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62화
30. Run Away(5)
서난영은 그렇게까지 팬들이나 커뮤니티 반응을 찾아보는 성격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성향 자체가 타인이 자신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으므로, 연예인이 된 것 자체가 그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무튼 서난영은 그룹 내에서 ‘검색을 자주 하는 랭킹’이 있다면 뒤에서 1위, 2위를 다툴 만큼 소식을 접하는 속도가 느린 사람이었다.
그런 서난영이 방송 이틀만에 이렇게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는 것은 이 ‘순위 논란’이 장안의 화제라는 의미였고.
광고가 끝나고 재생되는 이튜브 콘텐츠는 자극적인 썸네일에 비해서는 제법 무난한 방송 내용 요약 영상이었다.
- ‘TV봐야지’의 〈밀리어네어 Z 트랙〉 2화 리뷰입니다! 2화에서는 1화에 이어서…….
이어폰을 타고 들려오는 이튜버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난영은 물위에 오른 ‘순위 논란’에 관해 생각했다.
방송을 보면서 그도 논란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자체 평가와 현장 순위의 괴리가 정말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누군가는 스테리나인이 자체 평가에서 꼴찌를 기록한 까닭을 스테리나인에게서 찾고자 했고, 누군가는 다른 팀이나 방송 포맷을 만든 제작진에게 원인을 전가했다.
어느 쪽이 주류 의견이라고 파악하기도 힘들 만큼 싸움은 치열했으며 아예 이 말싸움 자체가 피곤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스테리나인의 이 행보가 스테리나인 팬들과 팬이 아직 되지 못한 이들을 한 곳에 모아주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점점이 존재하는 안티들 역시 약이 바싹 올라서 스테리나인의 화제성을 차곡차곡 올려주었다.
- 솔직히 결과를 들으니까 멘탈이 흔들리더라고요. 속상하기도 하고.
심지어 순위 공개 뒤 개인 인터뷰에서 김지상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그런 인터뷰를 해버려서 말이다.
김지상은 인터뷰 장면을 촬영한 후 퇴근길에서 ‘우는 게 좋은 분위기라서 울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실수한 것 같다’고 심정을 자백했다.
서난영은 백 퍼센트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김지상도 방송이 공개된 후 온갖 소통 창구를 통해서 걱정을 받고 해명해야 했으니까.
하여간 순위 논란의 주인공은 스테리나인이었고 반응은 뜨거웠다.
그리고 정의헌의 빠른 방송 코멘트 겸 피드백은 그 논란의 불씨이자 기름이었다.
- 최근에 〈데프아〉에서 1위를 한 연습생이자 스테리나인의 리더인 정의헌은 논란에 관해 이렇게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대본을 읽어내려가는 이튜버의 음성과 정의헌의 위커넥션 라이브 방송을 캡처한 이미지가 화면 안에서 교차했다.
이튜버는 정의헌이 팬들이 보는 라이브 방송에서 한 말을 중요한 문장만 짜깁은 뒤 코멘트를 남겼다.
- 팬들은 이 영상을 보고 ‘본인도 속상할 텐데 수습하려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혹시 견제 때문에 낮은 점수를 주었다면 반성했으면 하네요’, ‘아무리 그래도 두 번 연속 8위는 실력에 비해 심한 처사다’, ‘재미도 없는 자체 평가 제도를 만든 제작진에게 문제가 있다’와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해당 요약 영상 댓글에서도 자체 평가 순위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수십 명이었다.
아이돌 퍼포먼스가 뭐가 멋있는지 모르겠다는 편협한 의견부터 두 번의 8위는 분명한 견제라고 굳게 믿는 의견까지.
공론화의 장이 되어버린 이튜브 댓글창을 내려보다가 서난영은 밀려드는 피로감에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이어폰을 뽑았다.
‘어차피 세 번 연속해서 꼴찌를 할 수는 없을 텐데.’
제작진도 그런 그림을 만들고 싶지 않아 할 테고, 다른 일곱 참여자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스테리나인을 피해 ‘브레이크 트랙’을 매길 테다.
가만히 있어도 스테리나인은 8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진정 자체평가 8위가 될 만한 최악의 무대를 만들더라도 말이다.
