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47화
28. Jopping(4)
‘우리 순서는 두 번째.’
대면식 순위대로 본인의 순번을 정해, 우리는 마지막 남은 자리에 들어가야 했다.
첫 번째 무대는 뒤에서 네 번째 순위였던 출연자가 ‘차라리 맨 처음에 하겠다’며 가져갔고, 그전까지는 뒤에서부터 순서가 채워졌다.
그래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출연진은 1위 기록에 빛나는 달고나밴드이며, 첫 번째는…….
It’s a Deja vu Uh
꿈 같은 착각 Du du ru
착각? Who are you Umm
구독자가 150만 명이 넘는 커버곡 이튜버로, 최근 본인의 곡으로도 막 활동하기 시작한 신인 가수였다.
오버그라운드에서는 막 활동을 시작한 수준이었으나 기존 팬층도 탄탄하고 음색이나 창법도 세련되어 개성이 있었다.
또한 이번 경연 주제인 ‘커버곡’에 관해서는 여기 여덟 참가자 중 가장 전문가였으므로 괄시는 금물이었다.
걸그룹 출신인 특별 담당자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노래를 골라 어쿠스틱하게 편곡하고, 세트를 세운 뒤 듀엣 가수를 불렀다.
음악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 잔잔한 분위기의 멜로디가 몰입감 좋게 무대 밖까지 퍼져나갔다.
한마디로 본인의 감성과 그를 뒷받침하는 노래 실력으로 승부하는 기획이었다.
‘저 분위기를 온전히 이어가지는 못하겠어.’
짧게 판단하고, 노래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추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쯤 대기실 밖으로 나와서 기다려달라는 부름이 도착했기 때문에.
“일어납시다~”
“예에, 가자!”
“오오오~”
한 문장 외치기 무섭게 온갖 감탄사가 뒤에 따라붙었다.
소파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은 막내 둘을 각각 왼손과 오른손으로 잡아당겨 일으키며, 나는 인원을 한번 점검했다.
오늘의 전체적인 콘셉트는 〈One Day〉라는 원곡을 두 번 정도 재해석해 도달한 결과였다.
이 노래를 드라마 내적으로 학생 밴드부 노래로 편곡했다면, 우리는 거기서 정확히 ‘밴드’ 이미지만 가지고 왔다.
찢어진 청바지라든가 프린트가 화려한 반소매 티셔츠, 구멍이 송송 뚫린 민소매 옷이나 길게 늘어지는 끈 목걸이나 성긴 팔토시 등.
자유로운 느낌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으로 예쁘게 보이기 위해 전문가 선생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다.
머리색도 평범하지도 너무 화려하지도 않게 정돈했는데, 나는 〈오디뮤〉 이후에는 평소처럼 짙은 갈색을 유지 중이었다.
“멘트 끝나시면 바로 들어갈게요!”
어두운 백스테이지에서 몇 분쯤 기다리면, 금방 현장 스태프가 신호를 주었다.
“두 번째 순서는 어느덧 대세로 자리잡은 남자 아이돌이죠, 스테리나인입니다!”
MC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증폭되어 우리가 있는 곳에까지 들리고, 우리는 지시대로 무대 위에 올랐다.
내 선창으로 단체인사를 한 뒤, 무대에 서서 관객석을 바라보면…….
스튜디오가 넓은 편은 아니라서, 눈을 가늘게 뜨면 사람들 이목구비가 보이기까지 했다.
그게 아는 얼굴인지 모르는 얼굴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급까지는 아니었지만, 정면에서 보니까 묘하게 속이 울렁울렁했다.
오히려 〈데프아〉에서는 지금보다 많은 사람 앞에서도 긴장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여러모로 신기했다.
중년 남성 기타리스트로, 본업보다 예능 쪽에서 잔뼈가 굵은 MC가 마이크를 내게 주며 사전 질문을 시작했다.
“다들 굉장히 바쁘게 지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준비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그 질문에 나는 카메라에 잘 담기는 곳으로 잠시 자리를 옮겨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 저를 포함해 개인 스케줄이 정말 잦은 멤버가 몇 있거든요. 그런데 다른 멤버들이 정말 고맙게도, 저희 사정을 헤아려주고 시간을 잘 조절해주어서 잘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굉장히 고마웠다고 이야기를 전하고 싶고요.”
길어지는 멘트는 한번 끊고, 멤버들과 눈을 맞춘 뒤 이어갔다.
근래 몇 달 동안 여러 예능을 겪으며 배운 호흡 및 편집점 조절 노하우였다.
