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45화
28. Jopping(2)
워낙 옛날 노래라서 그런지 검색 결과는 전혀 정돈되지 않은 상태였다.
검색 결과 상단에는 방송국에서 만든 ‘공주님과 문제아들 명장면 몰아보기’ 클립이나 ‘K-Drama Norae’ 같은 이름의 일반 사용자가 만든 비공식적인 음악 영상, 이용익 선배님이 칠팔 년 전쯤 음악 예능에 출연해 OST를 부른 라이브 무대 영상 등이 노출되었다.
“헐, 라이브 보자.”
“저거 틀어봐.”
원래 목적은 이게 아니었는데, 중간에 이목이 끌려서 다 같이 라이브 영상도 한 번 시청해보았다.
상당히 젊은 얼굴의 선배님은 신선했고, 가창력은 충격적이었다.
영상 속 음악이 진행되면서 듣고 있던 모두가 서서히 웃음을 잃고 표정을 굳힐 정도였다.
‘이 노래, 새삼스럽게 어렵네…….’
그 순간 아마도 나를 포함한 멤버 전부가 같은 생각을 했을 테다.
아무리 몇 년 전이고, 최근 들어서는 좀처럼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명창은 명창이었다.
〈밀제트〉에 출연해서도 가수보다는 프로듀서 이미지를 내세우다 보니 하마터면 나까지 진가를 잊을 뻔했다.
가창이 어려운 노래를 하게 되면 메인보컬에게 더 부담이 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시선은 자연스레 한이주에게로 돌아갔다.
이영하와 파트를 나누기는 하겠지만, 난이도가 높은 구간은 한이주와 음역이나 스타일이 더 잘 맞았기 때문에.
특히 더 고생하게 될 것이 예측되어 걱정되는 마음에 나는 녀석의 분위기를 잠시 살폈다.
그러나 한이주는 뜻밖에 꼿꼿했고, 괜히 앓는 소리를 하는 등의 엄살도 전혀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주는 들뜬 눈으로 재생 중인 영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기꺼워 보였다.
‘……음.’
영상이 다 끝나면 바로 정리해 다음 순서로 넘어가야 하는데, 나는 잠시 주저했다.
일부러 여유를 부린 것은 아니고, 정신이 느리게 들었던 것 같다.
음악을 듣고 몰두하는 그 모습이 꽤나 보기 좋아서 나도 모르게 멍해진 게 아닐까.
아무튼 다행이었다. 그 얼굴을 보면 뜻을 모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가 않았다.
같은 것을 보고 비슷한 마음이 든다는 것도 다행스러웠다.
어려운 것을 보고 지레 겁을 집어먹지도 않고, 도전을 앞두면 즐거워하는 마음.
그런 게 좋았다.
나 혼자 앞서 나가는 기분이 아니라서 말이다.
아무렴 뜻이 잘 맞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흐뭇한 시선을 알아챘는지, 한이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형. 원래 보여주려던 거나 보여줘.”
아예 태블릿 PC까지 자신 쪽으로 당겨 화면을 보던 이주는 기계를 꾹꾹 내 쪽으로 다시 밀어주며 말했다.
나는 받아서 목록을 다시 내리는 동시에 이주에게 질문했다.
“어, 그래야지. 노래 어떤 것 같아.”
“아무리 들어도 어려운 노래가 쉬워지지는 않는 듯.”
“아니야, 이주 할 수 있다. 이주 천재 보컬이다.”
“직접 불러봐야 알지, 벌써 포기하면 안 돼!”
한이주는 딱히 안 된다거나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그 틈을 타 서난영과 안승준이 간신배처럼 손을 싹싹 비비며 힘을 북돋아주었다.
“셋 다 됐고, 이거 봐봐.”
하여간 나는 드디어 찾고자 한 영상을 발견해 클릭했다.
〈One Day〉의 뮤직비디오였다.
