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65화
31. REALLY REALL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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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밀리어네어 Z 트랙〉 2차 경연 1라운드, 즉 4회차 방송 촬영이 끝나고 시간이 조금 흐른 어느 날.
그러니까 스테리나인이 〈뛰어들어〉 무대로 좋은 성적을 받고 기분 좋게 촬영을 마친 그 주 주말.
더 정확히 말하면 〈밀제트〉 3회 –스테리나인이 참여하지 않은 1차 경연 2라운드가 주 콘텐츠인 회차였다– 스물네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일요일 오후.
〈밀제트〉 제작진 중 한 사람인 김미진 PD는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토요일 6시(부터 8시까지), 3회 방송이 전세계에 공개된 뒤 〈밀제트〉 제작진 일동은 비상이 걸렸다.
‘하아…….’
〈밀제트〉는 재미있는 방송이었다. 김 PD의 자화자찬과 별개로 성적이 말해주었다.
쟁쟁한 실력자들이 모여 서바이벌에 참여한다는 방송 포맷을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도 많기야 했다.
하지만 발품을 팔아가며 여기저기서 데려온, 한 자리에 모으기도 힘들었던 출연자들은 그 값을 해주었다.
그리고 제작진은 그 위에 마케팅과 노하우를 끼얹어, 값진 출연자에게 먹칠하지 않을 만한 방송을 만들었다.
– 솔직히 덕질하는 팀 없으면 이만한 꿀잼도 없어
– 재주는 곰이 부리고 사람은 팝콘이나 튀기자구 ㄷㄱㄷㄱ
– 라인업부터 기대돼 이름만 보면 누구...? 해도 보면 다 아는사람임 ㅋㅋㅋ
– 근데 연출하는거 보면 서바보다는 그냥 경연같음 무대 보여주는 ㅇㅇ
– 2-1라운드 ㅅㅍ 본 덕들은 어떤 무대가 제일 기대돼? (본문 탈락자+새출연진 ㅅㅍ 있음)
본방송 때는 물론이고 방송한 날 새벽까지 방송이 입방아에 오를 만큼 인터넷에서 〈밀제트〉는 화제였다.
무대 퀄리티도 좋고, 제작진도 제작비를 아끼지 않았고, 투자자와 유통사도 호의적이었다.
더불어 방송 콘텐츠도 적어도 소모된 자본 규모가 아깝지 않을 만큼은 인기였다.
– 밀리Z트랙 1차 경연 참가자, 무대&선곡&특별매니저(심사위원) 등 이것저것 정리
– 서바이벌 끝난지 1년도 안지나서 다시 서바이벌 참가하게 된 밀제트 출연자
– 툿투에서 갑자기 다시 화제되고 있는 드라마 공주님과 문제아들.toot
– 일부 덕들 사이에서는 말 나오는 밀리어네어 제트트랙 자체 평가 결과
케이팝 팬들만 보는 방송이 아니라 20대, 30대라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이는 〈밀제트〉가 주말 황금 시간대를 잘 잡아서 방영하게 된 덕분이기도 했다.
케이블 음악방송인데도 기본적인 시청률이 꽤 잘 나왔고, OTT 플랫폼 ‘다시보기’ 성적도 좋았다.
‘〈매치디럭스〉가 요즘 폼을 조금 잃었다지.’
같은 시간대에 방송하는 유명 프로그램이 늘어지는 내용으로 질타를 받는 중이라서, 타이밍의 축복도 받았다.
어쩌면 〈데프아〉보다도 좋은 출발이었다. 그런데…….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방송을 봐주는 통에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김 PD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팔뚝에 새겨놓은 파란색 고래 문신을 손톱으로 아무리 쓰다듬어도 스트레스가 가시지를 않았다.
결국 그는 끓는 마음을 가라앉히지도 못하고 하던 일이나 이어나갔다.
발표용 프레젠테이션 아이콘을 마우스로 끌어 전투적으로 배치하는 일 말이다.
[밀리어네어 Z 트랙 개선안]
그게 이 PPT의 제목이었다.
〈밀리어네어 Z 트랙〉이라는 방송은 이제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했다.
