나니까 컨디션을 관리하며 디테일도 맞출 수 있을 듯했다.

“즉, 이제 2라운드는 통상 사흘의 연습 기간을 가지고 진행하게 됩니다.”

원래는 1라운드 준비에 일주일, 2라운드 준비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주는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는 일주일 준비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무대를 보여줘야 했다.

준비가 미리미리 필요했고, 바네사 장은 그 준비를 반강제로 시키고 떨어뜨리는 게 부당하다고 꼬집었다.

변화를 요약하자면, 1라운드 부담을 늘리고 2라운드는 훨씬 가볍게 준비할 수 있도록 조정한다는 의미였다.

1라운드는 연출과 규모로 승부한다면 2라운드는 순수 피지컬과 선곡으로 승부가 갈리게 될 테다.

그 외 2라운드에 관해서도 PD가 구두로 설명했으나 지금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서 고개만 끄덕이며 들었다.

당장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무튼 스테리나인은 1라운드로 승부를 내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사운드보다 퍼포먼스를 중시하니까 준비 기간이 적을수록 더 불리하지.’

이후에는 방청객 투표 이야기나 팬 참여 규칙 보강 등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내가 기다리고 있던 소식도 지나가듯이 전해졌다.

“자체 평가 제도 중 ‘브레이크 트랙’ 규칙은 삭제하려고 하고요.”

“와!”

“저희가 브레이크 트랙 때문에 걱정이 많았거든요. 흑흑.”

이영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황급히 앉으면 옆에 있던 한이주가 우는 소리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PD가 말하기를 ‘리스펙트 트랙’은 남겨서 그 자리에서 바로 개당 토큰 1점으로 바꾸어준다는 것 같았다.

점수만 남기고 순위는 버리는 방식으로. 내가 기억하는 〈밀제트〉 규칙이자 만족스러운 방향의 변화였다.

결국 우리는 웃으며 자체 평가 순위 제도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그런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좋은 뉴스 다음에 다이나믹한 새 소식이 뒤따랐다.

이런 프로그램을 촬영하면 PD의 MC 실력도 성장하는 건지 되게 긴장감 있게 시간을 끌었다.

양옆에서도 꽤나 호들갑을 떨어대서 다 알면서도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이제 〈밀리어네어 Z 트랙〉 1라운드는 ‘일대일 대결’ 시스템으로 변화하게 되는데요.”

일대일 대결.

대충 〈데프아〉 첫 번쨰 경연이었던 라이벌 데스 매치와 비슷한 제도 같았다.

다만 여기서는 라이벌을 미리 알고 대결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맞수를 정하는 타이밍은 1라운드 인트로 때, 그러니까 리허설도 끝낸 다음인……. 무대 직전.

지목인지 룰렛을 돌리는지 제작진이 정해주는지 그 방법에 관해서는 아직 공개된 것이 없었다.

‘……무대를 잘하고도 2라운드로 밀려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불안감이 바로 〈밀제트〉 제작진이 원하는 연출 포인트 같았다.

2라운드에 하위권 멤버들만 모여있지 않는 것, 실력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게 하는 것.

다시 말해 운 요소로 누군가는 혜택을 받고 누군가는 조금 억울해지도록 하는 구성이었다.

‘그래, 이게 〈밀리어네어 Z 트랙〉이었지.’

출연자 입장으로 보니까 오싹하지만, 큰 변화 없이 내가 알고 있는 그 방송 포맷이 되었다.

“그러면 우리가……. 누구랑 싸우는지도 중요해지겠네.”

“누구랑 싸우든 이기면 되는 거 아니겠어.”

“그러면 상대 팀은 오늘은 모르는 건가요?”

이영하가 공지사항을 정리했고, 김지상이 침착하게 대꾸했다.

손을 들고 PD에게 질문한 것은 안승준이었다.

“승준 씨, 좋은 질문입니다. 대진은 원래 경연 당일 공개하기로 되어 있습니다만.”

PD는 그렇게 말하고는 구석에 대기하던 스태프에게 작게 손짓했다.

스태프는 신호를 받자마자 품에 안고 있던 태블릿 PC 화면을 두어 번 두드리고, 기계를 PD에게 건네주었다.

“오늘은 처음이니까 특별히! 이 자리에서 대결 상대를 정해보기로 했거든요.”

“……지금 저희가 정하나요?”

이번에는 내가 질문했다.

“그래야 하지만, 사실 스테리나인 분들은 지목을 이미 당했습니다.”

그리고 PD는 화면이 켜진 태블릿 PC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그 상대를 확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승준이가 내내 들고 있던 손을 그대로 앞으로 내려 기계를 받아와서, 대형 중앙에 앉았다.

태블릿 PC를 확인하니까 무려 영상통화가 연결되어 있었다.

아니, 전화선이 아니라 인터넷선으로 연결된 채였으니 화상 회의라고 해야 할까…….

“인사 나누시죠. 제한 시간은 3분입니다.”

PD는 그렇게 말했지만, 우리는 인사를 나누기에 앞서서 놀란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네모난 영상통화 화면 속에 갇혀 있는 남자는…….

나와 서난영이 지난주 만났던 래퍼 원키드였다.

통화 배경은 호텔방 침대.

베개와 이불에 파묻혀 사방이 새하얗게 밝은데 노란색 간접 조명이 켜진 채였다.

‘……해외 투어 갔구나!’

외국에 있어서 장소도 호텔이고 시차 때문에 시간대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사람을 확인하는 동시에 반사적으로 입이 움직인 것 같다.

“둘, 셋.”