뮤직비디오는 드라마 영상을 짜깁기해 이어붙이고, 노래를 배경에 삽입한 만듦새였다.
영상을 ‘고화질’로 설정해도 720p가 최대인 것이, 참으로 옛날은 옛날이었다.
드라마 초반 회차 컷들과 함께 노래 첫 소절이 시작하고, 묘한 향수에 단체 함성이 터져나왔다.
“여기서 〈공문〉 안 본 사람도 있어?”
“우리 때는 솔직히 안 보면 친구들이랑 대화가 안 됐지.”
동생들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영하랑 안승준은 신나서 떠들었다.
그렇지만 말마따나 〈공주님과 문제아들〉은 ‘그 시절’ 감성으로 크게 히트한 드라마였다.
다소 유치한 감성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인데, 사실 인기에 비해서 시청률 자체는 높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주연 배우들은 연기력이 부족한 신인이나 아이돌 출신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설정투성이에 폭력성, 범죄 미화 이슈까지.
나만 해도 초등학생인가 중학생 때 둘째가 드라마를 챙겨 볼 때마다 ‘그래서 쟤는 왜 저래’하고 연신 질문한 기억이 있다.
심지어 그러다가 원한을 많이 산 덕에 마지막 2주 정도는 방송 시간에 거실에서 쫓겨나서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모든 열약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꽤나 팬을 많이 모으고, 화제가 되었다.
오죽하면 인터넷에서 ‘공문폐인’, ‘공문신드롬’ 같은 신조어까지 생겼을까.
- 공주? 말투는 왜 그래? 너 미쳤어?
- 왜, 왜, 왜, 그렇게 험한 말을 하시오?!
뮤직비디오 중간에 삽입된 대사가 흘러나왔다.
1화 속 남녀 주연의 대화 장면인데, 영상에서의 연기는 딱딱했지만 지금은 두 분 다 어마어마한 대배우였다.
〈공주님과 문제아들〉의 시놉시스는 간단히 이런 내용이었다.
조선시대 공주 신분의 여자 주인공은 우연한 계기로 몇백 년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 대한민국에 도착한다.
공주님은 아무도 살지 않는 창고 같은 집에서 눈을 뜨는데, 그곳은 사실 동네 문제아 고등학생들의 아지트였다.
똑똑한 공주님은 조선의 지식과 재치를 활용해서 현대에 적응해가고, 문제아 학생들과도 인연을 이어가게 되는데.
네다섯 명 되는 문제아들이 남자 주인공 후보로 등장해 미성년자와의 러브라인, 비행청소년 미화가 주 논란거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2절 즈음에서 잘 재생되던 영상을 멈추었다.
“여기 이 장면을 오마주하는 느낌으로 가면 좋을 것 같아서.”
3화였나 5화였나, 초반 회차 중 한 장면이라고 기억한다.
갈등 관계였던 남녀 주인공이 화해하고 남주인공은 문제 행동을 반성하며 여주인공에게 본인의 비밀을 말해준다.
사실 그 문제아들은 단순한 양아치가 아니라 음악을 하는 스쿨 밴드 소속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후배 관계, 선생님과의 관계가 틀어져 밴드부를 폐부하고 악기도 숨겨놓은 뒤 몇 개월을 방황했다나.
밴드 멤버들은 공주님만을 위한 음악을 연주하며, 그 순간 공주는 밴드 리더인 문제아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스토리만 놓고 보면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만, 이 연주 신은 초반부의 갈등이 해소되는 중요 장면이었다.
이때 남자 주인공의 밴드가 직접 부르는 노래가 바로 〈One Day〉.
“오…….”
드라마를 아는 녀석들이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모르는 멤버들에게 줄거리를 설명했다.
나는 심지어 퇴근하는 길에 영상과 드라마를 미리 예습해온 건데, 예습도 없이 요약이 술술 나오는 이영하가 신기했다.
“그런데 우리가 악기 연주를 할 수는 없잖아. 춤은 어떡하려고.”
