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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53화 (153/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53화

29. FLASH(4)

사실을 짚어보면, 첫 단추부터 이상하게 꿰인 것은 아니었다.

평소와 달랐을 뿐 그렇게까지 경우가 없는 부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므로.

나는 다만 앞접시에 담긴 어묵탕 속 어묵을 젓가락으로 건져 먹으면서 되물었다.

“갑자기? 무슨 일 있어?”

내가 묻자 그 시점 삼 년 넘게 같이 일한 매니저 형이 우물쭈물 대답했다.

“아, 아니. 그게……. 빈이가.”

“빈이 왜?”

빈이는……. 매니저 형의 세 살배기 아드님이시다.

회귀하기 전 미래에서는 내가 그 친구 초등학교 입학하는 모습까지도 봤다.

사연을 물으니 아기가 저녁을 과식하고 체해서, 집안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돌아왔다.

거기까지만 들어도 꽤나 상황이 기구한 듯해 나는 별 망설임 없이 매니저 형을 보내주었다.

어차피 나도 더 늦지 않게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었고, 식당도 나름 꽤 프라이빗한 장소였으니까.

장소를 통으로 빌렸으니 다른 손님도 없고, 점원들은 적당히 거리 지켜서 본인 일을 했고.

회식에 사람이 많아서 정신이 없다는 문제만 제외하면 들어주기 힘든 부탁도 아니었기에 승낙했다.

“의헌 씨는 2차는 안 가는 거지?”

“네, 내일 일 때문에. 다들 조심히 놀다 가세요.”

그리고 거기서 사십 분쯤 지나 1차를 파할 때쯤이 되자, 생각보다 늦지 않은 시각이었다.

내가 금주 중이라고 하자 다른 스태프들도 나를 더 잡지 않고 풀어준 덕분이었다.

바깥이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스태프들과 타고 내려가는 도중 문득 창밖을 내다보았다.

귓가에 직접 꽂히는 온갖 소음을 무시하며, 지하철을 타고 들어가면 어떨지를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조금만 더 늦으면 얄짤없이 택시를 탔겠지만……. 잘하면 지하철로도 귀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 도전정신을 자극했다.

마침 최근에 회사에서 대대적으로 사생활 침해와 스토킹 범죄 관련 기소장을 접수하고 공지해서 오늘은 쫓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모임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고 노느라 간만에 흥이 꽤나 오르기도 했고, 스토커 문제가 잠잠해져 숨통이 트이는 것도 있었고…….

머리에 쓴 까만 벙거지 모자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나는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출 때까지 고민했다.

“택시 타세요?”

다 함께 우르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저마다의 행로를 검색해보는 그때, 달고나밴드의 베이시스트 멤버가 내게 물었다.

베이시스트 뒤에는 그들의 동료가 두 명이나 더 서 있었다.

4월이 되었는데도 긴 겉옷을 입은 예희와 20대 중후반의 액면가를 지닌 남성.

후자는 달고나밴드의 매니저라고 일찌감치 소개를 받은 적이 있었다.

“지하철이랑 택시 중에 고민하고 있어요.”

“……지하철도 타세요?”

“예, 가끔……?”

굉장히 당황스러운 말투의 질문이 들려와서 대답하는 내가 더 당황했다.

무슨 생각과 오해를 하고 있는지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아서 주변을 둘러보며 큰 길을 찾고 있는데, 목소리가 또 들렸다.

“역까지 태워드려요?”

예희였다.

그런데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베이시스트와 매니저가 몹시 좋아하면서 크게 반색했다.

두 사람이 합심해 호들갑을 떨면서 몇 호선을 타냐고 묻더니 길을 찾고, 같이 가자며 나를 열심히 설득했다.

여기에 다른 스태프들까지 잘됐다고 맞장구를 치는데 ‘왜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못내 알았다고 대답한 일에는 그 모든 상황과 사람들과 달아오른 분위기가 영향을 주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술집으로 이동하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나는 매니저 형에게 문자를 한 통 보내두었다.

이제 회식 자리를 파하고 들어가기로 했으며 내 경우 지하철 역까지 달고나밴드 팀 차를 타고 이동할 것 같다고.

그리고 메시지를 읽었다고 표시가 되자마자 핸드폰 화면을 끄고 일행을 따라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달고나밴드의 매니저가 재방송해주는 본인의 TMI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지하 3층에 도착하면, 예희가 말했다.

“앞에 타세요.”

“직접 운전하시는 거예요?”

내가 묻자, 예희가 리모콘으로 차 잠금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가 마시고 싶다고 해서 제가 좀 봐줬죠.”

“아하…….”

“저는 술을 안 좋아하거든요.”

내가 알기로 예희가 술을 싫어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구태여 지적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 다음 몇십 분 동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불안한 운전으로 차가 출발하고 도로를 달렸다.

제자리에서 차를 빼고 오르막길을 올라오는 것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어째 갈수록 가관이었다.

‘아니…….’

시간을 되돌려 과거에 도착한 이래로 이렇게 후회해본 적이 없었다.

굳이 운전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운전면허는 필기시험조차 응시하지 않았는데……. 미리 따둘걸.

면허라도 있으면 운전대를 정당히 뺏어올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은 굉장히 많았지만, 운전자 멘탈이 흔들리면 모두 함께 천국행이라 무슨 말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운전면허는 있으시죠, 술 정말 한 방울도 안 마신 거 맞죠, 브레이크랑 엑셀 위치 헷갈리는 거 아니시죠, 등등…….