다만 서난영이 아는 정의헌은 그런 타이밍에서 아무런 의도도 없이 섣부른 행동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노코멘트를 해도 되는 타이밍이었다. 옳은 말을 했다지만, 이렇게 이튜버들의 구설수에 오르게 되지 않았는가.
서난영으로서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의도를 짐작할 수 없어서 더더욱.
그 형은 늘 가벼운 마음으로 단순한 계산을 즐겼지만, 중요한 일 앞에서는 이따금 세심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무엇이 단순함의 산물이고 무엇이 배려인지, 곁에서 보아도 헷갈리는 순간이 자주 발생했다.
‘……왜 굳이 그렇게 말했을까.’
그저 팬서비스를 위해서? 아니면 팬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서난영의 의문은 그러나 오래 가지 않고 해소되었다. 그날 무대가 끝난 다음에.
* * *
노래는 스테리나인의 세 번째 미니앨범 타이틀곡 〈뛰어들어(Crush)〉.
정의헌이 머리를 투블럭으로 세팅하고 컴백한 문제의 그 곡이었다.
경연 주제는 ‘시청자의 선택’이었는데, 사실 방송이 시작되기도 전에 받은 투표이기에 ‘시청자’라는 단어에는 모순이 있었다.
팬들이 선택한 추천곡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스테리나인은 세 가지 후보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그래도 연습 전 선곡 회의는 짧게 마무리되었다. 의견이 한 점으로 빠르게 모였기 때문에.
팬들이 골라준 세 가지 노래는 〈Run and Run〉, 〈Express〉, 그리고 〈뛰어들어〉였다.
그런데 대면식에서 〈Run and Run〉은 무대를 선보였으니, 남은 것은 둘.
스테리나인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노래이자 많은 멤버의 ‘최애곡’은 〈Express〉였고.
하지만 아끼는 노래였기 때문에 다들 〈Express〉 무대를 더 멋있게 만들고 싶어 했다.
여기서 문제가 있었다.
지난 정산으로 받은 ‘토큰’이 두 개밖에 없다는 점.
1라운드에서 좋은 성적을 냈으나 자체 평가 8위로 마이너스가 많았고, 영상 조회 수 보너스도 시원찮았다.
어쩔 수 없었다.
대면식조차 공개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토큰 정산 기준은 〈오디뮤〉 무대 영상 조회 수 증가량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회사와 상의 끝에 탈락에 대한 불안감을 접어두고 〈Express〉 무대는 뒤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멤버들이 원하는 연출은 아무리 쥐어짜도 토큰 두 개로 감당할 수 없었다.
‘대신 〈뛰어들어〉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토큰을 많이 벌어들인다.’
서난영은 그날 회의에서 낸 결론이자 목적을 마음속으로 곱씹으며 무대 위에서 대형을 맞추었다.
스테리나인의 2차 경연 1라운드 공연 순번은 여섯 번째, 즉 뒤에서 세 번째였다.
새로 투입되는 가수가 자동으로 마지막 무대를 차지하는 규칙으로 인해 결정된 순번이었다.
그 뒤 1차 경연 1라운드 순위대로 무대 순서를 골랐고, 스테리나인은 남은 것 중 가장 뒷번호를 택했다.
“가자!”
“오케이!”
정의헌이 기합을 불어넣었고, 모두 자세를 잡고 짧게 대기했다.
〈뛰어들어〉는 경쾌한 노래였다.
타이트한 신디사이저 사운드와 박진감 넘치는 비트가 섞인, 스트리트 스타일 댄스곡.
특징은 반항적인 가사에 뛰어노는 듯한 분위기, 반복적인 후렴구.
서난영은 사실 〈뛰어들어〉라는 노래를 〈Express〉만큼 좋아했다.
열중쉬어 경례
내 이름을 크게 불러
이 순간에 걸어 겁이 없지 우린
뒷꿈치에 바퀴가 달린 신발을 신고 무대를 휘감듯이 동선을 바꾸는 퍼포먼스 또한 이 노래의 특징이었다.
신발을 신고 미끄러지는 것만큼이나 이동 동선이 넓고 복잡해서 연습 난이도가 상당했다.
