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61화
30. Run Away(4)
아임이 핸드폰 화면에 마주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을, 안개는 옆에서 지그시 쳐다봐주었다.
“말이 돼? 너무 무섭게 생겼어…….”
“응응.”
“이목구비 그림체가 마피아처럼 생겼다고…….”
“그래, 그래.”
아임이 감탄하는 사이 시청자 수가 순식간에 불어나고, ‘안녕’이나 ‘의헌이다!!’ 같은 댓글이 빠르게 쌓였다.
그런 평이한 인삿말을 눈으로 읽어내려가던 정의헌이 한 댓글 내용에 반응했다.
- 네, 연습하고 왔고요. 멤버들은 숙소에 있고, 저는 방송하려고 남았어요. 다 집에 있을걸요? 아마도?
그는 괜히 주변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다가, 다시 제자리에 앉아 대화를 이어나갔다.
콘텐츠는 따로 없었다. 혼자 댓글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방송 내용의 전부였다.
쓸데없는 도배와 어그로 댓글을 하나하나 터치해 신고하는 아임이 안개로서는 다소 신기했다.
친구 무리 중에서도 아임은 특히 좋은 말만 듣고 좋은 말만 하고 싶어 하는 ‘꽃밭덕질’ 성향이 강한 편이었다.
- 밥은 저녁을 조금 일찍 먹어서, 끝나고는 따로 안 먹을 것 같습니다~
- 저 연습했어요. 응, 단체 연습. 이제 이거 이야기해도 괜찮죠? 월요일 녹화 때문에!
- 뒤에 누구 있다고요? 그분은 저의 착한 친구입니다……. 저를 도와주시는 분이에요.
‘밥은 먹었니’부터 시작해서 이미 말한 것을 다시 묻는다거나, 되도 않는 장난이 댓글 목록에 가득했다.
그러나 정의헌은 대응하기 귀찮을 만한 질문도 일일이 성실하게 대답해줄 뿐이었다.
심지어 뒤에 누가 있느냐는 질문은 ‘귀신이 보인다’는 드립 같았는데, 뻔뻔하게 매니저를 언급하기까지 했다.
- 내일 오시는 분들 계세요? 아, 신청했는데 떨어졌어……. 괜찮아요, 저희 볼 기회 많아요.
핸드폰을 손으로 편히 들기 위해 방향과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며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안개가 기억하기에, 스테리나인 멤버들은 경력에 비해 이런 라이브 방송에 꽤나 빠르게 적응한 편이었다.
어차피 스테리나인 데뷔 이후에 라이브 방송 어플 서비스가 시작하기도 했고, 초창기에는 모든 아이돌이 버벅거려서 사실 적응하지 못한 티가 난 적이 사실상 없다시피했다.
이제는 거의 모든 멤버들이 혼자 방송하는 것을 어색해하지 않고 더러는 아예 라방을 즐기기도 할 정도였다.
그중에서 정의헌은 평소에도 문자보다는 전화가 편하다면서 방송을 영상통화로 여기는 면모까지 있었다.
- 스포일러는 방송이 엮인 일이라서 막 하면 안될 것 같은데. ……어, 약간은 괜찮아요?
지켜보는 매니저가 허락 사인을 내려주었는지, 정의헌은 약간 고민하고 대답했다.
- 저희 되게 오랜만에 하는 곡이에요!
〈데프아〉와 달리 〈밀제트〉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덜 엄격한 편이었다.
출연자의 SNS 사용도 막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권장했고 스포일러도 규제가 심하지 않았다.
〈데프아〉는 연습생 하나하나가 콘텐츠였다면 〈밀제트〉는 그보다는 무대의 가치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 오늘 〈One Day〉 무대는 잘 보셨어요?
정의헌은 한참 더 〈밀제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팬들의 관심사도 너무나도 〈밀제트〉였고, 시기도 〈밀제트〉 이야기를 하기에 딱 좋은 때였다.
