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55화
29. FLASH(6)
예희는 외삼촌이 사라진 이유를 바로 알려주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라진 건지 혹은 돌아가신 건지……. 그 결론 자체를 생략했다.
다만 처음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최근까지, 차근차근 회상했다.
내가 아는 일화도 있었고, 처음 듣는 말도 있었다.
하나같이 색이 바랜 기억이었다.
* * *
예희는 〈틴에이지 스타〉라는 서바이벌 방송을 시작하며 스스로 지은 예명이었다.
본명은 고예닮.
이름은 어머니가 아는 분께 받아와 붙였고, 성씨 또한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예희는 어려서부터 알았다.
그리고 외삼촌과 동거한다는 사실은 예희에게 전혀 위로가 되어주지 않았다.
먹여살릴 입이 둘이나 있다는 것은 그녀의 어머니에게도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외삼촌은……. 썩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폭력적이지는 않았지만, 존재 자체가 골칫거리였다고나 할까.
어머니와 닮지 않은 눈코입, 키가 작고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고도 먼 형상을 볼 때마다 오만상을 찌푸렸다.
집 밖으로 나설 때에도 후줄근한 런닝셔츠를 입었고 한겨울에도 맨발에 고무 슬리퍼를 신었다.
그리고 예희가 초등학교에 들어설 때쯤, 늘 집에만 있던 외삼촌이 드디어 일을 시작했다.
어디선가 빚을 지고 어머니에게 지원을 받아서 동네에 작은 만화 대여점을 차린 것이다.
너덜너덜한 만화책, 무협 소설, 판타지 소설 따위를 빌려주고 소파를 놓아 고객들이 머물게 했다.
“학교 끝나고 할 일 없으면 너도 와서 책 읽고 가.”
외삼촌은 그렇게 말했고, 어머니도 집에 혼자 있을 바에는 외삼촌이 보는 앞에 있으라고 권유했다.
예희는 말을 듣다가 말다가 했다. 그는 대여점에서 나는 책 냄새와 나프탈렌 냄새가 섞인, 퀴퀴한 악취를 싫어했기 때문에.
그러나 대여점에서 하루 종일 있는 날이면 때때로 외삼촌의 친구들이 ‘사장님’을 찾아오는 모습을 보았다.
나이도 성별도 특징도 다양한 사람들은 한번 찾아오면 외삼촌과 오래 떠들고, 카운터를 예희에게 맡겨두고 함께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그 사람들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예희는 제 외삼촌이 대여점 일보다 무엇에 열성적인지는 알았다
외삼촌은 민원 접수와 고발, 신고가 취미였다
불법 주차부터 시작해 신호를 지키지 않는 차량, 쓰레기 무단 투기, 아스팔트가 가로수가 망가지면 그것까지도 공공기관에 연락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고로 쓰레기가 사라지거나, 불법 주차한 차량이 없어지거나, 망가진 것이 멀쩡해지면 눈에 띄게 기뻐했다.
단순히 신고 정신이 유달리 투철하다고 말하기에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괜찮아, 누나. 내가 좋은 일 많이 하니까 누나한테도 예닮이한테도 복이 있을 거야.”
어느날 외삼촌이 예희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건강이 나빠져 회사를 쉬게 되고, 그 주 어느 저녁이었다.
외삼촌은 신고 포상금이 나왔다면서 싱글벙글한 얼굴로 저녁밥을 사기로 했고, 삼겹살을 뒤집으며 떠들었다.
이미 (예희의 어머니와 사이 좋게 같이) 소주 세 병을 비우고 시뻘건 얼굴로.
“원래 나쁜 일 다음에 좋은 일이 온다잖아. 걱정 마.”
위로라고 하기에는 지나친 확신이 느껴지는 문장이었지만, 예희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외삼촌의 말투는 본래 그런 면이 있었으므로.
솔직히 말해 예희는 그날의 위로만큼 외삼촌이 긍정적인 말을 한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의 말은 대개 부정적이었다.
좋은 일에 안심하지 마라. 좋은 일 다음에는 나쁜 일이 찾아올 것이다.
아무런 꿍꿍이 없이 남을 돕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소한 일에 좋아하지 마라.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좋은 일은 날아간다.
그 기쁜 일도 사실은 내가 정의롭게 산 덕분이다.
아주 오랜 시간 싫어하고, 잊고 살았던 말이 어머니의 종양을 발견했을 때 문득 떠오른 이유는 또 왜일까.
어머니를 모시고 간 병원, 암세포를 발견했다는 의사의 말에 예희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좋은 일 같지만, 분명히 불행해지고 말 것이다…….
중요한 시기에 신경 쓸 일이 생겼다는 것부터가 끔찍했다.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번거로워질까.
애초에 모녀 사이가 좋지도 않았고, 늘 서로 짜증만 내고 헐뜯으며 사니까.
그러지 말고, 차라리…….
* * *
“잠깐만요.”
태클을 걸 수밖에 없었다.
예희가 이야기에 집중하는 동안 머그컵에서 슬쩍 빼내 케이스에 집어넣은 과도를 손 닿지 않는 위치에 조심스레 숨기며, 내가 말했다.
“그건 이렇게까지 행동할 논리적인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두면 너무 유해한 이야기로 흘러갈 것 같아서 중간에 끊었다.
아직 외삼촌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것 같지만, 우선은 현 상황에 관해 점검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다시 양손을 식탁 위에 올리고 말을 이었다.
“우선……. 어머니 일은요, 저기. 이러나저러나해도 다행인 게 맞아요.”
“……왜 그렇게까지 확신해요?”
그사이에 말하면서 꽤 진정했는지, 꽤나 차분한 말씨였다.
