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64화 (164/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64화

30. Run Away(7)

사람을 잘못 봤을 수도 있어서,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한번 더 내부를 훔쳐보았다.

그런데 정말 원키드였다.

원키드 선배님이라고 해야 되나, 선생님이라고 해야 되나. 아니면 트레이너라고 불러야 하나…….

헷갈리는 호칭처럼 앉아 있는 그 모습도 마음에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헤어도 다듬고 의상도 어느 정도 갖춰 입은 것 같았다.

아이돌인 우리와 래퍼의 화장 및 스타일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장소와 분위기 때문인지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무대 스타일링이잖아!’

그리고 가사를 외우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입모양으로 중얼거리는 행태까지도 신경쓰이기 짝이 없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안에서 우리가 보이지 않는 위치로 몸을 낮추었고, 서난영도 숨을 수 있게 잡아 끌어내렸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도 모르게 행동이 먼저 나왔다. 난영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시키는 대로 따랐고.

뻐끔뻐끔 입술만 움직이다시피 해서 나는 서난영에게 질문했다.

“봤어?”

끄덕끄덕.

“뭐지, 이거?”

오늘 촬영, 그러니까 2차 경연 녹화는 이미 끝이 났다.

그렇다는 말은 원키드가 피처링 게스트일 가능성은 없었다.

2차 경연부터 합류하는, 그러니까 노래 커버 이튜버 바네사 장의 빈자리를 채울 팀도 이미 공개되었다.

뉴페이스는 걸크러시 콘셉트를 내세운 걸그룹.

그리고 그 팀은 현장 투표도 잘 받고, 자체 평가도 좋게 받아서 정말 훌륭하게 첫 경연을 소화했다.

‘설마 3차 경연 합류 예정자?’

만약 그렇다면, 3차 경연부터 참여한느 사람이 대체 왜 여기서 무대에 올라갈 준비를 끝내고 대기 중인가.

의외의 사람을 만나서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내가 크게 당황했는지 머릿속에서 생각이 급류를 탔다.

“진정해봐. 형이 아까 자느라 못 들어서 그래.”

“어, 했어.”

심호흡으로 정신을 빠르게 가라앉히고 서난영의 말을 듣자, 대충 사연을 알 수 있었다.

원키드는 3차 경연부터 합류할 예정이 맞는데, 특별 무대를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왔단다.

본래 〈밀제트〉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2라운드 끝에 이력 소개 겸 특별 무대로 눈도장을 찍게 했다.

이는 2라운드 촬영 바로 전후에 녹화하거나 아예 다른 날을 잡아서 촬영을 하는 일정인데…….

그런데 원키드가 이번주부터 다음주까지 통으로 다른 일이 있어서 녹화가 여의치 않다나 뭐라나.

무대 전 대기 시간에 내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는 사이에 매니저 형이 이미 다 설명한 내용이란다.

“다음 경연부터 참가하는 분도 오늘 녹화니까 스포일러 주의하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우리가 눈치 없이 딱 발견해버린 거구나.”

“대충 그렇지, 뭐. 해외 스케줄 때문에 일정 당겼다고 하던데 레이블 투어였나봐.”

원키드가 소속된 레이블은 규모가 커서, 래퍼들만 데리고도 해외 투어 공연을 한다…….

솔직히 트레이너로 〈데프아〉 같은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했을 정도니까, 실력이나 명성은 보장된 사람이었다.

원키드까지 들어오면 출연자 중에 래퍼가 많지 않나 싶지만, 요즘 인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이른 시간부터 시작해 다 끝나고 추가 촬영까지 진행해야 하는 스태프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왜 그렇게 놀란 거야, 그런데.”

“아니, 이건……. 조건 반사야.”

나는 여전히 속삭이는 목소리로 서난영에게 불평했다.

원키드,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의 랩 트레이너…… 였던 사람.

원키드는 첫 소속사 평가부터 독설 일색에, 방송이 끝날 때까지 냉정한 비평가 컨셉을 유지했다.

트레이너들 사이에 있으면 허술하게 풀어지다가도 연습생 앞에 서면 갑자기 무게를 잡는, 뭐랄까…….

‘음……. 꼰대?’

