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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44화 (144/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44화

28. Joppin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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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퇴근은 내가 가장 늦었다.

스케줄이 있는데 퇴근길에 옆으로 새기까지 했으니,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깜깜한 밤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집에 돌아오니까 모든 방 불이 꺼져 있다든가 온 집안이 싸늘하다든가, 그런 광경을 마주하지는 않았다.

오후 아홉 시가 조금 넘은 무렵이면 아주 늦은 것도 아니고 20대 예술가 청년들이 잠들기에는 너무 일렀으므로…….

귀가해 겉옷과 가방을 정리한 다음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한이주를 따로 불러내서 면담 내용을 보고하는 일이었다.

개인 공간이 통 보장되지 않는 숙소였기에, 그나마 사람이 없는 부엌 냉장고 근처에서 냉수나 꺼내 마시며 이야기했다.

“네가 싫다거나 기억이 안 난다거나 하신 건 아니고, 오해가 조금 있었대.”

“무슨 오해?”

“이사 갔다는 걸 몰랐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불만이 있는 줄 아셨다는 것 같아.”

우선 이주가 걱정하는 부분에 관해서는 솔직하게 말했다.

한이주는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서운한 듯했으나, 심각한 수준은 아닌 듯해 그쯤은 둘이서 풀 몫으로 두기로 했다.

사용한 식기는 싱크대에서 바로 씻어내고 나는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 무대 잘하라는 전언이 있었다.”

“갑자기요!”

“네가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본격적으로 지켜보려고 하신단다.”

조금은 과장이 섞인 번역이었지만, 뉘앙스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한이주가 입으로 ‘덜덜덜’ 소리를 내며 괜스레 오버액션을 취하는 사이.

나는 1층 방을 돌고 2층까지 올라가서 자기계발에 몰두하거나 휴식하는 멤버들을 모조리 불러모았다.

각종 늑장과 반항으로 인해 1층 거실에 아홉 멤버가 전부 모인 시각은 밤 열 시 반쯤이었다.

“일개미들의 휴식시간 보장하라.”

“새벽에 사람 깨우는 리더 규탄한다.”

“우우, 사퇴하라.”

윗집 멤버들이 쫑알쫑알 말이 많았지만, 나는 하나하나 논리로 대응해 주었다.

“그래서 내가 게임 한 판 끝내는 거 기다려 줬잖아. 그리고 드림이 너는 새벽 되기 전에 끝낼 거니까 과장하지 말고.”

“우우.”

“마지막으로 내가 사퇴하면……. 우리 모두 좋지 않을 것이다.”

“독재자 재수 없다!”

“재수 없다 누구야?”

지나치게 날것의 반응에 황당한 웃음이 터졌다.

나는 바쁜 와중에도 범인 이영하를 색출해 눈을 똑바로 보고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준 뒤, 본론을 펼쳤다.

이야기는 오늘 내가 〈퀘스트보드〉 촬영을 마치고 이용익 선배님의 작업실에 놀러 가 선곡 조언을 듣고 왔다는 말로 시작되었다.

아마도 지금 이 시점, 멤버 전원이 한이주의 뒷사정을 직접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아하니 대개 건너건너 대충 전해 듣거나 이주와 선배님 사이에 무슨 사정이 있으리라고 분위기를 파악한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눈치로 아는 게 불편한 것도 어릴 때 이야기지.’

단체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사생활이 공공재가 되는 현상도 이제 다들 그러려니 했다.

때로 없는 이야기가 생긴다거나, 이상하게 과장되는 등의 부작용이 있기는 했으나 별로 악의적인 각색은 없었으니까.

그룹 내에서나 회사에서나 알아서 이야기 도는 게 같은 말을 모두에게 두 번, 세 번씩 설명하는 것보다 덜 귀찮기도 하고.

아무튼 한이주는 대놓고 선배님의 노래를 커버하고 싶다고 며칠 동안 녀석답지 않게 열심히 주장하고 다녔다.

그리고 스테리나인 멤버들은 자초지종을 잘 몰라도 ‘열심히 하는 이유가 있는가 보다’하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 목록을 쌤한테 말했다고?”

내가 운을 떼기 무섭게 한이주가 맥을 끊고 질문했다.

“이것저것 말씀드렸어. 확정된 것도 아니고, 우리도 여러 개 중에 고민하고 있었잖아.”

“그건 맞지만……. 그, 반응은?”

“솔직히 말해서 애매했어.”

