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50화
29. FLASH(1)
진정으로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며칠 내내 과열된 내 정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대화였다.
주변 사람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말은 드문드문 나를 불안하게 했고, 주변을 연신 살피며 조사하게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나 스스로 상태가 좋지 않음을 깨달을 정도가 된 것이다.
멘탈을 잘 잡아야 했다. 환경이 영 부담스러운 만큼.
그렇게 다짐하고 차분히 따져보니까, 모든 스트레스를 내가 혼자 감당할 필요는 없었다.
‘엄마, 요즘 잘 지내?’
‘당연하지, 집에 언제 와? 내일 엄마 그 근처 가는데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까?’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생각을 바꿔 다음날 저녁을 먹으며 엄마와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지금 내 상황을 괴상하게 들리지 않는 선으로 돌려 상담했고, 그 결과 단순명료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인생사 무슨 불행이든 행복이든 금방 지나가게 되어 있기에, 미리 걱정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을.
꽤나 교과서 같은 교훈이었지만, 그날 돌아와서 씻고 머리를 말리며 혼자 생각해보니까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수습할 방법부터 생각하는 것은 나답지 않았다.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우선이었고, 미리 대비해 피해를 줄여야 했으며, 소위 말하는 운명이라고 해도 저항해야 했다.
‘뭐……. 그게 맞는 거지.’
이제라도 정보를 얻었으니까 그를 활용하고, 발전시켜나갈 방법을 구상해야 했다.
조금 더 생각해서 접근 방식을 바꾸어보자는 행동 방침에 도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는 지금 선배님께 전해듣는 것밖에 진실에 접근할 방법이 없죠.’
그날 통화에서 나는 남소리 선배님에게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나에게 무슨 판타지적인 사건이 생긴다면 선배님께 물어보는 방식으로 궁금증을 해결했으니까.
그리고 내 상태에 관해서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걸 당연히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도……. 슬슬 한계가 보이는 것 같다.’
문제가 있었다.
천사는 내게 호의적이었고, 나도 그들이 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상황도, 전화로 질문하는 것도 ‘천사’ 체계 내에서 평소 자주 발생하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다시 말해서 –추정컨대– 그 내부에서도 매뉴얼이 딱히 없는 상황.
선배님도 어느 정도는 대응책을 또 모르는 것 같아서 나온 추론이었다.
그러니 그 공백은 내가 남소리 개인을 구워삶아서 정보를 뜯어내야 하는데, 이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정보가 쓸모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선배님이 이래저래 중간에서 곤란해하는 것이 너무 눈에 보였다.
‘물론 그 이유가 전부인 것은 아니고.’
가장 중요한 까닭은, 내가 그 정보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
한마디로 정보 출처의 독과점 현상이었고……. 경계해야 했다.
지금까지 행보는 아군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천사에 관해 잘 모르는 부분이 있었다.
모르는 만큼은 불신해야 했다.
또한 믿음과 별개로 내 시야를 넓히는 일도 슬슬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떠올린 해결 방안은 바로, 내가 모르는 부분을 탐구해보는 것.
‘천사는 하나의 집단이라고 했잖아.’
고로 남소리 선배님이 아닌 ‘천사’ 일원을 찾아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대한민국 서울에만 해도 천사는 최소 몇 명이나 몇십 명까지 존재할 게 분명했다.
애초에 그 선배님도 배우, 연예인이라는 본업이 따로 있지 않은가.
그것도 일을 겸사겸사 하는 게 아니라 이 작품 저 작품 다작하고, 방송 활동도 활발히 했다.
‘기적을 겪어본 사람이 나 말고도 많은 것은 팩트인 것 같은데.’
그러면 천사가 세상에 몇 명 없을 시 남소리 선배님이 감당해야 할 업무량이 말이 안 되었다.
우리 주변에 아주 많은 사람이 천사로서 사회에 숨어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단체로서 업무 외 개개인에게 어떤 공통점이나 특징이 있는지는 내가 모르는 일.
