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52화
29. FLASH(3)
나는 새로운 정보를 남소리 선배님에게 말해 정보를 좀더 캐낼까 하다가, 잠시 동안은 보류하기로 결심한 참이었다.
전화로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기도 했고, 아무렴 당분간은 의존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으니까.
강주찬이 전해준 이야기에 관해서도 혼자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기적은 살면서 몇 번 찾아오지 않는다…….’
우선 주찬이가 말한 몇 마디 사연에서 내가 천사의 흔적을 읽어낸 까닭은 그 말 덕분이었다.
기적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짚어낸 것부터 묘하다는 감각이 들었다.
그리고 강주찬이 들은 그 조언은, 시간을 되돌린 그 순간 내가 천사에게 들은 문장과 거의 일치하는 문장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정보를 수집하느라 과민하게 반응한 와중에 반지가 우연히 잘 걸려든 것도 같았다.
‘여기서 환기해보자.’
남소리 선배님이 내 상태에 관해 진단한 내용이나 경고 등은 전부 무시하고 처음부터 다시.
상태창이나 미션, 미션 실패 페널티나 보상, 그런 것들은 지금 생각하지 말고, 파고들자.
‘친절하게 행동하라……. 타인에게든 자신에게든.’
곱씹어보자니 왠지 제법 종교적인 색채가 느껴지는 말씀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그들을 내가 종교 단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장을 곰곰이 뜯어보았다.
친절하게 행동하면 불운과 행운이 꼬리를 물고 연쇄적으로 찾아오는 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인가.
나는 그동안 내가 들어온 ‘경고’의 내용과 그 훈화를 머릿속에서 반투명하게 겹쳐보았다.
‘내 상태는 지금 행운만 존재하고 불운이 찾아오지 않는 중이라서 문제라는 말이 되나.’
그리고 행운과 불운, 좋은 일과 나쁜 일, 그리고 미션의 연관성을 조금 더 생각했다.
미션은 운의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노력으로 성취해낸 영역이 존재하는데 행운이라고 해도 되는지.
그렇게 하나하나 해체해서 풀어나가려고 하니까, 중간에 거대하게 꼬인 개념이 하나 존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도 거기서 꼬여 묶인 매듭이 내가 잃어버린 진실의 한 조각이지 않을까.
‘……정보가 없으면 여기까지만 생각하자. 단순하게.’
스케줄을 위해 이동하는 차 안.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두었다.
창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었지만 그 반대는 가능했다. 오전 시간에, 봄이 되어 화창한 하늘.
내 마음이 복잡하든 말든 날은 좋았고, 시간은 멋대로 흘렀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다.
다른 고민할 일도 많은데 답도 나오지 않는 문제로 소중한 뇌세포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추상적인 개념을 모두 구체적이게 바꿔보자면…….’
첫째로 감람석 반지.
남소리 선배님과 미국에 거주하시던 할아버지가 공통적으로 소유한 물건으로, 링 부분에 새겨진 마름모 무늬가 특징이다.
찾아보니까 보석으로서의 감람석은 페리도트라고도 부른단다.
에머랄드보다는 더 노란색이 함유된 편이라고 인터넷 포털 검색 결과가 말해주었다.
서드림이 정체를 맞혔든 아니든 편의상 나는 그냥 막내의 말을 믿고 그 보석을 감람석이라고 칭하기로 했다.
반지는 손가락 마디를 반절 이상 덮을 수 있을 것처럼 긴 원통형이었기 때문에, 손가락에 끼우고 있으면 제법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남소리 선배님은 공식 석상에서 그 반지를 좀처럼 착용하지 않았다.
주찬이에게 제대로 확인을 받기 위해 나는 며칠 동안 배우 남소리의 사진이나 영상 자료를 이것저것 많이 찾아보았다.
‘겨우 사진을 찾아서 보여주니까 강주찬은 같은 반지라고 했어.’
그런데 그 반지가 포함된 공식 사진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 선배님이 연예계 활동을 꽤 오래 했는데도.
최근은 <데프아> 비하인드 영상 속 스테이지 아래에서 몇 컷, 그리고 며칠 전 <밀제트> 촬영 대기실 영상에서 한번.
당연하지만 연기 도중에는 반지가 없고, 옛날 작품들은 비하인드도 많이 찍어주지 않아서 식별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몇 년 전에 출연한 방송이나 인터뷰 사진에서는 드문드문 감람석 반지가 보이는 것이…….
‘……결벽적으로 숨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슈는 피하려는 듯 보인다.’
배우 같은 연예인이 애용하는 액세서리는 입소문을 타거나 나아가 유행이 되기도 하니까, 그 현상만 경계하는 게 아닐까.
아는 사람은 알아볼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과민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천사’라는 단체 일원들은 끈끈히 뭉쳐있고, 수직적이고 엄격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쯤 나는 흰 가운을 차려입은 연구원들에서 시민 복지 단체로 천사들의 머릿속 이미지를 다소 변경했다.
‘어쩐지 심상이 점점 더 종교 같아지는군.’
아직 가설뿐인 추측 중에서는 그 반지와 ‘상태창’이 어떠한 연관을 가진다는 이론도 있었다.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타인의 상태창은 얼굴을 직접 마주해야만 정보를 불러올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굴을 보고 내 상태창을 읽어야 할 때마다 그 선배님은 손가락에 감람석 반지를 착용하고 있었으니까.
‘상태창은 외계 신호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한 장치라고 했지…….’
이 말이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라면, 상태창을 로딩하는 데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장비도 없이 상태창을 불러왔을 때 천사 쪽에서 기겁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의혹이기 때문에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없었고, 지금으로서는 생각만 해두는 게 좋을 듯했다.