사실 나는 포지션이 댄스 위주로 보컬 담당이라서 랩 트레이너와 대면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번 노래를 편곡해서 랩 파트를 맡게 된 적이 있었다.

아마 신곡 미션인 〈TOUCH〉 때.

해당 장면은 방송에 실리지 않았지만, 당시 원키드는 ‘요즘 아이돌은 랩을 우습게 본다’고 나한테 화를 냈다.

직업이 아이돌인데 아이돌 래퍼처럼 랩을 한다고 혼났다.

그 일을 생각하면 나도 심리적으로 살짝 쪼들릴 수밖에 없었다.

나, 나름 〈데프아〉에서 보컬로든 춤으로든 잘한다는 소리만 들으며 애지중지 촬영햇는데…….

‘그때 날 혼낸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같은 감성이다(사랑에 빠졌다는 말은 아니다).

하여간 내게 이미지가 좋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뭐……. 어이고?”

불쑥 대기실 문을 안에서부터 밖으로 열고 사람이 나와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 아무래도 180센티미터가 넘는 사람 둘이서 쪼그려앉는다고 숨을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원키드가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묻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반색했다.

그러나 신경질과 반가움 사이에 아주 짧은 순간 지었던 표정이 내 눈에는 보였다.

떨떠름하게 입가가 굳은 표정이었다

“……이야, 정의헌! 우리 수퍼스타.”

짧은 정적을 원키드는 괜스레 큰소리로 깨부쉈다.

그리고 고개를 쭉 빼서 우리 등 뒤와 복도를 휘휘 둘러보았다.

우리는 카메라를 들고있지도 않았고 동행한 스태프도 없었다. 만남은 단지 우연이었다.

사실 새로운 참가자는 규정상 비밀일 터라 촬영장에서 우리끼리 대화하는 것은 불문율 위반이었다.

그런데 선배님이자 트레이너였던 사람을 눈앞에 두고 뒤돌아 도망갈 수도 없고…….

이미 엎어진 물이라서 나는 밝게 웃으면서 인사나 했다.

“안녕하세요, 쌤. 여기는 저희 멤버 동생인 난영이예요.”

“아, 안녕하세요.”

“어어. 반갑다.”

방송에 맞게 올라간 목소리 톤이 순식간에 차분하게 내려왔다.

복도에서 뜬금없는 삼자대면에, 심지어 약간 반칙처럼 마주쳤다.

나는 원키드가 선생님인데 서난영에게는 선배님이고, 따지자면 우리는 같은 방송에 출연한 경쟁자고…….

왠지 내 존재……. 소위 말하는 족보 브레이커 아닌가.

“그……. 오늘 만나면 안 되는 거지, 우리?”

“사실 그렇죠?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하하, 하……. 그러게. 그렇게 됐네.”

둘만 구면이다보니 서난영은 자연스럽게 뒤로 빠지고, 나와 원키드의 대화가 됐다.

“오늘 녹화하는 분 계시다는 말은 들었거든요. 이제 촬영 들어가시는 거예요?”

“어, 그렇지. 조금 있다가. 아마도?”

“새벽까지 고생이 많으세요.”

“나야 원래 미국 시차로 살아서.”

원키드가 씩 웃었다.

“조금 있다가 투어 가시지 않아요? 딱이네요.”

“그건 영국이야, 인마.”

경연 무대에 관해서는 일부러 묻지 않았고, 원키드도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원키드는 골무 같은 비니를 뒤집어 쓰고 껄껄 웃다가 안에서 매니저가 부른다고 다시 대기실로 들어갔다.

부르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는데,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한 느낌이 선명했다.

사실 마무리에서만 문제인 것도 아니고 전체적인 대화 흐름 자체가 미묘하게 어색했다.

‘나까지 민망함이 전염되잖아…….’

〈데프아〉 연습생으로 참여한 멤버가 셋이나 포함된 스테리나인과 동등한 위치로 방송에 참여하게 될 줄은…….

원키드도 몰랐을 것이다. 심지어 댄스 트레이너였던 체리본 쌤은 여기서도 심사위원으로 출연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일은 원키드의 추락이 아니라 스테리나인이 좋은 물살을 탄 것인데,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는지.

대화하는 내내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대면한 내가 괜히 머쓱해질 만큼.

“……원래 그렇게 친했어?”