심지어 도로를 달리다 보면 뒷자리에서 몇 번쯤 내가 생각한 질문을 직접 외치기도 해서 심장이 철렁했다.

나는 한 손으로 창문 근처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붙잡고, 앞과 옆과 룸미러를 번갈아가면서 각자의 상태를 살폈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차 안의 예희와 매니저, 베이시스트 모두 정상적인 낯빛이 아니었다.

너무 희거나 파랗게 질리거나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제발 나는 그런 모습이 아니기를 속으로 염원했다).

처음에는 예희가 일부러 운전을 과격하게 하는 줄 알았는데, 의심한 것이 미안할 만큼 진심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 전방 5미터 앞에 과속 방지턱이 있습니다.

그 와중에 내비게이션에서 기계 목소리가 차분하게 위기를 알렸고…….

경고처럼 들리는 안내가 끝나기 무섭게 차체가 덜컹거리면서 흔들렸다.

“예닮아, 어우, 차가 너무……. 우욱…….”

동시에 뒷자리에서 대형사고가 터졌다.

* * *

…….

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불행한 일이 발생했고……. 난리도 아니었다.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중간에 내려달라는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베이시스트를 시작으로 뒷자리 두 사람 다 좋지 않은 꼴이 되었고, 차는 결국 예희의 집까지 달렸다.

나는 그 무렵 차 얻어타지 말고 택시나 부를 걸 그랬다고 두 번째 거대한 후회를 했지만, 물은 이미 엎어졌으니…….

어떻게든 성인 남성 둘을 한 명씩 부축해 실내에 들여놓고, 급한 오물만 처리하는 느낌으로 차 내부를 대충 닦아냈다.

문제를 수습하면서는……. 숙소로 가지 말고 본가로 가서 부모님과 고양이들이나 보고 올까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내 옷이나 소지품이 더러워졌다든가 한 건 아니었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몹시 컸다.

‘이거 미션 실패 페널티 아니야?’

이보다 더한 불행이 예약되어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라면 이 일을 계기로 할인이라도 해주라…….’

들을 사람도 없는 하늘에 기도하며, 나는 문이 열린 실내 집 안으로 들어섰다.

기다려서 예희가 나오면 청소 상황을 보고하고 귀가하려고 했는데, 좀처럼 묵묵부답이었기에.

예희의 자택은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1인 가구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깔끔하고 잘 꾸며져 있었다.

넓고 조용하고 조명이 밝으며, 방이 여러 개인 데다가 바닥에는 소형견이 두 마리나 돌아다녔다.

강아지들은 아까 달고나밴드 동료들을 부축해 옮겨올 때 예희가 작은 방에 몰아넣고 문을 닫아 다시 돌아오니 보이지 않았다.

열린 현관문을 괜히 손등으로 두드리며 기척을 내었더니, 바로 보이는 큰방에서 예희가 걸어나왔다.

실내에서도 정신 없는 상황은 이어졌는지 다소 두꺼운 듯 보였던 겉옷조차 벗지 않은 채였다.

“아…….”

“두 분은 괜찮으세요?”

“예, 둘 다 씻고 방금 나왔어요.”

예희가 고갯짓으로 방 안을 가리키면 말마따나 사람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의헌 씨에게 고맙다’거나 ‘이 바지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는 등 하는 외침에 예희가 방 안으로 재차 들어가고…….

이삼 분 정도 거실에 가만히 서 있으면 방 안에서 오가는 조용한 실랑이가 들리기도 했다.

짜증이 느껴지는 여자 목소리가 주였다.

숙소 들어올 때 제로콜라를 사다 달라는 톡에 ‘알아서 사먹어’라고 답하며 추가로 대기하기를 몇 분.

“죄송해요. 시끄러웠죠.”

찰칵, 방 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예희가 다시 거실에 나타났다.

강아지 두 마리는 작은방에 넣고 문을 닫고, 술꾼 두 명은 큰방에 넣어두고……. 왠지 비슷한 그림 같았다.

“큰 문제 없으면 됐어요.”

“물 한 잔 드려요?”

“아, 예. 그러면 감사하죠.”

“들어와서 계세요.”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신발을 벗고 거실 소파 쪽으로 가면 부엌에서 돌아다니는 예희의 뒷모습이 보였다.

겉옷을 벗어 식탁 의자에 걸쳐두고 정수기에서 찬물을 컵에 받고,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리고 같은 지붕 아래에 두 사람이나 더 있었다.

베이시스트는 만취했지만, 매니저는 고작 한두 잔 마신 수준이었다.

물론 평범한 일상과는 거리가 먼 하루였다.

회식도, 매니저 형 없는 퇴근도, 만취한 사람의 사고도 매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 않나.

그러나 아무쪼록 불안하거나 위기감이 느껴지는 환경은 또 아니었다.

“……?”

눈앞에 ‘그것’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WARNING」

「미션 실패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홀로그램 창에 글자가 토독토독 타이핑되어 떠올랐다.

이제 이 홀로그램 창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나도 알았지만…….

그 ‘상태창’ 속에 적힌 의미를 그 즉시 온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상태창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고 시야를 채웠다.

그리고 페널티가 무엇인지 내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탁.

그런데 그때, 예희가 찬물이 담긴 머그컵을 나무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컵을 내 쪽으로 밀었으나 내 위치는 식탁과 멀리 떨어진 거실이었고, 이는 즉.

물컵을 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는 가까이 오라는 의미였다.

“저,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예희가 말했다.

말투는 제법 여유로웠다.

조금 전까지 운전대를 잡고 덜덜 떨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순간 팝업된 상태창이 지직거리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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