조금 더 생각을 유연하게 하기 위해 나는 가장 먼저 주변에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보기로 했다.
잡담하다가 보면 무슨 영감을 얻게 될 수도 있고……. 그런 것이다.
멤버들에게 묻는 것이 첫 단추였다.
이 친구들에 관해 아는 것이야 이미 많지만, 원래 내 취미가 없는 집 곳간 털기다.
“기적이 뭔데.”
식탁에 수저를 놓으면서 천진섭이 대꾸했다.
지금 모인 멤버들이 조금 뒤죽박죽이었다. 나를 제외하면 강주찬, 천진섭, 서드림.
‘……그냥 집돌이들이군.’
그 외에는 스케줄을 가거나 약속이 있어 부재중이었고, 이영하 같은 경우 나중에 먹겠단다.
따지고 보면 밥 한 끼 먹는 일에 네 명이나 모인 것도 꽤나 드문 일이다…….
“뭔가 예측하지 못했는데 찾아온 좋은 일이라든가.”
포장을 하나 뜯을 때마다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비닐 및 플라스틱 쓰레기에 죄책감을 느끼며 내가 대꾸했다.
플라스틱 용기나 포장지를 뜯어 타코와 부리토를 적당히 세팅해놓자 천진섭이 ‘아!’ 하고 놀랐다.
그리고 녀석이 숟가락 젓가락을 죄다 수거해 포크와 나이프를 꺼내오는 사이, 서드림이 슬슬 와서 식탁 의자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복권 1등…….”
“된 적 있어?”
“……없지.”
사족인데, 어째서인지 기적과 행운에 관해 이야기하면 다들 복권부터 예시로 드는 것 같다.
남소리 선배님도 내게 전에 설명해줄 때 복권 당첨이나 길에서 돈을 줍는 게 같은 맥락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잠시 ‘잘 먹겠습니다’ 하고 밥먹느라 말이 없다가, 문득 강주찬이 질문으로 주제를 도로 가져왔다.
“그런데, 이거 왜 물어보는 거야.”
“그냥 요즘 생각할 게 많아, 인생에 대해…….”
“어어.”
길게 풀어서 설명할 생각도 없었는데, 듣지 않겠다는 녀석의 리액션에 짧게 기가 찼다.
강주찬은 소스가 흘러 끈적해진 손을 휴지로 닦아내면서 조용히 인상을 찡그렸다.
표정이 험악해졌지만, 그게 생각할 때 나오는 버릇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생각 좀 더 해보게 셋이서 말하고 있어봐.”
그리고 우리는 말을 참 잘 들었다.
서드림이 본인 타코에 쌓인 양파를 내 접시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딱히 그런 일 없었는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 일은 있어도~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일까지는, 별로 없지.”
“뭔가, 겪으면서 ‘아, 이게 기적이구나’ 생각하기는 어려우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양파를 쓸어가는 동안 천진섭과 서드림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하기야 ‘기적’이라는 낱말 자체가 상당히 무거운 감이 있었다.
마치 월드컵 같은 데서 승산 없어 보이는 경기를 이겼을 때나 쓰이는 단어 같다고나 할까.
20대 개인사업자 청소년들에게 가져다가 붙이기에는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표현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납득하려는 그때, 강주찬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 나 있어.”
“뭐가?”
서드림이 물었다.
“기적이라고 생각한 일.”
강주찬은 손에 든 타코를 두 입만에 전부 씹어삼키고 말을 이어갔다.
“나 미국 살 때.”
“……어?”
“있었어, 진짜 기적.”
중간에 의문을 표한 것은 천진섭이었다.
두 사람은 이런 데서 난데없이 인연이 깊은 사이였다.
흔히들 조기유학이라고 부르는 해외 생활을 같은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한 것이다.
미국이 땅덩이는 넓지만 한인 커뮤니티는 또 좁아서 부모님이 아는 사이였다나 뭐라나…….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강주찬이 몇 년 일찍 귀국하기도 했으나, 아무튼 둘은 또래였고 말이 통했다.