보는 사람이 얼마 없다면 조용히 한 단계씩 고쳐나가면 되는 요소들이, 너무 큰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재미있어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아쉬운 점을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머릿수의 문제였다.
걱정하던 2라운드는 심지어 무대 호평도 적고, 지루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게다가 3회 방송이 끝나고 몇 시간 뒤 1차 경연 탈락자인 바네사 장이 SNS에 업로드한 글까지.
제작진이 기약 없이 무대 준비를 시키고, 무대 비용도 지원하지 않고, 불편을 안겨주는 등 ‘갑질’을 했단다.
‘아니……. 아니, 그래. 그건 우리가 잘못했다.’
바네사 장과 얽힌 문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서 김 PD는 약간 침울해질 지경이었다.
엄밀히 말해 김 PD는 무대 연출 및 촬영 담당자였기 때문에, 뒤에서 돌아가는 일의 심각성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무대 준비를 미리 하도록 하는 것이나 자체 평가 시스템 따위는 본인도 미리 문제 삼지 않았던 터라, 신경이 쓰였다.
바네사 장이 SNS에 폭로문을 업로드한 날 〈밀제트〉 제작진들은 치프부터 막내까지 전부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밤 헤드 몇 명은 만나서 미팅도 하고, 아래 직급 스태프들도 단톡방에서 이 사건에 관해 논의해야 했다.
거기서 한참을 떠들다가 나온 결론은……. 방송의 불편한 요소를 지금부터라도 바꾸어나가자는 것이었다.
[내일 전체 회의 한번 하는 겁니다
할 말 있는 사람들 가감없이 다 가져오세요]
결국 새벽에 김 PD의 선배 PD가 전 스태프들 상대로 단체 문자를 돌렸다.
김미진 PD는 본인도 할 말이 많았지만, 주변에서도 김 PD의 발언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선배가 상사 구속시킨 카리스마로 뭐라도 좀 뒤엎어주세요.’
후배 PD 하나는 농담 삼아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김미진 PD는 캡처한 인터넷 댓글을 PPT에 배치하고, PPT를 완성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 더 지나 대망의 전체 회의 시간.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부제목과 사진뿐인 썰렁한 PPT를 스크린에 펼쳐놓고 김 PD가 동료들에게 인사했다.
“본론 바로 들어가죠. 앞에서 나온 말도 요약하는 겸사겸사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김 PD는 인터넷에서 캡처한 시청자 반응을 보여주며 세 가지 문제점을 언급했다.
“우선 저희가 예상하지 못한 요소부터요.”
바로 스포일러 문제.
방송 시간에만 집중하거나, 이튜브로 무대 영상만 찾아보는 사람도 많았으나 아닌 시청자도 많았다.
그건 〈밀제트〉가 애초에 팬덤이 큰 아티스트 위주로 섭외했기 때문이었는데.
여기까지는 좋았다. 다만 이 팬덤 구성원들이 방청 스포일러를 활발하게 유통해 말썽이었다.
그것도 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탈락자 및 신규 투입 출연진 떡밥이 녹화 당일부터 슬슬 풀렸다.
“이번에 릴리로즈도 월요일부터 스포 다 돌았죠. 이거 다음주 토요일에 방송되는데.”
‘릴리로즈’는 2차 경연부터 새로 투입되는 걸그룹 이름이었다.
물론 제작진 일동도 스포일러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공개적이고 당당해서 문제였다.
그런데도 문제를 완화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이건 녹화 날짜와 루틴을 변경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이 되고요.”
탈락자가 공개되기 직전이나 이후에 새 경연을 녹화하는 것.
스포일러가 돌아다닐 시간을 주지 않거나, 스포일러의 가치를 깎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앞에서도 문제가 다수 제기된 주제였다.
“자체 투표 없애요. 아니면 점수제로 하든가, 리스펙트만 주든가.”
다들 문제 삼는 지점이었기에 이에 관해서 김 PD는 설명도 덧붙이지 않고 넘어갔다.
“세 번째는 처음에 했던 이야기랑 비슷한데요. 2라운드가 조금 잡음이 있잖아요?”
바네사 장이 지적한 무대 준비 기간의 형평성 문제는 이런 내용이었다.