“……그렇게 서로 위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획하고 연습한 무대니까요. 관객 분들, 그리고 시청자 분들께서도 재미있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몇몇 다른 멤버에게도 자잘한 질문을 돌린 다음, 심사위원들이 마이크 전원을 켰다.
“그런데 어떻게 스테리나인 분들을 볼 때마다 잘생겨지시는 것 같아요.”
“와, 저도 그 말 하고 싶었어요! 무대 올라오시는데 진짜 이번에도 깜짝 놀랐어요. 얼굴도 너무 작고……. 스테리나인 팬 되려면 시력 좋아야겠어요.”
“에이, 얼굴이 작아도 눈코입이 큼직큼직하게 꽉 차있잖아. 시력 나빠도 괜찮아요!”
예상하지 못한 칭찬으로 시작한 멘트는 곧 무대에 관한 이야기로 방향이 바뀌었다.
“노래를 이용익 심사위원의 〈One Day〉로 골랐어요.”
“이용익 심사위원이 프로듀싱한 최신 보이그룹 노래도 많잖아요, 그런데 이주 씨가 이 노래를 그렇게 희망하셨다고 들었어요.”
인터뷰 때 작가님께 미리 언질을 받은 대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한이주가 씩씩하게, 역시 미리 선배님 및 제작진과 의논해 조정한 대답을 내놓았다.
“네, 사실 이용익 선배님께서 제가 어릴 때 보컬을 가르쳐주신 스승님이거든요.”
그렇게 운을 뗀 이주는 간단한 다짐 내지 각오로 사연을 마무리했다.
“선배님 노래로 멋진 무대를 해서, 제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후 심사위원들은 노래나 우리 상태에 대한 질문을 돌아가며 남겼는데, 사전에 이야기가 된 내용이 대부분이라 답이 어렵지는 않았다.
나는 첫 인사를 맡았던 만큼 그 뒤로는 마이크를 멤버들에게 건네주고 관객석과 심사위원 자리를 눈으로 훑어보았다.
관객이 누구인지 분간할 수는 없었으나 심사위원들은 누가 누구인지 전부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 무대가 시작하기 직전에 등장한, 오늘의 특별 심사위원들까지도…….
‘일부러 이 스케줄을 잡으신 건가……. 그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다.’
배우 남소리.
시간을 되돌린 ‘천사’ 집단의 일원, 그리고 내 비밀과, 내가 모르는 세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언제 한번 얼굴을 보자고 저번에 통화할 때 말은 했는데 이 방송에 덜컥 출연할 줄은 몰랐다.
출연 계기는 드라마 촬영이 드디어 마무리되어 첫 방송 전 홍보를 위해서란다. 같이 출연하는 남자 배우도 함께였고.
드라마 제목만 듣고는 ‘아~ 그거~’ 하고 바로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만, 뭐 이유가 있어서 작품을 골랐겠거니 싶다.
아무튼 짧게 스치듯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이에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왜 이렇게 잘하고 싶지?’
저 선배님이 〈데프아〉 MC로 있었을 때에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 심사 자격이 있다고 하니까 약간 약이 올랐다.
인사를 하고 잠시 무대에 내려가서 준비하는 시간. MC가 현장 관객들에게 곡을 소개하는 소리가 인이어를 통해 들어왔다.
방송 스태프들과 밴드 연주자들은 우리와 교대하듯이 무대 위로 올라섰고 악기와 무대 소품을 설치했다.
무대 중앙에 세운 스탠딩 마이크 한 대와……. 균일하지 않은 간격으로 세워놓은 정사각형의 석고 조형물 여러 개.
조형물의 경우 바닥에 하나씩 떨어뜨려 놓기도 했으나 여러 개를 쌓아서 계단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다.
공짜로 사용하는 소품이 여러 개라서 걱정은 되었으나 방송국은 망설임 없이 승인해주었다.
‘판단은 이제 시청자의 몫이겠지…….’
논란이 되어도 일단 빠져나갈 구멍도 많고, 영 문제되면 나중에 얻은 토큰에서 빼라고 하든가 하자.
그래봤자 우리가 제일 제작비가 저렴하게 든 무대였다.
반항적인 생각으로 대기 시간을 전부 때우면, 어느새 무대에 조명이 전부 깜깜해졌다.
이번 무대는 전원이 함께 무대 위에서 시작하는 구성이 아니었다.