그리고 우연히 연습생이 되어 만난 것이 아니라 둘이 모종의 친분으로 같이 회사에 들어온 쪽이었다.
둘 다 형제는 따로 있다지만, 같이 지낸 시간 때문인지 가끔 하는 행동을 보면 둘은 묘하게 친형제 같기도 했다.
하여간 그 이야기는……. 나는 언젠가 대충 들었던 일이고, 천진섭도 어렴풋이 아는 것 같은 눈치였다.
“납치당할 뻔한 적 있었거든.”
“그건 기적의 반대 상황인데.”
서드림이 타당한 이의를 제기했다.
“아니, 멀쩡히 돌아왔잖아.”
“……상황을 좀 더 묘사해봐.”
이번에는 내가 요청했고, 강주찬은 들고있던 포크도 내려놓은 뒤 눈을 감고 회상했다.
다시 눈을 뜨면서 말하기를, 끔찍한 일을 당한 것치고는 제법 담담한 목소리였다.
“학교 다녀와서……. 오후였는데 저녁은 아니었어. 저녁 먹기 전쯤.”
우리나라로 따지면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어린이 강주찬은 혼자 외출을 감행했다.
아버지는 일을 나갔고, 집에는 어머니와 친형이 있었는데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먼 거리는 혼자 나가는 일이 없고 등하교도 어머니께서 차로 태워주셨지만…….
집앞 놀이터 정도는 혼자 혹은 친형과 둘이서 나가 놀고는 했으니까
그 동네 어른들은 몰라도 꼬마들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이터에 가면 친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나.
예측한 대로 동네 아이들은 놀이기구와 미끄럼틀이 있는 모래 놀이터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별로 그 애들이랑 더 놀고 싶지가 않았어.”
강주찬이 도착했을 때, 녀석보다 몇 살쯤 어린 애들은 모래를 파서 물길을 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강주찬이 미끄럼틀에서 뛰어내리다가 쌓아놓은 모래성을 운동화로 밟아서 무너뜨린 것이다.
아무리 사과를 해도 상대는 울음을 터뜨리고, 달래려니까 말은 또 제대로 통하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강주찬도 답답해서 화가 나고.
그렇게 몇 분 정도 실랑이를 하니까 녀석도 기분이 갑작스럽게 나빠져서, 강주찬은 곧 놀이터를 떠났다.
“……원래 외출할 때마다 주머니에 5달러 지폐를 넣고 다녔거든.”
혹시 모르니까, 길을 잃거나 갑자기 배고프거나,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 챙겨다닌 비상금 5달러.
마음이 상한 강주찬은 투덜거리면서 혼자 무리에서 떨어져 길을 걷다가 5달러를 이용할 좋을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카페 같은 게 하나 있었어. 그 동네에. 이름도 기억해, ‘바인즈’라고.”
바인즈는 동네 한복판에 2층짜리 건물을 모조리 차지한 카페로, 브런치를 판매하기도 하는 가게였다.
그 옆에는 코인 세탁소나 잡화 판매점이 있기도 했지만, 그런 시설 따위 어린 강주찬은 잘 신경을 쓰지 않았고.
강주찬의 관심사는 오로지 바인즈와 그곳의 딸기 요거트 스무디였다.
세금 제외 4달러 19센트에 판매하는 스무디를, 그 시절 강주찬은 그렇게 좋아했단다.
여름에만 개시하는 음료로 주문하면 아주머니 사장님께서 생과일을 그 자리에서 갈아 만들어주었다.
“믹서기가 돌아가는 걸 서서 보면 엄청 재미있었어. 그래서 그걸 먹기로 했지.”
그리고 바인즈 한구석에 앉아, 스무디를 마시며 이해도 되지 않는 미국 만화책 속 그림을 훑어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
해가 기울고 있었으나 노을이 지지는 않은 그런 오후.
인도와 차도가 맞닿는 위치에, 흰색 승합차가 한 대 서 있었다.
“거기서 웬 이상한 아저씨가 차 창문을 내리고 말을 거는 거야.”
그 사람이 범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