유력 후보였던 〈너를〉, 〈사랑을 바란다〉, 〈Gift〉 모두 깔끔하게 ‘좋다’는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무대가 어떻게 뽑힐지 걱정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솔직히 단번에 감탄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면 죄다 나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적당히 좋은 무대가 아니라 누가 봐도 놀랄 만한 좋은 무대를 꾸리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언제나.

나는 선배님이 각각 곡에 관해 하신 –해석 비하인드라든가, 비추천하는 이유 등– 말씀을 멤버들에게 전하며, 새로 얻은 카드에 관해서도 설명을 마쳤다.

“그래서 찾아보다가 〈One Day〉 이야기도 나왔거든.”

“〈One Day〉 좋아. 내가 처음에 말했잖아!”

내가 노래 제목을 입 밖으로 내자마자 이영하가 양손을 들고 반겼다.

사실, 〈One Day〉는 전에 언급되었을 때 한이주가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는 듯이 슬쩍 넘겨버린 노래다.

그런데 솔직히 한이주랑 잘 어울린다.

보이스 톤도 리듬도, 시원시원한 분위기도 그야말로 찰떡같았다.

이 녀석이 굳이 왜 〈One Day〉를 외면했는지도 묘하게 알 것 같아서, 선배님의 작업실에 가서 나는 슬쩍 말을 흘려보았다.

그리고 앞서 말한 세 곡보다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오리지널 발라드인 〈너를〉, 〈사랑을 바란다〉, 발라드 랩 〈Gift〉, 여기에 록 스타일을 취한 〈One Day〉까지.

선택지는 네 갈래나 있었고,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한번 안건을 명확히 짚었다.

“우리 어차피 선곡은 오늘 안에 끝내야 돼. 그래야 내일부터 작업을 하지.”

지금까지는 여유가 있었는데, 슬슬 게으르게 정신 빼놓으면 안 될 타이밍이 찾아와서 말이다.

게다가 만약 발라드 원곡으로 무대를 준비한다면 편곡하고 안무를 새로 구성할 시간도 필요했다.

우리만 일하는 게 아니라 편곡자나 안무가, 어쩌면 댄서나 여타 스태프까지 동원되는 공동 작업이므로 서둘러서 나쁠 것은 없었다.

“선곡 회의는 영상 찍어야 되는 내용 아닌가? 캠 있는 사람?”

“그거 회사에 놓고 왔는데.”

김지상이 거수하며 질문하고, 강주찬이 퉁명스레 대답하며 순식간에 분위기는 어수선해졌다.

그렇게 약간의 소란과 볼멘소리를 취합해 결국 우리는 다 같이 한밤에 회사 연습실로 출근하는 진풍경을 만들어냈다.

‘누가 들을 수 있는 밖에서는 중요한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에 입각해 우리는 입을 꾹 다물고 동네 길을 걸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회사에 출근하고 나서야, 천진섭이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서 질문했다.

“……그런데 한이주는 왜 이용익 선배님을 계속 쌤이라고 불러?”

걸어오는 중간에 계속 혼자서 의아하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대목쯤에서 질문을 훔쳐 듣고 모르는 척 사물함에서 연습용 신발을 꺼내러 가는 한이주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네 입으로 설명해라.”

“으으…….”

멤버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이쪽으로 시선을 모았다. 다른 녀석들도 어지간히 궁금했나 보다.

한이주는 굉장히 쑥스러워하며 사연을 간결한 팩트 위주로 전달했다.

어릴 때 보컬 레슨을 받은 적 있고, 십여 년 전이라 선배님께서 잊어버리신 줄 알았는데 기대하겠다고 말을 해주셨다고.

그런 사유로 이번 경연 퀄리티를 특별히 더 신경 쓰고 있다고 말하는 이주에게 나는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

“왜 처음에 〈One Day〉를 무시했는지도 네 입으로 말하시지.”

“아, 진짜! 내가 이 회사 오디션 곡으로 부르고 들어와서 그랬다, 왜!”

더 못살게 굴면 진심으로 짜증을 낼 기세라 그쯤 놀렸다.

아무도 없는 회의실 한구석에 셀프 카메라를 설치하고, 우리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 양상은 사실상 〈One Day〉를 꺼리는 한이주와 녀석을 설득하려는 여덟 멤버의 대립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One Day〉라는 노래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해.”

“그 어려운 거 이주는 15살에도 잘 부르고 오디션 합격했잖아.”

“아니, 그건 아무것도 모르고 부른 걸 붙여주신 거고. 객관적으로 어려운 요소가 너무 많다구.”

