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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41화 (141/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41화

27. 너라는 이유(5)

내가 묻자 한이주는 자세를 바꾸어 똑바로 앉더니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물론 침묵은 삼 초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원래 인내심이 박약한 친구였다.

그래도 막상 말을 꺼내려니까 속에 걸리는 것이 있는지, 이주는 입을 달싹이면서도 한참을 더 머뭇거렸다.

나는 목소리를 기다리며 가만히, 소파에 앉은 우리 막내 중의 첫째를 위아래로 살며시 훑어보았다.

‘음…….’

막말로 한이주는……. 관상만 따지면 팔자에 ‘노래’의 ‘ㄴ’ 자도 없을 것처럼 생긴 편이었다.

노래는 당연하고 아이돌 활동이나 애교, 사교성 따위도 전무할 것 같다고나 할까. 얼굴만 보면.

한마디로 귀공자 스타일이었는데, 피부가 흰데 이목구비는 뚜렷해 냉기가 풀풀 풍겼다. 입만 다물면.

그러니까 이주는 무슨 말이든 하기 시작하면 단어 하나마다 체감 외모 점수가 조금씩 깎여나갔다.

덜렁대고, 주의력 없고, 사고뭉치에 감정의 폭은 널을 뛰며 평소에는 제대로 꾸미고 다니지도 않으니까.

‘아, 물론 진짜 아이돌로서 사고를 쳤다는 말은 아니고.’

어디 부딪히고, 넘어지고, 늦잠 자고, 소품 떨어뜨려서 깨먹고, 음료수 쏟고, 물건 잃어버리고 다니고……. 이런 생활 속 사고 이야기다.

즉 정말 놀랍게도 한이주는 이러한 아슬아슬한 특징들을 가지고도 굉장히 얌전한 아이돌 경력을 자랑했다.

연예인으로서 금기시되는 법적 및 도덕적인 논란도 없었고, 자잘한 구설수에도 한 번 오르지 않았다.

데뷔 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는 물론이고 나이를 조금 먹어 스테리나인이 해체하기 직전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현상을 ‘한이주가 착해서 조심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이주……. 착해.’

어떻게 냉한 외모와 방정맞은 태도와 착한 성격이 공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이주는 그걸 해냈다.

하여간 이주는 멤버 동생들 중에서도 내가 꽤나 귀여워하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한이주의 뒤끝 없고 단순한 성격을 알기 때문에 특정 인물을 불편해한다는 말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 의문이 든 것이다. 걱정에 앞서서.

이주가 대체 왜.

그 사람이 대체 뭘 했는데.

나는 그래도 이용익 선배님에 대한 신뢰보다는 한이주에 대한 신뢰가 더 컸다.

이주가 잘못한 게 아니라, 그 선배님이 실수를 저질렀거나 무슨 오해가 있었겠지.

나로서는 절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한이주의 물음에도 즉시 답이 나왔다.

“……뭔가……. 내가 잘못했을까?”

“에이. 그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은 왜 하는데.”

타박한 게 아니라 이유를 물어보려고 했고, 이주는 내 의도를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한이주는 소파 한구석에 구겨진, 강주찬이 베개 대용으로 사용하는 캐릭터 인형을 끌고와 품에 안고는 말을 이었다.

“그때 쌤한테 잠깐 배웠다가……. 이제 십 년 정도 지났지? 십 년까지는 안 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너 중1인가 중2 때 회사 들어오지 않았냐. 그러면 최소 6년, 7년은 되었겠네.”

이주가 고개를 끄덕끄덕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런데 내가 솔직히 그 사이에 연락을 자주 드리지는 못했어…….”

“……그래?”

“마지막이 아마도 연습생 되면서……? 그것도 엄마 전화할 때 전화 바꿔서 말한 게 전부란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이 생겼지만, 우선은 계속 말하게 두었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만나니까 너무 반가운데, 쌤은 안 그러신 것 같아…….”

괜한 걱정이라고 어깨나 툭툭 두드려주고 끝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선배님은 그렇게 친분이 있었다면 한 번쯤은 먼저 언급해줄 법도 한데, 분명히 말을 아꼈다.

카메라가 돌 때든 촬영이 종료되고 나서든 딱히 선배님이 이주를 더 챙겨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찌 생각하면 필요 이상으로 냉정한 태도였다.

담당으로서 묶인 이상 선배님에게는 우리와 거리를 두거나 공평한 태도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밀제트〉 속 심사위원 점수는 담당자 한 명을 빼고 일곱(특별 심사위원이 있다면 플러스 알파) 명이 매긴 값으로만 총점을 계산했다.

그러니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화면에 보여준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터.

또한 방송에 보이기 싫다면 카메라가 꺼졌을 때 슬쩍 언질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인사는 잘 받아주시고 촬영 분위기도 막 좋아서 더 이상해~ 진짜 신경 쓰여.”

한이주가 말랑말랑한 돼지 캐릭터 인형의 볼을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면 내가 기억 안 나시는 걸지도…….”

한이주가 쉽게 잊히는 캐릭터는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에는 낫겠거니 싶었다

결론은 정말로 잊어버렸거나, 선배님께 무슨 이유가 있어서 한이주를 적당히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확인 차 이주에게 당시 일을 몇 가지 물어보았다.

“선배님하고 개인 레슨은 언제 그만뒀는데?”

“나 초등학교 6학년인가? 그때 이사 가면서 관뒀어. 너무 멀다고.”

이사라면 이주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정확히는 5학년 진급하기 전 겨울방학 때.