“Keep Brightening! 안녕하세요, 스테리나인 인사드립니다!”

무의식 중에 단체인사부터 들이밀었는데 원키드는 약간 질린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안승준은 싫어할 줄 알았는데 굉장히 표정이 밝았고, 왜인지 서난영도 마찬가지였다.

- 이야, 인사 하나 우렁차네. 전화 받는다고 아침에 자다가 깨서 머리가 다 울려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우호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첫마디였지만, 우리는 꿋꿋하며 씩씩하게 인사를 올렸다.

사실……. 내가 ‘선배님’이라고 말하자마자 원키드는 인상을 희미하게 찌푸렸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호칭이었는데 말이다. ‘선생님’이 아니라서 기분이 나빴나.

“저희 뽑으셨다면서요!”

그러나 안승준은 아마도 일부러 모른척을 하며 밝게 웃었다.

승준이는 아예 태블릿 PC를 손에 바투 들고 있어서 통화 화면에 멤버들이 다 나오기나 할지 걱정될 정도였다.

맨 앞에 어떻게든 서난영이 끼어들어서, 대화는 거의 두 사람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뽑았지. 내가 다음부터 새로 들어오게 되어 있거든. 새 참가자라서 뽑을 권한을 준다네?  바~로 선택했지.

“우와, 영광이에요! 저 진짜, 엄청 기대 됩니다!”

- 그럼, 그럼. 나는 원래 초보자를 대하면서도 진심으로 하거든. 기대 많이 하는 게 좋을 거야.

“네! 선배님, 전에 저한테 어떻게 이런 애가 데뷔한 건지 궁금하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무대로 보여드릴게요!”

- …….

“진짜, 부디! 진심으로 해주세요. 꼭이요!”

두 사람이 아니라……. 그렇다. 실은 안승준이 대화를 주도했다. 그것도 완전히 눈이 돌아간 채로.

안승준은 너무 해맑아서 살벌하기까지 했다.

한편으로 나는 원키드가 전략을 잘못 골랐다는 감상도 들었다.

‘약한 팀 이미지는 거의 벗었다고 생각했는데.’

눈치게임이 엉망인 건 이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일괄된 특징인지…….

약해 보여서 뽑았다는 뉘앙스는, 그 말을 아직도 듣는 것은, 솔직히 조금은 속이 상하기도 했다.

- 우리 연습생 아닌 ‘아이돌’ 스테리나인, 그러면 촬영 날 봅시다.

결국 주어진 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원키드는 얼렁뚱땅 마무리하며 먼저 통화를 종료했다.

태블릿 PC를 스태프에게 돌려드리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안승준의 어깨를 나는 지그시 잡았다.

“승준아…….”

“하하!”

……지나치게 통쾌한 듯이 웃기에 뭐라도 한마디 해주려다가 그냥 그만두었다.

그렇게 안 보였는데, 나름 녀석은 원키드의 비난을 마음에 오래 담아두고 있었나 보다.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렇게 상대를 확인하니까 꼭 이기고 싶어지네요.”

“위기감이 딱 와요, 그렇죠?”

신나서 통화 후기를 이야기하는 안승준과 서난영이었다.

나로서는……. 글쎄, 이 녀석들이 제작진이 원한 그림을 만들어준 것 같기는 했다.

그 후기와 다짐까지 촬영을 마치고, 제작진들이 연습실에 카메라를 추가로 설치하는 사이 나는 오늘 연습실에 찾아온 제작진 중 한 사람인 허윤아 작가에게 슬쩍 찾아갔다.

하지만 의외로 내가 다가가자마자 작가님이 먼저 나를 위로해주었다.

“괜찮아? 원키드 씨 발언이 좀 세지?”

“……예?”

“의헌이도 혹시 상처받았을까 해서 걱정되네. 승준이가 대처를 잘해서 망정이지.”

안승준이 너무 버르장머리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에 편집을 요구하려고 찾아간 건데.

남들 눈에는 단지 원키드가 속이 좁아 보이는 거라면, 다행이었다.

“너희가 이기면 어쩌려고 저렇게까지 말하는지 모르겠어.”

윤아 작가님은 잠시 투덜거리다가, ‘나름 방송 경력이 있어서 막 심하게 발언할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을 마쳤다.

그래도 나는 문제 생기지 않게 편집을 도와달라는 의사는 전달했다. 걱정되는 게 있었으니까.

대결과 승패 문제가……. 두고두고 마음에 가시처럼 걸렸다.

‘우리는 상승세를 이어나가야 해.’

그게 이번 무대에 우리가 모든것을 ‘쏟아붓는’ 이유였다.

스테리나인은 이번 3차 경연 1라운드에 그야말로 모든 자본을 투자하고 있었다.

여섯 개 받은 토큰도 하나도 남김 없이 전부 사용하고, 노래도 가장 퀄리티와 반응이 좋았던 곡으로 골랐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이다음 무대는 우리가 ‘약한 팀’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무대가 되어야 했다.

……한마디로, 스테리나인이 〈밀제트〉 상위권에 쐐기를 박을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예상한 것 이상으로 하이 리스크다.’

원키드와 겨루는 것도, 이렇게까지 승부를 달구어버린 것도.

이긴다면 하이 리턴을 거둘 수 있지만 그 반대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원키드는 첫 등장으로 첫 무대지만 우리는 〈오디뮤〉를 포함하면 다섯 번째고, 성적이나 체급 차이도 있고.

‘지면 큰일 난다고.’

그런데 여기서 지면 정말로……. 모든 빌드업이 물거품이 된다.

조금 과장하자면, 뭐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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