결말까지 이야기할 기세인 이영하를 저지하며 천진섭이 질문했다.
“아, 그래서 내가 찾아본 게 있어.”
나는 대답하며, 이튜브 검색창에 새로운 단어를 넣어 결과를 보여주었다.
〈공주님과 문제아들〉이 히트한 뒤에는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여러 2차, 3차 저작물이 세상에 등장했다.
대본집이라든가 감독 코멘터리, 스페셜 방송, 웹툰화, 그리고……. 연극 각색까지.
내가 멤버들에게 지금 보여주는 내용은 연극 공연 영상이었다.
영화도 아니고 연극인 만큼 이튜브 영상은 제작사에서 언론에 공개한 한두 장면이 다였지만.
뮤지컬이 아닌 연극이었으나 유명한 OST에 한해서는 배우들이 도중에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합주가 어렵기 때문인지 아예 연극에서는 ‘문제아들’ 자체가 댄스부 소속으로 각색이 되었다.
다시 말해, 연극 속 남자 주인공은 간단히 춤 동작을 수행하며 〈One Day〉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아까 본 라이브 영상에서도 댄서들 있었잖아.”
춤이 아예 없는 노래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 춤을 가져와 케이팝 코레오그래피 스타일로 수정하면 어색하지 않을 터.
저작권은 회사 측에서 극단에 사용 허락을 받아 그 내역을 방송에 기재해달라고 하면 되니까……. 내가 할 일은 아니었다.
“춤은 거기서 따오면 되고, 구성 자체도 드라마의 톤을 살릴까 해.”
드라마 도중 OST가 불린 서사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웬만한 사람들은 그 내용을 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잘생기고 젊은 배우가 대놓고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오마주하기에 컬러가 잘 맞는 것도 맞는 것인데, 한 가지 장점이 더 있었다.
바로 스테리나인이 아이돌 중에서도 다인원 그룹이라는 점.
“……무대를 뮤지컬 스타일로 하자고.”
정확히는 브로드웨이 가족 뮤지컬 스타일이나, 70년대쯤 헐리우드 뮤지컬 영화 스타일로.
즐거운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이 와글와글 나와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처럼.
이 스타일을 택하면 춤이 파워풀하지 않아도 무대에 서는 사람 수와 에너지로 커버할 수 있다.
나는 칼군무보다는 에너지가 스테리나인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반대로, 춤을 빡세게 시도하지 않으므로 보컬 멤버는 보컬에 오로지 집중이 가능했다.
“〈One Day〉하자, 어때.”
내가 주장했다.
그리고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졌다.
메인보컬 담당 두 사람이 그러자고 바로 말해준 덕분이었다.
멤버들과 있으면 이런 데서는 의견 통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이루어진다.
그러면 그 다음에 결정해야 하는 대목은 역시 ‘Z 토큰’이었다.
〈밀제트〉가 제공해주는 예산, Z 토큰. 받자마자 사용하는 것이 권고 사항이었다.
토큰이 넘쳐나는 상황도 아니고 하나만 있기 때문에 현명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토큰을 쓸 만한 요소는 역시 댄서나 세트일까.”
연극 영상을 힐끔 내려다보며 강주찬이 운을 떼었다.
“나는 세트를 생각했는데, 그게 사실 소품 정도면 토큰을 안 써도 된대.”
문의는 해봐야겠지만, 나는 덧붙였다.
여기서 말하는 소품이란 의자나 지팡이, 스탠딩 마이크 따위를 의미했다.
연극 무대에서는 배경 세트를 모두 세웠으나, 우리가 그를 다 따라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면 그거 어디에 쓰고 싶은데. 토큰 쓰기는 쓸 거잖아.”
강주찬이 다시 질문했다.
“뭐……. 내 추천은 역시 음악을 보강하는 쪽이지.”
이번 무대는 귀에 들리는 것을 우선하기로 했으니까.
뭐든 일관적인 편이 좋지 않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