“맞아. 노래가 엄청 높긴 해…….”

이영하가 한 턴 만에 기권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튼 이용익 선배님 보컬 곡 부르기로 결정한 거 아니야?”

“맞아, 선배님 노래는 다 어렵지 않아? 파트 나눈다든가 작업도 많이 필요하고.”

강주찬과 천진섭이 협공해서 ‘어려워서 안 된다’는 의견에 반박했는데, 주장은 그럴싸했지만…….

“잠깐.”

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흐름이 이렇게 되면 ‘그럴 바에는 그냥 보이그룹 커버나 하자’는 결론으로 빠질 위험이 컸다.

한이주가 무작정 튕겨내다가 자기가 놓은 덫에 자기가 빠지는 결말은 나로서도 사절이었다.

하여간 나 역시 선배님께 이주가 원하는 대로 선배님 노래를 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왔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향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편이 나았다.

“나도 발표 좀 하자. 방송 내보낼 말은 아니라서 카메라는 잠깐 끄고…….”

카메라 근처에 앉은 서드림이 홀라당 카메라 전원 버튼을 누르고 돌아왔다.

이 이야기가 비방용인 까닭은 남의 그룹을 헐뜯거나 욕을 해서는 아니고 대놓고 데이터를 비교하려니 왠지 재수가 없어서였다.

“우리 대면식 무대를 다 봤잖아. 나는 사실 대면식 느낌이 〈오디뮤〉 특별 무대 때랑 다 비슷했다고 보거든.”

우리는 물론 두 무대가 꽤나 다른 느낌이었는데, 이 원인도 실은 선곡 때문이었다.

〈오디뮤〉 때 보여준 〈나에게〉는 기존 스테리나인답지 않은 아련하고 따뜻한, 겨울 같은 느낌이 강했으니까.

여기다가 반대로 〈밀제트〉 대면식에서는 우리가 원래 자주 해왔던 파워풀함과 강렬함을 내세워 〈Run and Run〉 무대를 꾸렸고.

그러나 다른 출연진들은 무난하게 자신이 잘하는 것을 두 번 연속해 보여주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하면.’

아직 〈밀리어네어 Z 트랙〉은 첫 방송 전이라, 대면식 무대에 관한 대중이나 팬덤 반응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참고해서 봐도 좋은 데이터가 있었고, 그게 바로 〈오렌지 디스크 뮤직 어워드〉 선공개 무대였다.

나는 태블릿 PC로 이튜브 어플을 틀어 올해 〈오디뮤〉 무대를 검색해 멤버들에게 보여주었다.

“사실 사람들은 춤을 잘 추는 무대보다는 노래를 잘하는 무대를 원하거든.”

영상 조회 수가 사실을 말해주었다.

아무리 댄서로 구성된 팀이 출연진 중 팬덤이 작고 약세라고 해도 차이가 상당했다.

각 영상에 달린 댓글 내용도 가창 위주 팀이 대중……. 그러니까 ‘팬덤 밖 사람들’ 사이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

팬덤 의견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아이돌은 대중보다도 팬덤 의견을 우위에 두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러나 이곳 〈밀제트〉에서 우리의 경쟁자는 아이돌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 출연하기로 한 이유가 있잖아.”

우리가 아주 잘하는 녀석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자.

스테리나인이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재주가 뛰어나고, 팀워크 좋고, 무대에서 잘 노는 팀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자.

우리가 맞부딪혀야 하는 상대는 아이돌이 아니라, 우리를 얕잡아보는 세상의 시선이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우리가 노래를 잘 부르면 팬덤에서 제일 좋아하시지 않을까?

‘적어도 못할 때보다는 좋아하시겠지?’

당연했다.

요약하면, 우리가 춤을 잘 춘다는 것은 사람들이 이미 잘 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노래를 잘하는 가수를 춤 잘 추는 가수보다 조금 더 고급이라고 여기고는 한다.

세상의 눈초리가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나는 한 단계 파워 업 한다는 느낌으로 ‘노래 잘하는 가수’의 영역도 노려보고자 하는 것이다.

“대신 보컬에 의존하지는 말고, 재미있게 해보자.”

나는 카메라 녹화 버튼을 다시 누르고, 이튜브 검색창에 새로운 검색어를 하나 집어넣었다.

‘공주님과 문제아들 One Day’.

〈One Day〉는 본래 국내 드라마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으로 쓰인 노래다.

그리고 〈공주님과 문제아들〉은, 그 드라마의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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