〈밀제트〉 본방이 끝난 뒤 겨우 몇 시간이 흐른 지금, 팬들의 열기는 여태껏 식지 않았다.
냉정하게 말해서, 그들은 달아올라 과열되어 있었다.
안개와 아임은 오프라인에서 떠드느라 비교적 독기가 빠르게 빠졌으나 온라인 속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스테리나인의 현장 순위 2위에 축하하면서도 자체 평가에 분노했다.
한참 동안 마이너스 플로우를 타더니 결국에는 ‘낮은 순위를 준 사람들이 문제다’, ‘저급한 견제가 분명하다’라고 대놓고 말하기까지.
서바이벌 방송 팬덤이 어느 정도 이곳으로 유입되었기 때문에 극도로 예민하거나 과격한 표현을 쓰는 사람도 많았다.
동종 업계에 나이도 어린 연습생들도 욕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상대가 아이돌이 아니게 되자 자제력을 잃었다.
다른 출연진을 조롱하고, 비꼬고, 공격적으로 우울해하고, 뒤늦게 자정하자고 나서는 사람까지…….
SNS 속 팬덤 분위기는 그야말로 짜증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굶주려 표호하는 맹수와도 다름없는 그들을 온순한 양으로 만들 수 있는 이도 세상에 존재했으니…….
- 왜요, 뭐가 그렇게 속상해.
아이돌 본인이었다.
어떻게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좋은 말만 하려고 정성을 쏟는 사람들을 뚫고 몇몇 댓글이 우는 소리를 했다.
‘2위 축하해!’, ‘너무 잘했어’, ‘우리 스뎅이들 무대 장인이야’, 그 사이의 ‘자체 순위 이해가 안 돼’ 한마디.
수백 줄의 댓글 사이에 열 개도 안 되는 수의 댓글이었고, 이조차도 감정을 누르고 돌려 말한 티가 났다.
팬들이 자체적으로 눈총을 주고 두드려 정신 차리게 만들기에는 방송이 진행 중이고, 아이돌도 보고 있었다.
또한 아이돌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어 하던 사람들도 분명, 속이 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
- 중간에 나온 순위 때문에?
거기서 정의헌은 꽤 기민하게 눈치를 채고 질문을 해왔다.
그리고 터놓고 말하는 그의 태도에 아임도 안개도 화들짝 놀랐다.
“헐.”
“여기서 어그로 저항을 실패하다니…….”
정의헌은 문제가 생기든, 사건으로 인해 댓글이 달리든, 절대로 불편한 주제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 성격이었다.
괜히 반응해줘봐야 팬덤 싸움에 불이 붙거나 귀찮은 구설수에 휘말릴 수 있으므로……. 그것도 현명한 대응이기는 했다.
솔직히 따지자면 그는 이런 팬덤에 피로가 쌓인 타이밍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 타입이었다.
지나치게 분위기가 나빠지면 슬쩍 SNS나 공식 카페에 등장해서 관련이 없어보이는 TMI를 남기고 사라지는 수준이라고나 할까.
몇 번 겪어보면 그게 회사 방침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까지는.
“이 얘기 하려고 위라 켠 건가?”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네…….”
아임이 라이브 방송의 취지에 관해서까지 넘겨 짚으려고 하자 안개가 빠르게 저지했다.
하여간 이슈가 생길 순간에 라이브 방송도, 문제 언급도 이례적이었다. 두 사람 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 솔직히 우리도 그 순위에 만족해야겠다, 이런 생각은 안 하지. 그런데 그게 사실 방송에 보이지 않는 상황도 되게 많거든요. 편집 없이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맥락 같은. 아니, 악마의 편집 같은 이야기는 아니고. 보시는 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어쩔 수 없이 잘려나가는 파트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그런 비하인드를 알아서 이해가 되니까, 막 엄청나게 억울하거나 속상하지는 않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아임은 솔직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예비신랑이자 살아 있는 문짝이 마누라들을 달래주는 모습…….”