하나, 2라운드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사람이 다음 경연 1라운드 준비까지 해야 한다.
둘, 탈락 위기인 사람 입장에서는 2라운드를 따로 더 준비해야 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다.
이는 공연하는 사람의 관점이었는데, 사실 이를 차치하더라도 제작자 입장에서도 2라운드는 다소 곤란했다.
2라운드는 탈락 위기인, 인기가 부실한 네 팀만 모이기 때문에 ‘탈락’ 요소가 삽입되어도 긴장감이 부족했다.
‘긴장감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들의 서사에 몰입하는 사람 수가 비교적 적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상위권 팀 팬들은……. 2라운드 방송을 통으로 건너뛰고 보지 않아도 되었다.
따라서 2라운드는 여덟 팀이 출연하는 1라운드보다 시청률도, 방송 클립 조회 수도, 실시간 반응도 미적지근했다.
하지만 라운드 제도 자체를 아예 없애버릴 수는 없었다. 무대 퀄리티나 안정성 면에서 필요한 전략이므로.
“일단 클레임 들어온 건 준비 기간 조절하고, 2라운드 무대 규정 재정비하고, 2라운드 참가자에게도 작게라도 메리트를 주고. 그러면 될 것 같거든요.”
경연 참가자의 곤란함은 그런 식으로 해소하면 될 테고.
김미진 PD는 고민하다가,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단어를 골라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남들이 앞서 이야기한 적 없는, 순수 김미진 PD의 아이디어였다.
“진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일명 순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입니다.”
자체 평가나 토큰, 미션, 새로운 참가자 투입 등으로 변수를 주었으나 선전하는 팀이 너무 확실했다.
대중적인 호감을 많이 사는 달고나밴드나 팬덤이 커서 방청 신청 자체가 많이 들어오는 스테리나인 등.
특히 스테리나인은 이제 발목을 잡던 자체평가의 늪에서까지 자체적으로 벗어나 이미지마저 바뀌는 중이었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한 곡도 모를 아이돌 보이그룹에서부터.
진흙 속에 묻혀잇던 값진 진주이자 긁지 않았던 복권으로.
“상위권과 하위권이 슬슬 고정되는 느낌이라서요. 내용이 뻔하게 예측되는 방송은 아무래도 재미가 없으니까.”
김 PD가 발표 슬라이드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몰입하기 쉽고 재미있는 경쟁 시스템]
한 번 더 클릭하면 그 부제목 아래로 네모난 도형 두 개가 현란한 애니메이션 효과와 함께 팝업되었다.
김 PD가 리모콘을 더 조작하자, ‘아티스트’라고 적힌 직사각형 두 개 사이로 구부러진 워드아트가 툭 떨어졌다.
“경연 시스템을 좀 바꿀까요.”
워드아트로 적힌 글자는 ‘VS’였다.
즉, 아티스트 VS 아티스트.
그게 김미진 PD의 아이디어였다.
* * *
바네사 장의 대대적인 갑질 폭로 이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제작진은 바삐 전 출연진에게 연락을 돌렸다.
근래 발생한 일의 심각성은 제작진도 파악하고 있기에, 논의 후 피드백을 하겠다고.
스테리나인은 매니저팀을 통해 그 소식을 들었는데, 연락이 도착하고 또 몇 시간 후에 바로 다음 연락이 왔다.
경연 규칙을 많이 바꾸었으니 조만간 직접 소식을 전하러 우리 회사 사옥에 찾아오겠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3차 경연을 준비하는 중이었고, 어차피 연습실 촬영은 필요했기 때문에 잠자코 기다렸다.
노래를 고르고 무대 연출을 논의하고, 편곡하고, 동선을 대규모 무대에 맞게 정리하고, 다시 녹음하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고 우리는 매일매일 일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더불어 예희에게서는 아직 연락이 없었으나, 나도 여유가 부족해 굳이 재촉하지 않았다.
“그러면 슬레이트 치겠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연습실 촬영일.
가장 목청이 좋은 한이주가 외치고 손뼉을 짝 쳤다.
우리가 앉은 자리 맞은편에는 이 방송의 PD가 공지사항이 적힌 종이를 들고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우선 전달사항부터 말씀드릴게요.”
PD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