‘아무튼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반지 자체야.’
눈에 보이는 물건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이 얼렁뚱땅 수사 난이도가 몇 배로 줄어든 기분이었다.
아무튼, 첫 번째는 감람석 반지였고 두 번째는 미션이었다.
처음에는 미션도 행동 가이드라인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실패 시 페널티가 붙는단다.
대가는 나나 주변 사람의 부상일 가능성이 높고…….
아직 위기가 닥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불안한 감은 있었다.
‘하여간……. 다음 목표는 5차 경연 이상 생존할 것.’
일시로 따지자면 <밀리어네어 Z 트랙> ‘1차 경연 2라운드’, 즉 3회 방송분 녹화는 바로 어제 오후 이루어졌다.
2차 경연 주제나 토큰 정산은 이미 1라운드 녹화를 끝낼 때 전달을 받았고, 스테리나인은 다음 경연을 순조롭게 준비하는 중이었다.
이번주 토요일에 저녁에는 1회 방송이 드디어 전파를 탈 테고 2차 경연 촬영은 아직 일주일 넘게 기한이 남아 있었다.
‘지금이 4월 초니까, 5차 경연이면 언제지?’
잠시 손가락을 접어가며 날짜를 세어보니 5차 경연이 마무리되는 시기는 6월 초중순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 무렵 방송 출연을 마무리하고 스테리나인이 컴백하면 공백기가 길어지지도 않고 딱 좋을 것 같다는 계산 역시 어렵지 않았다.
물론 무사히 생존할 수 있다면 최소 2주에 한 번은 무대를 하는데 이를 공백기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기는 하다만…….
‘끝으로 세 번째는……. 꾸준히 정보를 더 모을 것.’
그리고 이 방침은 경연 무대를 퀄리티 있게 만드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덜 중요했다.
덤으로 닥쳐올 미션 실패 페널티에 관해서는 걱정 및 불안을 조금 내려놓기로 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책은 삼가자.’
그래도 내가 미션을 실패해서 지구 반대편에 사는 모르는 사람이 다치는 것보다는 주변이 낫다.
내 속이 터져나가는 것과 별개로 주변 사람이라면 적어도 내가 돕거나 신경 쓸 수 있고, 도울 여유도 충분하니까 말이다..
경계를 늦추지 말자는 다짐 정도로 생각을 마무리할 때가 되면, 어느덧 나를 태운 차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의헌아, 일어나.”
“아……. 안 잤어.”
매니저 형이 깨워주는 말에 대답하며 나는 비틀비틀 상체를 일으켜 차 손잡이를 잡았다.
오늘 업무는 마지막의 마지막이자 추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개인 스케줄이었다.
팬미팅 이후로 따로 잡은 일정은 아니고, 전에 계약한 스니커즈 광고사가 새 시즌을 맞아 재차 호출한 덕이었다.
한 달 반만에 부름을 받은 셈인데, 초여름 신상 신발을 직전 광고의 속편 느낌으로 촬영하고 싶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광고 촬영 파트너는 여전히 달고나밴드의 예희였다.
* * *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이번 촬영 분위기는 전처럼 경직되어 있거나 어색하지는 않았다.
나나 예희가 노력한 것은 아니고……. 둘 말고 새 모델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단 둘은 별로라는 피드백을 꽤나 많이 받은 게 아닐까?’
딱히 콘셉트가 로맨틱한 것도 아니었는데, 요즘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지 짧게 생각하다가 말았다.
어쨌든 중간부터 등장하게 된 세 번째 모델은 달고나밴드의 베이시스트로, 밴드 안에서는 예희 다음 가는 인기 멤버였다.
“같이 그 방송 촬영한다면서, 안 친해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친해질 거예요.”
사실 빈말로라도 잘 알고 친근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스태프가 던진 우스개소리에 내가 농담으로 대답해주자, ‘아하하, 그럼요. 우리 베스트 프렌드입니다’라는 맞장구가 돌아왔다.
쉬는 시간에 틈틈이 듣자하니 이 분은 예능이나 웹 콘텐츠에서의 입담이 SNS에서 많이 공유되어 유명해진 덕분에 섭외가 되었단다.
‘그냥 뭐……. 괜찮은 성격 같다.’
예희도 저번 촬영은 어지간히 불편했는지 나와 베이시스트의 친목을 주선하는 방식으로만 대화에 끼어들었다.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적당히 웃고 서로 친해지고, 연락처를 교환하는 분위기로 촬영이 마무리된 뒤.
아홉 시가 넘은 늦은 시각에 설마하던 회식 일정이 이어졌다.
여름을 노린 촬영까지 끝났기 때문에 적어도 반년 동안은 추가 촬영이 없을 예정이라서 약속을 만들었다나.
스무 명 정도 되는 현장 스태프들과 제작 관계자까지 모두 모였고, 고깃집 하나를 통으로 대관하기도 했다.
약간은 부담스러운 자리였지만……. 나와 대화하고 싶다는 관계자가 더러 있어서 빠지기에도 애매했다.
“의헌 씨, 술 못 마셔요? 의외다!”
“내일 일정 때문에 오늘은 피하려고요. 죄송해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단체 스케줄이라고(경연 연습이 있었다) 일부러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면, 질문자와 다른 방향에 앉은 사람이 내 등을 두드려댔다.
시작부터 한 시간쯤 경과해 공기에 떠다니는 알콜에 물만 마시고도 취한 기분이 들 때쯤이었다.
“저, 의헌아.”
매니저 형이 내게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아주 조심스럽고 미안하다는 듯한 말투로.
“혹시……. 너 오늘 택시 타고 퇴근할 수 있을까?”
그것이 내 계획에 없던 일 제1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