“……의헌이 팬들은 어떻게 이렇게 다들 똑같은 말만 하지?”
안개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도 태클을 잊지 않았다.
- 그러니까 레디도 조금 진정해도 된다는 이야기예요. 이런저런 일 생길 수 있는 거고, 우리가 열심히 해도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고. 그리고 이게 다른 팀이랑 반드시 비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런 거죠. 저희 멤버들은 괜찮습니다, 네.
- 방송 진짜 재미있어요. 다른 출연진이나 심사위원 분들도 다들 정말 친절하시고, 저희도 많이 배우면서 촬영하고 있거든요.
- 우리 다음 경연도 있잖아요. 다음에 잘해서 더 좋은 순위 받으면 되는 거지, 응? 스나야 뭐, 늘 열심히 하니까.
정의헌은 끝까지 꿋꿋하게 중도를 지켰고, 다음 경연을 약속했다.
그 후 곧 이야기 주제는 오늘의 〈밀제트〉 2회 리뷰와 비하인드로 옮겨갔지만, 안개는 방금 전 들은 말에 관해 조금 더 생각했다.
몇십 분 후 정의헌이 ‘오시는 분들은 내일 모레 만나요~’하고 방송을 종료할 때까지 내내.
논란이 될 만한 말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팬들의 불만을 부드럽게 잠재우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과연 논란이 안 될까?’
논란까지는 아니어도 뉴스 기사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못해 넘쳤다.
요즘은 SNS에 아이스크림 사진 한 장만 올려도 ‘〈데프아〉 1위는 지금, 바닐라 아이스크림’ 식으로 기사화되는 것이 정의헌이었다.
모두가 그를 주목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 중 팬들만 남몰래 보고 끝낼 수 있는 근황은 이제 그 무엇도 없었다.
심지어 〈밀제트〉는 여기저기에 막대한 자본을 들여 홍보하고, 1회도 성황리에 종료한 주말 예능이었으니까.
“얘랑 4년 사귀고 잠시 헤어졌다가 1년 뒤에 재회하고 싶어…….”
그러나 안개는, 아임이 옆에서 소리내어 독백하는 내용을 듣고 걱정을 고이 접어 멀리 날렸다.
어차피 방송 중 경솔한 발언을 한 것도 아니고, 남을 헐뜯지도 않았다. 그녀와 친구들의 걱정도 많이 해소되었다.
그 방송을 보고도 웃으며 잠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안개는 핸드폰을 충전 코드에 연결하며 생각했다.
* * *
〈밀리어네어 Z 트랙〉 2차 경연 1라운드 녹화 당일, 월요일.
리허설도 종료되고, 새 출연진과 인사하는 인트로 촬영까지 끝마친 뒤.
방청객이 전부 입장하기까지 출연진은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그 시각.
멤버들은 눈을 붙이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공식 카페를 구경하거나 손편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서난영은 이튜브로 TV 예능 요약 클립을 보다가 이튜브 메인에서 한 ‘추천 영상’을 발견했다.
– 밀리어네어 Z 트랙(Millionaire Z Track) 2화 [1차 경연 1라운드] 리뷰/요약/순위 공개, 결국 대세는 아이돌?
그가 영상을 터치해 재생한 까닭은 제목 때문은 아니었다.
영상 썸네일에 굵은 글씨로 적힌 ‘자체 평가 순위 논란?’, ‘참가자도 직접 언급’ 따위의 문장이 그의 시선을 이끌었다
〈밀제트〉 2회 방송이 종료된 이후 온라인을 뒤덮은 뉴스 기사를 서난영은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 [연예소식] 역대급 편파 방송, “밀리어네어 Z 트랙” 자체 평가 순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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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가……. 인터넷만 연결하면 쏟아졌으므로. 마치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