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51화
29. FLASH(2)
강주찬은 턱을 매만지며 발언을 정정했다.
“아니, 처음 봤을 때는 이상하다고 생각을 못 했어.”
당시 강주찬은 열 살이 겨우 넘은 나이였다.
녀석 눈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백인이든 흑인이든 히스패닉이든 아시안이든 다 비슷비슷하게 보였다.
어차피 외국 땅은 모든 것이 낯설고 이상해 보였으니까,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구분 자체를 잘 하지 못했다고.
“무슨 말을 계속 하는데 이해하기가 힘들어서, 조금 가까이 가서 봤지.”
지금 생각해보면 청해 능력 때문에 알아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범인이 말 자체를 어렵게 들리게 한 것 같다고, 강주찬은 첨언했다.
영어 같지도 않은 말에 억양도 표준 발음이 아니고 굉장히 느릿느릿하게 들리는 말투였단다.
의심을 품으면서도 강주찬은 한 걸음 다가갔고 그러자 열린 차창 너머로 차 내부가 슬쩍 보였다고 한다.
대시보드에는 구겨진 갈색 종이 쇼핑백과 각종 쓰레기들이, 조수석 좌석 위에는 쇠파이프처럼 생긴 공구가 놓여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더 자세히 보면 종이 쇼핑백이나 공구는 기름기가 낀 검은색 자국이 이리저리 묻어 있었고.
“……아무튼 엄청나게 수상했다는 이야기야.”
그 뒤로 강주찬은 범죄 현장에 관해서는 설명이나 묘사를 많이 붙이지는 않았다.
본인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대목도 많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았다.
하여간 요점은 주찬이가 그 차에 탈 뻔했다는 것이고, 어떻게든 소리를 지르고 저항해 그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때 차가 세워져 있던 거리 바로 앞에 살던 노부부가 소리를 듣고 집안에서 달려 나왔고 다른 이웃도 마찬가지였다.
서너 명쯤 되는 사람이 동시에 여기저기서 등장하자, 범인은 바로 강주찬을 밀쳐내고 재빨리 차를 출발해 달아났다.
주머니에 들어 있던 잔돈 동전이 짤랑짤랑 바닥과 차 시트 사이로 고루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맨발로 나온 동양인 여성이 전화로 경찰에 신고를 하고, 노부부의 할머니 쪽이 강주찬의 어머니와 통화했다.
갑작스러운 폭력과 마주한 어린 강주찬이 깜짝 놀라서 엉엉 울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 할머니가 아닌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목소리가 다 기억나. ‘Boy, your mama, come.’ 엄마가 오니까 좀 진정하라는 느낌이었어.”
강주찬이 간단한 영어 단어를 한국어로 구태여 번역해주었다.
서드림이 ‘저 형이 울었다는 게 상상이 안 돼’라고 중얼거렸지만, 강주찬은 무시한 채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난 막 다가오는 사람들도 뭔가……. 믿을 수가 없는 거야.”
슬며시 필터링을 거쳤지만 무서웠다는 뜻이 틀림없었다.
그 할아버지는 머리가 희고 몸집이 큰 흑인이었는데, 강주찬으로서는 낯선 사람과 낯선 생김새에 경계심이 들었던 게 아닐까.
할아버지는 강주찬의 무릎에서 피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집에 들어가서 치료를 받자’고 하는데 강주찬은 고개를 가로젓기만 했다.
다른 이웃들은 모두 돌아가고, 할머니는 신고를 접수하고, 할아버지와 강주찬은 단어 몇 개로 겨우겨우 소통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할아버지는 강주찬의 주머니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구는 영수증을 발견했다.
“그걸 보고 그 할아버지가 말했어. ‘오, 바인즈구나’하고.”
남의 집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바인즈에서 어머니를 기다리자고 할아버지가 제안했다.
강주찬으로서도 익숙한 공간이라면 안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고민 끝에 그 말에 승낙 의사를 표했다.
할아버지는 즉시 집에서 구급상자 같은 것을 들고 나와 둘은 그 자리에서 한 블럭 정도 떨어진 바인즈로 향했다.
아이가 놀랐고 보호자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니까 신고를 받은 경찰도 할머니도 입장을 이해하고 보내준 듯했다.
카페 바인즈에서 할아버지는 따뜻한 우유를, 강주찬은 조금 전에 먹은 딸기 요거트 스무디를 재차 주문하고 두 사람은 입구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조금 진정한 강주찬은 무릎을 두드리는 솜뭉치에도 밴드를 붙이는 손길에도 잠자코 있었다.
응급처치가 끝나고 겨우 분위기가 수습되자 할아버지는 강주찬에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지. 무사하니까. 기적 같은 일이야. 이런 기적은 살면서 몇 번 찾아오지 않아.”
강주찬이 제 목소리로 과거에 들은 말을 번역해주었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행운과 불행은 맞닿아 있어. 위험한 일을 겪었으니 이제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너무 두려워하지 말거라.”
꽤나 다정한 말이었다. 안심을 시켜주려는 듯이…….
그러나 어린 강주찬은 그 말을 듣고도 마음이 풀리지 않아서 슬그머니 더 불평했다.
‘저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나쁜 일이 찾아왔잖아요’
‘그런 일도 있어, 그런 일도 있는 것이 인생이야. 안타깝게도. 그렇지만 슬퍼하지 말고 들어보렴.’
‘뭘요?’
‘불행을 피할 수 있는 주문이란다.’
할아버지는 진짜 주문을 말하는 듯이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Be kind.
친절하라.
‘물론 불행 앞에서 상냥하지 않았다고 자책하라는 말은 아니야. 중요한 건…….’