이 신발 사용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서 콘서트가 아닌 이상 모든 멤버가 피하고 싶어 하는 노래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 기피가 희소성을 높였고, 그렇기 때문에 팬들이 추천하는 노래로 뽑히고 말았다.
열중쉬어 선서
내 이름을 크게 불러
문 박차고 세상 밖에 크게 외쳐
이번 스테리나인 무대는 정석으로 승부했다.
복잡한 연출과 함의를 최소화했고, 토큰은 무대 세트와 댄서에 활용해 직관적인 스케일을 키웠다.
그렇지 않아도 이동이 많은 노래인데, 스테이지 위에 사람도 많은 상황.
그야말로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무대였다.
서난영은 이런 분위기가 좋았다. 곡 제목처럼, 가사처럼, 뛰어들어서 노는 분위기가.
오 분이 채 되지 않는 무대로 머릿속의 모든 것을 불태워 표백하는 감각이 좋았다.
길게 뛰어다니고, 몇 초에도 수십 개의 동작이 들어가는 춤을 추고, 숨쉬기조차 어려워도 노래를 하고.
서난영에게 아이돌 퍼포먼스는 자신을 저 너머의 한계로 내모는 시간이었다.
그 불안이, 그 열기가,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기분이……. 두근거리고 짜릿했다.
그도 정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극단을 겪으면 사람은 결코 평범해질 수 없었다.
이제 뛰어들어 뒤섞어
New Dawn New Era
이 순간이 축제
다른 멤버들의 이동 방향과 정반대로 이동하며 빠르게 스텝을 밟는 정의헌의 하이라이트 독무.
그가 동선 끄트머리에서 서난영과 등을 맞대고 어깨를 부딪히며 카메라를 보았다.
서난영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향했다.
카메라와 그 너머의 객석을.
땀은 비 오듯 흘렀고, 얼굴 아래에서 훅 열감이 올라왔다.
어디든지 ‘뛰어들고’ 싶었다.
* * *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
무대가 전부 끝이 나고, 결과 발표의 순간이 찾아왔다.
규칙은 1차 경연과 같았는데, 현장 순위 공개보다 자체 평가를 먼저 진행했다는 차이 정도는 있었다.
스테리나인은 이번에는 달고나밴드가 아닌 다른 참가자에게 ‘브레이크 트랙’을 주었고, 카메라 앞에서의 회의를 통해 빠르게 채점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모두의 점수를 취합한 다음, 결과 발표 촬영을 위해 무대 세트에 다시 선 것이 지금.
심사위원들과 농담을 몇 마디 주고받은 MC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면, 자체 평가 순위를 먼저 발표하겠습니다.”
중요도 문제로 현장 순위 발표가 뒤로 밀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스테리나인에게는 자체 평가의 무게가 더 무거웠고, 서난영은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밀제트〉의 특성상 경연 결과는 질질 끄는 것 없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빠르게 공개되었다.
“이번 자체 평가에는 이변과 반전이 일어났다고 하는데요.”
이번에도 그 말로 딱 한 번 분위기를 예열한 것이 전부였다.
물론 이변과 반전을 원하는 당사자로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는 멘트였지만.
자체 평가 1위는 이튜버 바네사 장이 탈락하고 공석을 차지한, 새 출연자 걸그룹이었다.
기대 이상의 신고식을 마쳐 선사하는 ‘리스펙트 트랙’.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무난한 결과였다.
“……그리고 자체 평가 2위가, 스테리나인입니다.”
MC의 말에 서난영 옆에 앉아 있던 천진섭이 벌떡 일어났다.
“스테리나인은 3개의 ‘리스펙트 트랙’과…….”
MC가 말하는 중간에 짧게 뜸을 들였다.
“0개의 ‘브레이크 트랙’을 받아 2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렇다. 저번에 비해 결과는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비교적 순위가 높게 올라가는 것도, 마이너스 표가 적어지는 것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마이너스를 단 한 표도 받지 않을 줄은 서난영도 몰랐다.
뒤와 옆에서 들려오는 즉각적인 환호성에 그는 고개를 돌려 멤버들을 보았다.
정의헌은 한이주를 붙잡고 다독이며 웃고 있었고, 서난영은 깨달았다.
이것이 그의 의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