한이주는 누나가 둘 있는데, 당시 큰누나가 부산에 있는 무슨 영재 고등학교로 진학해 온 가족이 이사를 한 거다.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인데 그래도 가족이 멀리 있는 것과 가까이 있는 것은 다르다며 이사를 결심했고, 한이주는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싫어서 반대했는데 부모님은 말을 안 들어주시고, 심지어 부모님 일거리도 부산에서 이미 구해서 어쩌고 저쩌고.

나만 해도 살면서 열 번도 넘게 들은 레퍼토리인데, 어째서 본인히 계산을 헷갈리는지 모르겠다.

“데뷔하고 나서는 연락 따로 안 드렸어?”

“연락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뭐……. 그래, 그럴 수 있다.

사실 연락에 관해서는 다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컴퓨터 의자에서 소파로 몸을 옮기며 이주와 나란히 앉았다.

“일단 들어보거라, 꼬마야.”

“넵.”

“그동안 네가 연락을 못 드린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돼.”

허벅지 아래 깔려 구김살이 잡힌 소파 쿠션을 끄집어내 정리하면서, 내가 말을 이어갔다.

“레슨 들을 때 너 몇 살이었어, 초딩이었지.”

“그렇지?”

“초등학생의 꾸준한 연락을 기대하고, 실망하는 어른이라면……. 솔직히 나는 그 쪽이 이상하다고 봐.”

으음, 하고 한이주가 얕은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너 레슨 연락하는 거, 예를 들어서 하루 빠지거나 아프거나 이럴 때. 네가 직접 연락했어?”

“아니? 엄마가 했지.”

“너는 번호는 있었어?”

“어……. 아니, 나 그때 핸드폰도 없었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삼 초쯤 지나면, 이주의 표정은 서서히 물에 물감이 번진 것처럼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

한이주가 허공에 가볍게 쥔 주먹을 마구 위아래로 흔들었다.

“맞아, 나 연락 드리려고 했었어. 데뷔했을 때.”

“그런데 왜 못했어.”

“그때 엄마 아빠한테 쌤 번호를 물어봤는데 번호가 바뀐 것 같다고, 알아보겠다고 하시고 다 같이 까먹었어.”

놀랍지도 않은 진실이었다.

인생을 대충 살아가는 어른들도 아이도, 번호를 자주 바꾸는 연예인도 전부 이해 가능한 선이었다.

그러나 덕분에 이제, 이 사건에 한이주의 잘못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남은 것은 결국 ‘어째서’에 관한 의문.

이 점은 사실 별 수 없었다.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밖에는.

그리고 따지자면 이 역시 그렇게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네 얘기 좀 해도 되면 내가 한번 가서 여쭤볼까?”

“……지금?”

“아니, 지금 말고. 나는 내일 〈퀘스트보드〉 촬영 때 선배님 만나니까.”

〈퀘스트보드〉는 OTV의 이튜브 예능 시리즈로, 조회 수가 꾸준히 나오는 콘텐츠였다.

콘텐츠의 주된 알맹이는 미리 받은 팬 및 시청자의 질문을 게스트가 읽으며 답변하는 것.

특별히 아주 재미있거나 신선한 포맷의 방송은 아니었으나, 그만큼 부담이 없는 데다가 제작진이 대체로 친절했다.

아이돌이나 가수, 배우 들이 프로모션을 위해 한 번은 거쳐가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번에 나는 〈밀제트〉 홍보로 나서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출연한 지 시간이 꽤 흐르기도 했고, 〈퀘스트보드〉의 주 시청자 연령층과 가장 어울려서 뽑혔다나 뭐라나.

물론 혼자는 아니고 이용익 선배님이나 다른 몇몇 출연진들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그래, 형이 막 싸가지없이 물어봐서 내 이미지 깎지만 않는다면야…….”

“싸가지는 방금 네 발언이 제일 없는 거 알지?”

“아야!”

안 때리고 인형만 뺏었는데 엄살이었다.

나는 쪼글쪼글해져 울상이 된 돼지 인형을 한이주 머리 위에 올려주며, 입만 다물면 정말 멀쩡하게 생긴 녀석이라고 다시금 생각했다.

* * *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잠시만 정리하고 이어서 갈게요!”

언젠가는 가수였고, 지금은 케이팝 프로듀서라는 직함이 더 익숙한 이용익은 컷 사인이 들어오자 마자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촬영장은 환하고 분위기가 좋았으며, 출연진이나 스태프들은 모두 젊었다.

그 모습을 보면 이용익은 아이돌 혹은 팬덤이 있는 가수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제가 눈치도 없이 참여한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몇 분 정도 걸립니까?”

“이십 분 정도는 필요합니다. 자리는 잠시 비우셔도 괜찮아요.”

그때 이용익 바로 옆에 앉은, 동시대 가장 잘 나가는 비트 메이커 겸 프로듀서가 스태프에게 물었다.

스태프는 싹싹하게 대답했고, 프로듀서는 제가 담당으로 맡은 여성 래퍼에게 슬쩍 손짓했다.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가 대는 것이 나가서 담배나 피우고 오자는 뉘앙스였다.

“저희 밑에 좀 내려갔다가 오겠습니다.”

그 인사를 끝으로 두 사람이 촬영장에서 이탈했다.

고정 MC가 따로 없는 방송이었기 때문에, 그로서 스태프를 제외하면 카메라 앞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다시 말해, 이용익 본인을 제외하면 한 명.

이용익은 말없이 시선을 그 방향으로 넌지시 돌려보았다.

상대는 그전부터 이쪽을 보고 있었는지, 곧바로 두 눈이 마주쳤다.

“선배님!”

청년이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아이돌 그룹 스테리나인의 리더, 정의헌.

연예계에 종사하면서 오늘날 그의 이름과 얼굴을 모를 수는 없었다.

알기 때문에 이용익 본인도 제작진에게 스테리나인을 맡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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