‘…….’
‘네가 네게든 남에게든 친절하게 행동하면, 많은 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지.’
강주찬이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그대로 우리에게 옮겨 알렸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충격 반 의문 반으로 침묵에 휩싸였다.
나도 결국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각색 몇 프로?”
“이씨, 진짜라고. 10퍼.”
……그렇다고 해도 믿기 어려운 사건과 말이었다.
강주찬은 결국 어머니가 와서 어린 자신을 데려가게 되었고, 이후 몇 번 증언을 위해 경찰을 보러 갔다며 사연을 마무리지었다.
“범인은 그래서 어떻게 됐어?”
“잡히는 데 오래 걸렸어. 1년 반인가.”
서드림이 질문했고, 천진섭이 강주찬 대신 대답해주었다.
강주찬 사건 자체는 범인을 잡지 못하고 중단되었다가, 다른 피해자가 나온 뒤에야 범인이 잡혔다고 한다.
다른 피해자도 심각한 상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당분간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등 강주찬보다는 사건이 심각했단다.
아무튼 그 피해자가 얻어낸 증거를 통해 범인을 검거했고 재판 과정에서 강주찬이 입은 피해도 드러났다고.
시기를 듣자하니 강주찬은 범인이 잡혀서 실형을 살게 되는 것까지만 보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뭐……. 이제 도움은 좀 되었나?”
주찬이가 내게 눈짓하며 물었다.
“음.”
내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반응.
오래 전 일이고 강주찬이 제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방식이니까 한번은 걸러 들어야 하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어린애에게 말한 내용인 만큼 쉬운 단어에 추상적이고 교훈적으로 이야기했을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묘하게, 그 말 자체가 어딘가에서 이미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 할아버지가 어땠는지 좀 더 기억나는 거 없어?”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남은 음식을 해치우던 강주찬이 천천히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음식을 씹어 삼키는 동안 말이 없다가 기억을 더듬어 이것저것 두서없이 말해주었다.
아저씨들이 흔히 입는 골프웨어 같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는 노인이었고, 그래도 60대나 70대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흰 머리가 나 있었지만, 반삭에 가까울 정도로 짧게 깎은 헤어스타일에 눈 색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평범했단다.
처음에는 집안에서나 신을 법한 슬리퍼를 신었는데 중간에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서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고 하고.
신체적인 특징은 따로 기억이 나는 것이 없다고 강주찬은 덧붙였다. 흉터나 문신 같은 것도 없다나…….
이름은 들었다고 했는데 평범한 미국 이름이라서 십 년쯤 지나니까 그만 잊어버렸단다.
여기까지 들어서는 남소리 선배님과 전혀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을 주고 생각에 잠겼다.
덩달아 동생들도 아무런 잡담이 없다가……. 강주찬이 입을 열어 정적을 깨뜨렸다.
“어……. 그리고 반지가 있었다.”
“반지?”
“응. 크기가 안 맞았는지 밴드 붙일 때 손에서 빼는 거야. 그래서 기억해.”
다섯 번째 손가락에 끼운, 큰 보석은 달리지 않은 짙은 초록색 반지.
나는 생각을 쥐어짜내기 위해 애썼다.
어디서 본 것이 분명했다. 그냥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아.’
나는 핸드폰을 들어서 빠르게 반지를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이미지 목록에서 제일 비슷해보이는 것을 강주찬에게 짚어 보여주었다.
“이런 느낌으로 생긴 건가?”
“비슷했던 것 같기도? 색이 이것보다는 옅어. 그리고 여기다가 마름모 모양으로 무늬가 나 있는데.”
……그러면, 기억과 완전히 동일했다.
천사……. 배우 남소리가 착용하는 반지였다.
방송 촬영 중에는 빼고 다니기도 하지만, 내가 ‘상태창’을 읽어달라고 했을 때에는 늘 검지에 그 반지가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강주찬 역시……. ‘천사’의 일원을 만난 적이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도 아니고 외국에서, 그것도 십 년 가까이 먼 과거에.
주찬이가 그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다는 말도 생각할 여지가 많았다.
분명 문장 자체는 강주찬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쉬운 말로 표현해준 결과겠지만…….
‘불운 뒤에는 행운이 찾아오고, 행운 뒤에도 불운이 찾아올 수 있다.’
그리고……. 더 의미심장한 말.
친절하게 행동하면 불행을 피할 수 있다는 것.
그 말에 관해서는 당장 식사하며 의미를 따질 수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을 테니까.
“사진보다 색이 옅으면 감람석이겠네.”
그때 서드림이 내 핸드폰 화면을 힐끔 보고는 조용히 말을 얹었다.
“너 어떻게 알아?”
“주변에 수석 모으는 아저씨가 있어서…….”
천진섭의 물음에 무심히 답하며, 서드림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감람석 반지라…….’
마름모 모양으로 무늬가 난, 감람석 반지.
키워드와 생김새를 기억해두려고 노력하며 나는 먹던 타코를 다시 집어들었다.
“도움 됐어.”
“그래서 무슨 일인데?”
“개인사가 있어……. 조금 풀리면 이야기해줄게.”
강주찬에게 대답해주고 나는 삼 분의 일 정도 남은 음식을 베어물었다.
언젠가는 이 녀석들에게도 비하인드를 말하는 게 맞았다. 그게 지금은 아닐지라도.
과연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비밀을 더 파헤친 뒤에 결정해야겠지만 말이다.
* * *
하지만 어떤 비밀은 수면 위로 드러나야 할 시점에 더 깊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2차 경연 촬영 전, 일전에 촬영한 신발 브랜드 광고 관련 스케줄이 있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