내가 〈데프아〉에서 보인 〈늑대의 시간〉 무대처럼 한 명이 시작을 이끄는 그림이었다.
다만 〈늑대의 시간〉에서는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들이 한번에 무대에 들어왔는데 이번은 그렇지 않았다.
한이주 솔로로 시작하고, 멤버들은 한 명에서 세 명씩 순서에 맞게 입장하는 식.
아무튼 나는 중간 투입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리며 타이밍을 재야 했다.
‘셋, 둘……. 하나.’
거꾸로 초를 세었고, 올바른 타이밍에 밴드 연주가 울려퍼졌다.
처음은 키보드 멜로디, 그리고 드럼, 그 위로 베이스와 기타.
주연은 아무도 없는 무대 위로……. 모두가 익숙하게 느낄, 힘찬 전주가 내달렸다.
노래만 들어도 기분 좋게 설렌다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일까.
연습하느라 하루에 몇백 번은 반복해 들은 것 같은데도 다시 들으면 또 가슴이 떨렸다.
한이주가 가장 먼저, 홀로 무대 위로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찢어져 무릎이 보이는 청바지에 무늬가 없는 흰 티셔츠, 그리고 바지와 같은 청 소재 재킷.
녀석은 건들거리는 발걸음으로 무대 중앙까지 걸어가 스탠딩 마이크를 붙잡았다.
그리고 입에 물고 나온 성냥 장식을 느긋하게 재킷 앞주머니에 꽂은 뒤, 입가를 마이크에 대었다.
원곡보다 한 마디 더 길게 편곡한 전주가 교묘하게 타이밍을 맞추었다.
태양이 타고 별빛이 들면
조그만 나도
하늘 높이 날아 오를 꿈 꿨지
시원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목소리가, 쭉쭉 위로 뻗어나갔다.
창법 자체는 원곡과 닮은 듯하지만 훨씬 거칠고 허스키한 음색이었다.
후렴구로 시작하는 노래였는데, 우리는 아예 첫 후렴구를 전부 한이주에게 맡겼다.
그러나 감탄하고 앉아있을 시간은 없었다.
다음 소절을 받아 부르려면 그 다음 멤버가 바로 무대로 출격해야 했으니까.
많은 시간이 흘러
꿈은 의미를 잃고
매일매일 헤메었지만
무대 오른쪽에서 서난영과 김지상, 서드림이 등장해 춤을 추며 무대 분위기를 가볍게 띄웠다.
춤을 잘 추는 편인 두 멤버를 양쪽 날개 삼아 서드림이 노래를 부르는 3인 대형.
애써 웃어넘겨도
잠에 들고 싶었지
남들 몰래 울기도 하고
대형을 옆으로 살짝 틀며 김지상이 중앙에 서고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옆으로 날려보냈다.
드라마에서는 이 노래가 시도때도 없이 삽입되었으나 가사 자체는 절망 끝의 상승을 나타나고는 했다.
카메라와 관객들의 시선이 오른편 세 사람을 향하는 동안 반대쪽에서도 준비가 바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양옆에 안승준과 천진섭을 데리고 무대에 올랐고, 핸드 마이크를 뽑아낸 한이주에게 스탠드를 받아서 옆으로 치우기도 했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내 머리 위로 흰 조명이 켜졌다.
하지만 시간을 건너
네 손끝에 닿을 수 있다면
나름 요즘 노래에 자신이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음이 높기는 높았다.
그래도 유명 드라마의 OST는 이런 면에서 편했다.
대부분 관객들이 이 드라마의 명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세트를 과감히 포기하고 밴드 세션을 택한 것도 드라마의 존재 덕분이었다.
나는 고작 상자 모양 석고를 두 개를 쌓은 계단 모양 구조물 위에 기대어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혹은 그러나– 드라마 〈공주님과 문제아들〉 속 남자 주인공도 늘 이렇게 앉아 있었다.
여자 주인공 ‘공주님’의 옥탑방 옆 옥상 공간, 아슬아슬하게 버려져 있던 폐가구 위로.
그리고 그 문제아 녀석은 공주님이 계단을 타고 옥탑방에 오르면 늘 팔을 까딱이며 인사했다.
또 다시 하늘을 보고
마법을 꿈꿀 거야
이렇게 말이다.
팔을 들어올리면 티셔츠 소매가 슬슬 내려왔다.
팔뚝에 레터링 타투 스티커를 붙여놓았는데, 다 보일지는 모르겠다.
글자는 무슨 내용이었더라. 유명한 말이었다. 카르페 디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