마치 합의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화장실 방향으로 더 가지 않고 꺾어 돌아오는 길에, 서난영이 조용히 물었다.

원키드의 대기실에서는 대화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리 걸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내가 대답했다.

“아니……. 그럴 리가 있나. 그냥 남이지.”

“역시…….”

“아빠가 이렇게 버겁게 살아…….”

방송에서 보인 모습과 비하인드만 봐도 원키드는 아이돌과 친해질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우리를 경쟁자로 만난 것만으로도 저렇게 수치스러워하는데, 사람이 그동안 변하지도 않은 듯했다.

“사회생활 힘드네. 인사는 잘 했는데 사이가 좋은 건 아니다?”

“뭐, 요약하면 그러네. 안승준은 그냥 좋지 않은 수준도 아닐걸…….”

남의 이름을 입에 담자마자 저 너머에서 메아리가 쳤다.

“승준이~?”

“어, 깜짝이야.”

서난영이 화들짝 놀라고, 나도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복도에 나와 있는 안승준이 보였다.

의상을 다 정리하고 슬슬 한두 명씩 걸리적거리지 않게 –우리처럼– 밖에 나와서 기다리는 중인 것 같았다.

“승준이 얘기 뭐 했어.”

작은 목소리를 어떻게 캐치한 안승준이 보고 있던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이쪽으로 쫄래쫄래 다가왔다.

“아까 저기서 네가 불편해하는 사람 만났다고.”

“오, 누구일지 예상도 안 간다. 누구?”

“원키드……. 선배님? 트레이너님?”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안승준이 오만상을 썼다.

“으. 그런데 만났다는 게 무슨 말이야.”

원키드가 다음 경연부터 투입되는 것 같다는 말을 해주자, 승준이가 과장된 동작으로 진저리를 쳤다.

“으으으.”

퇴근할 때가 되어서인지 안승준도 기분이 좋아져서 어쩐지 텐션이 꽤나 높았다.

굳이 안승준이 왜 이렇게까지 반응하는지를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나도, 난영이도.

〈데프아〉 방송만 봐도 촬영 기간 내내 원키드가 안승준을 어떻게 갈궜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말그대로……. 갈궜다. 안승준은 그야말로 정석에 가까운 아이돌 래퍼였기 때문에.

〈데프아〉 출연 당시부터 승준이는 일정 단계 이상 실력이 다듬어지고 숙련된 상태였다.

호흡부터 발성, 공간, 발음까지 춤을 추면서 랩을 하기에 최적화된 모습을 자랑했다.

그래서 원키드가 보기에는 안승준이 유독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아, 그 쌤 얘기하니까 나 또 가짜 래퍼 됐어.”

‘너는 진짜 래퍼가, 진짜 힙합이 아니다.’ 원키드는 방송 중 안승준에게 몇 번이나 말했다.

다른 멤버들이 가방을 들고 대기실에서 나오는데도 안승준은 투덜투덜 입을 멈추지 않았다.

조잘거리는 안승준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준 것은 서난영이었다.

“왜 싫어해, 좋아해야지.”

서난영이 안승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두 사람만 들리게 귓속말했다.

“이것들이 사람을 앞에 두고…….”

잔소리를 귓등으로 넘기는 둘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퍼져갔다.

둘은 눈을 마주치고는, 서난영을 따라 안승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히죽 웃었다.

그 광경이 몹시도 바보같다고 생각하며, 내가 두 사람의 가운데를 손날로 갈랐다.

“내가 너희 무슨 말 했는지 맞혀볼까.”

“뭐 같은데.”

“싸울 수 있는 판이 생겼으니까 좋은 일이다.”

정답인 모양이었다.

두 녀석이 까르르 웃어젖히는 탓에, 복도로 나오는 멤버들과 스태프들의 시선이 둘에게 모였다.

그러나 진정 우스운 점은 거기서 또 나까지 헛웃음을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너희들의 자신감이 참 보기 좋다.”

비꼬는 말로 들릴 수도 있으나, 진심이었다.

그런데 과연 전면 대결할 만한 기회가 생길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참가자가 여덟 팀이나 있기 때문에 과연 그렇게 극적으로 이길 수 있을지…….

‘……가능한가?’

곰곰이 회상해보았다.

어쩌면 이제, 3차 경연부터는 가능하게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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