“확신까지는 아니고요. 음……. 전부 어쩔 수 없는 일보다는 선택지가 하나라도 더 있는 편이 낫지 않나요.”
“…….”
“그리고 만약 이게 나쁜 일이라고 해도, 저에게 죄책감을 넘기는 것은 매너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희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지능도 아니고, 터놓고 말해야 대화가 빠를 것 같아서 돌리지 않고 직구로 꽂았다.
“저는 다행이라고 판단했고, 안심했어요. 그러면 적어도 일단 저는 이 일을 좋다고 여기고 싶어요.”
움찔 떨리는 예희의 어깨를 못 본 척하며 계속했다.
“그리고 제가 감사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제 덕이라고 생색을 낸 것도 아니잖아요. 저만 좀 스스로 그렇게, 좋았다고 생각할게요. 그 정도는 허락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알았어요, 말씀은 감사했어요.”
“아니, 그런 말을 들으려고 한 게 아니라……. 예, 별말씀을요.”
무기를 뺏었더니 생각보다 훨씬 설득이 빨랐다.
보통이라면 여기서 예희가 내 말을 듣지 않고 2차, 3차 전쟁이 일어났을 텐데 말이다.
온순하다면 온순한 태도에 처음으로 눈 앞의 이 사람이 내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덕분에 나는 짧게 ‘내가 얘랑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라고 현타가 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인사가 오가면 그 후는 정적이었다.
그러나 아직 모든 게 안정된 것은 아니었고, 아직 듣지 못한 말도 많았다.
뉘앙스가 날카롭게 느껴지지 않도록 한 차례 속으로 점검한 뒤,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전문 상담사가 아니라서, 여기서부터는 맞는 말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걸러 들어주세요.”
“……네.”
“꼭 전문가 조언은 따로 들으시고요. 그러니까 건강 이야기는 딱히 음험한 의도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의도가 없었다고 말은 못 하겠지만, 의도적으로 타인에게 악의를 품은 것은 전혀 아니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비전문가여도 예희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진단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많이 쌓여서 생각이 극단적으로 향하고 있는 듯했다.
“사실 믿을 필요가 없는 말이잖아요, 그런 거. 실제로 오래 잊고 사셨다고도 했고.”
내가 말할 때마다 예희의 고개가 점점 바닥으로 향해서 이제는 정수리가 다 보였다.
미안한 마음은 가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시각적으로 자극이 오면 어쩔 수가 없었다.
말하는 내용이 무신경하게 들리지 않게, 그리고 듣는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나는 한 번 더 노력했다.
“외삼촌이 돌아가신……. 사라진……. 그 일이 큰 충격으로 오래 남았나 봐요.”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맥락을 짜맞춰 보면 외삼촌은 예희가 〈틴스타〉에 출연하기도 전에 없어진 것 같은데.
“사라진 거예요. 실종이라고 해야겠죠.”
그리고 나의 추측은 옳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이번 사연은 길지 않았다.
예희의 외삼촌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에 불과했으므로.
학교를 마치고 바로 대여점으로 향하니 문이 닫혀 있었고 휴무 사유도 문 앞에 붙어있지 않았다.
의아함을 느끼고 집으로 가보니, 그곳에도 삼촌은 흔적도 없고…….
핸드폰이나 지갑 따위 물건도 집에 그대로 있고, 심지어 늘 신고 다니던 슬리퍼도 집에 있었다.
예희의 외삼촌은 증발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 흔적도 없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게 가능한가?’
평소에 주변 공무원들을 귀찮게 군다고 해도 원한을 산 특정인이 있는 건 아니었다는데…….
처음에는 사라진 외삼촌의 친구들도 집까지 찾아왔지만 몇 개월이 지나니까 발걸음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그 사람들 사이에서 무슨 대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예희의 어머니는 그 사연을 함구했다.
어머니는 금세 소지품을 정리했고 예희는 〈틴스타〉를 준비하게 되어 점차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잊혀졌어요.”
예희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지만, 딱히 외삼촌이 그리워 보이지는 않았다.
조금 남은 외삼촌의 소지품은 예희가 최근에 집을 사 독립하면서 챙겨 나왔다고 한다.
어머니가 계시는 본가가 훨씬 좁고 어지럽기 때문에 그런 처분하지 않을 물건들은 모두 이곳으로 옮겼다고.
사실 소지품이 있다면 이야기는 쉬웠다.
내 미스터리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물건’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감람석 반지 말이다.
“괜찮다면 소지품을 살펴보고 싶은데요.”
“해명을 먼저 하시는 건 어때요.”
그러나 부탁에는 깔끔한 거절이 돌아왔다.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아직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실종과 제가 관련 있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아.”
예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외삼촌 소지품 중에서 노트북이 있는데요. 충전하니까 전원이 들어오더라고요.”
노트북 충전을 한 것이 마침 바로 며칠 전이라고, 예희는 덧붙였다.
원래 코드가 없어서 애물단지던 물건인데, 최근 어머니가 집을 정리하다가 충전 코드를 찾았다고 건네주셨단다.
병원 때문에 본가에 가고, 거기서 충전기를 가져오고, 덕분에 선을 연결해 노트북을 열어보았다는 흐름이다.
“파일은 쓸모 없는 것들뿐이었는데, 이메일 로그인이 되어서요.”
“쓸모 없는?”
“만화 스캔 파일이나 텍스트 파일이나, 그런 거 있잖아요.”
외삼촌이 대충 무슨 캐릭터였는지 이해가 된다.
“아무튼, 받은 메일함 최신 메일에서 정의헌 씨 이름을 발견했어요.”
…….
이건…….
확실히, 의심하지 않는 게 이상하겠다.
‘아니, 그래도 처음부터 말로 하라고! 대화 되잖아!’
……불평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억울한 것도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